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더니
조금 미안한 말로 시작하자면, '창궐'에 대한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았었다. 조선을 배경으로 한 좀비 영화라는 소재는 기똥찬데, '공조'의 '김성훈' 감독과 배우 '현빈', '장동건'의 조합에서 큰 기대를 가지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눈길을 확 사로잡는 예고편과 영화의 분위기를 한번에 보여주는 멋진 컨셉의 포스터는 이런 심드렁한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게 만들었다. 이거 잘하면 물건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놀라운 기대치로 바뀌었고, '창궐'은 추워진 날씨를 데워줄 화끈한 액션 영화가 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영화는 높았던 기대치에는 살짝 미치지 못한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던 조상님 말씀 그대로, '창궐'은 장르 영화로도 액션 영화로도 사극 영화로도 모두 어정쩡한 아쉬움을 안기고 만다.
좀비와 흡혈귀의 중간 그 무언가로 보이는 '야귀'라는 존재가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창궐'의 배경이 조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익숙하다고 생각한 시대적 배경에 이질적인 존재를 끼워넣은 것은 정말 좋은데, 아쉽게도 '창궐'의 창의력은 매력적인 시놉시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괜찮은 설정을 낭비하는 수준에 그치고 만다. 아예 대체 역사물로 갈 것이었으면 좀 더 과감하거나 화끈한 선택을 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창궐'의 시선은 궁 안에서 멈춘다. 겨울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올해만 도대체 몇번의 왕좌의 게임을 스크린에서 보는건지, 또 다시 궁중 암투다. 하지만 '창궐'의 더 큰 패착은 음모는 궁 안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정작 액션은 궁 안으로 몰아넣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장 아쉬운 것은 액션 영화로서 '창궐'의 리듬감이다. 예고편만 보면 화끈하게 난장판을 벌이는 그런 액션 영화일 줄 알았는데, 영화는 의외로 액션이라는 카드를 많이 아낀다. 중반까지 진부하게 흘러가는 덕분에 야귀라는 존재를 까먹을 정도다. 그래도 만약 후반부에 화끈하게 액션이 쉴 새 없이 펼쳐졌다면 초반부의 아쉬움이 상쇄됐을지도 몰랐겠지만, 본격적인 액션이 펼쳐지는 중후반부도 의외로 늘어진다. 얼마전 개봉한 '안시성'이 좋았던 이유는 한눈 팔지 않고 엄청난 규모의 액션을 지루하지 않고 리듬감있게 그려냈다는 것이다. '안시성'은 규모도 규모지만 각각의 액션 시퀀스를 속도감 있게 펼쳐보이면서 오락영화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해냈는데, '창궐'은 이런 점이 좀 부족하다.
'창궐'은 액션 시퀀스의 흐름이 이어가지 못하고 계속 호흡이 끊긴다. 왜 때문인지 자꾸만 숨고르기를 하면서 쉬어가는데, 무엇보다 이 쉬어가는 틈에서 조연 캐릭터들의 활용도가 굉장히 아쉽다. 굳이 저렇게 여러번 동어반복을 할 필요가 있었나 싶을만큼 흡사한 전개가 반복된다. 그리고 기껏 모아놓은 파티원들의 활용도도 그리 좋지 못하다. 팀플레이보다는 요코야마 미쯔테루의 삼국지 만화 속 장수들 마냥 야귀들을 혼자서 썰어버리는 현빈 왕자의 원맨쇼가 펼쳐지며 긴장감도 놓쳐버리고 만다. 팀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더 다양한 액션 시퀀스나 야귀를 활용한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었을텐데, 기껏 판을 벌려놓고 활용하지 않은 점은 꽤 아쉽다. 그러다보니 정작 '야귀'라는 존재들도 존재감을 상실해버린다. '부산행'에서 '좀비'들이 보여주었던 것에 비하면, '창궐'의 '야귀'들에 대한 아쉬움은 꽤 크다.
늘 그렇듯 껄렁한 이미지의 '현빈'은 그렇다치더라도, '7년의 밤'에 이어서 또 악역으로 돌아온 '장동건'은 나름 인상적이다. 아쉬운 캐릭터 활용도 속에서도 집착과 광기가 그대로 드러나는 그의 눈망울은 빛난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앞서 말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창궐'은 의외로 부실한 잔치상을 선보이고 만다. 기대치를 한없이 낮추면 그럭저럭 볼만한 오락 영화 정도로는 될지 모르겠지만,(비슷한 내용이었던 '물괴'보다야 훨씬 낫다) '창궐'이 이 정도에 만족할만한 기획은 아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기대치가 높았던 영화라 그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