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열과 봉합

디럭스룸과 5만원

by 이븐도




보이는 것에 그렇게나 집착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흐물거리거나 안 흐물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살을 죄는 수영복을 입은 채 젖어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개찰구를 나올 때마다 날씨가 변해 있었다. 거기도 다르지 않았다. 비가 잔뜩 들이치다 안 들이치다를 반복했다.




캐리어를 들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팔이 아팠다. 호텔 앞에도 병원이 있었다. 의사 따까리들이 직원의 대부분일 곳. 5만원, 그리고 2년에 한 번의 디럭스룸 호캉스. 값을 치룬 거였다. 교훈은 두 가지. 우리가 왜 가족여행을 가지 않았는지. 그리고 내가 가진 내 직업에 대한 울분의 농도.

하나를 더한다면, 어른이 되기는 멀었다는 것. 피붙이들 앞에서는 더더욱.






5성급은 다를 줄 알았는데 다르지 않았다. 몇 년 전에 갔던 야외수영장과 비슷했다. 다른 거?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사진이 더 멋졌고, 굳이 따지자면 도심 전경이 시원하게 보였다. 허연 살을 다 드러낸 채 각자의 세상에 빠져 있는 젊은 여자들과 커플들을 피한 앵글을 잡을 수 있다면.


어쩌면 호캉스, 라는 것에 지나친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탓일지도 몰랐다. 해봤잖아? 사실은 그 때도 별 것도 없었다. 나는 그게 호캉스가 아닌 줄 알았다. 근데 지나고 보니 맞았네. 아닌가. 코엑스가 보이는 보이는 방 정도는 되어야 하나? 아니면 서울 야경이 다 보이는 최상층 스위트룸 정도? 하지만 내 월급에 이? 예전에도, 잘 짜인 그 방에 둘만 남아 있는 건 사실 너무 갑갑한 일 같았고 이번에도 그랬다. 당장이라도 싸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왜 그랬을까. 돈 아깝게.




너는 고맙단 말 한 마디도 없냐, 라는 나에게 그걸 말해야 아냐, 라고 했다. 왜 말을 못 해, 너 말 못 하냐? 입 없어? 아, 그게 아니고. 왜 공격적으로 말해.


공격적. 예민. 까칠. 나서부터 줄창, 언제나 내 삶에 존재했었던 것 같은 그 떼어낼 수 없던 단어들. 나는 어디서든 그 말을 들으면 꼬리를 밟힌 동물처럼 난리를 쳤다. 심보가 그랬다. 공격적이라, 그럼 진짜 공격적인 게 뭔지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래서 그 말에 나는 그런 넌 좋겠다. 그 나이 먹고 니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백수라서. 좋겠어, 그렇게 사는데도 엄마가 데리고 살. 라고 받아쳤다. 러자 여태 미적지근했던, 대답을 종용해야만 나왔던 반응들이 바로 튀어나왔다. 왜 건드려 줘야 대답을 하는 거야.

니가, 이래도 고맙다는 말을 안 했다는 게, 표현을 못해서 그런 거라고? 그냥 귀찮았던 거잖아. 그건 누나가 할 말이 없게 만드니까. , 또 내 탓이다 이거지.




틀린 말들이 아니었다. 나는 실제로 예민했고 까칠했고 지랄맞았다. 그렇다는데 부정하는 것도 웃기잖아. 하지만 누구는 몰라서 입을 닫고 사는 게 아니라고. 다른 사람이었으면 웃고 넘겼을 말들. 아닌 척, 뭐라고? 뭐? 진-짜 공격적인 게 뭔지 보여줘? 하는 너스레로 지나갈 일을 넘기지 않았다. 그 말마따나, 왜 병원에서 받은 스트레스 여기다 푸는데, 였다. 내가 집에 가면 듣던 말. 걔가 했던 말인가? 본가에 가면 누구도 나에게 괜찮은 척을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왜 항상 그래야 했던 것 같았는지를 다시 알게 됐다. 이래서였지.


너 알지 모르겠는데, 나 니가 불쌍해서 너 오라고 한 거야. 나아질 것도 없는 인생 사는 너 불쌍해서 불러낸 거라고. 니가 알아? 아냐고? 알면 그렇게 말 안 하겠지. 너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 그리고 동생은 대답을 안 했다. 말 안 하냐? 야.




뭐라고 말하라고. 알고나 있으란 소리야, 제발 알아서 잘 좀 살라고. 신경쓰이게 만들지 말고. 누가 신경 써 달래? 쓰이는 걸 어떡하라고. 누나가 오래서 온 거잖아.

아, 그러게. 작년도 올해도, 그 때도 그랬지? 오라고 해서 온 거니까 고맙지도 않고, 아서 해놓고 지랄이냐 그거네?

말을 해야, 아냐고. 그걸. 고맙다고 했잖아. 좀 전에.

내가 항상 그렇게 그 한 마디를 받아내야 되냐?






내가 유세를 부리는 건가 생각했다. 그런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이곳에 사실 아무도 데리고 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개고생하는 걸 누가 알 필요도, 어설프게 아는 척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혼자 오려고 했다. 막상 예약되고 보니 조금 미안해졌다. 무엇에? 몰라. 그래서 동생을 불렀다.


1층 로비에서 캐리어를 옮겨 주겠다고 한 직원부터 어둡고 조용한 엘리베이터에 넓고 한적한 휴게공간. 발 닿는 모든 곳이 쾌적하고 향기가 났다.

통창 바깥으로 너저분하고 바쁜 서울 중구의 전경이 보였다. 마치 내가 일하는 환경처럼. 하루종일 알림음이 울리고, 소변을 받고, 대변검체를 받고, 누군가에게 더 우악스럽게 말하고 싶은 것을 참고, 내가 몇 시간을 울든 아무런 반응도 없이 멀쩡한 환경. 거기서 일해서 받은 혜택. 혜택? 그냥 그 대가로 받은 월급으로 혼자 호텔을 다녔으면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연결하지 않았겠지. 그런데 안 그래서 그랬나. 이질적이었다. 원래 다들 이렇게 사나. 개처럼 일해서 이런 데 한 번씩 오고? 별 거 없네. 개처럼 일하는 나는 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런 울분을 안고는 오지 말았어야 했다.

돈 아깝잖아, 이러고 있으면.




광진구의 워커힐이 원래 인기가 제일 많았다. 구태여 여기로 잡은 건 밤에 달리기를 하려는 마음에서였다. 정말로 하든 안 하든, 동대문부터 광화문 너머까지도 이어지는 청계천 방향을 따라 달리면 좋을 것 같았다. 그게 몇 시가 되든, 그러다가 방으로 돌아오면 되니까.


수영장은 좁아터졌고 지루했다. 화장한 얼굴로 사진을 찍거나 불은 몸으로 누군가에게 팔을 벌려 안고 웃는 광경 속에서 나는 모자를 쓴 채 누워 하늘만 봤다. 집에 가겠다고 한 동생이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화 안 낼게, 미안해. 들어와, 했다. 카드키를 가지고 로비로 내려갔다. 그리고 짐을 쌌다. 시설은 끝내주게 좋았다. 하지만 좋으면 뭐 해, 나는 다른 이와 한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숨쉬는 것도 숙제 같았다.




난 갈 거니까 시간 맞춰서 체크아웃해. 가고 싶은 데 있으면 가고, 조식뷔페 먹어. 동생은 알았다고 했다. 엄마는 우리가 싸운 것을 안 후, 본인이 죽기 전까지는 어떤 가족모임도 없을 거라고 단톡방에 말했다. 그 비장한 단어들이 웃겼다. 엄마, 언젠 갔어?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거였다. 오늘 다시 알았다. 왜 우리는 용건이 없으면 가족 단위의 외출 등을 하지 않는지. 감히 자주 그러지 못하는지. 다들 알고 있던 거지. 하긴, 20년을 부대끼며 지냈는데,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게 맞다. 알아서 안 한 거.






너 나처럼 일해 봤어? 나 개같이 일해. 그렇게 번 돈이야. 그러니까 엄마한테 헛소리 하지 말고 알아서 잘 놀다 가. 돈 아까우니까. 나는 이 방이 얼마짜리인지도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너 기차표 니가 샀냐? 응. 내가 줘야 돼? 아니. 쌤쌤이었다. 내가 낸 5만원에, 제휴된 이곳 방값의 어느 정도 비율까지 합해도, 그냥. 5만원은 차비였다 치고 디럭스룸은 선물한 거라고 생각하면 됐다.


선물, 선물 또는 교훈 값이지. 나는 이미 성격 더럽고 까칠하고 예민한 사람이었으므로 이 정도로 돌아서고 싶지 않았다. 너 몇 년 전에 나한테 뭐라 그랬지? 기저귀 치우는 일? 똥오줌 받는다고 했나? 아니야, 그거. 아. 아니야? 난 잊어버렸는데 넌 아니네? 뭐라 했는데. 의사 따까리. 그래, 씨발. 나 요새 의사 따까리 하느라 존나게 힘들거든. 그 따까리짓 한 돈으로 온 거니까 잘 있다 가, 알겠지.




나는 내가 몇 살이었어도 그런 말은 한 적 없었다. 살면서 들은 말이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조각을 굳이 남겨서 씹었다. 맞는 말이었음을 매번 확인해서 그랬을까. 놓고 싶어도 놓을 수 없었던 거겠지. 내가 간호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와 아빠 둘 다 간호원 같은 없는 집 애들 하는 일을 왜 하냐고, 넌 왜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냐는 말을 했던 게 아직도 생각나는 것처럼.

지금은 그 밥벌이로 혼자 어찌어찌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쓰는 나만의 극본이었다. 원하는 것만 골라서 넣고, 극적인 것들을 더 배치하고.


나는 그 간호원 일로 살아남았고 동생은 그 어느 것에서도 살아남지 못했다. 분명, 엄마나 아빠는, 넌 말을 그렇게밖에 못하냐, 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틀린 말이 아니잖아. 의사 따까리라는 말은 그 몇 년 전에도 지금에도 틀린 것이 없는 단어였다. 그가 한심해 빠진 백수이며 나보다 성정이 여려 엄마에게는 늘 불쌍한 존재인 것처럼. 어쩌면 그래서 내가 한 말들을 똑같이 되받아칠 독기가 없는 것처럼. 뜩 악을 쓰고 예민한 나와 다른 것처럼.




틀리지 않았다. 내가 좋아서 한 것들이었다. 내한 공연, 에픽하이, 옷, 신발. 뭐.. 또 뭐가 있을까. 사실 이게 전부인가? 그 외에도 나는 많은 것들을 더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게 빚을 갚는 형태든 그냥 호의였든. 동생은, 이제 누나 복지는 누나 혼자 써, 라고 했다. 안 될 것도 없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알아서 잘 놀고 잘 쓰고 다녔다.


그런데 이 부채감 같은 게 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생업에 대한 울분 같은 게 언제쯤 없어질지도 알 수 없었다. 나도 몰랐다. 이게 이렇게 건드리면 다 터져나오는 것인지. 나는 내가 힘들다는 걸 알아달라고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그냥, 고맙다는 말 한 번이 듣고 싶었다. 정말 그게 다였다. 그 한 줄 때문에 그렇게 못되게 굴었다기에는, 어불성설일 수 있었으나 시작은 정말 그랬다.




출근하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실 안 괜찮은 건 하나도 없다고. 찢어진 건 꿰매면 됐고, 썩은 건 도려내면 됐고, 부은 건 빼내면 됐다. 줄어든 건 늘리면 됐다. 안 괜찮은 건 정말로 안 괜찮아졌을 때뿐이었다. 그러니까 사실은,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의 문제는 의지였다.


의지. 그래서 문제기도 했다. 타인. 그게 어떤 관계든, 나는 당신 없이 잘 살 수 있다고. 네 응원이나 위로 한 마디 없어도 나는 이제 아무렇지 않다고 속으로 말하는 일 초쯤만 가슴이 아프면 끝이었다. 어차피 우리는 시작부터 끝까지 남이었으므로. 태초와 지금이 다르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다시 마음이 편해졌다.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반대로, 그래서 타인들과의 그런 인연은 소중하기도 했다. 우리는 정말 남이니까.






가족. 피붙이. 내가 그 안에서 형성한 성격과 삶의 방식이 되려 튀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그 작은 집단. 집단이자 일부이자 전체. 망가진 건 약을 발라 고쳐놓으면 될 일이었다. 다만, 의지가 아직은 부족했다. 나와 언어가 다르고 사고체계가 다른 그가 있을 동대문. 엄마아빠가 망한 자식농사에 속을 끓이고 체념했을 대전 어딘가. 그리고 다시 돌아온 여기.


언젠가는 붙겠지. 가족이니까. 그런데, 이런 삶을 버거워해 다 터뜨려버리는 나와, 나를 감당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언제 그런 여력이 생길지, 짜낼 수 있을지는, 조금 미지수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며 또 생각했다. 이걸 관둬야 하나. 하지만 매번 똑같았다. 나는 그래서 못 그만둔다고. 그래서, 이래서 못 그만둔다고. 돌아갈 곳은 없으니까.


당연한 말이었다. 다 컸잖아, 나는.

근데 언제 어른이 될지는 모르겠다.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그 무엇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