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등장인물
예르세이 : 가난한 농부
농사를 짓고 벌을 기르고 양봉하는 사람. 술과 담배를 좋아하는 평범한 농부. 마음이 따뜻하다.
예핌 : 부자 농부
비교적 부유한 농가의 가장. 집과 농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성실한 사람.
이야기의 시작
두 노인은 서로 친구다. 오래전부터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가기로 약속했는데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다.
예르세이 : 우리 언제 예루살렘으로 떠날 건가?
예핌 : (일이 많다.)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하나가 생겼다. 군대 간 막내도 기다려야 하고 새로 짓는 오두막집도 마무리해야 하니 내년 여름까지는 기다려야지.
예르세이 : 봄이 성지 순례하기 제일 좋은 시기야. 너무 미루지 말고 지금 가세.
예핌 : 이 집은 어쩌고?
예르세이 : 우리가 죽고 나면 자식들은 스스로 살아갈 텐데. 자신이 주인공이 되면 무슨 일이든 최선의 길을 선택할 걸세.
예핌 : 집을 짓다 말고 갈 수는 없잖은가? 끝은 봐야지?
예르세이 : 어차피 모든 일은 다 마칠 수 없어.
예핌 : 자네 여행 비용은 어쩔 건가?
예르세이 : 나보다 열 배는 더 부자인 자네가 돈을 걱정하는가? 옆집에서 꿀 10통을 갖고 싶어 하니까 팔면 되네.
예핌 : 곧 벌집이 많이 늘어날 텐데 후회하지 않을까?
예르세이 : 나는 평생 내가 지은 죄 말고는 후회한 적 없다네.
예핌 : 집안일을 소홀히 하는 건 안 좋은데?
예르세이 : 그럼 영혼의 문제는 소홀히 해도 좋은가?
예핌은 예르세이의 설득에 드디어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런데 여행 중에 문제가 발생했다. 예르세이는 건강하고 발이 빠른 예핌을 따라가기 힘이 들었다.
예르세이는 어느 마을을 지나면서 물이 마시고 싶었다. 어느 집에 들렀다가 굶주리고 파산한 가족을 만난다. 그 집은 빚 때문에 집을 잃을 상황이고 할머니,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는 모두 굶주림에 지쳐 죽음만 기다리고 있었다.
예르세이는 마을에 남기로 했다. 예핌은 천천히 따라오라고 하면서 계속 걸어갔다.
집안에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마실 물도 없고 그릇도 없었다. 아들은 물통으로 물을 길어오다가 힘이 없어 쓰러지고 겨우 집으로 들어와 누워있었다.
예르세이는 먼저 가방을 열고 빵을 나누어 주고, 문 앞에 떨어져 있는 물통을 주워서 물을 길어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날이 어두워지고 잠만 자고 일찍 예핌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예르세이는 잠이 오지 않았다. 자신이 내일 떠나면 이 사람들은 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죽음만 기다릴 텐데. 어떡하나!
예르세이는 다음날 마을에서 밀가루와 장작을 구해서 빵을 만들고 가족이 살아갈 방법을 계속 생각해 보았다. 가난한 가족은 밭도 저당 잡혀 있어서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다.
농사를 스스로 지을 수 있다면 먹고살 수 있을 텐데 그래 밭을 찾아주자. 밭을 찾아주면 농산물은 무엇으로 옮기나? 말도 필요하고 마차도 필요할 텐데. 어쩌나.
예르세이는 다음 날. 예핌을 따라가기로 생각하다가 마음을 접는다. 가방에서 여행 비용을 꺼내 밭을 찾아주고 말 한 마리와 마차도 사주었다.
이젠 먹고살 수 있겠다 생각한 예르세이는 길을 떠났다. 예루살렘으로 가던 예르세이는 잠시 쉬면서 가방을 보았다. 가방 안에는 남은 돈이 조금밖에 없었다.
지금쯤 예핌은 도착해서 예루살렘 성묘에 들어가 나를 위해 기도를 하고 봉헌 초를 켜주겠지. 이 돈으로는 더 이상 여행을 갈 수 없으니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집안일을 도와야겠다. 예르세이는 순례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예핌은 혼자 계속 여행하다가 결국 예루살렘 성지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기도하려고 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기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오지 못한 예르세이를 연속해서 보는데 사람이 많아 만나지는 못하고 계속 어긋났다.
그렇게 예르세이를 만나지 못하고 예핌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르세이와 헤어진 그 집 앞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예핌을 집으로 초대하고 매우 정중하게 대접했다.
그 집은 먹을 것이 없어 물도 얻어먹지 못한 집이었는데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고 웃으며 나그네를 대접했다.
예핌은 대접에 감사드렸다. 이렇게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작년에 어떤 분이 저희를 위해 밭도 사주시고 말과 마차도 사주셔서 저희 식구가 다시 먹고살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저희가 감사한 일입니다.
그분이 사람인지 천사인지 모르겠지만 저희 가족을 구해주셨답니다.
예핌은 그 사람이 예르세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고 보니 예르세이는 실제로 예루살렘에 온 적이 없었다. 그때 예핌은 깨닫는다.
진짜 성지 순례는 먼 곳에 가는 형식적인 행위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의 고통을 돕는 사랑 속에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고통받는 이웃을 향해 사랑을 실천하는 곳에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