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invalid.

by 이븐도





눈이 왕방울만해서 산동제를 넣기에 좋은 애였다. 아빠를 닮은 거였다. 교수가 와서 보호자 둘을 놓고 옆에서 수술 설명을 했다. 누가 스타벅스 리프 파이를 먹다가 말았다. 두 개가 남은 봉지. 먹고 싶었는데 참았다.


머리를 열어야겠죠, 조직, 머리카락, 농양, 세균. 의자를 끌어다 아빠에게 권했으나 그는 괜찮다며 서서 듣겠다고 했다. 설명이 끝나고 동의서에 서명한 후, 그들은 밖으로 나갔다. 유모차에 누운 애는 계속 낑낑이는 소리를 냈다. 보채지도 않았다. 진짜 귀여운 애였다. 귀엽고, 예쁘고, 겉보기에 아주 멀쩡한. 이마 측면에 마킹펜으로 그려진 표식이 생겼다. 주치의는 수술전 오더를 안 냈다. 신경외과 병동에 전화해야 했다.


몇 개월짜리 애기 개두술하는데 머리 셰이빙 다 해야 하나용, 좀 있으면 미용실 닫는데 오더가 없어서요. 환자번호 불러주실래요? 아, 얘구나. 아니용. 수술장에서 할 거예요. 아하, 네네. 감사합니다.






어머니 계속 울어서 못 물어봤거든 이따가 들어오시면 이중방 하실 거냐고 물어봐, 라고 메신저가 왔다. 울었다라, 우셨구나. 정말로.


왜 우는 걸까, 수술이 잘 되면 좋은 거 아닐까. 어차피 해야 하는 건데. 걱정스러워서 우는 걸까. 지금이라도 찾아냈으면 된 거 아닌가. 음, 원래 병원에서 저런 거 설명할 땐 극한으로 최악을 가정해서 설명하긴 하지. 무시무시한 설명들이긴 했다. 머리뼈를 어쩌는데 아무래도 많이 어리잖아요, 같은 거. 무서워서 우시나? 울 일이긴 했는데 왜 우시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물을 수도 없지.




위로는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였다. 보통은 돈으로 해결한다. 이거라도 먹고 힘내. 간단하고, 명확하잖아. 그 사람의 약해진 마음을 아는 척하면서 이런저런 말을 갖다붙이는 것보다 안전했다. 아무것도 아닌 군것질거리라도, 그 사람도 충분히 사먹을 수 있을 만한 그런 거라도, 어쨌든 당장 할 수 있는 것으로 기분이라도 풀길 바라는 마음.


그 외의 것은 어차피 그 사람의 몫이었다. 대신 걸어갈 수도, 싸워줄 수도 없었다. 카톡창, 대화, 산책. 그런 게 지나고 나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온전히 혼자 싸워야 했다. 그게 뭐든. 결국 구원은 셀프, 그 말이 맞던데.




말은 위험했다. 개개인의 삶은, 나와 같은 동 같은 호수에 살며 같은 곳으로 출퇴근하는 처지라 해도 천차만별인 그런 거잖아. 각자 눈의 곡률에 맞는 렌즈 같은 걸 끼고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미세하게 모두가 다 다른 눈의 모양새에 맞춘 렌즈. 그만큼 굴곡져 보이는 똑같은 세상. 어느 누구의 세계도, 감상도, 사건도 동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게는 위로가 어려웠다. 모르는데 어떻게 위로해. 나한테는 힘들다고 하지만, 사실 그 기저에 있을 스스로가 조금 자랑스러운 마음이나, 그 사건이 고마울 수도 있는 그런 복합적인 줄기들까지는 알 수 없는 거잖아. 처한 상황, 상대방의 심정 등 어느 것도 단정짓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자판기처럼, 힘들겠다, 괜찮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승영언니는 내가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을 안 날, 정말 미친듯이 카톡을 보내왔다. 활동기간도 아닌 아이돌 멤버들의 사진들과 고화질 영상이나 링크를 끊임없이 보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어떤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엄마아빠가 왔고 할 일이 좀 많고, 고맙다는 등의 말을 했다. 언니는 정말 폭격하듯이 내게 컨텐츠들을 던졌다. 네 명의 잘생긴 얼굴과 쨍한 영상들보다, 그렇게 선을 넘어 쏟아내듯 관심을 표하는 그녀가 더 고마웠다. 정말 그게 더 고마웠다. 나는 그녀가 그 때 위로에 재능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왜인지는 잘 모른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재능은, 앞을 향해 걷는 나한테 사선으로 날아든 피구공 같은 거였다. 이게 뭐야, 저게 된다고? 하는 느낌을 주는 것. 내가 그간 받았던 다른 위로가 별로였다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무턱대고 건네는 것들이 위안이 될 수 있는 기전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때, 내게 그녀는 위로에 재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안 좋은 일을 나누면 두 배가 되는지, 절반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항상 나뉜다. 나는 두 배가 된다고 생각하는 쪽인 듯했다. 보통 그런 일을 알리는 건, 알리게 되는 기전은, 후에 근황을 나누다 상대방이 내 이야기에서 어떤 큰 조각의 부재를 알아차려 공연히 실망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나한테 이런 일이 있었어, 이렇게 되고 있거든. 나중에 알면 서운할까봐, 그래서 어떻게 하고 있어. 라는 식의 전달. 그러면 상대방은 걱정했다. 나보다 더 슬퍼하기도 했다. 양가감정이었다. 쓸데없는 일을 만들었다는 생각. 조금은 좋은 느낌. 정말 아주 조금은. 그리고 곧이어 드는 죄책감. 내가 이 사람의 하루에 더께를 얹었다는 생각. 그래서 애매했다. 나는 상대방이 내 일로 괴로운 게 싫었지만, 그렇다고 또 알리지 않을 수도 없어서.




안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위로도. 그러나 병원에서 나는 보호자들에게 기프티콘을 줄 수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주치의는 내일의 약물농도검사를 중환자실에서 진행하는 걸로 알면 될지 묻는 내 메신저에 대답하지 않았다. 수술전 처방을 소아과에서 챙기겠다고 아까 컨펌받았는데 아직 없으니 확인 부탁드린다는 말에도 대답이 없었다. 또 뭐더라, 그래. 하여간 그 어떤 메신저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원래 그렇게 대답을 안 하면 그 옆으로 걸어가 얼굴을 들이밀고 메신저를 확인해 달라고 이야기하거나, 이미 다 보내놓은 내용을 대놓고 물었다. 나는 그가 무척이나 싫었다. 그래서 그러기 싫었다. 내일자 오더창으로 아무리 넘어가 봐도 처방은 바뀌거나 더해지지 않았다. 나는 의사에게 알렸다는 차팅만 남겼다.






나이트번은 니가 그럼 확인 받았어야지, 얘 내일 TDM 언제 할 거냐고 중환자실에서 물어보면 그 땐 뭐라고 대답할 건데? 라고 했다. 나는 내가 남긴 일지창을 켰다. 그래도 컨펌받았어야지, 답이 없잖아. 나보고 어떡하라고?

그렇지, 답이 없지. 그 새끼는 다섯 시 반에 집에 갔으니까.


학생회장까지 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이거 사람이 썼대. 학교 신문에 실린 무슨 소개글인지 축사 같은 게 한 페이지 가득이었다. 와, 쌉엘리트네? 그러네. 맞네. 남겨진 축제 포스터, 교정은 그대로.. 감상적인 글이었다. 높은 사람의 말을 인용한 부분도 있었다. 여러분은 환자들이 인생 최후의 보루를 맡기는, 어쩌고. 그렇구나.




내가 글을 믿지 않는 이유였다. 표현된 것은 현실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일이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환자를 보는지. 근데, 뭐. 웃으면서 애 손 잡아주고 머리 쓸어준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는 곳인 거잖아, 병원은? 감상을 짓고 드러내는 건 정말 쉬운 일이었다. 수많은 드라마처럼.


나는 보호자 앞에서 어떤 말도 제대로 건넬 수 없었다. 항상 그랬다. 임종을 앞둔 애가 누운 1인실들에서도 그랬고, 막 시체가 된 애의 몸을 울며 만지는 보호자 앞에서도 그랬다.

기껏 할 수 있는 건, 정말 다 끝났을 때,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는 말을 입속에서 굴리는 것뿐이었다. 못 했다. 다 거짓말이니까. 좋은 곳 같은 건 없다. 있다 해도, 그런 식으로는 보낼 필요가 없는 일이 너무 많았다.






엄마아빠는 휴게실에서 들어오질 않았다. 저희가 새벽에 피검사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네 시 반에 한 번 하고, 투약 마치고 수술장 가기 전에 한 번 더 할 거예요.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어차피 오늘은 자지도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운 얼굴이었다. 눈이 빨갛지도 코가 붓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울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얼굴과 목소리. 잘 끝나고 올 거예요, 라고 했다. 그게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이라서.


이렇게 어린데 수술을, 했다. 그래서 운 거였구나. 수술이 잘못될까 봐, 그 이후에 어떻게 살게 될까 하는 무한대의 걱정들의 선봉에 선 시작이자 끝일 생각. 밑도끝도 없는 그 아픔의 시작. 뭐라고 해야 하지. 어머니 잘못이 아닙니다? 잘 하고 올 거예요, 정말 그것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 위로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위로를 해야 하는 사람인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어쨌든 위로받아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떠오르지를 않았다. 날아오는 피구공 또는 뭐, 아니면 어디선가 둥둥 떠 온 비눗방울 같은 그런 발상, 나한테는 없었다. 내가 선을 넘을 줄 모르는 고매한 인간이라서가 아니고, 그냥 그게 내 한계였다.


그래서 그냥 바랐다. 침울한 표정으로 서서, 수술 잘 마치고 올 거라고. 의사들이 그렇게 할 거라고. 중환자실에서 잘 회복하고 다른 치료 잘 받으면 된다고.

눈으로 말할 수 있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없다. 애석하게도. 그래서 나는 아직도 위로에 무능한 사람으로 남았다. 늘을 남긴 이 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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