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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타인] 후기

누구나 비밀은 있다

by 조조할인

몇몇 작품들이 고군분투하고 있기는 하지만, 2018년 한국 영화 흥행 성적표는 유독 암울해보인다. 영화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염력', '버닝', '인랑', '물괴' 같은 굵직굵직한 작품들이 제대로 힘도 못써보고 픽픽 쓰러져 나갔고, 추석 연휴에는 백억이 넘는 작품들인 '안시성', '협상', '명당' 세 편이 동시에 개봉해 승자 없는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현재 상영 중인 '창궐'의 앞날도 캄캄한 건 마찬가지다. 이처럼 제작비는 하루가 멀다하고 치솟는 것에 비해 여전히 기획은 안일하고 게으르니, 관객들의 반응은 시큰둥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위기의 충무로에 '암수살인'이 구원 투수로 등판해 급한 불을 껐다면, '완벽한 타인'은 다시 분위기를 가져오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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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의 영화들이 떠오를만큼, '완벽한 타인'은 초호화 캐스팅이 무색하게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말그대로 밥상 위에서 펼쳐지는 이 발칙하면서도 밀도높은 게임은 관객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쥐락펴락하며 웃고 울린다. 핸드폰에 오는 모든 문자와 전화, 메일까지 모두 공개해야하는 단순하면서도 무시무시한 게임의 규칙은 순간순간 상황을 뒤집으며 눈을 뗄 수 없는 전개로 이끌어간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이 짧은 시간의 게임은 미처 몰랐던 아니 굳이 말하지 않았던 서로에 대한 진심을 복잡한 감정으로 전달한다. 40년 지기 친구일지라도, 성인이 된 자녀를 둔 부부일지라도 한 순간 굉장히 낯선 남으로, 완벽한 타인으로 느껴질 수 있는건 그 크기가 어떻든 누구나 그들 각자만의 비밀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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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친구, 부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 각자의 비밀과 고민, 이야기들을 어디까지 오픈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대신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얼마나 복잡미묘하고 유기적으로 흘러가는지 불꽃튀는 유머와 씁쓸한 감동으로 팽팽한 이야기로 대신 보여줄 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고 미묘한 마음으로 극장 문을 나서게 만드는 '완벽한 타인'은, 눈물없이도 진한 여운을 안겨준다. 소재와 전개가 너무 파격적이고 탈조선스러워서 보면서도 원작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완벽한 타인'은 동명의 이탈리아 영화을 바탕으로 한다. 유럽 영화를 한국적으로 맛깔나게 각색한 것도 눈에 띄지만, 밥상 하나 갖다놓고도 이런 재미를 뽑아낼만큼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 출연진들의 열연과 지루하지 않는 호흡의 연출도 인상적이다. 특히 최근 한국 영화들에 신뢰를 잃었던 관객들이라면, 속는 셈치고 '완벽한 타인'에게 한번 기대를 걸어봐도 좋을 것이다. '암수살인', '완벽한 타인'의 기운을 반등삼아 연말과 2019년에는 한국 영화가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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