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

앗! 차지쌤 달리기

by 이븐도





차은우보다 빠르다.



비슷한가? 찾아보니, 11km를 59분에 끊었다고.

양요섭은 21km를 1시간 57분에 뛰었다.


근데 차지 선생님은 애가 있는데. 중학생 아들이 있다.

나보다 몇 살 많으시지.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모르지. 모른다.






선생님, 십 키로 몇 분에 뛰세요?

나? 사십구분 이십칠초.

네?

그것도 페이스 좀 딸렸던 거양.

짱멋있네요.


진심이었다. 본인도 그걸 그렇게 자세히 기억하고 있던 걸로 미루어 보아, 그 기록은 그녀에게도 일상이라기보다는 성과에 가까운 것이었겠지만. 나는 십 년 후에 어떤 모습일까. 뭘 하고 있을지는 진짜 모르겠어서 그 질문은 덮고 지냈었는데. 결국은 이렇게 비집고 들어왔다. 단어만 바꿔서.



다시는 당근 거래 안 한다고 생각했다. 당신 근처? 운동복 차림으로 위치를 찍은 곳은 근처는커녕 옆 지하철역에서 내려 버스를 탄 후 큰 단지를 뚫고 들어가야 하는 아파트였다. 낯선 동네. 수지구. 용인. 똑같은데 너무 다른 이 동네. 내가 얼마나 다니던 데만 다니며 살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거래지가 남의 거주지인 이런 식의 일이 있을 때마다 깊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 빡세다. 겨우 손바닥만한 장난감 가져가려고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해?


여기가 201동이면 221동은 대체 어디일까. 밤이라 잘 보이지도 않았다. 열 시 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차지쌤이 생각났다. 그 나이에, 애도 낳아서 키웠는데. 그녀의 커리어 연봉 이런 것까지는 감히 생각도 못 하겠고, 나는 그녀 나이에 어느 정도 체력과 몸으로 살고 있을까? 우리 엄만 어땠더라. 아냐, 엄만 애초에 류가 달라. 차지쌤 성격 봐, 더럽다고. 근데 성격은 나도 더러워.



야, 차지쌤 달리기 차은우보다 잘해.

뭔소리야, 그게.

기록이 그렇던데?

아, 근데 그 사람 운동 개열심히 해. 필라테스도 하고 클라이밍도 그 때 얘기했고, 그 매달려서 하는 거 뭐냐.

플라잉요가?

아니. 그거 아닌데, 하여튼 뭐 있었어.

대단하지 않냐.

지가 좋아하나보지. 난 싫어.


나도 싫어. 그 사람이 좋다는 게 아냐. 그런데 그냥 궁금해지는 거야. 나는 남의 동네 와서 플레이모빌이나 가져가려고 어슬렁거리는데, 십 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당장 그녀의 나이도 몰랐다. 난 뭘 하고 있는 모습일까.


십 년 전에는 이러고 있을 줄 몰랐지. 하지만 그 땐 명확했다. 직업 또는 외형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그런 목표 비슷한 게 있었다. 그만큼 목표가 쉬웠다. 달성이나 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단정짓기 쉬웠다고.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할 것 같은데 이런 모자란 내가 어떤 모습을 어떻게 꿈꿔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없어도 돼. 꿈 없어도 잘 살아, 라고들 그러던데. 맞다. 난 뭐 있어서 이렇게 사나. 있었어도 그냥 그랬을 인생, 없었어도 딱히 이거랑 다르지.. 않았을까? 뭐라도 바랐으니까 이만큼 사는 거 아닌가?

이만큼이 뭔데? 간호사? 대학병원? 그럼 여기 있는 간호사들은 다 그렇게 훌륭해? 아님 하나같이 다 별거 아니야? 모르겠어. 둘다 맞긴 하겠지.




당근에는 복병이 있었다. 대화. 카톡도 싫은데 당근 대화까지? 그것조차도 피곤했다. 이 정도로 마모된, 아니면 게을러진 내가 무슨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만들어. 제일 뒷동이라 온통 어두컴컴한 그 아파트 문고리에 걸린 종이가방을 빼며 생각했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다.


열한 시. 마을버스가 끊겼다. 걸으면 역까지 삼십 분, 카카오바이크로 십 분. 이게 몇 년 만이지. 자전거에 올랐다. 내가 힘을 주는 것보다 난데없이 더 쭉쭉 나가는 그 자전거. 인도가 좁아서 학원에서 돌아오는 고딩들을 피해 비틀비틀 타다 내리다를 반복해야 했다.

이것들이, 공부하라고 학원 보내놨더니 죄다 남녀 짝지어서 둘씩 돌아다녔다. 무슨 얘길 할까. 넌 어디 과 갈 거야, 이런 거? 뭘 봐. 자전거 못 타는 사람 처음 보니? 한 번씩 눈 마주치는 그 모양새가 좀 무섭기도 했고, 얼굴을 보니 정말 내가 한참 나이가 많을 게 느껴지기도 했고.




십 분이면 된다는 거리를, 30분 요금을 결제하고 내렸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니 좋긴 했는데, 정말 그것뿐이었다. 사실 좋다기보단 울퉁불퉁한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도 무서워서 속도는 못 냈다. 밟는 것보다 배는 더 시원하게 나가는 그 속도감에 신나서 내달리다 앞으로 고꾸라진 적이 있기 때문이지. 나는 또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안 돼. 나 할 일 많다고. 출근도 해야 돼. 무서웠고 알 수 없었다. 넘어질 것 같았고 제대로 가는 게 맞는지는 더 알 수 없었다. 자전거에는 없잖아, 내비게이션 거치대 같은 거. 감으로 가다가 다시 멈추고 경로를 찾고, 또 가다가 다시 휴대폰 흔들고 하는 짓을 대여섯 번은 반복하느라 그랬다.




가로등이 훨씬 적어 더 낯선 것 같은 동네. 장난감이나 사서 안정을 찾으려 하는 나. 길 하나도 제대로 못 찾는 나.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나.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고 조금 한심하기도 했고. 근데 이걸 뭐 누굴 원망할 것도 아니고. 정말 알 수 없었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았는데, 당장 나는 뭘 보고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제부터는 정말 내가 틀어서 가는 대로 방향일 텐데. 학과, 직업 같은 게 아닌 것 같은데. 모르겠더라고. 원래 삶이 그런 거라기엔, 아니었다. 학과에 입학하면, 그 병원에 가면, 경력을 쌓으면.. 그 다음엔? 돈? 모으지. 모으는데, 이천 뜯겼고. 외국 간호사? 이런 지능으로, 방향감각으로, 정서 상태를 가지고 해외를? 그 땐 이 무시무시한 자전거를 타고 겁대가리도 없이 달렸고 이역만리 외국인들뿐인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 꿈을 잘도 꿨다.




뭘 어떻게 틀고 얼마나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만년 계획만 하다 행동은 하지 않는 그런, 늘상의 게으름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대충, 어디로 가야 할지 그 정도는 좀 알아야 하는 거잖아. 10년 뒤? 5년 뒤? 아니면, 3년 뒤? 정말 모르겠어서, 다시 그냥 차지쌤 얼굴이 생각난다. 이 한 몸, 나는 그 나잇대에 그럴 수 있을까? 모르겠지. 그럼 그냥 그렇게 하자고 설정해 버릴까? 그리는 대로 방향이고 꺾어 가는 대로 도착지라면. 그래도 되는 건가?


하면 하는 거지. 근데 나는 너무 많이 넘어지고 너무 몰라서 괜히 두렵고 무섭다.

그 날의 카카오바이크가 딱 그랬다.

그걸 타던 내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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