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 360도 변했잖아?
박돈규 기자님 나오세요.
당연히 실제로 나오실 일은 없겠지만.
큰일 난다. 아직 조선일보 재직 중이신 것 같은데.. 정말 펜으로 맞짱을 뜨며 사시는 분 같아서. 아무튼 안 된다. 검색하니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기사를 가지고 한 블로그에서 시비를 터 놓았다. 그것도 엄중한 말투로. 근데 그런 어투로 시비든 어그로든 끌린다는 건 꽤 거물이시라는 뜻, 도 되잖아. 이백 미터도 안 떨어진 저 사옥에 계신가요? 아니면 자택에서 근무 중이신가요.
기자님의 기사가 제 인생을 틀어 놓았습니다. 정말이예요. 저 건물에 계속 출입은 하셨겠죠. 참 가깝네요. 십 년을 돌고돌아 이렇게 인연이.. 아니지, 사실은 8년 전에도 저희는 지척에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 때도 저는 이 카페에 허구헌날 앉아 있었거든요. 그냥 그렇다구요.
돌아보니 내 인생은 연심에 의해 좌지우지됐다. 크게.
십 년 됐다. 2015년, 주말이면 아빠가 있는 익산으로 내려가 삼겹살을 구워 먹고 그 그릴에 넣어 익힌 생선을 아침 반찬으로 먹던 날들. 저수지인지 강인지로 지는 노을을 보며 원디렉션과 제임스 베이와 조지 에즈라의 노래를 듣던 토요일. 숀 멘데스가 지금처럼 수염 빽빽 난 서양 남성이 아닌 그냥 삐쩍 마른 포스트 저스틴 비버로 여겨지던 때.
문제집을 한가득 가지고 갔으나 한 번을 안 펴봤던 그 주말들. 안 펴보고 뭘 했지? 뭘 하긴. 엄마아빠가 접시랑 쌈장이랑 쟁반에 해놓은 거 가지고 올라와라, 신문지랑. 하던 명령 수행하고, 그걸 다 먹고는 마트에 산책 아닌 산책을 가고. 거기서 사 온 주전부리 또는 심심함을 모르는 아빠가 키운 방울토마토를 먹는다는 핑계로 거실에서 프로듀사나 동물의 왕국이나 아홉 시 뉴스 같은 걸 봤지.
그 때의 신문지에 있던 기사였다. 너무 더워지기 전이었다. 8월쯤에는 에어컨 빵빵한 학교에서 나름 집중해서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가방에 런던 카드 같은 걸 넣어두고 쉬는 시간마다 몰래 꺼내 봤었다. 음침하게.
수학을 못 했다. 잘 하고 싶었는데 잘 안 됐다. 수학을 잘하는 소년? 어떻게 지나쳐. 그 기사가 트리거였다. 당시 나는 에이사 버터필드가 누군지도 몰랐다.
<수학 천재도 풀지 못한 방정식>
잘생긴 사진이 쓰인 글도 아니었다. 영화 리뷰였다. 기사 위치도 기억나. 우측 페이지 상단. 아마 내 손바닥만했다. 박돈규 기자의 기사. 그리고 그 기사를 기어이 기억해 찾아본 영화가 기점이었던 거지. 뭐, 이 정도면 터닝포인트인가?
사실 지금 보면 그 영화는 그렇게까지 그의 외모의 정점은 아닌데도 그랬다. 와, 어떻게 저렇게 생겼을 수가 있지. 내가 파란 눈을 좋아했나? 아닌데. 나는 초록 눈이 더 신기했는데. 하여간 그는 내 인생 최초의 미소년이었다. 진짜 미소년. 쪼끄만 얼굴 -백인이니 당연한가?- 파란 눈 - 그냥 파래서가 아니야. 예쁘다 - 귀여운데 잘생긴 코.. 또? 아, 더 쓰기 힘들다. 나는 그렇게 호섭이 같은 앞머리를 하고서 사회성 박살난 고기능 발달장애 소년을 연기하는 그에게 반해 버렸다. 근데 어떻게 안 반해. 정말로.
그리고? 영국에 가자고 생각했다. 아무튼 가자고 생각했다. 영화의 배경은 1/3정도만 영국이고 2/3은 대만의 학교 교실이거나 학교. 주인공이 대만에서 개최되는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면서 마주치는 인생의 양상 같은 걸 그려낸 내용이기 때문이다. 왜 한여름 습기 쩌는 동아시아가 더 나오는 그걸 보고 그러게 되었는지는.. 그 때의 나도 모르겠지.
어쨌든 나는 그 영화로 말미암아 발견한 그를 꽤나 오랜 시간 연모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게 그런 사람을 찾아내서 뭘 하겠다는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럼 정말 떠났겠지?어떻게든.
오히려 좀 경계했다. 거기서 동양인 여자애랑 썸씽이 생기는 걸로 나오기 때문이지. 나는 당시에도 내가 거기 이입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아니야. 그냥 그 주인공의 찐따스러움 -물론 그는 질환이었으니 나와는 너무나 다르지만-에서 동질감 비슷한 걸 느꼈던 것 같기도 하고. 잘생긴 사람을 찾아서 좋았던 것도 있었겠지, 당연히.
한국이 너무 싫어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쥐뿔도 없으면서. 문과 주제에. 그런데 문과는 어디서나 '문송했다'. 하루종일 학교와 학원에서 듣는 이야기의 9할은 결국 그런 거였다. 교차지원 해라, 문과는 답이 없다, 어쩌고.. 나는 그 현실보다 거기서 징징대는 선생들이 싫었고, 교실에 뭐 씹은 표정으로 앉아 있지만 그렇다고 문을 박차고 나가버릴 것도 아닌 내가 더 싫었다. 그러던 차에 그 영화를 봤다. 그랬다.
어떻게든 가자, 생각했다. 정말 진지했다. 나는 공부가 하기 싫었을 때마다 정말로 8-9년 쯤 후에 영국에서 동양인 외노자로 일하고 있을 내 미래를 그렸다. 웃기는 일이다. 간호사가 뭔 일을 하는지도 몰랐으면서. 집값은 어떤지나 알아? 그리고 유럽 낡아빠진 거처에는 에어컨도 없어.
그러나 반쯤 돌아 있던 내게는 씨알도 안 먹혔겠지. 그게 당시의 나를 공부하게 만들었던 빅픽쳐였다. 영국에서 간호사 하는 거. 여행 말고, 어차피 어디서나 외로운 게 인생이라면, 거기서 살아보자. 정말.. 할 말이 없다. 정말 없다.
그 때는 정말 진지했기 때문에. 아는 것도 없으면서.
그의 출연작이 개봉하면 얼씨구나 하고 원정 아닌 원정을 떠났다. 지금처럼 뭐가 재밌었고 없고 이런 생각은 감히 안 했다. 팀 버튼 감독 영화를 하나 봤는데, 참. 뭐, 다시 보라면 안 볼 것 같다. 하여간 그의 미모와 그 또래 배우와의 케미만은 대단했다. 실로 대단해서 그 둘은 진짜 연인이 되었다. 근데 상관없었다. 나한테는 꿈이 생겼으니까. 어차피 나랑 사귈 것도 아닌걸.
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덕질 중이거나 그런 대상을 찾고 있었다. 그 이전의 시기에 대해 떠올릴 게 없는 건, 나는 다른 아이돌을 꽤 오랜 시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이름을 따라 정말 모조리 폭발해 버렸다. 다행이지. 그들이 근원이 된 꿈 같은 걸 갖지 않아서.
간호학과도 취준을 하긴 한다. 그런데 나는 그 취준조차 하기 싫어서 딴짓을 했다. 어떤 딴짓?그가 넷플릭스 드라마를 찍게 되자 각종 인터뷰와 특별 영상 같은 게 마구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번역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진짜 보고 싶은데. 그가 뭐라고 하는지 좀더 잘 알고 싶은데. 왜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은 다 이런지 당시의 사카구치 켄타로도 그랬다. 블로거 한 명만이 잡지와 비하인드 코멘트들을 번역해 올려 주었다.
근데 이 배우는 그런 사람조차도 없었다. 하지만 영어잖아? 영어는.. 뭐. 시도는 해볼 수 있지. 그래서 채널을 팠다. 로고도 만들었고 닉네임도 바꿨다. 그렇게 아직도 내 구글 계정 닉네임에는 그의 이름이 들어간다. 영상 번역? 어반딕셔너리, 구글링. 또 뭐가 있더라. 그 나라 젊은 애들이 쓰는 은어와 속어 뜻을 알아야 했다.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말소리에 따라 자막을 넣는 간격을 짜는 게 시간이 죽도록 오래 걸렸다. 5분짜리를 하나 만들려면 서너 시간은 노트북 앞에 앉아만 있어야 했다. 물론 하다 보면 늘었겠지. 그런데 스스로도 알고는 있었다. 나는 회피 중이라는 걸. 영상을 고작 아홉 개 올리고 관뒀다. 구독자는 60명 정도가 나왔다.
나중에 보니 꼴에, 드라마가 꽤 흥행하자 내가 짜서 올려놓은 번역을 싹 가려놓고 본인이 만든 것처럼 올린 영상이 떴다. 내 것의 열 배쯤 되는 조회수가 찍혀 있었다. 쌍놈의 자식. 하여간 자막을 넣어 영상을 만지는 것보다 그 바느질 자리 각을 보는 게 품이 더 들었다. 20분짜리인가 30분 짜리였던 주연배우 셋의 뉴올리언스 여행 영상을 편집하려다 때려치웠다.
정말 별 짓을 다 한 거지. 덕질이라는 단어에 고마울 지경이다. 그 명명이 도무지 쓸 데도 없는 짓거리들의 죄를 사해 주잖아. 댓글도 달리긴 했다. 덕분에 잘 보고 있다고. 나는 그 몇 안 되는 것들에 득달같이 하트를 눌렀다. 반응이 고맙고 신기해서. 몇 가지를 그 노트북 앞에서 배웠다.
뭔가를 시작하는 건 생각보다 별 게 아니고, 뚜껑을 열어보면 정말 몹시 힘들다는 걸. 내가 대비할 수 없는 변수도 당연하다는 걸. 훔칠 게 없어서 나같은 쩌리 중 쩌리 걸 쌔벼?
그리고.. 영미권에서 일 바로는 절대 못 하겠다는 결론도. 이거 알아듣는 것도 이 정돈데 거기서 살 생각을 했다고? 내가 얼마나 어리고 무지한지도 알았다.
그러나 딴짓은 멈추지 않지.
대신 원서를 다시 읽었다. 토익 문제집 푸는 게 너무 지겨워 그냥 그런 걸 읽었다. 어쨌든 읽는 거 아니야? 듣는 건 듣는 거고. 눈에, 머리에 익숙한 상태를 만들어 놓으면 되잖아. 그렇게 또 영어와 배우와 어쩌고를 핑계로 합법적인 딴짓을 했다. 이어 주제파악 하나 더.
토익조차 하기 싫어하는 나는 정말 어쩔 수 없이 게으른 사람이라고, 정말로. 그 시험이니 먹힌 편법이었다. 차라리 더 쉬웠다. 소리 다 겹치는 이십 대 초반 애들 수다를 액센트와 속어에 따라 분해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뉘앙스를 녹이는 거. 또는, 그 복사용지 어디서 난 거냐는 질문에 원래부터 없었다는 별 같잖은 내용의 녹음본을 듣는 거보다는. 그런 머리 아프고 지겨운 일보다 훨씬 낫지. 그러나 결국 딴짓이고.
이러나저러나, 해외에서 벌어먹고 사는 건 내게 무작정 덤빌 일이 아님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진지하게.
하지만 이미 들어와 버린 판. 3교대. 1급 발암 물질. 경력. 아무리 봐도 이거 평생 할 일은 못 되는 것 같은데. 무슨 할 일을 찾아야 하나 고민했다. 일단 되는 대로 살긴 했지만, 슬슬 힘에 부치자 이걸 왜 시작했지 궁금해졌다. 원인을 족쳐야 할 거 아니야. 누구 잘못이냐고, 이렇게 힘든 게.
누구긴, 내 잘못이지. 내가 선택했어. 영국 가려고 골랐잖아, 직업. 뜬금없이 정말 영국?그땐 진지했다구. 왕진지했어, 근데. 왜? 하며 추리해 보다 기억났다.
너무나 당연하게 인생에 늘 남아 있던 그 영국 간호사라는 얼탱없는 꿈의 근원. 덕질. 지금은 또 아이돌을 좋아하지. 하이라이트. 놀라웠다. 배우를 좋아했던 마음이 지금의 나를 밥 먹여살리고 있다니. 참, 나.
벽 드높이 붙인 작년 콘서트 포스터를 보다 나는 언제까지 이러고 살까 싶었다. 남들은 그냥 연애하고 주식하면서 잘 사는데 왜 이러는지 진짜 모르겠어서. 짜증 가득한 심보에 근데 언젠 안 그랬나? 하고 한 번 꽈서 물었다. 스스로한테.
근데 정말 언제나 그러고 있었어서 할 말이 없네. 나는 내가 언제 그런 헛짓거리를 그만둘까 진지하게 궁금했거든. 이제 알았다. 이십 대 초반의 워너비가 블랙핑크나 트와이스보다 사카구치 켄타로의 헐렁한 옷을 입어도 휘적휘적하게 멋있는 바싹 마른 몸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은 언제나 덕질로 키를 잡는 배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하이라이트 덕질은 내게 무엇을 주나? 없는데? 했더니. 달리기도 그들 때문에 시작한 거였다. 대단해. 이쯤 되면 정말 대단하다고밖에. 그래서 그냥 받아들이려고 한다. 다만 주의할 건 올바른 대상을 찾는 거. 나는 따라쟁이니까.
덕질로 시작한 삶이 십 년째가 된 올해, 나는 내 정체성을 하나 더 받아들였다. 너무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또 나오겠지. 나를 행동하게 하는 뭔가가, 누군가가. 그냥 그게 내가 생존하는 방식이었다. 정말이잖아? 걔 때문에 영국 가고 싶어서 찾은 직업으로 먹고사는 걸, 뭐. 이쯤 되면 나에게 덕질은 평가절하할 수 있는 활동이 못 된다. 절대.
그래도, 어쩌면. 에이사 버터필드보다 더 지대한 영향을 끼치신 분이다. 박돈규 기자님. 그래서 불러봤다. 괜히.
잘 지내시나요?
감사.. 는 아니고.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