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discharge

by 이븐도






삼청동으로 가는 길 초입, 노부부가 뽀뽀하고 있는 그 벽화 앞에 노엘 갤러거가 지나갔다. 아마 올세인츠 것일 가죽자켓을 입고서. 선글라스를 낀 상태로. 그런데 내가 봤을 땐 벗고 있었다. 한여름이었다. 햇빛이 그랬다. 그 길거리에서 시커먼 외투를 입은 뚱한 표정의 외국인을 보고 걸음을 멈춘 건 나뿐이었다. 다가가 말을 걸었다. 뭐라고 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휴대폰을 건넸던 것 같기도 하고.


그는 내 휴대폰 꽁지에서 펜을 빼낸 후 화면에 사인은 해주지 않고 물었다. 넌 왜 공연에 안 왔니? 나는 표를 못 구했다고 대답했다. 저런, 너 같은 애가 와야 하는데, 했다. 저요? 아하하. 그리고 나는 그 때 알았다. 내가 뭔데 이런 말에 대답을? 꿈이구나. 그리고 정말 꿈이었다.





승영언니와 나는 부산 영화제 스케줄에 참석한 한 멤버를 따라, 어딘가의 에어비앤비 거실 바닥에 냄비를 깔아놓고 진라면 순한맛을 끓여 먹었다. 무슨 얘기들을 했다. 언니는 자러 들어가겠다고 했다. 나는 조금 더 있다가 잔다고 했다. 뭘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냥 베란다를 쳐다보면서 멍을 때렸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뒤의 현관문으로 다른 멤버가 들어왔다. 잔뜩 말라서 볼이 다 패였는데 눈은 엄청 커서 장승같이 매서운 인상이었다. 무척이나 피곤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오빠, 힘든 티 좀 작작 내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쓱 보더니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방의 승영언니 옆에 가서 벽을 보고 누웠다. 나는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하고 꿈에서도 놀랐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정작 현실에서 영화제에 참석한 멤버가 아닌 그 멤버가 영화제 레드카펫에 등장했다. 엄청나게 낡아빠진, 색이 다 죽은 패딩과 그만큼이나 빛바랜 야구모자를 정장 위에 눌러쓰고. 그 전날보다 더 초췌한 모습이었다. 엥,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 그런데, 여기서까지 그러는구나. 하고서 꿈이 끝났다.


일어나자마자 생각했다. 어디서 그런 말을. 감히. 거기다, 오빠? 미쳤나, 진짜.

개꿈이었다. 강렬했던 대상들은 다 그런 식으로 꿈에 나왔다. 이상한 방식으로, 더 이상한 식으로.





휴일 같은 날이었다. 실제로 휴일이었기도 했다. 꼴보기 싫었던 주치의도 떠났고 그 친구도 떠났다. 퇴원했다. 정말로. 장장 600일 가량의 재원기간, 그 진짜진짜 종지부. 나는 한 시간 반을 잤다. 알고 있었다. 그 친구가 퇴원하는 날이라는 걸. 꿈에 희부연 살덩이가 나와 병원 침대 난간에서 내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아닌가, 내가 세게 붙들어야 했는데 닿지 않았던 건가. 그 살덩이는 그 친구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병실에서 나던 냄새와 그 꿈 속에서의 냄새가 같았다.


그게 꿈이라는 건, 내가 욕을 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씨발, 놓으라고. 정말 절박한 마음이었다. 아니, 잡아. 였나? 기억이 안 난다. 그 소리를 뱉고 보니 발치에서 돌아가던 서큘레이터 소리가 섞여서 들렸다. 꿈이구나. 그런데 깰 수 없었다. 자야 하니까. 이미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한 게 새벽 세 시였다. 다섯 시에는 깨야 하는데, 눈을 떴다가는 정말 한 시간도 못 자고 출근해야 했다. 그럼 안 되잖아. 퇴원은 정말 그 누군가를 태운 차와 구급차가 병원을 떠나 내가 퇴근할 때까지 다시 돌아오지 않아야 퇴원이었다.



아침에 시행한 검사 결과, 간밤의 경련, 대발작, 발열. 어쩌면 지금 저편의 병원에서 진행 중일 그 증상이라면 오늘은 집에 가는 날이 아니라, 그냥 또 똑같이 바쁜 날일 테니까. 퇴원이 취소되면? 할 일은 더 많겠지. 취소된 이유에 따라 할 일들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24년 초. 내가 하이라이트에 입덕하기도 훨씬 전. 자취를 할 집을 찾고 있었을 때. 그러니까 이 많은 것들이 시작조차 되기 전, 걔가 그냥 '오른쪽에 힘이 안 들어가' 라는 말을 믿을 수 없게도 할 수 있던 때. 그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장정이라면 대장정. 끝나지 않을 그 여정.






담당 교수와 주치의는 마지막으로 보호자에게 하는 인사 같은 회진을 돌았다. 주치의는 나에게 '고생하셨어용' 했다. 그 느물거리는 얼굴이 너무 싫었다. 집으로 가면, 동생들은 누나의 또다른 모습을 보겠구나 생각했다. 보는 게 아니라 이제는 그런 누나와 함께 사는 거지.

엄마 울더라. 왜요? 집에 간대서? 아니. 내가 고생하셨다고 했거든. 고맙다면서 울던데. 아, 선생님 대단하시네요. 저는 곧 죽어도 그 말 안 나오던데. 왜, 엄마아빠가 제일 힘들었지. 그건 맞는데, 힘든 건 본인들 사정이죠. 불쌍하잖아. 불쌍한 애가 한둘이예요? 너 많이 힘들었구나? 글쎄요, 그랬나.


연초에, 아마 올해는 아니었으니 작년이겠지. 목사에 교회 사람들을 계속 데리고 와서 찬송가를 부른다고 했다. 기괴한 광경일 게 뻔했다. 일회성이었는지 그들은 다시 방문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비슷했다. 기도문, CCM 영상. 기도. 시간이 지나자 그냥 그게 잔혹동화 같았다. 기괴한 건 맞지만 악한 건 아닌. 그저 낯설 뿐이지 나쁜 건 아닌.

믿음, 무슨 믿음?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 지향점이라도, 구심점이라도 없다면 그들이 그 친구를 그렇게 돌보기는 정말 불가능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이나 그런 치료와 보전은 진전이 없어 보였으니까. 밑 빠진 것에 노력과 마음을 다 붓는 건데. 저 멀리 서서 남의 일에 말을 얹는 건 참 쉬운 일이었다. 다가서면 판단은 흐려졌다.


나는 그들이 버거웠고 어려웠고 마음이 많이 쓰였다. 그랬던 것 같다. 아무 효용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그랬다. 기독교, 불수가 된 애, 악취, 비가역적인 손상. 하나만 있어도 마음이 쏠리기 쉬운 것들이 고루고루 있었다. 거기에, 날 때부터 그랬다는 게 아니라는 것까지 추가.





퇴원이 많고 주치의들도 다 바뀌게 될 월초의 휴일. 휴가 같기도 했고 정말 그 이름 세 글자 옆에 퇴원 표시가 떠 있는 게 믿기지가 않아 악몽 같기도 했다. 악몽이 뭐 다 어둡고 끔찍하고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꿈은 안 끝났다. 아빠는 휴대폰 어플로 그 날 나간 검사 결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그건 거기서 볼 수 없는 항목이었다. 돌아오지도 않을 호의였다. 제가 결과 보고되면 전산에 올라가 있는 보호자분 연락처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는 웃었다. 그리고는 몇 분이 지나 왜 이렇게 퇴원 진행이 늦냐고 몇 번을 항의했다. 병원에 처박혀 있던 일수에 비해 아마추어 같은 행동이었다. 이해했다. 그런 어설픈 모습. 퇴원은 그들에게 처음이니까.


속으로만 인사했다. 잘가, 다시 보자. 다시 올 테니까. 올해가 넘어가기 전에 다시 입원할 거라고 예상한다. 그 땐 내가 이 부서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항상 병실에 있던 그 몸이 복도로 나와 엘리베이터로 영영 가는 걸 보는 게 이상했다. 다시 출근한 오늘, 당연히 그 아빠도, 엄마도, 애도 없었다. 남은 건 내가 캐비닛 거울에 붙여 놓은 그 환자번호와 보호자들의 연락처를 베껴 놓은 메모뿐.






악몽과 개꿈의 차이가 뭘까.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꿈은 꿈이다. 악몽은 일회성이다. 같은 내용의 꿈이라면 어차피 더 무섭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개꿈인가? 그럴지도. 다시 온다면 악몽일까. 아니지. 한 번 거쳤으니 악몽은 아닐 것이다. 그 다음날, 다다음날에 눈을 떠서도 생각이 나면 악몽일까. 그렇다면 악몽일지도. 그럼 악몽 하지, 뭐. 그러다가 다 잊힐 테니까. 반복되다가도 결국 흐려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