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세상에도 사랑과 가족은 중요하답니다
2018년은 여러가지로 할리우드에 의미가 있는 해가 아닐까 싶다. '블랙 팬서'의 기념비적인 흥행으로 올해의 포문을 열었다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할리우드의 여름을 뜨겁게 달궜다. '조이럭 클럽' 이후 25년 만에 동양계 배우들만 캐스팅된 미국 영화인 것도 놀라운데, 무려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를 달리며 현재까지 북미 1억 7천만불이 넘는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블랙팬서'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이 두 편의 영화로 할리우드 메인 스트림을 바꿨다고 보기는 힘들겠지만, 앞으로 이어질 변화의 어떠한 이정표가 될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영화가 좋은 평가를 듣고 높은 흥행 성적을 거둔 건 의외로 단순한 이유다. 무엇보다 이 영화, '재밌다'.
할리우드를 사로잡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매력은 서양인들이 좋아할만한 신비로운 오리엔탈리즘도 아니고, 총보다 빠른 손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무술도 아니고, 수학 문제 풀이나 피아노 연주도 아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하 '크리안')은 인종을 떠난 보편적인 고민들을 이야기한다. 사랑과 결혼, 가족과 개인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이해, 갈등과 화해를 다루며 웃음과 감동, 눈물과 공감을 자아낸다. 물론 이 이야기를 맛나게 양념치는 요소들은 그야말로 '크레이지하게 리치한' 아시아인들의 돈지랄(?)이다. '돈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줄만큼 엄청난 스케일의 화려함으로 스크린을 수놓는다. 아예 어나더 레벨의 부자들의 이야기이다보니 부럽다거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들이 사는 세상'을 화려하고 화끈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가 뻔한 로맨틱 코미디일지는 몰라도, 신데렐라 스토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의 여주인공인 '레이첼'은 어디로보나 꽤나 괜찮은 사람이다. 뉴욕대 경제학 최연소 교수로서 탄탄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주체적인 위치의 여성이다. 다만 알고 보니 남자 친구의 집안이 엄청난 부자였던 것 뿐, 딱히 경제력으로 모자람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재벌가의 막장 이야기라기보다, 가치관과 인생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고부 갈등이 나오기는 하지만, 불치병과 출생의 비밀이 빠지지 않는 한국 아침드라마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오히려 경제적인 비교보단 중국계 미국인, 즉 외모는 아시아인이지만 마인드는 미국식인 '레이첼'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는 '엘러노어 영'(양자경)의 태도가 현실적으로 보인다.
'크리아'는 개인의 행복과 가족의 평안이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고민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관객 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객층을 포용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고민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화려한 비주얼과 신나는 OST는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재미를 더 충실하게 만들어준다. 영화 속 가장 멋진 결혼식 장면 리스트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만한 명장면을 보다보면, 내 지인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오랜만에 나온 재밌는 로맨틱 코미디인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한국 관객들과는 얼마나 소통할 수 있을지 결과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