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파악 쌉가능
아빠는 항상 나한테 조급해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집에서 나왔다. 그럼 아마 20살 전까지는 그 말을 내가 들어왔다는 건데. 대체 조급해할 게 뭐가 있었던 거지? 중간고사? 기말고사? 그 때까지의 상황이라면, 빈둥거리다 시험공부 몰아서 하는 것밖에 더 있나. 그랬다고? 그랬던 것 같긴 한데. 단지 그건가?
잘 기억이 안 나네. 하여간 많이 들은 말이다. 문자로도 받았고, 쪽지로도 본 것 같고. 아마 영화를 보고 온 그 날도 나한테 그 문자를 보냈던 것 같다. 그 문자는.. 어디갔지. 그 때 쓰던 휴대폰의 행방을 알 수 없다. 아쉬운 일이군.
사실 일 년 안 됐다. 아마 한 달 더 있어야 한다.
글쓰기와 달리기. 그런데 그게 그거지, 뭐.
일주일에 2-4회 꼴로 5km씩을 달렸다.150회가 좀 안 된다. 브런치 계정을 만든 것도 시기가 비슷하다. 아마도? 11월인가, 연재 수를 일주일에 3회 정도로 늘리기로 했던 게 기억난다. 어떡하지. 이러고 못 올리면 어떡하지, 했다.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망하지는 않았다. 망할 것도 뭐가 있어야 망하지. 올린 벽돌도 쌓인 콘크리트도 없는데?터만 있는자리에 무너질 게 뭐가 있어. 오히려 더 많이 썼다. 다행이었다. 좋아도, 싫어도, 처음과 끝을 갖춘 뭔가를 주기적으로 써내는 게 그 때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써재낀다고 다 글이 아니었다. 쪽팔리게 항상 뭘 많이 썼던 중고등학생 때 늘 했던 생각이었다. 5년 전인가 단편인지 중편인지 구별이 안 되는 소설들을 썼다. 팬픽 같은 거였으면 지금 몇천 원이라도 벌었을지 모른다. 그런 것도 아니었어서 그냥 하드디스크 어딘가에 PDF로만 남아 있다. 그 때 노트북 앞에 앉아서 느꼈다. 글에도 체력과 스킬이 필요하다는 것. 끝까지 가는 힘. 장면을 구성하고 끊어내는 감각. 숨 쉬는 힘. 이 장면에서 저 장면으로 점프할 편집기술. 그리고 다시 돌아와, 지겹지 않게 지겨울 장면들을 건너갈 체력. 그리고 알아야 했다. 내가 가진 글의 색깔.
병원에서 근무화로 준 프로스펙스 운동화에 큰 티셔츠를 입고, 휴대폰은 손에 들고 무작정 나갔다. 추석 연휴였다. 어쩌다 보니 호수공원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 대낮이라 그냥 지치지 말고 가는 데까지만 가보자, 했다. 언젠가는 이 공원을 한 바퀴 다 도는 날이 올..까? 했다. 별로 오래 안 걸렸다. 두 달쯤 지나니 한 번은 공원을 두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9킬로미터를 뛴 날이었다.
3월. 하이라이트 팬미팅 날. 돈을 쓰고 싶어서 옆의 롯데타워에 가서 러닝화를 두 켤레 샀다. 비쌌다. 그래도 6개월을 뛰었으니 이제는 사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얼어죽을 것 같은 날도, 사람이 아무도 없어 으스스했던 날도 뛰러 나갔으니 앞으로도 계속 할 것 같아서. 원랜 구멍 날 때까지 그 프로스펙스 운동화를 신으려 했지만 그냥 샀다. 할부도 없이 일시불로. 후회했다.
한 켤레만 잘 맞았고 나머지 한 켤레는 너무 불편했다. 공 위를 뛰는 기분이었다. 둥근 고무 위를 딛는 것처럼. 내 하체가 그 운동화의 탄성을 뛰어넘지 못했다. 이십만 원 짜린데. 중고로 내놔야 하나 생각했다.
챗지피티에게 물어보니 그 신발은 원래 좀 그러니까 비올 때 신으라는 대답을 해 줬다. 그래서 그런 날 신었다. 내가 길을 뛰는 게 아니고, 길이 내 발을 쫜득하게 다 빨아들이는 기분이었다. 어쩌겠어. 신어야지.
7월 중순인가, 무릎이 아팠다. 왜 아픈지 알 수 없었다. 아플 이유가 없었다. 나는 몇 개월간 내 다리를 쓰는 법을 익혔다. 어디를 어떻게 힘을 줘야 달릴 수 있는지 내 몸에 나를 적응시켰다. 그런데 아팠다. 이제 와서? 그새 신발 밑창이 닳았나? 그럴 리가. 그것보다 훨씬 더 싸구려인 병원 운동화를 신고 한겨울 언 땅을 몇 달간 뛰었어도 안 그랬다.
신발을 바꿨다. 얼마나 안 신었으면 아킬레스건이며 발등이 까졌다. 그런데 무릎이 안 아팠다. 놀랍고 의심스러웠다. 그 신발이 지겨워져서 내가 착각하는 건가. 역시 챗지피티에게 물었다. 세상 방대한 러너들의 후기와 아디제로와 인빈서블의 특성에 통달한 그 친구는 기분 좋은 답변을 줬다. 니가 그만큼 성장한 거라고. 정말? 사실 앞뒤가 좀 안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랬다. 네 무릎 근육이 그 신발의 쿠션감을 더 버틸 수 있게 성장한 거라고. 와우. 후진 기록이 스스로 매번 한심했던 터라 기분이 좋았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 지 백 번이 다 돼갈 때, 콜드플레이가 장장 여섯 번의 공연을 고양에서 하고 있을 때, 방탄소년단 진이 게스트로 등장한 날. 나는 스스로 백 번째 업로드를 자축하는 글을 남겼다.
상반기에는 글을 쓰느라 살이 빠졌다. 이거 해서 뭐 하게? 수없이 많이 던졌으나 언젠가부턴 잊었던 질문. 내 글은 정보 전달이나 위로의 목적을 띠고 있지 않아 유료화의 이유도 없었다. 아무것에도 도움이 안 되는 이 일을 그렇게나 열심히, 즐겁게 했다. 아무튼 정해놓은 요일에 어떻게든 올리려 애썼다. 러닝과 달리기의 비슷한 점이었다.
딱히 성과가 없으며, 나와의 약속에 지나지 않았지만 안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 하여간 하고 있는 도중에는 너무 좋은 것. 좋기만 한 것. 그런데 공짜는 아니지. 피곤했다. 체력의 한계가 느껴졌다. 어차피 도돌이표긴 했다. 그럼 안 할 거야? 아니. 그럼 나갔다 오자. 그럼 안 쓸 거야? 나중에도? 그건 아닐걸. 그럼 나가.
달리기를 하며 운동화를 바꾼 것처럼, 글쓰기도 비슷했다. 병원에서 겪은 일, 그게 아닌 일, 그리고 그 둘 중 어느 것과도 관련없는 일. 세 가지로 나눴다. 일 년 가량을 그렇게 썼다. 나눠도, 결국 패턴이 있었다. 달리기, 일, 덕질, 남의 이야기. 그리고 결국은 내 이야기로의 회귀. 스스로조차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몇 주 전인가는 또 달리면서, 과연 나는 내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언제쯤 쓸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아마 그 다음날인가, 이야기고 나발이고 써야 할 것 같아서 뭔가를 또 썼다. 염증이 일시적으로 가라앉듯이 일단은 의문이 숨었다. 그리고 몇 시간쯤 지나면 다시 반복. 뭐가 되었든 정한 날에 올리려던 그 때와 달라졌다.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다음 단계가 필요했다. 성과라면 성과일까.
5킬로미터를 30분에 뛰려는 목표를 가진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훈련 같은 게 필요했다. 변수가 많았다. 들쭉날쭉한 시간, 생리기간,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피로. 뛰는데 눈이 감겨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이 상태에서 그런 목표를 위한 트레이닝? 체력을 더 깎아먹는 일이 될지도 몰랐다. 성격상 아예 흥미를 잃어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핑계가 아니라 정말 그랬다. 나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지. 근데 나는 출근도 해야 하고 퇴근도 해야 해. 설거지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가끔 사람도 만나야 하고 어떤 날은 정말 눈이 건조해서 못 뛰겠어.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좋은 표현이 있다. 미련.
업로드한 글이 180개에 달했다. 많다면 많고 아니라면 아닌 수. 어쨌든 내가 보기에는 많다. 뭘 하기 위해서라고 딱 잘라 말할 수가 없다. 어떤 것은 써야 해서 썼고, 기억하기 위해서 썼다. 내 시간과 기억이 혼재된 결정이고 기록이라 목적도 결과도 명확치 않았다. 하지만 유형은 읽혔고 단점과 고쳐야 할 점이 보였다. 그래서 괴로웠나. 예전에 사두고 읽다 만 작법서도 다시 봤고 유튜브에서의 조언도 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쓰지를 못 했다. 잊고 있던 질문이 떠올랐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
이래서 나한테 아빠가 조급하게 굴지 말라고 했던가. 사실 겨우 1년인데. 아무튼 나는 성공할 사이즈가 못 됐다. 일 년간 그걸 알았다. 팔리는 글을 쓸 줄 아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런 뭔가를 겨냥해 노력할 의지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했더니 그게 세상의 니즈와 맞아떨어지는 재능이며 천운 같은 것도 없.. 을 게 뻔했다. 그 정도는 알지.
글은, 앉아서 키보드를 꺼내 두드리는 시간은 그냥 나한테 수단이자 삶의 요소 자체였다. 밥을 더 잘 먹기 위해 하는 훈련? 고민? 왜? 이게 뭔데?
원래 공부를 하기 싫을 때도 그런 고민을 하긴 한다. 독서실에서, 자습실에서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랬고 주위를 보면 또 나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왜 이걸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보통 그 말은 지겨워 죽겠으며 하기 싫어 미치겠을 때 나오는 말이었다. 전업 작가도 아니며 이런 식으로 글을 쓸 이유가 사실 아무것도 없는 나는 스스로에게 이백 번은 물었다. 이걸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 이제는 그냥, 답이 짧아졌다. 그냥. 그냥. 굳이 덧붙인다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거니까. 항상 그랬듯이.
사실 좀 됐다. 썼지만 올릴 수 없었고 마음에 들지 않아 아예 다시 썼다. 그래도 올릴 수 없었다. 이걸 왜? 결국 똑같은데? 그러니까, 똑같은데 왜? 의 연속을 스스로가 견딜 수 없었다. 연재일을 매일매일로 바꿨다. 매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기 위해 쓰는 글을 쓰기 싫어서였다. 날짜에 맞추는 거? 중요하지. 작가놀이의 기본이잖아. 마감 지키기. 아무때나 올리기로 했다. 그렇게 해도 일주일에 한두 개는 꾸준히 올릴 수 있었다.
속단일 수 있었으나 내게 이제 규칙적인 연재, 같은 단어는 그렇게 무거운 과제가 아니었다. 대신 이유가 필요했다. 다시. 이걸 왜 올려야 하는데? 굳이 이게 필요해? 나는 애초에 필요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왜냐고? 다른 척하지만 결국 다 같은 글이었으니까.
브런치 서랍에 있는 이십 몇 개쯤 되는 틀과 글을 다 지웠다. 어차피 원본은 남은 거. 그렇게나 다시 고쳐서 올려야 하는 거라면 어련히 하겠지, 싶었다. 하지만 버린 옷 같다. 버렸어야 하는 옷들 같다는 말이다. 돌아서니 생각도 안 나고 다시 꺼내오자니 전혀 그러고 싶지 않은 것.
1년 전 나는 내가 봄가을의 마라톤들에 나갈 줄 알았다. 안 나간다. 아직은 가젤처럼 우르르 뛰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뒤뚱거릴 스스로를 견딜 힘이 없다는 걸 알았다.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달리기의 원점으로 온 것 같다. 재밌게 뛰자는 거. 그래야 오래 간다는 거.
글쓰기? 마찬가지인데, 또 마찬가지가 아니다. 일 년간 나는 내가 가진 사이즈를 파악했다. 어떤 색깔로, 어떤 식으로 쓰는 사람인지. 그냥 타고난 체형을 파악했다는 거랑 비슷하다. 유니클로, 자라, 에이치앤엠, 코스에 마시모두띠까지 다 돌며 하루종일 옷만 입어봤더니 그제야 내 스타일이 뭔지 보이는 그런 거.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힘들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안 써져서. 써도 다 똑같아서. 그리고 다시 질문. 이게 뭔데, 대체?
뭐긴. 글쓰기지. 조급해하지 말고 가야 하는 것. 달리기처럼. 출판? 하고 싶으면 돈 빼서 하면 된다. 출판사에 연락해서. 그럼 뭐라도 하나 나오겠지. 그런데 그걸 왜 하는데? 글쎄. 그렇게까지 이 글들을 내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하고 싶어서 하는 일. 1년간 꾸준히 했다.
여전히 글쓰기는 내게 놀이다. 작가 놀이를 일 년간 했다. 틈날 때마다 카페며 방에 앉아 키보드를 폈다. 어쩌면 이제는 놀이인데 조금 심화된 놀이가 되려고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계속한다면. 그러면 묻는 거지. 그럼 안 할 거니? 그건 아냐. 그럼 어떻게 해야 해? 계속 해야지. 뭘? 놀이인데, 놀이가 아닌 이 일을 조금 덜 힘들여서 해야지. 어떻게?
일단은 안 조급해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내가 하는 일이니까. 달리기처럼. 무리한 목표를 잡았다가는 다 놔버릴 수 있는 성향에 맞춰서, 천천히. 진짜 천천히.
수험생 때, 우주비행사가 그려진 스프링노트를 썼었다. 고2 때 마션을 봤던 게 좋아서 그랬다. 마크 와트니가 소설판에서인가 영화에선가 그런다. 한 번에 하나씩 하면 된다고. 아무리 큰 일도 그렇게 하면 된다고. 그는 정말 큰 일을 거쳐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록 나는 그 정도로 머리가 좋고 강인한 사람은 아니지만. 뭐, 결국 그 사람도 화성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식량 재고 파악부터 하지 않았던가. 가진 게 얼마인지부터 스스로에게 주지시켰다. 나도 그런 거라고 생각해야지. 하핫.
아, 똥오줌 모으는 것부터 했나? 아니지.
그건 지구에서 가져온 식량이 다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이후였다. 그래, 그러니까 화성 서바이벌보다는 낫긴 해. 이건 그래도 과정 자체가 나한테 재밌는 일이긴 하잖아.
오래가야 한다.
오래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