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ypositive

다른 사람의 몸에 대하여 모든 이야기를 하지 않

by 이븐도





그리고 나는 이야기를 한다. 내 몸에 대해서.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몸에 대해서도? 어떻게 안 해.


수영장에 있는 건 물이랑 몸밖에 없는데.






스포츠센터와 버스정류장까지의 거리는 백 미터가 조금 넘는다. 집 앞까지 바로 가는 버스는 한 번 떠나면 20분이 있어야 온다. 눈앞에서 놓치면 그 더위에서 십몇 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뛸 수 없다.


4천 원짜리 수중활동이 끝나고 버스를 타기 위해 걷는 그 길은 세상에서 가장 울적하고 무거우니까. 정말이다. 나는 그 길에 나무나 그늘이 하나도 없어서 귀가가 힘든 줄 알았다. 아니다. 40분 동안 달리기를 할 때는 내내 헉헉거린다. 다리가 아프다. 수영은 아니다. 아마도. 그러나 그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아프다.

내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센터 내 탈의실 입구 맞은편에는 빵집이 있다. 내가 점주라면 그 정류장 쪽으로 어떻게든 점포를 이전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것이다. 사람들은 막 덜 마른 머리를 털고 무거워진 수영가방을 들고 그 탈의실을 나올 때까지는 그 빵집의 위치가 고까워서라도 자제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 백 미터의 오르막길과 횡단보도를 건넌 후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그렇다. 정말 빵집이 거기 있었다면, 나의 자유수영은 자유수영이 아닌 빵을 먹기 위한 단기속성 프로젝트가 되었겠지.




거길 온 힘을 다해 걷고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내가 수영에 바란 게 뭐였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힘들다는 뜻이다. 왜 오려고 했더라? 남들이 테니스랑 골프 배우러 다니니까 다른 걸 좀 해 보고 싶었나? 뭐,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이런 식은 아니었어. 수영은 통수를 치는 활동이었다.


몰랐다. 할 때는 안 힘들다. 하고 나서가 힘들다. 사실 하면서도 힘든가? 분명 주문한 수영복을 집에서 입고 거울을 봤을 땐 괜찮았다. 내가 미스코리아도 아니고 그걸 입고 괜찮아 보여야 할 이유는 사실 없지만 좀 그럴 수 있잖아? 아무튼 괜찮았다. 안 괜찮을 걸 알았지만 괜찮았다. 그리고 그러려고 입는 옷도 아니라구. 그래서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몸에 대하여 모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첫 날, 풀장 내 벽에 커다랗게 붙은 유의사항의 마지막 줄. 아주 인상 깊었다. 어릴 때 다녔던 곳에는 저런 문구는 없었다. 그러게. 안 해야지. 사실상 속옷이나 다름없는 걸 입고 생판 남들과 모인 곳 아닌가.


어린 나는 왜 사람들이 브라와 팬티보다 비키니를 덜 민망해하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똑같은 것처럼 보였거든. 여하간, 사람들은 집에서도 그렇게는 안 입고 있을 법한 옷으로 몸을 가리고, 머리는 죄다 쓸어넘겨 고무쪼가리로 덮고 웃긴 안경을 얼굴에 딱 붙인 채 물 안팎에서 푹 젖어서 돌아다녔다. 그런 말을 당연히 안 해야 할만 했다. 왜긴, 안 멋지잖아. 잡티를 가릴 화장도, 다리가 길어 보이는 바지와 신발도, 군살을 가릴 천쪼가리도, 여백과 돌출을 덮을 헤어스타일도 없으니까.






새삼 신선했다. 다른 사람의 몸에 대한 말? 당연히 안 해야지. 세상엔 정말 다양한 몸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대체 내가 그간 보아 온 몸들은, 내 머릿속에 있는 몸들은 대체 어떤 몸들이었던가. 어떤 점은 살리고 어떤 점은 감추고 어떤 점은 극대화시킨 그런 옷을 걸친 몸들?

그렇군. 그런 거였군. 풀장에서 내내 남의 몸만 쳐다보려 한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2미터쯤 앞에 개구리헤엄을 치며 가는 앞 사람의 몸을 어떻게 안 봐, 레일의 끝에서, 괜히 몸을 찹쌀도넛처럼 말아 물속에서 둥그렇게 잠수할 때 보이는 저편과 이편의 희부연 몸들을 어떻게 안 보냐고.




나는 달리기를 하며 내 몸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화장을 지운 얼굴, 필요하다면 선크림에 눈썹 정도. 무릎 위 저편까지 오는 하의, 속옷이나 다름없는 상의, 한 겹짜리 낙낙한 민소매, 거기다 운동화. 변주를 주려 해도 줄 수가 없는 옷차림. 어찌되었든 한 번 달리고 오면 붓기 비슷한 것들이 다 빠져 있는 것 같은 기분.


땀을 잔뜩 흘리며 벌게진 얼굴로 엉망이 되어서 바깥에 돌아다니는 건 생각보다 별 게 아니며,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해방감이 좋았다. 수영도 뭐 다르겠어 생각했다. 그런 효과를 기대했던 것 같다. 나 자신이 생겨먹은 것보다 다른 것에 집중하게 되는 거.




그렇게 수영복과 물안경과 수영모자를 샀다. 멀쩡한 머리와 얼굴로 수영복을 입고 서서는 나쁘지 않은데, 생각했다. 모자에 안경까지 쓰고서는? 나쁘다고 생각했다. 진짜 웃겼다. 이러고 다녔구나, 어릴 땐. 웃겨서 좋았다. 그렇게 서너 번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수영은 러닝만큼의 즉각적인 보상을 주지 않았다. 기분이 고양되지도 않았고 원하는 만큼 앞으로 쭉쭉 나아갈 수도 없었다. 그러다 진이 다 빠진 채로 잔뜩 젖은 채 낑낑거리며 수영복을 벗고 나서 마주한 샤워실의 거울, 탈의실 내의 전신거울. 갑자기, 정말 세상 어디에서 보던 것보다 더 짧고 뚱뚱해 보이는 몸. 아. 주기적으로, '못생기고 살쪄서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외모강박의 재시작인가, 정녕.


거울이야 정말 하루에 어떤 식으로든 백 번은 더 볼 텐데. 생각해 보니 그건 멀쩡한 몰골들이었다. 머리 모양, 그래도 챙길 건 다 챙긴 화장. 나름 체형에 맞춘다고 한 옷들.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완벽하게 '세팅된' 모습이었던 거지.






아,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나는 이렇게 생긴 사람이었구나. 얼굴에 바른 걸 다 지워내고 보는 샤워실 거울 안의 내 얼굴. 눈썹과 눈가가 허전해지고 입술은 허연 이목구비. 진짜 직면은 그런 거였다. 집 욕실의 샤워부스 안에는 거울은 없었다. 맨날 보던 얼굴인데 여기서 보니 달랐다. 흠, 내가 이렇게나 밍밍하게 생겼던가? 그렇군. 살이 좀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 몸에 장점이 뭐가 있더라?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다이소, 올리브영, 병동, 집 책장 옆, 영화관 등등 온갖 곳의 전신거울들.


나는 이러저러한게 강점이라 그런 옷을 입는다고 생각했다. 대찬 착각이었다. 별 거 없군. 정말 없어. 그냥 생긴 대로 살자. 뭘 기대하지 말고. 내가 뭘 기대했더라?

몰라. 아무튼 그런 건 없어. 이게 니 몸과 얼굴이야, 라고 그 거울들 속의 내가 말했다.




조금 충격적이었지만 별 수 없었다. 간사한 말로, 나만 그런 게 아니었으므로. 사람의 몸은 통상의 미적인 기준에서 어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당연했다. 사실 장단점이라는 표현도 그래. 그런 것에 잔뜩 길들여진 내 눈이 원망스러울 정도.

기준보다 몸이 먼저였다구, 태초터. 각양각색으로 생겨먹은 신체들이 났고, 그들이 모여든 후에 소수에게나 적용될 어떤 기준이 생긴 거잖아?러다 그걸 추앙하게 된 거라고.


걷기 레일에 둥둥 뜬 수많은 할머니들, 탈의실에서는 절뚝대는 그 사람들. 그런 걸 쫓아 아쉬워만 하고 있다가, 언젠간 그냥 멀쩡히 걷고 돌아다니는 것조차 감사해야 하는 날이 오는 거였다. 몸은 그냥 몸이어야 했다. 어떤 형태여야 하는 다른 대상이 아니라. 좋게 표현하자면 현실을 본 거고, 나쁘게 표현하면 자포자기다.


아무튼 나쁘지는 않아야 했다. 내 몸은 내가 나름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던 그 언젠가나 지금이나 똑같았을 것이므로. 정말이잖아? 사실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고.






하지만 나빴다. 불행히도 나는 그런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인 주제에, 그 안 훌륭한 그 몸의 기능은 형편없기까지 했으니까. 수영은 정말 기운이 빠지는 활동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물론 뭐 엄청난 열량을 소모하는 전신운동.. 이라고는 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빡세게 할 줄도 몰랐는걸. 하고 싶어도 못 했다.


뭐가 맘대로 움직여야 그렇게 하지. 하지만 힘들었다. 탈의실에서 머리를 말리고 할머니와 애들과 아주머니들과 열 명 중에 두 명은 될까 싶은 또래 틈에서 그 그득그득한 머리카락들과 물기를 밟으며 옷을 갈아입고서 바깥으로 나오면, 진짜 운동은 이제야 시작인 기분이 들었다. 저편에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멈춰 있어도 이때다 하고 뛸 수가 없었다.




이럴 거면 달리기는 왜 했고 밥은 왜 먹었나. 심지어 그 수영, 온 힘을 다해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아니, 그러니까 하긴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물속에서 나는 '그 정도'의 힘을 40분 내내 낼 수 있는 사람이 못 됐다. 정말이다. 못 한다. 거기다 수영장에서 본 내 몸은 미관상으로도 그리 훌륭하지 않았는걸? 그렇지, 사람 몸이 꼭 그럴 필요가 있나, 흠.


아니. 그 전에 너 뭐 했어? 뭘 위해서 뭘 했는데? PT라도 받았니? 그건 아니지. 맞아. 근데 뭘 실망해. 그리고는 정말 오랜만에 과자나 잔뜩 사서 들어가고 싶은 기분.




그렇게 기분은 기분으로 그치지 않았고 나는 근 일 년간 가장 성대한 과자파티를 혼자 벌였다. 웃긴 점은 딱히 후회도 안 됐다는 것이다. 맛있던데. 미니꿀호떡, 구운감자, 쫄병스낵, 무슨 패스트리 과자, 칸츄리콘까지. 뭐, 짜서 이제 못 먹겠어? 나는 그랬던, 그러니까 그렇게 착각함으로써 과자와 멀어지고 싶던 스스로를 시원하게 비웃었다.






달리기처럼 하고 나면 즉각적인 즐거움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하고 나서는 맘에 안 드는 점만 보이는 내 몸을 내내 잊으려 노력하며 옷을 갈아입고 바깥으로 나와야 했다. 나오면? 왜 그 정도인데 힘들지, 하는 생각과 싸우며 식욕도 눌러야 했다. 거기다 플러스 1 해서. 다리도 미친 듯이 아팠다. 마치 러닝을 3일 연속으로 한 후에 종아리 스트레칭은 한 번도 안 한 것처럼. 아니, 왜? 물에서는 하나도 안 아팠단 말이야. 하나도는 아니었지만 하여간 수영과 통증이라는 단어는 함께 할 수가 없는 거였다.


그러나 그 한 시간을 물속에 좀 있었다고, 몸은 그새 육지를 잔뜩 거부했다. 이래서야, 안데르센은 수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인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인어 꼬리를 다리로 바꾸는 으로 목소리를 는 스토리를 만들지.

목소리? 겨우 목소리? 내가 에리얼이었다면 그런 거래는 안 한다. 물에서 그렇게 살 수 있는데 그걸 내준다고? 참나. 거꾸로인가? 거꾸로든 아니든 디버프라고. 마이너스야, 그냥.






오늘로 자유수영을 여섯 번째로 끊었다. 나는 이런 데이터를 쌓고 싶지 않았다. 허옇게 축축히 젖어 적나라한 내 몸과 이목구비에 대해서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았고, 내 몸이 물 속에서 얼마나 무용지물인지도, 그걸 물에 조금 담가놓은 후에 밟는 아스팔트가 얼마나 딱딱한지는 더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시원찮은 활동을 한 후 꼴에 잔뜩 배고파하는 컨디션에 대해서도 더더욱 알고 싶지 않았다.


이러고서 살이 찐다면, 수영가방이고 수영복이고 다 갖다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을 하며 수영장으로 가는 버스에 앉아 있는데.. 당연히 뭔가 좀 잘못됐다고 느꼈다. 흠. 그래서 알았다. 아. 이건 넘어야 할 산이구나. 만약 이렇게 수영장에 계속 올 거라면.




솔직한 말로? 수많은 그 몸들과, 남의 몸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문장을 보고서는 나는, 드디어 운동으로 말미암아 내 몸을 더 진실되게 바라보고, 이 몸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이상적인 바디포지티브-의 삶이 시작될 줄 알았다. 러닝보다 더 적나라하게 주어진 신체상을 마주하는 시간. 튼살, 처진 살, 셀룰라이트, 잡티, 잡티보다 더한 잡티, 튀어나온 근육, 털, 수술자국, 흉터, 또 흉터. 원래 사람 몸은 좀 이런 거구나. 다들 이렇구나, 할 수 있었으니까.


근데 오산이었네? 스트레이트 체형. 웨이브 체형. 내추럴 체형. 아, 나는 허리가 어떻고 다리가 어떻고, 그러니까 이걸 이렇게.. 다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몸은 몸인데. 애초에 그런 외부의 잣대에만 너무 길들여져 있던 내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 수영복에 그런 체형이 어딨어. 수영장에서 인증샷 찍는 사람 봤어? 없어.




러닝 붐은 있을지 몰라도 수영 붐은 절대 없다. 있어도 그런 식은 아닐 것이다. 그 웃긴 모양새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백 명 중 남녀 통틀어 세 명 정도도 안 될 테니까.

수영장에서의 수영은 절대 포토제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 내 삶이 언제는 그랬던가? 맞아. 아니지. 인스타는 잠깐 하다가 때려치운지 오래였고 애초에 나는 사진을 자주 찍는 사람도 아니었다.


러닝과 공존하는 법을 몸으로 익히고 있는 것처럼 수영도 그래야 할 것 같다. 난 이런 게 따라올 줄 몰랐지. 하지만 싫지는 않다. 아니, 사실 싫다.

너무 싫다. 피곤하고, 힘들고, 피곤하고, 졸리고, 엄청나게 먹게 되는 것 같서. 하지만 당장은, 이게 이 활동에 따라오는 부차적인 거라면, 받아들여야지. 피로, 식욕, 통증. 그렇다고 안 할 거냐고. 안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재밌으니까.




데이, 이브닝, 나이트. 전화벨과 애 우는 소리와 또 전화벨과 호출벨 소리 속에서 뛰고, 인계를 주고, 화를 참고, 짜증을 씹을 때, 그 적당히 찬 물이 온몸을 누르는 기분 좋은 감각이 떠올랐거든. 어떻게 그만 가. 나는 그만 갈 수 없다.

그러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이런 내 몸과 내 몸의 기능을.






근데 정말 너무 피곤하고 너무 오래오래 기운이 없다.


아, 달리기도 아니고 수영이 이럴 줄은 진짜 몰랐다. 멀고도 험난한 포지티브의 길이여. 수영과 러닝은 과연 장애물일 것인가, 동반자 그 자체가 될 것인가. 무엇에? 바디, 라이프?

둘 다. 둘은 양립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야 하잖아.


어떤 것들은 사람을 정말 한없이 겸손하게 만든다. 수영은 특히 더 그렇다. 아무 치장도 꼼수도 쓸 수 없는 맨몸승부. 이건 정말 신체로 하는 게임 같거든. 필요한 과정이다. 뭐, 당장 지금 그냥 수영장에 발길을 끊어버린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안 오리라는 확신은 없는걸.




아니야. 그냥 1년만 하고 평생 때려치운다고 생각할까?

그게 나을지도 몰라.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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