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스미스키

2018.

by 이븐도





언니는 지금 아산병원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지금? 어쨌든 최근에 인스타그램에서 본 근황은 그렇다. 그 최근이 언제더라. 일 년 전인가? 지금 들어가면 결혼사진이 떠 있으려나? 공교로운 일이다. 나는 그 때 입었던 블라우스를 지금도 입고 있다. 버리려 했으나 살리게 된 것.


대신 바지 통이 다르다. 그 때는 슬림핏, 지금은 와이드핏. 그 때는 베이지색 스니커즈, 지금은 스웨이드 슬리퍼. 어쨌든 7년이나 지났다, 이거지.






아마 그 사진이 맞을 거다. 북촌에서 셋이 찍은 사진. 그 날 입은 상의. 야, 내 배사 보고 누가 너 소개시켜 달랬어, 근데 내가 걍 끊었어. 너무 별로였거든. 개못생겼어. 응? 아니, 나 상관없는데. 아니야. 내가 너 지난번에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한 번 쳐냈단 말이야. 그 때 너 그 치마 입은 날. 그날 같이 근로하는 애가 너 아냐고 그랬단 말이야.


아, 근데 걔는 너랑 좀 잘 맞을 것 같기도 하고. 사진 있어, 볼래? 그래. 이거. 우리 한옥마을 간 날 사진 보고 이쁘다고 했어. 진짜? 웅. 봐봐. 이쁘자낭.




2018년은 진짜 미친 듯이 더웠다. 사실 그 해는 미치게 춥고 덥고가 둘 다 있었다. 뭘 내놓으면 얼었고 배송받으면 얼어 있었고 지하철과 버스를 기다리면서는 도저히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몇 달이 지나자 나가면 차라리 미친 척 기어다니고 싶을 정도로 햇빛이 세서 두피가 녹아내릴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더 믿기지 않게도 그 습기와 열기와 냉기 등등을 뚫고 셋이서 줄기차게 놀러다녔다. 신기한 일이다. 그 때의 치밥보다 언니와 나는 이제 나이가 더 나이가 많다. 다들, 잘 지내나 몰라.






언니는 술을 잘 마셨고 좋아했다. 치밥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못 마시지는 않았다. 짬이 깊어 학교와 학교 아닌 동네의 크고 작은 술집 밥집에 빠삭한 치밥, 타고나길 인싸라 안 가본 곳이 없는 언니. 나는 술에도 인간관계에도 조예가 깊지 않았다. 내가 신기해하자 그걸 셋이 똑같이 시켜서 마셨다. 봄베이 사파이어의 작은 병이 맥주잔에 든 칵테일에 딸려나왔다. 아마 안주는 치킨과 떡볶이.


치밥은 2차 가자가자 하던 언니와 나 모두를 데려다 준 후 집으로 갔다. 본인의 정체를 밝힌 후에도 치밥은 가짜 마니또 역할을 멈추지 않았다. 본질은 똑같았다.




스미스키, 스미스키- 알아? 이게 뭔데. 이건 모르는 게 아는 거야. 뭔 개소리야, 그게. 각자 하나 골라. 안에 다 다르게 생겼따. 알긋지? 뭐 나왔는지 이따 불 끄고 봐야돼, 꼭! 언니는, 이새끼 또 별 거 아닌 거 가지고 난리떠는 거 봐. 하며 웃었다. 내가 뜯은 상자에서는 세 개가 나왔다. 민둥한 맨몸으로 똑같은 자세를 잡은 야광인간들. 얘들도 심심이들이네, 그래서 셋인가봐. 연둡, 뽑기운 좋네?


셋은 각지를 돌아다니며 돈을 쓰고 시간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장소만 바뀐 비슷한 일화들을 쌓았다. 학교 얘기, 알바 얘기, 옷차림 취향, 가정환경, 어릴 때의 웃긴 일화, 최근에 썸씽이 생긴 이성. 이상형, 돌고 돌아 또 학교 얘기, 학교 욕. 그 학교에 또 치밥이 심어 놓은 선물 아닌 선물 찾기, 서로를 보게 되면 몰래 웃기게 찍어 올리는 사진들. 제각기 선 곳의 밤하늘, 여행지의 풍경, 거기서 서로를 떠올리며 사 온 선물들.




돈을 모아 이런저런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각자의 생일을 뻑적지근하게 축하했다. 별 건 없었다. 그냥 뷔페에 가서 잔뜩 먹고 웃었고 여의치 않으면 학교 야외 테이블에서 엽기떡볶이를 시켜서 먹었다. 아마 그건 그녀의 생일 때였다. 남자친구와의 여행, 아르바이트 등등으로 늘 그녀는 바빴다. 나는 달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공처럼 생긴 무드등을 선물했다. 3월, 아직 약간 추운 솔숲에서 희부옇게 밝은 그걸 든 채 그녀는 준 사람의 성의가 무색하지 않게 환히 웃었다. 예쁘게. 그리고 치밥이 준 선물을 들고서도 그렇게 웃었다.


아마 그러고 한 번 울었던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생일날 엉덩이털 적립이라고 놀렸던 게 기억나니까. 시킨 걸 먹고, 했던 얘기를 또 하고 안 했던 얘기도 하고, 시험이 임박하면 괜히 모여서 학교를 떠나지 않았다.






치밥은 근처 본가와 기숙사를 다 오갔다. 내가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는 건 뭔가 좀 부끄럽다고 하자 슬리퍼에 덧신을 신은 요상한 모양새로 책을 빌려주러 나왔다.

아니, 니 얘기 아니고, 내가 그렇다고. 그치, 하지만. 상관없어도 보기 흉하면 안 되지. 나 흉하다고 안 했어, 임마. 내가 시킨 거 아니다, 니가 원해서 한 거지. 나도 아는데? 난 줏대 있는 인간이라구. 그리고 뻑뻑하게 웃었다. 웃으면 눈이 같이 웃는 나와 달리 그는 입만 웃었다. 그조차도 컨셉 같았다. 오히려 어쩌면 그래서 언니보다는 편할 때가 있었다. 말투도 표정도 어떤 의미로는 참 한결같아서. 그리고 나는 생각했지. 얘가 왜 좋은 걸까, 언니는.



나는 가급적이면 어떤 조합이든 둘보다는 셋이 나았다. 그래서 차라리 나와 언니 단둘이, 또는 나와 치밥 둘이 되느니 그냥 둘이서 더 친하길 바랐다. 근데 내가 바라지 않아도 알아서 그런 것 같았다. 언니는 이디야에서 알바를 했고 학교에서 국가근로도 했다.

단톡에다가는 너무추웡,같은 별 것 없는 이야기를 자주 했고 박애주의자이자 사실은 시간이 꽤나 많은 인간이었던 치밥은 항상 옷이나 간식 등등을 주러 나간 모양이었다. 그러나? 용건 없이 부르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안 나왔다.






공부할 거 들고 놀러왕, 내가 허니브레드 만들어줄게, 하고 언니가 나를 꼬신 날. 나는 스미스키와 학과 유인물을 가방에 넣고 월계동으로 갔다. 쿨톤인 언니는 그 프랜차이즈의 시퍼런 유니폼도 잘 어울렸다. 야, 치밥. 놀러와. 언니가 이거 만들어준 거야. 했더니 아마 몇 시간 동안이나 카톡을 읽지 않았다. 사실 언니는 나보다 그를 좀더 보고 싶어했을 것 같았는데, 아쉬웠다. 그녀는, 매번 번호를 달라며 귀찮게 구는 다양한 연령대의 귀찮은 남자 손님들 썰을 풀며 일하고 웃고 내 사진을 찍고 또 웃었다. 이씨, 이새끼 안 올줄 알았어. 백퍼 이거 일부러 안 읽는 거다. 그러게, 언니. 근데 좋아하는 거 아니야? 라고는 말 안 했고. 대신 말했다.


얜 진짜 바보같은 애를 만나야 할 것 같아. 그치. 그런가. 맨날 섹시한 타입 좋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섹시할 수 있나? 모르지, 흠. 꼴에 눈은 높아서. 아, 근데 남자친구랑은 왜 싸웠어? 아, 몰라. 지가 나보다 이쁜 애 못 만나는 거 알 거거든? 근데 내 종아리 보고 아쉽다고 하는 거야. 헐, 뭐야아..


음. 이럴 땐 뭐라고 말해야 하지? 남자친구 욕? 아닌데, 아직 안 헤어졌잖아. 아, 이래서 셋이 있어야 해. 정말로.






한여름. 셋이서 맘마미아 2를 보고 회기역의 식당들을 돌아다녔다. 언니는 늘 굽이 있는 샌들을 신었다. 울퉁불퉁한 대학가 길을 땡볕에 걸으며 간 식당이 그녀의 입맛에 맞지 않았을 때 그녀는 기분 나쁜 티를 꽤 냈다. 그냥 맨날 편의점 닭강정이나 먹고 되는 대로 운동 깔짝이는 컨셉보이의 취향이 그렇게나 고급일 거라고 나는 애초에 생각지 않았다.


짜고, 달고, 맵다고 했다. 근데 사실 엽떡도 그렇지 않나, 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만 했다. 난 여기 좋아해, 맛집이야. 라고 해서 찾아간 곳들은 다 그런 식이었다. 왜 맛집인지, 그러니까 왜 본인만 아는 숨겨진 맛집인지 알 수 있을 법한 식당. 그런데 어떡해. 선택권을 넘겼으니 순응해야지.


내가 난데, 하는 쪼의 치밥과 데이트코스도 아닌데 그런 식당을 불편해하는 언니 사이에서 나는 시키지도 않은 눈치를 제법 봤다. 피곤한 것들.




혜화역에서는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이 땡볕 아래에서 시위를 했고 학교 에브리타임에는 관련된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덥고, 날뛰는 여름이었다. 한 번씩 단톡에 300 이상의 메시지가 쌓여 있으면 나는 누르기 전에 마음부터 잡았다. 이것들 또 싸웠구나, 싶어서. 안 불편한 것을 불편해하는 언니, 불편해야 할 것을 가르치려 드는 치밥. 그리고 가끔은 반대. 양상은 매번 똑같았다. 씨, 차라리 니들끼리 갠톡으로 싸우면 안 되는 거야? 항상 생각했다. 어떡해, 그럼. 나라도 불쌍한 척 해야지. 모야.. 너네 왜 싸웡.. ㅠㅠㅠ 싸우디망....


그러면 갠톡이 올 때도 있었다. 싸운 게 아니고, 그냥 난 쟤가 저렇게 말하는 게 이해가 안 가서 그랬어 연둡. 또는, 전화가 왔다. 나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 가끔 쟤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한다니까. 밥먹었어? 밥먹쟈. 셋이 먹어.

는 지 남친이랑 데이트한대잖아. 그리고 나랑 입맛 안 맞아. 매번 짜증내는데. 나 다이어트할 거야. 연둡, 앙상한 기린 같은 게 되고 싶은 거야? 기린은, 씨. 됐어. 야, 싸우지 좀 마라. 니가 나이도 더 많잖아. 아, 갑자기 왜 나이로 공격해. 늙은이 서럽게에.




피곤한 사람들이었다. 왜 너네 나 사이에 두고 그러냐고. 하지만 그조차도 즐거웠다. 나이팅게일 선서식에도 둘은 잔뜩 모양을 낸 채 와서 사진을 찍어 주고 뒤풀이 아닌 뒤풀이를 했다. 생각해보면 그냥 학과 행사일 뿐인데 그 둘은 나의 후견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와서 축하해 주었다. 어떤 내용의 축하였는지는 기억 안 난다.


그 날, 언니는 정작 당사자였던 나보다 더 취해 집으로 들어갔다. 치밥과 나는 차가 끊겨 어떤 굴다리를 걷고 어딘가에 앉아 있으며 지루한 밤을 보냈다. 돌아보니 정말 쓸데없는 짓이었는데, 그 땐 그 몇 만원 택시비도 큰 돈이었다. 나한테는 그랬고, 치밥도 술을 마셔서 차를 거기다 대 놓은 상태로 있어야 했다. 할 얘기가 없어서 끊임없이 언니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주제가 나로 향하는 게 거북스러워서 그런 거였는데 방향은 자꾸 다른 데로 튀었다.






이미 안물안궁인 속내를 괜히 감추는 티를 다 내는 사람에게 나에 대해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상대는 생각보다 만만찮았다. 야, 그래서 언니 헤어질 것 같대. 남친이 그렇게 말했다는데? 하면 넌 근데 왜 안 만드냐 남자친구, 하는 식.


그게 내 맘대로 되냐? 왜 안 돼. 하면 하는 거지. 그러는 넌. 난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고 지금이 딱 좋타아. 항상 일관적인 그 자세. 딱히 알아낼 생각도 없었으나 벌써 치는 방어막. 언니와 치밥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사람들 같았다. 에휴. 그래도 가끔 그가 나았던 이유? 욕이라도 편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랄하네, 못 만나는 거 아냐? 야. 못 만나기는? 아니, 들어봐. 나 그 때 인턴 갔을 때.. 어쩌고.


그러면 다시 원점 아닌 원점. 대체 이런 사람에게 빠지는 이유는 뭘까. 언니에게는 못한 질문을 할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은 니가 왜 좋대? 나니까 좋은 거지. 이유가 어딨겠어-. 좋겠다, 자신감 넘쳐서. 너도 가져. 그래도 돼. 그리고 그걸 엄청나게 진지하게 말했다. 말했잖아. you deserve it. 각자 다 그럴 자격이 있어. 음. 어, 그래. 고맙다.






집에 가서, 언니를 향해 단톡에 다 말했다. 걍 같이 있다가 지금 집 들어감. 나는 굳이 그런 일들을 둘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거든. 나한테 이 심심이들은 언제나 셋이었다. 뚝섬에서도, 반포한강공원에서도, 삼청동에서도. 그리고 그보다 많은 장소들에서, 지금처럼 포토이즘과 인생네컷이 널려 있지 않았던 당시에 찍은 수백 장 사진들에서 웃거나 표정을 찌그러뜨린 셋. 연둡, 나는 그 안에서 가운데여야 했다. 둘 중 하나의 축이 아니라.


나는 그래서 좋았던 거니까. 셋 사이에서의 유들유들하고 장난스러운 공기. 부딪혀도 희석될 공간이 남아 있는 에피소드들. 한 필터를 거쳐 들려오는 둘의 심상찮은 듯한 일화. 셋이어야, 나는 관찰하면서 존재할 수 있었거든.



이 피곤하고 가끔 귀엽고 자주 즐거운 이 인간들을. 한껏 궁금해하면서. 과연, 얘넨 언제 어떻게 사귀게 될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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