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힘들다
운동을 하면 좋은 점 : 정상적으로 살 수 있다
운동을 하면 안 좋은 점 : 제정신이긴 좀 힘들다
달리기나 수영이나,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 보면 어떤 센서가 좀 고장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새벽 한 시 오십 분에 공원 맞은편에서 뛰어오던 누군가를 맞닥뜨렸을 때, 저 미친놈은 뭐지? 했었다. 그 때 알았다. 저 사람도 분명 똑같은 생각을 했겠군.
수영. 사실 수영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수중재활이다. 그냥. 너바나 앨범 커버의 빨개벗은 애기처럼 둥둥 떠 있다가 오는 게 전부기 때문이다. 숨이 차긴 한다. 근데 그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수영을 수영이라고 부르기가 좀 그렇다. 여튼 다녀오면 기운이 빠지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브닝 출근 전에 러닝은 나쁘지 않은 생각이지만 수영은 좋지 못한 생각이다. 피곤해 죽는 줄 알았다. 밤 열한 시 반에, 빠뜨린 게 있나 오더창을 보는데 눈이 감겨서 미쳐버릴 뻔했다. 버스에서는 이어폰을 꺼낼 힘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 날도 파리바게트에서 빵을 왕창 사다 먹었네? 물론 그러고 점심은 조금에 저녁을 아예 못 먹은 게 크기도 하겠지만.
해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나이트 전에 그래도 달리기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은 좋지만, 아쉽기도 하다. 여름에는 그렇게 안간힘을 쓰며 뛰지 않아도 땀이 말도 안 되게 많이 나서 기분 좋은 착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아직 강하게 남은 햇빛 아래서 내 선크림 냄새와 땀내 비슷한 것을 풍기며 뛰다 보면 코로, 인중으로, 턱으로 땀이 흐른다. 아, 역시 코는 얼굴에서 가장 피지선과 땀샘이 많이 분포하는 곳이구나, 하면서 달린다. 사실 땀이 아닌가? 습도가 이 정도면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등이 젖긴 하잖아.
나이트. 열두 시인가 한 시인가부터 다섯 시까지 자고, 한 시간을 뛰다 걷다가 들어온 후에, 샤워를 하고 출근준비. 아홉 시 나이트 출근해서 여덟 시 퇴근. 아홉 시 땡 치면 자유수영을 안 들여보내주는 탓에 마음을 졸이며 수영장 도착. 여덟 시 오십 분 레일 입성. 그리고 아홉 시 이십 오분. 몸이 좀 추웠다. 그냥 집에 가기로 했다. 나는 선수가 아니잖아. 이거 재밌으려고 하는 거잖아. 분명 몸이 물에 떠 있으니 졸린 건 아니었는데 뭘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닌데. 수영은 그런 거라고. 일찍 일어나는 자에게 평일에만 간헐적으로 허용되는 특권. 주말에는 대기가 2시간은 있다고 했고 내가 생리 중일 때는 아예 불가능. 근무표와 안 맞는다면 정말 불가능. 아무때나 뛰쳐나가면 그만인 달리기와 달리 수영장은 문턱이 높은 이세계다. 이렇게 온 여길 그냥 간다고? 근데 못 하겠더라. 아니, 더 안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왔다.
운동 관련된 고민이 있을 때 챗지피티를 주로 쓴다. 오늘 삼십 분 떠 있다가 나옴, 어떡하냐? 라고. 얘가 조합할 수 있는 수많은 인류의 데이터, 나의 상황. 그런데 어차피 예상 가능한 답이 나온다. 밤근무, 이전 달리기, 수영. 근데 그 수영은 니가 생각하는 그런 수영이 아니다, 라고 덧붙였으나 어차피 똑같은 대답.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고.
운동. 어쨌든 달리기도 수영도 통칭 운동이라고 부를 수는 있으니까 - 을 하면 좋은 점은, 정상적으로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어제의 우울, 오늘의 잡생각. 그 돌고 도는 루프를 딱 끊어 준다. 너무 잔인하긴 해. 사람이라서 좀 그럴 수도 있는 건데 그걸 붙들고 있으면 내가 너무 힘들어 어쩔 수 없다. 나 바빠. 할 거 많다고. 안 풀리는 문제를 나만 끌어안고 있는 것보다는 할 일이 더 많다. 말만 들으면 평생 뛰거나 피트니스에 미쳐서 산 사람 같긴 한데, 어쨌든 운동과 덕질이 없었다면 나는 진작 퇴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운동은 특효약은 못 된다. 무슨 엄청난 인핸서 같은 게 아니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피곤하다. 무슨 스트레칭을 어떻게 추가하는 것보다 2-3일 쉬는 게 러닝에 더 도움이 된다. 얼마나 먹었는지보다 얼마나 잘 잤는지가 그 날의 페이스를 결정한다. 역설적이게도 많이 쉴수록 더 가볍게 뛸 수 있다. 잠을 아끼라거나 무턱대고 운동을 하라고 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아니면, 뭐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자아도취 중인 쪽이겠지. 그만큼 움직인다면 또 쉬어 줘야 한다. 플마 제로. 그럼 안 하느니만 못 한가? 그건 아닌데, 또.
좋아한다는 건 뭐 어떤 의미로는 속박 같기도 하고. 안 하면 불안해진다. 담배나 술보다야 낫겠지. 하지만 신기할 지경이라고. 어떻게, 안 하고 살았나 하게 되어서. 달리기든 수영이든 하고 오면, 집안일을 하나씩 하나씩 처리할 때의 속도가 빨라진다. 휴대폰의 캐시 파일들을 지운 느낌이랄까. 예전에, 십몇년 전에는 그러고 나면 휴대폰이 빨라진 느낌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변태도 아니고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찬 그 느낌만이 무작정 좋아서 못 놓는다기보다는 그 이후의 효과들도 무시를 못 한다. 그래서 그렇다. 그래서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돌고 돈다고. 지금? 너무 늦었는데. 지금? 피곤할걸? 지금? 네 신데?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하고 오면 좋잖아, 의 순환. 이게 제정신인가, 과연.
챗지피티에게 설명해 주면서 나도 이유를 알아내긴 한다. 5km 러닝, 밤샘근무, 퇴근, 수영. 당연히 피곤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 그럼 뭐? 어떡하라고. 난 모르겠는데. 정말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고. 이렇게 안 하면 못 살게 된 것 같은데. 돈 많으면 좋긴 하겠다. 제가 이러이러한데 오늘은 운동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하하. 끝나고는 뭘 먹으면 좋을까요. 뭐, 애초에 그러면 교대근무를 하면서 이런 식으로 살지 않아도 되겠지만.
내가 해야 해? 내 트레이너.
해야지. 하다하다 별생각을 다 하게 된다.
데이터 수집 중이다. 오늘은 이러이러해서 해마마냥 떠 있다가 결국 GG치고 집으로 왔다, 하고.
그리고 이런 날은 엄청나게 먹게 된다는 것. 그냥 수영이 문제가 아니다. 나이트와 이전 운동과 수영이 겹치면 정말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까지.
운동과 일이 나를 사는 건지, 내가 살면서 운동과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 연예인들 부럽다.
그렇게 몸관리하는 게 일이라서.
이런 생각하면 덕질 못 하는데? 하핫.
이럴 때도 있는거지, 뭐.
이게 다 운동을 팬들에게 영업한 이기광 양요섭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