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보단 박력과 쾌감을 택하다
'블랙 팬서'의 단독 드리블이었던 설 연휴에 비하면 올해 추석은 그 어느때보다 피튀기는 라인업으로 채워져있다. 100억짜리 한국 영화 3편이 동시에 개봉한 전례가 있나 싶을 정도로 팽팽한 기싸움으로 추석 연휴 레이스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 중에서도 200억의 제작비를 들인 '안시성'은, 무지막지한 제작비보다도 이제까지 스크린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고구려를 배경으로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을지가 더 궁금했다. 다른 곁가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하는 예상과는 다르게, '안시성'은 다른 곳에 한눈 팔지 않고 공성전 그 자체에 더 집중한다. '안시성'의 이런 선택은 치욕의 역사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아내는 정신 승리가 아니라 우리 손으로 쟁취해낸 당당한 승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안시성'은 눈물 흐르는 국뽕보다는 가슴 벅찬 자부심을 선사하며 개운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서게 만든다.
'안시성'은 괜히 200억이라는 제작비를 들인게 아니구나 싶을 만큼 허-리우드 영화 못지 않는 물량공세를 선보인다. 로봇 암, 스카이워커 등 최신 촬영 장비와 거대한 세트, CG를 사용하여 치열한 공성전을 제대로 그려낸다. 공성전은 일반 전투와 다르게 공격과 수비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맞춘 다양한 전술과 전투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앞서 말했듯이 '안시성'은 전투를 감춰뒀다가 하이라이트에 몰아치는 것이 아니라, 빠른 전개로 초중반부터 시작한 전투의 리듬감을 끝까지 이어간다. '명량'(2014)이 생각날만큼 전투 자체로 전개와 긴장감을 그려낸다. 게임 스테이지처럼 펼쳐지는 당태종 이세민의 압도적인 물량 전술과 안시성주 양만춘의 맞춤형 파훼 전략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처럼 200억의 제작비를 들인 '안시성'이지만, 출연진을 보면 다소 의아할 수 있다. 흔히 생각하는 근엄하고 무게감있는 장군상과는 맞지 않아 보이는 '조인성'의 양만춘을 필두로, 캐스팅 라인업에서 젊음의 기운이 느껴진다. 막대한 제작비에 비해 다소 맞지 않는 캐스팅들이 아니었나하는 우려와는 달리, 보고 나면 이런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특히 늘 부잣집 도련님, 소년같은 이미지였던 '조인성'은 새로운 장군상을 자기만의 모습으로 잘 그려낸다. 위에서 지시하는 '보스'가 아니라, 직접 최전선에서 뛰고 구르는 '리더'의 모범 답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안시성'을 지켜보는 관찰자라는 꽤 막중한 임무를 맡은 '남주혁'도 스크린 데뷔작에서 꽤 인상적인 모습을 선보이며 앞으로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눈에 띄긴 한다. 박성웅의 중국어 연기는 중국어를 1도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어색해서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고, 신녀 '시미'(정은채)는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중요한 역이었음에도 그 활용도가 좋지 못하다. 그리고 판타지에 가까운 고증은 이게 고구려인지 곤도르인지 헷갈릴 정도이고, '반도의 제왕', '킹덤 오브 해모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이전의 할리우드 영화의 레퍼런스를 많이 따와 새로운 맛이나 무게감이 떨어지는 건 약간 아쉽다. 그럼에도 '안시성'은 분명 이전에 충무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유형의 쿨한 액션 영화임은 분명하다. 역사를 재현하는 다큐가 아니라 쾌감을 선사하는 오락 영화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한다면, '안시성'은 올 추석 영화 중 가장 만족스러운 선택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