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작가는 혼자 길을 걸으며 시를 읽었다.
낯선 곳을 찾아가는 인간에게 동반하는 것은 설렘과 고독이다. 모르는 모든 것들 앞에서는 설레지만 그 모든 것들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고독이 있다.
처음 도착하는 역에서 길을 찾지 못해 급하게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 순간, 고독은 아주 구체적인 몸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자주 지나다니는 길은 잊어버릴 수 없듯이
너를 잊어버릴 수 없는 이유는 마음속에서 서로 자주 지나다녔기 때문이다.
거리의 건물에 달린 낯선 간판들, 창문들.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 골목들. 주점들. 작은 돌이 촘촘히 박힌 길들.
이 도시와 사귀기 시작했다. 낯설고 익숙한 골목들. 언젠가 내가 기차표를 살 수 있다면 어디로 가는 기차표를 살까? 내가 자란 도시에서 제일 먼 곳에 있는 도시 이름을 떠올렸다.
그곳. 그곳에 도착하고 나면? 그다음은?
어린 나에게 그다음은 없었다. 다만 그러고 싶을 뿐이다. 독립된 어른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제일로 멋진 일은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멀리 가는 것이었다. 떠나고 싶은데 떠나지 못해서 더 안타깝다.
그곳에 간다고 한들 그곳에서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게 아니다. 하루의 여행. 바다를 보고 파도를 보고 등대를 보고 여유로운 바닷가 마을의 골목을 보고 그게 다다. 파도가 여리게 느리게 치는 바닷가를 걷고 술도 조금 마시고 마음껏 쉬기도 하고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남은 것은 그곳의 이미지. 돌아와 그곳을 불러낼 때 오고 가는 시간은 그 속에서 스러졌다가 다시 돌아오고 다시 스러진다.
나무 그늘에 기대어 서서 배낭에 넣어둔 물병을 끄집어내어 물을 마시며 작은 비닐에 든 빵을 먹었다.
티셔츠에는 거리에서 피자를 먹다가 묻은 토마토소스가 묻어 있다. 물티슈로 꼭꼭 눌렀건만 벌건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티셔츠에다 오늘 점심 메뉴를 써놓은 것 같은 기분. 좀 처참했다.
좋은 일을 기억하는 것은 따뜻하지만 나쁜 일을 기억하는 것은 새록새록 아프다. 그 아픔을 견뎌내어야만 하는 것도 기억의 일이다.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고 기를 쓰면 진짜 잃어버린다. 그때는 잠시 덮어두는 것이 최고다.
인간은 인간의 손을 잡으면서 관계의 입구를 만든다. 에로틱의 입구는 입이 아니라 손이다. 잡으려다 멈추고 그러다 결국 서로의 손을 맞으면서 두 인간 사이의 관계는 시작된다.
저녁에 서둘러 네게로 간 게 발이 한 일이라면 가
는길 도중에 네게 주기 위하여 꽃을 사는 것은 손이 한 일이다.
인간은 서로 잘 몰라도 손을 잡기는 하지만 발을 잡지는 않는다. 발과 발이 맞닿는 것은 조금 더 사이가 은밀해질 때 이루어진다.
연인 사이라고 해도 손을 먼저 잡지 발을 먼저 잡지는 않는다. 입맞춤을 한 사이라도 발을 서로에게 보여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손은 서로 맞잡는 순간, 인간을 인간에게로 다가가게 만든다.
작가는 길을 걸으며 늘 시를 읽었고
마지막에는 괴테의 시 마왕을 읽었다.
마왕 / 괴테
어두운 밤, 아버지가 병든 아들을 안고 말을 타고 집으로 급히 돌아간다. 하지만 아들은 계속해서 자신을 유혹하는 존재인 마왕을 본다고 말한다.
아들은 마왕이 달콤한 말로 자신을 데려가려 한다고 두려워한다. 아버지는 그것을 바람 소리, 안개, 나뭇잎의 흔들림일 뿐이라며 아들을 안심시키려 한다.
그러나 마왕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아이를 유혹하고, 결국 위협까지 한다.
아버지는 더 빠르게 말을 몰아 집에 도착하지만,
이미 아들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죽어 있다. 죽음은 누구도 도울 수 없다는 이야기를 괴테는 시로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