컨셉보다 활용이 더 좋다
한국이나 할리우드나 소재 고갈의 문제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영화들이 곧잘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만큼 아이디어에서 그치는 영화들도 많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점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나열하기에만 급급하다가 무너져내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다행히도 '서치'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컨셉도 놀랍지만, 그 활용도가 더 뛰어나다. 기계 매체의 눈으로 사건을 좇으면서도 인간의 감성을 잃지 않는다. 사라진 딸을 찾으려는 아빠의 집념과 사랑은 랜선을 뚫고 관객들의 눈과 마음을 움직인다.
놀랍게도 '서치'는 영화 러닝타임 내내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기계 매체의 눈인 모니터를 통해 그려낸다. 그래서인지 마치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SNS 버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관객들은 주인공인 '데이빗'이 보는 것을 보고, 듣는 것을 듣는다. 주인공과 관객에게 주어진 정보가 같다는 점이 흥미롭다. 더 나아가 주인공이 미처 보지 못한 모니터 위의 단서들을 관객들은 캐치하여 자신만의 시선으로 사건을 좇을 수 있다. 이런 진행이 가능한 것은 영화가 저장 매체의 장점들을 잘 활용하기 때문이다. 컴퓨터에 저장된 십수년 전은 동영상은 물론이거니와, 딸인 '마고'가 자신도 모르게 페이스북, 인스타, 트위터, 텀블러 등 다양한 SNS들과 인터넷에 흘리고 다닌 쿠키들을 헨젤과 그레텔처럼 하나하나 주워서 답을 향해 끼워맞춘다.
모니터만 바라봐서 지루할 것 같지만, '서치'는 무엇보다도 스릴감이 일품이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 하나하나 터져 나오는 정보들은 스크린에서 쉽게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뻔히 답이 나온다 싶을 때 중간에 몇번이나 방향을 틀어버리는데 이런 부분들이 꽤나 재밌다. '서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이용해 눈길을 끌게 만들고,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 눈길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관객들과 주인공이 같은 모니터를 바라보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데이빗'은 실종된 소녀 '마고'의 '아빠'라는 점이다. 모니터를 뚫고 나오는 부정(父情)은 기계로만 진행되는 영화에 감성을 불어넣는다. 데이빗은 딸이 사라지고 나서야 웹상에 넘실거리는 딸의 흔적들을 통해 비로소 그녀와 소통하기 시작한다. 같은 단서를 관객들과는 다른 감정으로 읽는 데이빗의 모습을 보면, 기계가 대처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 간접적으로나마 느껴진다.
이처럼 '서치'는 소통의 부재와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가족 구성원의 이야기로도 제법 흥미롭다. 게다가 한국계 미국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음에도, 할리우드가 바라보는 스테레오 타입의 아시아인이 아니라 굉장히 보편적인 가정의 모습을 다뤘다는 것도 인상적이다.(북미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나 넷플릭스의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를 보면 할리우드도 분명 변화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오프닝이 '업'(2009) 못지 않게 감동적이니, 늦지 않게 극장에 입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