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하기 1은?
.. 0.5?
ㄹㅇ.
"선생님, 이사 가려면 짐 며칠 전부터 싸잖아. 2시에 가야 돼요. 그럼 지금 얼굴 보이자마자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전동 와서 빨리 가셔야 한다고요..?"
사실 요, 도 없었던 것 같다. 존댓말이냐 반말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마도 쫄아서. 쫄아서 맞지? 맞을 거야.
"아니이, 그걸 왜 말해. 그러면 누구 오니까 방 빼라는 거잖아아.. 쫓아내는 것 같잖아, 그치."
"아.. 그러면.. "
하참. 이 어린 양을 어찌해야.
"그치. 틀린 거는 아니지. 근데 그 친구가 오기 때문에 가야 하는 게 아니잖아. 애초에 가기로 되어 있는 건데. 비는 자리로 다른 애가 오는 거고, 그리고 보호자는? 그거 알 필요가 없지. 있어요? 그거는, 굳이 말 안 해도 되잖아. 뭐하러 얘기해. 몰라도 되는 걸. 그냥 지금.. 말하고 와요, 알겠죠."
그리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떼는 엉덩이.
아니아니아니야하아제발.
"선생님. 아직아직아직."
냅다 떠나려는 그녀의 손등을 몇 번이나 잡았던가. 그리고 또 똥그랗게 뜬 눈.
".. 가서 뭐 할거야. 또, 또 그 병실 가서 해야 할 일 뭐 있어."
"어.."
"아침에 많이 적어 놨잖아. 이거, 니꺼. 봐봐. 뭐 또 할 거야."
"아.."
".. 내가 자꾸 말 시켜서 못 생각하겠어?.."
"아니요, 죄송합.."
아니야아니야아니야하제발.
"아니. 죄송할 게 아니고, 안 죄송해도 되구요. 뭐 할 거야. 또, 그 옆에. 민현이. 가서 뭐 말해줘야 해? 한 시에 뭐 해야 돼. 그리고, 얘. 동의서 받으러 온다고 했죠. 응? 또 뭐 있어?
"앗. 그.. 사회사업실."
"그래. 가서 다 하고 와요. 안 적어도 돼?"
메멘토 주인공마냥 팔뚝에 붙어 있는 메모된 종이 테이프들.
"이거, 다 넣었죠? 임상에. 떼도 되지? 가서 다 하고 와요."
"넵."
니 오늘 빽인데? 아그래? 누구? C팀? 아하. 그래. 음, 그래. 그리고 나이트번은 뭐라 더 말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음.. 수고해라, 그러니까. 개고생해라, 를 표정으로 말한 것 같기도 하고. 아, 오늘 바쁠까? 그냥그냥? 근데 데이가 안 바쁠 수가 있냐. 그래, 그건 그렇지.
나 오늘 칼퇴해야 되는데. 못해도 세 시 반에는 나가면 수영장 갈 수 있는데. 근데 요새 칼퇴를 한 적이 없어. 하지만 사람이 그래도 두 명이면 좀 낫지 않을까. 쟤랑 나. 그럼 뭐 1인분씩은 안 해도 0.7씩은 될 테니 1.5인분은 될 거 아니야. 그럼 좀 나을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다. 나도 바보인데 쟤를 어떻게 봐 주지, 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바보인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더라고. 하핫. 나라서 그랬나? 그럴지도? 흑흑.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내가 하던 일은 낯설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나의 아바타는 도무지 전진을 하지 못했다. 환자, 아니 병상 하나당 고난 하나.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이건데, 가는 길에 할 일이 또 생기고, 가서도 또 할 일이 생기고.
이거 250cc 아닌 것 같은데요, 이거 무슨 약이에요. 오늘 검사 몇 시예요. 차라리 그게 낫나. 자리에 없는 사람. 또 자리에 없는 사람. 그러면 또 스테이션으로 돌아가 전산에서 개인번호를 찾고, 전화를 걸고. 그렇게 들어와 있으면 컴퓨터에 뜨는 검체 접수취소 알림들. 원래 그렇지, 원래 그래. 근데..
제가 영양실에 전화할 테니까 라운딩 마저 돌아요. 선생님, 이거 무슨 약이야. 여기서 쓰는 약 다 똑같아. 이거 지윤이가 먹는 알약이랑 성분 똑같은 거잖아. 프레드니솔론. 이거 위장약. 이거 아스피린. 이게 다야. 그리고 이건 그 전에도 먹던 유산균. 그치. 몰라서 설명 못 드렸어? 괜찮아. 대신 보호자 앞에서 그렇게 티 다 내면 안 돼. 알겠죠. 이거 알림 뜬 거 봤어요? 자리 와서 라벨 안 뺐잖아. 그런데 알림 왜 지웠어요. 이거 이렇게 확인 누르고 선생님 나중에 잊어버리면 어떡해. 이거 응급으로 났지, 보류 잡아야죠. 먼저. 그래야 이따 안 해도 되는 일 또 안 하지. 다음부터는 그렇게 해요. 자리 왔어, 아까 그럼 선생님이 지운 일 해야지. 라벨 다시 뽑고. 뭐가 바뀌었어? 그래. 10mg 늘었죠.
커튼 뒤에 서 있다가 얼타는 애를 대신해 설명하고,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할까 봐 그냥 내가 가서 이야기하고. 남자애는 눈을 부라렸다. 아깐 먹지 말라매요, 아씨. 어떻게 하라는거야. 아, 아까 누가 그랬어? 좀 전에 왔던 선생님? 몰라요. 먹지 말래서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 그 친구한테 금식하라고 했어? 우리 인계 그렇게 받았나? 선생님 어떻게 들었어요?
여섯 시간 금식..
그래, 여섯 시간 NPO. 열한 시부터 하자고 얘기된 거 아니야? 그 병동에 전화해보니까 다 원랜 금식 안 시킨대잖아.
어..
아니아니. 그냥 선생님 이해한대로 얘기해 봐요.
금식 필요하다고..
.. 이 친구 확실히 금식해야 하는 이유가 뭐야? 한 시에 뇌파 가야 돼서 약 먹어야 되지. 그거 때문이잖아.
아..
시술 때문에는 필요 없대. 그런데 아홉 시 전엔 확실히 확인이 안 되니까 일단은 열한시부터 하고, 만약 필요하다고 확인되면 그 이후에도 유지해서 오후 제일 늦은 시간에 하기로 한 거잖아. 내가 이해한 건 그런데 선생님은 아니었어?
죄송합니다...
죄송한 게 아니고. 선생님, 인계 받을 때 얘 몇시부터 금식시켰다는 내용 들었어? 아니면, 차팅 있었어? 금식 시작했다고? 나는 못 봤는데, 있었어?
아니요..
열한 시부터예요, 알겠죠. 혈조실에 전화해볼 거야. 알겠지?
죄송합니다..
내가 다시 얘기할게요, 가서. 마저 해요.
넵.
검사만 하러 다녀오는 줄 알았더니 아예 전동을 가고, 그 자리로 30분 안쪽으로 또 중환자실에서 오는 애 전동을 받으라고 하고, 애를 재워야 하고. 마음이 미치게 바빴다. 차라리 내가 하면 혼자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되니까 머리가 아팠다. 진짜 머리가 아팠다. 배고파서 그랬나.
수영장, 갈 수 있을까. 없을까. 몇 명 빼곤 원래 맨날 있던 유형의 애들이었는데 일은 도무지 잡히질 않았고 정리도 안 됐다. 화장실 한 번을 못 갔다. 혼자 하기에도 일이 너무 벅차 못 가는 그런 게 아니었다. 불안해서 갈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잖아. 스테이션을 한 번 떠나면 그녀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무진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전동 받으려면 뭐 해야 돼, 받아 본 적 있어요?
그러자 그녀는 가지고 있던 화일철을 넘겨보였다. 뭔가 잔뜩 쓰여 있었다. 그래. 그렇게 할 때지.
알겠어, 알겠어. 일단 제일 먼저, 뭐 준비해 놓을 거야. 그냥 생각했을 때. 뭐 준비할래.
어..
팔찌 뽑고, 아이오 종이 준비하고, 펌프랑 모니터 연동시켜야 돼죠. 사원님한테 네임카드 뽑아서 드리고. 맞지? 제가 할게요. 이거부터 해요.
눈치 없는 수선생은 바로 신규 옆자리에서 입원 배정을 했다. 나는 신규의 사선 방향에 앉아서 전동 올 애 인계를 정리하고, 그녀는 또 반쯤 일어서서 나를 똥그랗게 뜬 눈으로 쳐다보고. 나는 다 했어요? 뭐 할 거야, 이제. 우리 뭐 해야 돼, 를 반복하고. 또 전화를 받고, 또 그녀가 떠난 자리에 온 메신저창을 확인하고, 아예 그 자리에 앉아서 차팅을 넣고.
원래 일은 늘 끊겼다. 근데 이런 식으로는 아냐. 여기에서 일했다가, 저기에서 이 사람이랑 얘기했다가, 쟤가 거기서 그렇게 말하는 거 보고 또 달려나가고. 하아. 1 더하기 1은? 2 아닌가. 2는 확실히 아니었다. 2라면 이럴 수가 없는 거라고.
왜 십 년차 가까이 되었던 그녀의 지난달 프리셉터가 항상 집에 늦게 가고, 내가 출근할 때쯤이면 머리가 더 산발이 되어 있는 것 같았는지 알 수 있었다. 왜 그 미운 대학 동기가 더 지랄맞아졌는지 알 것 같았다. 선배놀이 하는 컨셉에 젖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답답하기만 하면 그냥 참으면 되잖아. 일이 나아가지를 않았다.
굳이 그 자리로 전동을 받으라고 한 수선생이 말을 걸었다. 걔는 거기서 잘 지낸대? 로테이션을 간 동기 얘기였다. 말만 들어보면 사실 개꿀 같았다. 그런데 내 알 바냐고. 열받게. 아아. 네, 여기보다는 안 바쁜가봐요.
아니지, 안 바쁜 게 아니야. 거기 어엄청 편하댔어. 네, 저도 알아요. 안다구요. 라고 대답하고 싶은 걸 참았다. 흐하. 그런가용. 배울 건 없을거야. 거기 있다가 딴 데 가면 힘들어서 일 못 해. 아하. 그러시구나. 여긴 직장인데 무슨 훈련소 대장 같은 말을 할 때마다 은은히 빡치는 걸 참아야 했다. 당신이 월급 줘? 어이가 없어서. 힘들다는 말을 장난으로라도 해서 티날 에너지조차 없었다. 밑 빠진 독에 대고 집중하는 게 이런 느낌이야? 이딴 데서 내가 뭘 배우는데요. 그런 당신은요? 많이 배우셔서 정말 아무것도 할 줄 모르시는군요. 짜증도 오래 못 갔다. 바쁘니까.
바빠서 참았고 불안해서 참았다. 인간된 도리로 그러면 안 돼서 참았다. 너 안 가? 아, 저는 안에서 먹겠습니다. 그럼 신규쌤이랑 나랑 갔다올게. 넵. 어떻게 저렇게 거리낌없이 밥 먹으러 간다고 할 수 있는지가 순수하게 일 초쯤 신기했다. 니가 밥 먹으러 가면 쟤 인슐린은 누가 줘? 너 지금 식당 가면 전동 누가 보내고 누가 인계 받고 누가 세데이션 시켜? 라고는 못 했다. 그래. 그러면 안 되지.
밥, 먹으러 갈 수 있다. 가면 되지. 누가 묶어놔? 하지만 내가 가 버리면 그 자리를 찾는 환자랑 보호자는 누가 응대하고 검사실 전화는 누가 받고 메신저는 누가 보냐고. 많이 생각했다. 집에 와서. 내가 얼마나 일했더라. 그 친구가 언제 들어왔더라. 6월. 아마. 그럼 두 달 반째. 나. 3년 반 좀 안 됐고. 딴 데서 반 년. 그래. 그게 어떻게 같아. 그럴 수가 없지. 그래.
나는 탈의실 안으로 들어가서 뭘 먹지 못했다. 바리바리 싸들고 온 수영가방도 도시락도 쓸모가 없었다. 선생님, 이거 안 했어? 하라고 했잖아. 라고는 말 못해서 돌려 말하려다가 내가 했다. 이브닝한테 인계 주는 자리에는 못 갔다. 전동 온 애 보호자한테, 피딩 교육하고 투약이랑 치료방향 같은 걸 얘기하느라. 신규는 제가 하겠습니다, 했지만, 분명 그랬다가는 이브닝번이 오후 내내 빡친 상태로 스테이션이며 병실을 들락거려야 할 게 뻔했다. 그리고 인계장에 쓰이겠지. 보호자 예민하니까 정확하지 않은 내용 설명하지 마세요, 같은 거.
이브닝번에게는 잔뜩 머리를 조아리고 싶었다. 정말 그랬다. 선생님, 이거 다 해야 하는 것들이야? 뭐 먼저 해야 해. 어.. 이거 먼저 해야지. 이건 나중에 해도 되잖아. 랩? 랩 하래? 근데 이걸 왜 선생님이 가. 의사들은 몰라. 그냥 수치 보고 싶으니까 라인 체인지 랩이라고 냈던 거 해 달라는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아니고. 선생님 이거 이렇게 하면 다음에 딴 선생님한텐 진짜 혼나요, 안 해도 되는 일 한 거잖아. 안 그래? 죄송합니다. 아니야, 아니야아니야. 이거만 하면 돼? 정말? 이거 하러 갈 때, 또. 그 자리에 보호자한테 뭐라고 할 거야? 이거 약 주면서, 아침마다 챙겨주셔야 한다고 안내드려야죠, 그치? 또 뭐 있어?
하루종일 그 말을 몇 번이나 했지. 우리 거기 가서 뭐 또 해야 해. 이 말. 분명 근무 시작 전 환자파악 때는 그 정도가 아닌 일들. 완두콩 껍질을 깐 것처럼, 까보니 옹글하게 가득차 있는 안 중요하고 중요한 일들.
엄청 많이 들었던 말. 선생님이 아직 일이 익숙치 않아서 그런 걸 아는데, 그 말. 이제야 생각났다. 그게 이 뜻이었구나. A를 하라고 하면 정말 A만 하는 게 아니라 1부터 8정도까지는 알아서 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
6월에도 한 번 봤었는데, 어땠더라. 그 때도 저렇게 풀 죽어서 어리버리하긴 했다. 두 달간 그건 익숙해진 것 같긴 했다. 본인의 얼탐을 조금은 감추는 것. 그래도 다 보인다구. 어떻게 감추겠냐만은. 하지만 문제였다. 얘 이렇게 독립하면 같이 어떻게 일하나. 아휴. 나도 그랬겠지? 아휴. 더 아휴.
4일을 놀았다. 친구도 만났고 영화도 봤고 집도 치우고 달리기도 하고 수영장도 가보고 뭐 등등 행복했다. 지나고 보니 행복이었다. 잠도 많이많이 잤다. 윤두준이랑 김슬기 나온 단막극을 30분쯤 보다가 잤다. 자기 전에, 드라마 속 도영이랑 유진이의 행복을 빌면서 생각했다. 공연장이 멀지 않은 위치, 언제든 뛰어나갈 수 있는 공원, 지척에 있던 수영장, 친구 만나러 서울로 오갈 수 있는 거리. 나쁘지 않은 삶인데. 비록 여기서 세를 주고 사는 것뿐이지만. 내가 너무 안일한가, 생각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생각했다고. 너무 좋아서 불안했던 거지.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이 의도치 않은 2인 3각을 하면서.
2인 3각? 하면 되지. 문제는 상대가.. 일곱 살짜리라는 거였다. 나보다 잘 못 뛰어서가 아니야. 그냥 키 차이가 너무 나는 걸 어떡해. 그러느니 내가 그냥 안고 달리고 싶었다고. 근데 어떻게 그래, 또.
네 시. 사실은 네 시가 넘었다. 어차피 의미 없는 퇴근 시간. 원래는 세 시. 아무튼 택시를 탔다. 수영장으로 달려달려 하고 싶었으나 오리에서 죽전 빠지는 게 진짜 미치게 오래 걸렸다. 원래 이런가? 하긴 누가 집 갈 때 택시를 타. 타긴 타지. 이 도로 위 사람들 다 잘 때. 이런 시간대가 아니라. 결국은 네 시 사십 분에야 집 근처를 지났다. 아저씨에게 말씀드려 목적지를 바꿨다. 수영장은 못, 아니. 안 갔다. 그냥 퇴근할 때 택시를 탄 사람이 되었다. 훤한 대낮에.
일하면서 빵 먹었는데도 배가 너무 고팠다. 고파서 머리가 아팠다. 걔는 집에 갔을라나. 아휴. 모르겠다. 내일 좀 일찍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상에 올려놓고 안 치운, 거의 못 마신 커피가 든 텀블러와 깔끔하게 얼음이 다 녹은, 물방울조차도 안 맺힌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떠올랐다. 이브닝번이 나 욕 좀 했을라나, 에휴. 모르겠다. 모르겠어.
오늘은 내가 인계를 받는다.
그래서 좀 일찍 가려고 한다. 가야 한다.
그래도, 뭐. 낫지. 하하. 혼자 하는 게 낫다.
그게 최선이다. 정말이지. 흑흑.
어떻게 고난은 이렇게 끝도 없이 변형하면서 재생산되는건지 알 수가 없다. 이게 안일한 거라고?
안일은, 씨. 이게 내 최선이다. 가면 알게 된다.
진짜다. 으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