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그 미니스커트?
대학생 때 친구와 기숙사에 살던 시절의 사진 중, 보자마자 어이가 없어 웃었던 게 있다. 딱 붙는 까만 미니스커트 사진. 정확히 말하면 내가 방 벽에 그걸 걸어놓은 사진이었다.
동료가 하나 있다. 그녀는 나와 많이 다르다.
자취방에서 라면을 끓인 지 반 년은 됐다. 그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먹었다. 오피스텔이 복층이라 냄새가 잘 안 빠지는데 라면은 그 정도가 심했다. 요샌 잘 안 먹어, 너네 집은 구조 때문에 괜찮겠다. 환기시키면. 근데 그래도 좀 나지 않아?던 나에게 그녀는, 그럼 그냥 냄새랑 같이 살지, 라고 했다.
나이트 때 할 일을 끝내고도 시간이 남으면 그녀는 아빠다리를 한 채 의자에 앉아 턱을 쭉 빼고, 모니터 속으로 들어갈 것 같은 자세로 앉아 신당동 맛집, 문래동 맛집, 3월 전시회, 같은 걸 검색한다.
퇴근하는 길에는 진지하게 말한다. 혼자 가야 되니까 주먹밥에 납작만두까지 시키게 그냥 여길 가는 게 나을 것 같긴 한데, 그 동네는 그 즉석떡볶이가 맛있단 말이지. 근데 즉떡은 볶음밥이 포인트인데 그것까지 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 언닌 오후에 온댔단 말이야. 흠, 이라고.
나는 일단 나이트가 끝난 후 구태여 일찍 거기까지 간다는 것도, 그걸 그렇게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도 깊이 이해가 가지는 않아서 반농담으로 말한다. 굶고 가, 다 맛있어. 그러면 그녀는 질린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어 다시 고민을 시작한다.
그녀는 호기롭게 '스위치 온' 다이어트를 시작했으나 안 맞는 프로틴에 피부가 뒤집혀 중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아마 내가 겨울에만 입는 옷들이 그녀의 일 년치 옷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여름 내내 샌들을 살지 말지 고민했으나 결국 그녀는 예상대로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샌들을 사지 않았다. 물욕이랄 게 전혀 없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녀의 남동생은 화장품 냉장고를 들고 다니며, 강남의 병원에 몇 차례의 시술 또는 성형 상담을 받으러 다녔다는 점이다. 이런저런 일화로 미루어 보아 좋게 말하면 섬세하고 나쁘게 말하면 민감한 성향인 것 같았다.
한 번은, 이브닝 끝나고 카톡이 왔다길래, 어. 가서 같이 맛있는 거 먹겠네? 했더니, 아니. 걔는 나랑 밥 안 먹어. 혼자 닭가슴살이랑 잡곡밥 먹는데? 라고 했다. 강박이 좀 있더라. 무게도 재서 계산해. 아, 그래애? 대단하네.
남매가 정반대인 셈이었다. 사람들을 체중감량을 원하는 쪽과 그 반대로 나눈다면 나는 늘 그녀의 동생 쪽이었다. 언제나 짧고 붙는 옷을 갈망했다.
말라야만, 더 살이 빠져야만 입을 수 있는 옷이라고 생각했다. 와중에 나는 내 몸을 좀 싫어했다. 항상 선망에 젖어 다이어트를 했고, 안 되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데 시간을 썼다.
아니, 그냥, 마른 걸 선망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건가. 여하간 많았다. 그런 옷들이. 이 몸무게가 되면 이렇게 입어야지, 이만큼 빼면 이걸 입어야지, 하는 생각을 많이도 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와 적지 않은 시간을 살다 보니 알게 됐다. 나는 더 이상 살을 빼기 쉽지 않을 거라는 걸.
근무 패턴과 식습관과 감정 상태 등등을 고려할 때 이 정도가 최선 같았다. 생긴 대로 살자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갈망도 아쉬움도 예전만큼 깊지는 않다.
그녀도 다이어트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나처럼 구구절절한 개인사나 이유는 없다. 그 프로틴들 어쨌어, 당근했어?
몰라. 동생이 먹은듯? 언니. 고등어 같이 안 살래? 뭔 고등어. 냄새 나. 아냐, 팩에 든 거라 안 나. 안 나긴, 다 나. 근데 진짜 맛있어. 나 오늘도 밥 두 그릇 먹었는데. 진짜진짜 맛있어. 왕맛있는데. 야들야들하고 고소해.
수영하고 그것도 차려 먹고 온 거야? 차릴 거 없엉. 그냥 데우면 돼. 진짜 같이 안 살래?
못 보던, 솔직히 말하면 또래 20대 여자들이 많이 들고 다니는 모양새였지만 평소 그녀의 스타일이나 소비 습관을 미루어 보아 조금 생뚱맞아 보이는 가방이었다. 어, 샀어? 언제 샀어? 동생이 그 거지같은 것 좀 제발 버리고 이거 쓰라고 사줬어. 아, 그래.
비슷한 일로 오, 이런 것도 샀어, 예쁘다, 했더니 아. 동생 거야, 라고 답했다. 아니나 다를까, 서류와 물건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너 큰 가방 없어서 걔 꺼 가져온 거지, 했더니. 어떻게 알았어, 한다.
나는 수십 켤레의 신발과 옷과 가방과 함께 생존한다. 쓸 만한 게 있으면 색깔별로 샀다. 키링에는 백 만원이 넘는 돈을 썼을 것이다. 아직도 몇 개의 짧은 하의들을 버리지 않았다. 살이 쪘는지 안 쪘는지 확인하는, 체중계보다는 덜 잔인하지만 그래도 현실 자각에 비슷한 도움을 주는 수단이라서.
그녀의 세계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세계, 라는 구태의연히 감상적인 표현이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가방은 그냥 큰 주머니였고, 신발은 맨발과 땅 사이를 잇는 도구였으며, 몸은 수영할 때나 쓰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신체 그 자체였다. 이 모든, 내 관점에서의 서술이 틀린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녀는 그런 것에 어떤 의미도 두지 않았다. 그렇게 잘 살아갔다.
잡생각이 많고 현실감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 나와 달리 그녀는 '현생' 그 자체의 인생을 살았다. 특정 연차가 되기 전에 이수해야 하는 교육과 치러야 하는 모든 시험을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모든 신규 중에 가장 빨리 이수했고, 미국 간호사 자격증도 병원을 다니며 진작에 땄으며, 병동 사람들에게도 귀여움을 받았다.
위아래 사람에게 다른 모습을 보이며 만들어낸 가식이 아니었다. 앞뒤가 똑같아 불편함 없이 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뭘 추구한답시고 주변에 피곤하게 구는 일도 없었다.
그녀는 매번이 눈물바람이던 나와 달리 환아가 하늘나라로 가도 울지는 않았다. 할 일을 잘 했다. 그리고 상당히 그녀 선에서는 한껏 친절했고, 애들을 잘 놀아줬다. 괴물 소리 같은 걸 내면서 잘 달랬고, 딱히 그 정도로 귀여운지 모르겠어, 라고 하면서도 잘도 귀여워했다.
나라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 뒤돌아서 한껏 숨을 골라야 하는 일이 닥쳐도 화를 내지 않았다. 넌 화가 안 나냐, 그게? 했더니. 짜증 나쥐, 라고 했다. 그게 다야? 라고 하면 빡치쥐, 라고 한다. 잔뜩 열이 올라 있던 나는 김이 좀 샌다.
나는 그녀를 많이 좋아한다. 그녀도 나를 좋아한다. 기숙사 만료 기간이 다가와 향후 거취에 대해 한창 이야기를 했던 시기에, 그녀는 몇 차례 나에게 같이 살 생각이 있는지 물었으나 나는 당시에 그 누구와도 같이 살 생각이 없었다.
나는 부엌 의자가 제대로 식탁에 들어가 있지 않고, 그 위에 음식 얼룩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굉장히 짜증이 나는 사람이었다. 일단 거슬려서 한 번, 공용 공간을 이런 식으로 대한다는 생각에 두 번.
병원 로고에 더해 2019. 라는 숫자가 찍힌 떡을 비롯한, 그 전 입주자들이 알면서도 치우지 않고 떠난 모든 음식물들을 다 혼자서 비워 낑낑대며 버렸다. 소독티슈로 냉장실과 냉동실을 다 닦으며 다시는 어떤 방식으로도 공동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었다. 나는 그런 공간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재확인한 것이다. 나는 누군가와 살 수 없다는 걸. 그녀의 많은 것을 참 좋아했으나 생활 습관이나 패턴과도 공존할 자신은 없었다. 우리는 각자 기숙사에 살았지만 서로의 성향은 잘 알았다. 모르기가 더 힘들지.
그녀는 기숙사 지원 기간이 끝나자마자 거기서 멀리멀리 떨어져 나온 나와 달리, 병원 지척의 아파트를 계약했다. 라면뿐만 아니라 된장찌개도 끓이고 수육도 하고 김치찜도 해 먹는다. 싸놓은 김밥 사진을 나들이 가자며 단톡에 올린다.
나는 나와 다르게 예민하지 않은 그녀가 상당히 좋다. 신기하기도 하고, 자주 궁금하고 보고 싶다. 가끔 아닌 것 같은 순간도 있지만 그런 것을 다 상회하고 남을 정도로 나는 그녀의 많은 것들이 좋다. 그녀처럼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좋다. 이상한 일이다. 이런 방식의 동경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녀가 스트레스를 아예 안 받는 건 아니다. 그녀는 화를 내지 않는 대신 입술을 이로 물어뜯거나 손으로 뜯는다. 그녀가 그럴 때 나는 입가로 간 그녀의 손을 잡아 다시 원위치 비슷한 곳으로 자주 돌려놓는다. 보는 내가 다 아프니까.
우리는 인계를 주거나 받을 때 굳이 한 의자에 구겨져서 낑긴 채로 내용을 알리고 교대를 한다. 몸을 잔뜩 붙이고선, 야. 그 립밤 좋은데, 지금 세일 해, 했더니 계속 잃어버려서 안 살 거야, 한다. 안 아프냐? 아니 괜찮앙. 그리고 룰루, 하면서 카트를 끌고 나갈 준비를 했다.
열등감도 우위 의식도 없었고 못되게 구는 순간도 당연히 없었다. 그녀와 있을 때는 이물감이 없었다. 딱히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불만도 안 생겼다. 그러다 떠나고 나면 느꼈다. 아, 나도 저렇게 지내고 싶다. 흠, 하고서. 잔뜩 힘을 뺀 채 살면서도 챙길 것을 성실히 챙기는 그녀가 참 신기했고 지금도 그랬다. 너무 다르면 부럽다는 생각도 안 들기 마련인데, 그녀는 내게 그런 존재다.
그녀는 그 짧은 옷들을 입은.. 한 3킬로그램쯤 더 빠진 나 자신 같은 존재다. 언제나 바라보겠지만 닿을 것 같지 않고 도달 못 할 대상. 이걸 뭐라 딱 짚어 말하지?
뭐, 그렇다. 기질 자체가 다르게 난 인간 같아서 사실 그녀처럼 되도록 탈피할 일은 없겠으나, 어쨌거나 한 번씩 들여다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대상이자 존재. 공존하기에 감사한 사람. 어떻게 돌고돌아 직장에서 만나 반가운 또래.
그녀는 요새 강아지 산책 알바를 찾는다. 부업이야? 했더니, 우리 잼잼이 보고 싶어서, 했다. 잼잼이는 그녀 본가의 겁나게 커다란 푸들이다. 털이 북슬한 작은 염소만하다. 덩치 탓에 몇 년째 근황을 듣고 사진을 보지만 그 귀여운 이름은 다 잊고 항상 묻는다. 이름이 뭐였지? 망치? 뚱이? 고의는 아니다, 절대.
하여간, 언젠가는 그녀도 떠날 것이다. 여긴 일터니까.
노는 날에는 카우치 포테이토가 되어 그녀의 강아지, 아니 개와 늘어져 있을 .. 미국으로? 호주로?
하아. 가지 마. 나 놔두고 가지 마. 나랑 놀아.
하지만 화이팅이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