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가 끝난 후 하는 생각

비가 오는 날에

by 이븐도





빵집이 문을 열었다. 월요일에 쉬는 빵집이다.

교대근무의 좋은 점은 세상을 거꾸로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는 거. 가끔 여기도 서 보고 저기도 서 보면 조금 입체적으로 뭔가를 볼 수 있잖아. 아닌가?


아니면 말고, 지금은 그렇다.

그래서 배가 부르다. 토요일 열 시, 사람 머리만한 빵이 내 뱃속에 들어찼기 때문이다.






여섯 시 반. 어디에든 머리를 박고 잘 수 있었다. 채혈하게 나오라고 한 애는 영원히 나오지 않았다. 십 분을 기다렸으나 안 나왔다. 짐짓 화가 난 척 허리에 손을 얹고 병실로 들어갔다. 바쁜 척. 심각한 척. 근데 척 아니야. 나 집에 가야 해. 퇴근 좀 하자. 너 이거 하고 나 다른 거 또 있다구.


한참 아침이 찾아온 처치실에 앉아 병원 뒷산 나무들에 흐른 햇빛을 쳐다봤다. 구름이 천천히 지나갔다. 하늘이 옅게 파랬다. 오늘도 날씨가 좋겠구나. 오늘은 뭐 할까. 내일은 일찍 자야 하니까 오늘은 재밌게 보내야 하는데. 자지 말고 바로 영화나 보러 갈까? 가서 졸 것 같은데. 그러게.




다섯 시가 바로 넘었을 땐가, 하늘이 예뻤다. 하늘색 하늘에 핑크색 구름이 갔다. 새벽이 채 가시지 않아 병원 전경과 그 옆의 가로등과 멈춰 선 버스들이 그 환한 분홍빛과 함께 반짝였다. 안온한 빛이 가득했다. 사진을 찍고 싶었다. 할 일이 많아 못 찍었다. 못 찍은 대신 그걸 봤다고 글로 남긴다. 그럼 된 건가? 된 거야. 그리고 그 하늘은 몇 분 후 보라색이 되었다. 아. 지금인데, 생각했을 때 이미 하늘은 다 파래져 있었다.

그걸 보며 화장실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그 애를 기다렸다. 고개를 쳐든 것도 꺾은 것도 아닌 이상한 자세로.




비가 오는 날에, 는 정말 도처에서 잔뜩 들리는 노래였다. 좋은 줄 몰랐다. 너무 구슬펐고, 가사가 너무 진했고, 아무튼 쓸데없이 다 농도가 짙었다. 그런데 콘서트장에서 편곡된 버전들은 달랐다. 오늘은, 비는커녕 흐린 구름 하나 없는 맑은 여름날이다. 딱 일 년 전에 노엘 갤러거 콘서트 갔는데. 어, 그 때는 진짜 비가 오는 날이었다. 비가 와서 더 힘들었다.


오늘은 비가 안 올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끝내주는 달리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맑은 하늘이 발갛게 물드는 걸 보면서, 비가 오는 날에를 들으면서.






어제도 오늘도 퇴근은 무지막지하게 늦었다. 서서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신력은 힘이 약하다. 의식이 흐려지는 기분. 무뎌지는 사태의 심각성. 아니면 그냥 어떤 자극이든 반복되면 당연한 건가. 생각이 넘실거렸다. 입체적인 삶이다. 모두가 잠든 채 커튼을 친 어두운 병실. 잠들지 않는 병세. 갖가지의 고장난 방식. 회복 불능의 영혼. 반파된 신체.


대체 심박수 300이 어떻게 찍힐 수 있는 걸까 생각했다. 한 사번 위 선임의 담당이 된 그 환자. 앰부를 짜는 동안 나는 할 게 없어서 그냥 모니터를 노려보면서 달달달달 떨리는 그 두 다리를 붙잡았다. 지진이 난다면 몸이 이렇게 떨릴까. 어차피 안 쓴지 오래되어서 다 흐물해졌을 것 같은 살과 뼈. 당연히 안 흐물해진 사지는 탄력적으로 떨렸다.




지진이 맞을지도 몰랐다. 분당 300번 뛰는 카운트면 일 초에 다섯 번 쿵쿵쿵쿵쿵인데. 역시 심장은 터지지 않는구나. 297, 296, 298을 오가던 숫자가 300에서 더는 올라가지 않았다. 300 이상은 집계가 안 되는 건가 아니면, 그냥 정말 심장이 피를 들이마시고 짜듯이 내보낸 게 300번이었던 걸까. 깔끔하게 떨어진 그 숫자가 신기했다.


동정 아닌 동정이었다. 잿빛 얼굴. 누런 피부. 슬리퍼.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 아픈, 너무 아픈 자식. 적선하는 기분이었다. 너무나 피곤해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하루는 잘 수 있을 것 같던 나는 집으로 와서 눈을 반쯤 뜨고 앉아 있다. 내가 가진 그 정도의 여유를 적선하는 느낌.

이전에 경련할 때면 온 간호사가 다 갔었다. 이제는 그조차도 반복이라 담당 혼자 간다. 중앙 모니터의 숫자가 심상치 않으니 몇 명쯤 주춤이며 따르긴 하지만, 어차피 혼자 간들 같이 간들 할 수 있는 것도, 교정되는 것도 빤하다. 화면을 쳐다보며 산소탱크를 최대로 틀고 뻑뻑 소리가 나게 풍선 같은 기구를 짜는 것. 언제까지? 돌아올 때까지.






누군가 목을 조른 것처럼 튀어나온 눈알. 할 수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있어. 라며 거드는 보호자. 못 알아들을 애. 피곤한 간호사. 모든 불행은 가짜였다. 이 불행 앞에서도 나는 피곤했고 집에 가고 싶었다. 때로는 감정이, 단지 유희를 위해 존재하는 건가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잡념이었다. 그럴 리가. 그래도, 일리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깔깔대며 웃어야 놀이야? 심각한 표정으로 읽는 추리소설도 유희다. 다수의 우울과 비탄은 유희였다.


그리고 이 광경, 월요일이 되면 내가 다시 담당이 되어 다른 온갖 일을 하다가도 달려와 이 앞에서 탄탄한 풍선을 목에 꽂고 숫자가 올라가길 기다리는 것. 그게 언제가, 몇 번이 되었건 반복해야 하는 것. 흔해진 과정. 낮아진 역치. 나는 귀찮았고, 그 애의 담당이 되는게 싫었다.




불행에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 나에게 감정은 유희였다. 아니면, 실핏줄 하나까지 이기적인 인간인 탓에 어쩔 도리가 없는 것. 나는 누굴 동정하고서 돈을 받는 게 아니잖아. 어떤 마음이든 상태가 호전된다면 내 몫은 다 한 거라고.


작년에, 지금과 똑같은 상태였을 때는 중환자실에서 내려오질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 불행이 더 이상 어떤 사건도 아니게 된 탓에 그 애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단지 그 부모와 가족을 빼고서. 나아지지 않는 상태, 지속적으로 흔들리는 바이탈, 그 때 그 때의 방책일 뿐인 진정제.






감정이 몸과 영혼을 집어삼키면 사람들은 정신과에 간다. 실체를 알아보기 힘든 것이 삶을 잠식할 때 사람들은 스스로의 끝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 불행에는 실체가 있었다. 그래서 두렵지 않았다. 다만 귀찮았고 피곤했다. 그 이상은 없었다. 어떤 방향으로든. 눈에 보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죽거나, 죽지 않거나. 떨어지거나, 오르거나. 그 방은 불행의 장이었다. 차라리 그 앞에서는 할 일이 명확했으나, 한 발짝 바깥에서는 더 거리를 두고 싶어지는 한계의 구역. 그래서 그 부모는 매번 침착했나. 그랬나보다. 피곤하고, 침착하고. 그리고 그만큼은 안 불행한 간호사와 의사들에게 따져 들고 반기를 들고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한계의 바깥에 밀쳐놓은 것을 그제야 입고 선다. 무엇도 두려울 것 없는 상태로.




저녁 여섯 시, 눈을 떴는데 갑자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그냥. 은 아닌가. 누군가 혈액검사의 종양표지자 수치가 올라가고 있는 거냐는 질문을 단톡에 했던 것이다. 그러게. 나는 언제 환자가 될까. 정말로. 교대근무, 발암물질. 괜한 연구결과는 아닐텐데. 그게 갑자기 두려워져서 빨리 일어나 씻고 출근준비를 했다. 언젠가 닥칠 거고 알 수 없다면 그냥 지금이라도 즐거워야 하잖아.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오지 않은 것이므로. 불행은 눈에 보인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아마 귀찮기만 할 것이다. 그 병실 안의 걔를 돌보는 것처럼. 선이 그어져 있어 얼마든지 방만할 수 있는 것이다. 두려워야 하는 것은 그런 거였다. 다 놓을 수밖에 없어 오히려 평안한 상태. 딸 앞에서의 그 보호자들처럼.




여름이 한창 가고 있다. 멍한 건지 아닌 건지도 모르겠는 의식. 뿌연 머릿속. 더울 때도 달리기, 비가 올 때도 달리기. 이제는 생각도 안 나는, 시커멓게 모인 미꾸라지들처럼 우글거리던 질문들이 다 흩어진다. 세상이 환히 밝다. 아침이라서.

불행은 가시적인 것이다. 그러니 즐겨야지.


나는 그 불행의 바깥에 있으니까. 다양한 하늘을 보고 또 보는 입체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