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뒷담화

그러니까 공부 좀 하지 그랬어

by 이븐도





9월에 전공의들이 다 돌아온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좋은 건가? 좋겠지. 좋을까? 그들이 또 돌아온 그 때는 어떨까. 생각도 하기 싫다.






공부를 아무리 하려 노력했어도 의사는 못 했을 것이다. 이런 말을 미리 던져 놓는 이유는 꼬우면 니가 의사 하던가, 가 요새 밈처럼 퍼져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나 역시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데 사실은 아무 사실관계가 없잖아? 의사가 그 때 더 노력했던 것과 그들 중 몇몇이 함께 일하기 너무 짜증나는 사람인 건 별개의 문제다.


열두 시. 밥이 나온다. 혈당을 잰다. 연속혈당측정기의 수치도 확인한다. 밥과 후식으로 나온 과일을 얼마나 먹을 건지 물어본다. 펌프의 인슐린 양을 얼마나 주입할 건지 물어본다. 이번 애는 좀 짜증이 많다. 뭐. 짜증이 안 많은 애라도, 간식도 못 먹게 하는 마당에 -당뇨가 있으니 알아서 안 먹어야 하는 게 맞지만- 나온 밥까지 못 먹게 하고 있으면 짜증이 꽤나 나긴 하겠지.


아무튼 의사는 메신저에 없다. 밥 먹으러 갔겠지. 마음 같아서는 바로 전화 때리고 싶지만 일단 문자를 넣는다. 십오 분이 지났지만 아무 오더도 연락도 없다. 애나 애엄마는 밥 언제 먹냐고 다른 간호사를 붙들고 묻는다. 그 간호사는 복도 저편이나 스테이션에서 나에게 소리쳐 묻는다. 아직 컨펌 안 됐어요? 딴 애 주사를 봐주면서 오후 검사를 설명하던 나는 말을 끊고 대답한다. 아, 지금 다시 확인해 볼게요. 전화한다. 안 받는다. 또 한다. 안 받는다.




난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도 하고 싶다고. 내가 해 주고 싶다고. 내가 알려주고 싶다니까? 그대로 주입하고 밥 먹어도 된다고 나도 말해 주고 싶다고. 나한테 짜증낸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표정으로 말한다.


격리실에 들어간다. 가운도 입고, 장갑도 끼고, 몸이 팅팅 붓는 애 라식스 맞은 다음에 소변 잘 나왔나 보고 혈압도 다시 잰다. 누가 문을 두드린다. 내분비쌤 전화왔어요, 아. 네.


가운을 다 뜯어서 벗고 나간다. 솔직히 뛰기 싫다. 전화했을 때 좀 받으라고. 근데 뛰긴 뛴다. 나한테 저 말을 한 간호사가 스테이션에 수화기를 엎어 놨으니까. 네, 선생님. 선생님? 그리고 들리는 말.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






인턴들이 주치의를 맡은 첫날. 주말에 밀린 노티 중 급한 걸 했다. 돌아오는 대답, 연락 잘못 하신 것 같은데요. 제 환자 아닙니다. 아, 그래요. 그렇겠지. 소화기 누구누구 교수 담당이 당신이 아냐? 답장 안 했다. 삼십 분 있다가 똑같은 내용을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환자 파악 하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환자 파악. 지금 아침 열 시 반인데. 장난시는 거 아니죠, 진짜? 나 급하다고. 오더 달라고 했더니 교수한테 받은 카톡 그대로 들고 와서 나한테 묻는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나도 몰라요. 아. 모르고 싶다. 차라리. 근데 나 이거 검사 열한 시까지 못 보내면 안 된다고. 거기서 안 해준다고 했단 말이야. 못 보내면? 오후에 회진 와서 또 나한테 캐물을 거잖아. 왜 안 보냈냐고. 씨, 병원에 안 되는 게 어딨고 모르는 게 어딨어. 근데 나한테 그렇게 떠먹여 달라고 하면 안 되지. 의사잖아. 거기다, 내가 잘못 알려줬으면 또 그게 누구 잘못이 되는데. 그냥 띡 알려주면 되는 걸 결국은 염려에 당부를 다 붙여서 나불나불대느라 힘들었다.




이번 주 내내 그랬다. 모르겠으면, 남아서 보고 일찍 와서 보라고. 다섯 시 반이 퇴근인데 전 아직 이러고 있네요? 아, 그러시구나. 그쵸. 집에는 제시간에 가셔야 하는데. 그래. 똑똑한 사람들이잖아. 울대 의대? 나는 감히 상상도 못 한다. 정말이다.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생각하는데 그게 안 된다. 손 놓고 있고 싶다고. 그들의 학력을 생각하면 내가 왈가왈부 할 수가 없다고. 근데 안 된다니까? 개빡치는 걸 어떡해.


내 동료 간호사였어도, 검사실 사람이었어도, 이송사원이었어도, 배식 아주머니였어도 빡친다. 그래서 열받는 거다. 저렇게 대놓고 어리버리까도 욕을 안 먹어서. 티도 안 나서. 왜 티가 안 나? 왜 안 날까? 수들이 혼은 좀 내나?

아니. 혼날 이유가 없나, 애초에?






알지. 대학병원은 병원이 아니다. 수련기관이다. 그들은 수련 중이다. 그럼 나는? 뭐긴 뭐야. 노동자지. 이걸 이제야 알았다. 난 왜 항상 이렇게 늦을까. 그들에게는 수련 기관이고 나에게는 일터인 곳. 수련 중이라는 건 실수가 용인된다는 거겠지. 그럼 난? 난 아냐. 왜 이걸 이제 알았지?


학교를 다니는 내내 현실적인 척 한껏 시니컬했던 애들은 탈임상이 지능순이라는 말을 잘도 떠들어댔다. 병원에 남 있을수록 멍청다는 미를 담은 어구. 나는 그들을 속으로 잔뜩 무시했다. 탈임상,해서 뭐라도 할 능력은 되고? 뭐든 저따위로 말하는 근성을 딴 일에서는 얼씨구나 하고 받아주겠다, 생각했지. 내가 멍청했다.


병원이 전장이라면 나는 병사 아닐까. 의사는 장교. 라이언 일병 구하기 보니 그 것 같은데. 감정도 받고, 오더도 받고, 실수하면 죽은 목숨이고. 근데 죽어도 딱히 티도 안 나?

의사들이 환자들이랑 가까이 앉아 있는 것처럼 나오는 드라마들이 싹 다 꼴보기 싫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귀찮은 응대를 하지 않거든. 그건 간호사 일이니까. 그런 것들에 나오는 것처럼 의사는 병동에 늘 상주하지 않는다. 한다면? 간호사들 뒤에 앉아 있지. 왜 난 이걸 이제 알았을까?




밥은 잘 먹니? 선생님. 걔는 밥을 일주일 전부터 안 먹었어요. 기록 오 분만 더 읽어 봤으면 알 걸 그렇게 묻는다. 그럼 보호자는 그 인턴인지 누군지가 떠난 후에 나한테 묻지. 누구누구 밥 먹어도 돼요? 아, 아니요. 잠깐.. 혼동하신 것 같습니다. 환자를요? 지금까지 그럼 우리 누구누구를 어떻게 봐주신 거예요? 이 사람이 주치의예요? 아, 그게.






전공의들이 돌아오든 안 돌아오든 이 분노 비슷한 건 별개의 사건이지. 모든 의사들이 다 그런 게 아니니까.


그런데 열이 받는 건 받는 것이다. 왜 내가 이렇게 뺑이쳐야 해? 이래서 돌아오는 게 뭐지? 처방은 이거 달라고 저거 달라고 골백번 말해야만 주고, 바이탈은 재면 뭐 해? 보지도 않는 거. 담당 의사 안 들여다봐서 하루 동안 아무 조치가 안 취해진 게 어떻게 간호사만 잘못한 거야?


그 듀티 간호사들이 멍청한 것도 있지. 근데 교수였으면 애저녁에 보고 플루이드를 때려넣든 약을 추가했을 건데, 주치의 관심이 없던 거라고. 대체 왜 안 보는 거야? 안 보는 거야, 못 보는 거야? 공부도 엄청나게 잘했을 사람들이 대체 왜.. 내내 똑같은 랩 복붙해놔서 쓸데없는 피검사 신규가 못 거르면 고스란히 다 나가게 하는 건 덤이다. 꼼꼼한 엄마아빠였으면 벌써 스테이션 나와서 한바탕 했어.




화? 그래. 그래놓고 화는 다 나한테 낸다고. 퇴원? 수술? 난들 아냐고. 방금 회진하면서 띡 말하고 간 걸 내가 어떻게 아는데요. 저한테 그렇게 목소리 높이셔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뭐든 나도 내가 할 수 있으면 했지.

궁금하시면 내려가서 공차 가보세요, 스벅이나. 그 사람 거기서 아이스아메리카노 테이크아웃 하고 계실 테니까. 저요? 전 못 먹어요. 보세요. 앞에서 짜증 받아주고 있잖아요? 물론 그분은 의사긴 해요. 그 잘나신 분들한테 화내세요. 원래 지랄하면 들어줘요. 저한테는 권한이 없구요.





다 이렇게 사는 거라고 믿고 싶다.


쉽지 않다. 진짜 가끔은 서럽다. 빨리 먹으려고 5분 안에도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을 싸 와도 자리를 절대 못 비우는 게. 난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절대 아닌데. 왜.

이래서, 탈임상이 지능순이라고 했구나. 8년 전에 그걸 알았던 거야, 딴 애들은? 진짜 똑똑하네.



그리고.

카누 드세요,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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