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이들

2017. 11.

by 이븐도





"나 봤다?"

"진짜?"

"응. 봤어. 확실해. 치밥 맞아."

"어디서? 아니, 근데 진짜 켄타로 닮았어?"

"개소리야, 1도 안 닮음."

별로 아깝진 않았다. 안 닮았을 것 같았거든.

"개빡쳐. 하얗지도 않아. 개싫어. 괘씸해서 꼭 말할거야."

"뭘 말해, 단톡에다? 찾았다고?"

"당연하지. 화나잖아?"

그런데 언니의 표정은 화나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이건 그게 아닌데. 싫다고 하지만 지대한 관심이 쏠려 있는, 웃음을 못 감추는 표정.

이게 싫은 건가? 정말? 근데 본인이 싫다니, 뭐.




아마 나는 그 때 이 모임의 해체를 벌써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결성 때부터 알았을지도? 하긴, 어떻게 몰라.

"제3과학관에서 봤어. 오늘 말한 동선 그대로야. 아. 개빡쳐어어어어."

아직도 웃는 표정. 언니, 그 사람 좋아해? 벌써?






잘생겼는지 아닌지 안 궁금했다. 그 정도로 잘생긴 사람이 있었다면, 벌써 페북이며 에타며 난리가 났겠지. 건축과 누구씨, 아트앤 누구씨처럼. 아니면, 그냥 허우대만 멀쩡해도 언제 몇 시 수업 몇째 줄에서 들으신 분 남친 여친 있으신가요, 하는 것처럼 오만데서 애진작에 오르내렸다고. 나 그 사람 안다? 고등학교 선배였는데 양다리 오져. 와꾸만 멀쩡하고 걍 병신이야, 씨썬샌드 앞에서 여자 옷에 손넣고.. 어쩌고.. 하는 그런 말이 도는 것처럼. 이 손바닥만한 학교에서, 그게 화학과든 경영이든 저쪽 약대생이든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잖아.


그런데, 없던데? 있었으면 내가 먼저 봤을 거라고. 야, 봤어? 봤어? 하면서. 그래서 별로 정체를 안 알고 싶었다. 본명도, 학과도, 학번도 절대 안 까면서는 빵쪼가리 일부러 흘리는 삐딱한 헨젤마냥 본인을 제발 알아봐 달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작태가 심히 아니꼬웠다.


언니와 나를 알아본 흔적을 단톡에 남기고, 굳이 아는 척을 해대는 꼴이 참 우스워 깊이 알게 되면 그 사람을 별로 좋아하게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까지든 그냥 몸을 그렇게 숨겨 줬으면 했다. 이렇게 노는 게 재밌어서.

그런데 언니는 아닌가보군.





"근데 어떻게 찾았어. 아니, 궁금했어? 본인이 그렇게 싫다고 하는데?"

"어이없잖아. 지는 누군지 안 알려주면서 우리는 찾아내고 다니는 게."

"마니또 좋지 않아? 난 좋은데."

"아니, 난 싫어. 개싫어. 삼자대면 할 거야. 아까 분명히 걔였어. 가운 넣으러 가는데 나 쪽 보자마자 화장실로 바로 들어가는 거. 백퍼야."


11월, 종강이 얼마 안 남았다. 언니와 나는 황량한 화랑대 너머를 지나 지하철역으로 가는 버스에 서 있었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 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놀이터의 경계. 20대 타이틀을 달고 유치하게도 노는 어른도 아니고 애도 아닌 우리의 경계. 아, 오늘로 끝인가. 자발적 유령이 한 명 낀 이 무형의 사담 파티? 육사를 지나 달리자 도로가 그래도 조금씩 밝아졌다.


"배고프다. 너랑 나 셋이서 보자고 할 건데. 싫어?"

"아니, 뭐. 난 상관없어. 좋아. 재밌겠다. 근데, 잘생겼어?"

"개뿔. 개구라야. 연둡, 떡볶이 먹고 가자. 사줄게. 아근데.."






아마 학교 욕을 하다가 친해진 것 같았다. 이걸 친해졌다고 하기도 뭐하고. 설잡. 이 애매하고 또 안 애매한 학교의 위치. 실제로 위치가 그랬고 랭킹이 그랬다. 원래 경계선에서는 늘 전투가 들끓기 마련이잖아?


분명 자이언티랑 볼빨간 사춘기와 지코의 축제 출연 여부에 대해 설왕설래하기 위해 링크가 붙어 있던 오픈채팅은 종교, 등신같은 수업, 수시, 정시, 입결, 수준, 취업, 문과, 이과, 약대, 어쩌고..의 주제로 흐르고 흘러 다분히 개인적으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발하는 단체전 또는 치열한 각개전에 질린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해 열몇 명쯤 되던 인원은 일곱에 여섯, 넷으로 줄었. 이어 마침내, 셋.




그렇게 우리가 남은 거였다. 내 닉네임은 연둡. 그날 기숙사 저녁에 연두부가 나왔어서. 언니는 본명을 그대로 읽은 발음을 썼다. 치밥은 치밥. 학교 식당에서 그나마 먹을 만한 시그니처 메뉴. 언니는 그냥 언니 같았다. 이쁜 옷에 화장 좋아하고 남자친구와의 일화가 새어나오는 보통의 이십 대 초반 여자. 치밥? 분명 여러 정황을 볼 때 그렇게 나이가 많을 수가 없는데, 말투며 화법이며 엄청나게 나이가 있는 사람인 컨셉을 잡았다. 학교 돌아가는 공식 비공식의 사정을 다 알았는데 학과와 학번은 절대 안 밝혔다. 음침하게.


그것만 안 밝힌 게 아니었다. 그 무엇도 투명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래봤자 오픈톡인데 그렇게나 유별나게 구는 게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속된 말로, 존나 관종. 리버스 관종이라고 해야 하나? 아닌 척하는데 엄청나게 관심을 갈구하는 것 같아서 더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오픈톡인데도 말이지.






축제는 사실 관심없었다. 그냥 간호학과 바깥의 사람들은 이 학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 같다. 별로 다르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들어하는 인간들 반, 니가 그 정도라 들어온 거니 닥치고 다니라는 인간들 반의 반, 어쨌든 본인은 만족하고 다니는 중이며 다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인간들 반의 반. 원래 싸움 구경은 늘 재밌잖아.


중간중간, 나와는 거리가 먼, 민증 한참 굳은 '언니오빠'들의 음주가무와 연애 일화들을 주워듣는 것도. 그래서 나는 그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속옷 취향부터 외모 취향. 이건 그 사람이 병신인데? 남친 잘못이네. 여친 잘못이네 하는 판정들과, 이런 옷 입은 여자, 남자, 강아지, 고양이 어때 하는 질문들도. 얼마나 재밌어. 늦가을이었다. 몇 주 갔더라. 그리고?





왜 답장 안 해 연둡. 응? 아닌데.

야. 야. 야. 야. 야. 야. 돌아봐. 돌아보라고. 에이, 설마.

강의실에서 나와 대충 다른 카톡을 읽으며 걸었다. 누군가 내 목 뒤에 속삭였다. 오늘 이쁜 거 입었네? 네? 예? 단톡에, 지나가듯 올라온 눈 사진과 똑같은 눈망울을 가진 사람이 서 있었다. 도망가야 했다. 아닌 척 도망가고 싶었는데, 근데 어떻게 도망가. 색출당했는데. 안녕하세요, 해야지. 야, 무슨 안녕하세요야, 맞을래? 아, 그게..


나는 누구도 찾아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교류만 하고 싶었거든. 아, 아쉽다. 진짜 아쉽다. 위아래 없고 정서와 감정과 파편화된 맥락과 일화만 교류하고 떠날 수 있던, 그 공간이 사라지는 순간.

아니, 언니.. 시잖아요. 하하.

-언니라고 하지 마. 야, 왜 거리둬? 어? 이름 불러. 닉네임!

.. 안녕하세용.

-아까 했잖아, 진짜. 연둡. 맞지, 너. 학식먹으러 가장. 나 너 기다렸다고. 아, 맞았다니까? 내가 아침에 도서관에서부터 이상하다 생각했다구.




그녀는 소위 인싸였다. 소위 인싸가 아니고 진짜 인싸였다. 빠지는 게 없었다. 누군가와 늘 카톡 중이었고 그 카톡 중인 상대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다. 족보, 기출문제, 족보, 커피, 쪽지, 선물, 샌드위치, 또 커피. 그리고 나를 좋아했다.


난 항상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 말이야. 연둡, 집에 놀러오면 내가 너 화장시켜줘도 돼? 이거 봐봐. 나 이거 톤 안 맞아서 안 쓴 거야. 발라보고 맞으면 너 써. 오늘 옷 이쁘당. 넌 이런 게 진짜 잘 어울려. 이거 봐봐. 그 교수 여기서 다 내. 작년에도 토씨 하나 안 틀렸다니까? 누가 근로 그만둔다는데 너 할래? 아, 너 해. 내가 너 하라고 시켜주는 거잖아. 아. 진짜.


연둡 아싸네? 맞아. 친해지지 마. 저런 애들 피곤해. 건대에 술마시러 갈래? 딴 학과 애들도 와. 학회? 개같지. 모아놓고 진짜 개소리한다니까 가끔? 근데 가면 떨어지는 게 많아. 너도 들래? 아니야. 넌 하지 마. 내가 다 갖다주잖아. 대신 나랑 점심 먹어 줘. 야, 이런 날은 밖에서 먹어야 돼. 한솥에서 불고기덮밥 사와서 저기서 먹장. 아 근데 이 새낀 읽었으면서 답장을 안 해. 화학과 아니야? 맞잖아. 동물 가지고 실험하는 데 거기밖에 없을걸? 약대? 에이. 이거 이렇게 뿌려야 맛있어. 그치? 야. 맛없는 거 먹고 살찌면 짜증나아아아.






예쁘고, 하얗고, 뭐.. 뭐더라. 하여간 매력적인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그녀도 그걸 잘 알았다. 원래 이쁘고 잘생기고 귀여운 거 보면 사진을 찍고 싶잖아? 집에 와서 갤러리를 보다가 그녀가 찍힌 사진을 보면 한번씩 놀랐다. 예뻐서.


그리고 그렇게 예쁜 그녀가 나를 너무 좋아하는 눈빛으로 보고 있어서. 글쎄, 나를 끼고돈다고 남자가 더 생기는 것도 학점이 오르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 호의에는 딱히 의심할 게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있어야만 그녀와 치밥과 나와의 단톡이 유지되는 것만도 아니었다. 한번에 다섯 명의 썸남을 후보에 둔 적도 있고, 학점관리도, 외모관리도, 그러니까 정말 그야말로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그녀라면, 원하는 건 다 쟁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그렇게 살았다. 그녀는 분명 그 꼴에 별것도 없으면서 미스터리한 척 하는 그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알 수 없는 인물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별개로 나를 좋아하기도 했다. 살뜰히 챙겼고 애정을 쏟았다. 문제는, 나는 되돌려줄 것이 없어 항상 그게 부담스러웠다는 거지. 뭘 받을 때마다 커피랑 밥을 살 수도 없고.. 받는 게 많았으나 그만큼 그녀가 불편했다. 정말 웃긴 일이다. 해줘도 지랄이냐, 이 말이지.


그녀는 항상 떨떠름해하며 정말 고마워해하는 나를 좀 귀여워하는 것 같긴 했다. 근데 정말 몸둘 바를 몰라서 그랬다. 그게 이 관계에서의 내 정체성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이런 크고 작은 교류와 일화는 그 단톡에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치밥은 늘 그걸 구경하며 말을 얹고 우리의 학과 사물함과 동선 등에 자잘한 선물과 장난거리들을 놓고 갔다.






그렇게 1학년 2학기 하반기가 가고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게 이 단톡 관계의 안정화라고 생각했거든. 그러나, 역시나 그 언니에게는 아니었던 거지.


나는 그의 어떤 것도 믿지 않았다. 매번 쪽지며 책이며 한정판 젤리나 과자 같은 것을 공수해 그녀와 나의 사물함에 공평하게 넣어두는 것을 보면 분명 학교 내부자이긴 했는데, 이 정도로 정체를 안 드러내는 사람이라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사실은 정말 알 수 없는 거잖아. 하지만 그녀는 치밥이 남자라고 확신했다. 하긴, 뭐 모든 정황이 그렇긴 했지. 그런데, 나는 그래서 오히려 안 믿었다.


뱉는 게 다 거짓말이면? 뭘 믿어, 믿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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