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나도 놀래

by 이븐도





오존과 카더가든 노래를 시작으로 나갔다. 이후 다음다음 곡인가는 뜬금없이 테일러 스위프트 노래가 나왔다. 이어 다시 카더가든. 생리 5일 전. 돈까스 시켜 먹고 다이소 가서 과자를 왕창 사와서 먹었다. 그리고 낮잠을 잤다.


지난 달에도 똑같은 짓을 했었다. 날짜를 보니 그 때도 정확히 5일 전이었다. 종아리를 아무리 풀고 풀어도 스트레칭을 하면 뒷벅지까지 잔뜩 당겼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어제는 달리기를 쉬었다.




챗지피티에게 조언을 구했다. 4일 연속근무 후 매번 5km 뛰기. 그리고 예정일 5일 전. 이 두 가지를 합했을 때 다리 근육이 잘 안 풀리는 것과 더 연관이 있는 건 뭐냐는 질문. 둘 다 쌉가능이라는 대답. 5일 전, 생리전증후군? 나 원래 시작 전전날이 식욕 장난 아닌데. 흠. 그러고 보니 슬슬 무릎이, 정강이가 아팠다. 그 때도 딱 이 때쯤 그랬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욕심을 버렸다. 원래도 별로 없었지만. 날이 너무 더워서 그냥 땀이 나는 데 의의를 두는 기분이었다.


여름에는 8시, 한겨울에는 5시 40분. 어두워져 가로등이 켜지고 하늘이 파란색에서 붉고 짙어지는 걸 볼 수 있는 시간대. 8월의 첫 날. 애매하게 해가 덜 져서 선스틱을 바르고 나갔는데, 코와 관자놀이에서 땀이 흘렀다. 이 정도로 덥지는 않은데, 오늘. 그렇게 열심히 안 뛰었는데, 무릎 나갈까봐. 그런데도 땀은 계속 났다. 혹시 이거 데오도란트 같은 건가. 왜, 그걸 바르면 그 부위로 났어야 하는 땀이 딴 데로 나서 무릎 같은 데가 축축하대잖아.


코에 내가 덜 발랐나? 그런데 뛰다 보니 어깨며 팔이 반짝반짝했다. 습도가 높은가, 오늘? 아닌데. 그 정도 아닌데. 자꾸 땀을 닦아내야 해서 조금 귀찮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어기적거리면서 몸을 아끼다가, 공원에 들어서 나를 지나치는 달리는 인간들이 잦아지자 약이 올랐다. 항상 웃기다. 잘 하지도 못 하면서 그러는 게. 고가의 러닝화를 신은 나는 알량한 실력으로도 그들을 휙휙 지나칠 수 있었다. 2km 정도를 천천히 온 탓에 공원 반틈을 쉬지 않고도 그렇게 달릴 수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그러고도 다리가 안 아파서. 내일도 가능하다면 이렇게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습하면 워치가 기록을 못 했다. 손등이 다 젖어서. 보통 이 때쯤이면 얼마를 어떻게 뛰고 있다고 찍혀야 하는데 화면은 그대로였다. 바다에 떠 있는 닭 화면.

다리를 건너고 술집이 모인 하부에 이르러서야 집계를 시작했다. 이 자식. 어차피 나오나 마나 한 기록. 뛰었으니 됐다. 즐거웠잖아. 한여름의 달리기. 이제 며칠 있으면 이렇게 뛰고 싶어도 못 뛴다고, 정말.






식당에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곱창집. 피자집. 닭꼬치 술집. 엄청나게 큰 과일 가게. 근데, 저 밀크티 파는 쥬시는 아직도 가격이 천 원인가. 그거 나 대학교 2학년 때쯤 가격이잖아. 아마 집에 찾아보면 학교 후문 쥬시 쿠폰이 몇 장은 남아 있을 텐데. 7년, 7년? 7년간 가격이 안 올랐을 리가. 그보다 안 망하고 어찌어찌 남아있다는 게 더 대단했다. 오늘 무슨 요일이지, 금요일? 오. 금요일이구나. 친구는 첫 직장에 3일째 출근 중이었고 나는 오늘 약속을 파토내고 근신하며 먹기만 하는 하루를 보냈다.


인스타그램을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깔았다. 설정을 안 건드렸더니 온갖 알림이 다 뜬다. 해외공연을 떠난 아이돌 멤버가 금요일 저녁인데 다들 뭐 하시냐는 말을 보냈다. 야구를 본다는 대답이 많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해도 나한테는 사람들이 보내는 답장이 안 보였다. 궁금한데. 여하간 다들 즐거운 주말 전야를 보내는 것 같았다.

멤버는 야구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과 어떤 팀은 그럼 지금 명칭과 소속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 아닌 질문 같은 이야기를 잔뜩 한 후 어떤 경기를 보겠다며 떠났다. 어제도 무슨 축구 경기 하는 것 같던데. 퇴근할 때 보니 유난히 축구 유니폼을 입고 그 유니폼을 입은 인형을 단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금요일과 사실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내일은 다시 출근. 그래도 금요일은 좋다. 토요일은 병원도 안 바쁘니까. 아, 뭐. 까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안 바쁠 수 있다는 편안한 기대를 조금은 할 수라도 있다고. 집에 와서는 외계인의 포션 같은 초록색 파워에이드를 마셨다. 한 병 다. 아까 먹다 남은 쫄병스낵이랑 초코다이제 샌드랑.


이제는 쫄병도 슬슬 작별할 때가 오는 것 같다. 지나치게 맵고 달았고 입에 불쾌한 뒷맛이 남았다. 나라에서 넣어준 돈은 죄다 러닝 후에 원플원 하는 음료를 사 먹는데 쓰고 있다. 렌즈 사서 쟁여놓으려고 했는데, 결제하고 보니 거기서 다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여간 파워에이드 제로라임은 정말정말 맛있다. 맛있다는 말로 부족하다. 대단한 존재다. 원플원. 언제까지더라. 냉장고에는 한 병 남았다.




바깥을 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내 휴대폰 속의 눈에 안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다 금요일이었다. 공연히 나도 그냥 한 바퀴 더 돌고 올까 하다 참았다. 출근해야지. 데이 출근.

아무튼 금요일이다. 좋았다.






횡단보도에 서서 팔꿈치를 긁었다. 둥글게 흔적이 올라와 있었다. 올해 첫 모기. 내 피 맛있었니? 땀이 솔찬히 나서 더 짰을 텐데. 올해는 꽤 늦게 왔네? 원래도 잘 안 만나긴 했지만.

이상하게 이번 여름은 싫지 않다.

하도 더울 때 그냥 싸돌아다녀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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