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말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프지는 말고, 그렇다고 사고나지는 말고, 너무 괴로워하길 바라는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명? 한 명 아니야. 두 명? 두 명까지는 아닌가. 여섯 시 반,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진짜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생은 한 번 봤다. 원래 끈기가 없고 집중력이 딸려 드라마를 잘 못 본다. 김대리는 영업 3팀으로 발령받은 천과장을 장그래에게, 옛 전우이자 피땀눈물을 나눈 동지 같은 걸로 설명한다. 그리고 출근한 천과장은 자꾸 예전 이야기를 지금의 사무실 컴퓨터 앞으로 끌어오는 김대리에게 말한다. 회사에 왔으면 일을 하라고, 게임 말고. 갑분싸다. 장그래도 둘의 사이를 알고 있으니까.
여긴 일반 회사가 아니고 그건 십 년 전 드라마인데, 사실 박해준이 그렇게 말한 걸 그 때도 나중에도 이해를 못 했다. 웃긴다고 생각했다. 뭔 게임씩이야. 그냥 좀 웃자는 말이지, 왜 저러나 싶어서. 지금도 백 프로 이해가 되는 건 아니다. 잘 모르겠다. 근데 생각이 났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출근길, 사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리고 퇴근하는 버스 안.
퇴근이 매번 늦는다. 늦는 건 원래 그랬다. 칼퇴를 하는 날은 일 년에 열 번 될까. 그러니까 사실 제때 퇴근하는 건 별로 큰 의미가 없다. 문제는 똑같이 늦게 퇴근을 해도 더께가 잔뜩 남는 날이 많아졌다는 것. 복도에서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또 소리질러 대답하고, 뛰어가 전화를 바꿔 받고, 전화를 걸고, 또 걸고, 다른 간호사에게 말을 걸고 있는 보호자를 붙잡아 오고, 주치의가 잘못 낸 처방을 수습하고, 영양실에 전화하고 약제부에 빌고 진단검사실에 빌고 PA 썅년들에게 빌고, 기고. 와중에 내가 그르쳐놓은 일까지 뒤치다꺼리하기.
그런데 매번 하는 일이었다. CPR 났나? 누가 중환자실에서 왔거나 갔나? 둘 다 아닌데. 통상 바쁘다고 핑계를 댈 수 있는 어떤 이유들도 없었다. 그런데도 액팅이 해도해도 안 끝났고 정리도 잘 안 됐다. 나 이거 4년이나 했는데. 일을 하는 능력이 퇴화되기도 하나. 오프 끝나고 막 복귀한 것도 아닌데.
뭘 하려고 들어선 어딘가, 환자가 말을 걸거나 나를 찾는 전화가 기다리거나 메신저가 깜박거렸다. 맨날 그랬는데. 나 뭐 하려고 했더라, 하다가 정작 그 일은 나중에야 떠올렸다. 큰일이지. 이거 한 시 반까지만 검체용기 수령 가능한데요, 아. 네. 그리고 묻는 이브닝. 이거 그럼 언제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주치의 알아요? 오더 한 시 십오 분에 났는데, 바로 의뢰했으면 오늘 할 수 있었잖아. 아. 네,네. 죄송합니다. 이건 됐어요, 노티? 아. 여쭤보고 오더 받아 놓고 갈게요. 이건? 얘 퇴원은 보내고 갈 거죠? 넵.
인계는 두 시 사십오 분이고, 스테이션으로 다시 들어간 건 두 시 오십 분이 좀 지나서였나. 이브닝번. 딱히 밖에서 밥을 먹거나 인생네컷을 찍거나 하는 등의 친분쌓기를 할 일도, 한 적도 없는 내 또래. 꽉 채운 3년을 봤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쩌면 그 때쯤 사귀던 남자친구보다, 엄마아빠보다 더 많이 본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 아무튼 그래서 알 수 있다. 인상을 찌푸리거나 나를 째려보는 게 아니라도 저 표정이 대충 뭘 말하고 있는지를.
안 한 일, 있었지. 표면적으로 기억나는 건 '피부 건조해서 빨개진 것 때문에 아빠가 바를 만한 연고 있는지 문의함. 주치의한테 전달해 주세요.' 못 했다. 안 했다. 그래서 인계 주고 바로 했다. 주치의는 바로 답장하고 오더도 바로 냈다. 변명? 변명해야지. 어떻게 해야 하나. 사실 늘 있는 일이라 굳이 변명을 하기도 어색하다.
안 하고 싶어서 안 한 건 아닌데. 틈날 때마다 휴대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 놓친 것도 아니고. 일곱 시부터 그 두 시 오십 분까지 아마 화장실 한 번 다녀온 것 빼면 한 번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아닌가? 그건 아닌가? 아닌가보네. 그러게, 일하다, 아. 나 왜 이러지 한 적이 좀 많았잖아. 사실.
병원에서 일을 잘 한다는 게 가능할까. 가능하다. 어쨌든 개개인에게 떨어지는 업무는 비슷할 텐데, 개중에는 항상 집에 아주 늦게 가지는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럼 다른 질문. 일을 잘 하는 건 제때 퇴근하는 거랑 동의어일까.
유니폼을 입고 컴퓨터 앞에서 못 넣은 기록과 원무과 연락과 검체접수 확인을 하고 있으면 당연히 전화는 미친 듯이 울린다. 이브닝번은 다 수액준비실에 들어가 있거나 입원을 받고 있거나 병실에 들어가 있다. 어떡해, 받아야지. 받고 끝인가. 건덕지가 있으니 온 전화, 남에게 넘길 만한 일이 아닌 것 같으면 내가 해야 한다. 다들 바쁘시니까. 무척이나.
그 차림새의 나를 하루종일 본 내 담당 병실 사람들이 또 누굴 찾듯이 고개를 쳐들고 스테이션으로 온다. 뭐, 저 집에 가야 돼서요, 할 순 없잖아. 주사, 퇴원 문의, 열 나요, 애 아빠랑 교대할게요 등등. 이제 나한테는 중요하지도 않고, 중요해도 어차피 그 일 하라고 고용된 또 다른 누군가가 뻔히 활동하는 그 시간. 한다. 아, 네네. 이거 가지고 원무과로 내려가시고 팔찌는 끊어드릴게요. 그냥 그런 생각을 한다. 어떻게 안 죽고 여기서 일했지?
집은 조용하다. 당연히. 너무 조용하고 시원하고, 정리가 되어 있고 아무도 없어서 낯설 지경이다. 끝날 듯 안 끝나는 그 병동의 소리와 장면들과 그들의 눈빛이 합쳐질 때, 사방에서 나한테 묻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는 생각이 안 나고, 병원 건물을 나와 버스에 올라 이 집에 오기까지 그 생각이 따라붙는다.
넌 왜 이렇게 일을 못 해? 이걸 누구한테 물어야 하지. 동기들한테, 나 일 못해? 그럼 뭐라고 대답할까. 친구한테? 당연히 아니라고 해줄 거고. 선임들한테? 뭐, 니가 좀 그렇긴 해? 설령 그렇다 한들 그걸 확인받아서 뭘 하고 싶은 거지?
대체 뭐 때문에 바빴던 건지 나 역시 궁금했다. 외국인 보호자가 자꾸 엉뚱한 데로 가고, 기다리라는 데도 안 기다리고 혼자 애 옮기다가 주사 다 빠져서? 내시경 끝나고 실려온 애들 셋의 공복채혈 때문에 피검사를 의뢰해 놨더니, 그새 초음파를 불러 줘서 애들이 왜 자리에 없냐는 쿠사리를 처치팀 선생한테 듣느라? 이거저거 자기들 맘대로 콜해대는 걸 뭘 하다가도 뛰어가서 조정하고 알리고 보내고 확인받느라?
알러지가 있는 걸 그제야 알아서 수술장에 갔다가 도로 온 애가 그냥 집에 가게 되어서? 전산으로 수가 반납 등이 다 돌아가면 심사팀에서 저희한테도, 어머니한테도 연락을 드리거든요. 그리고 아직 호흡기내과에서 답신을 안 주셨어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를 네 번쯤 반복하느라? 그리고 정작 교수가 병동으로 오자 자리에 없던 보호자에게 몇 번이고 전화를 거느라?
차팅에 들어갈 이유도, 넣을 서술문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일들을 잔뜩 해서? 근데 그건 늘 그랬다. 그리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띠꺼운 표정으로 인계를 받고 틱틱거리는 이브닝번도 똑같이 일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였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이런 '일'의 양상을 알았다. 모를 수가 없지.
그래서 이해한다. 그들의 빡친 마음? 아니. 그 표정의 기전을. 쟤들이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고, 출근하자마자 마주치는 이 개판 같은 병동과 업무량에 기분이 나빠서도 있을 거라는 걸. 그런데도 좀 상처였다. 친한 사이도 아닌데. 내 치부를 건드려 을러댄 것도 아닌데. 은은하게 계속해서 남았다. 그래서 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을 못해? 맞겠지. 그런데, 별개로, 그냥 그만 좀 보고 싶은 사람들이 됐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그 죽었다는 마음을 품자 내가 더 괴로웠다. 안 죽는 걸 아니까. 그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너무 꼴보기 싫어 죽겠으니까.
그들도, '환파가 하나도 안 되잖아요' 라고 말하게 한 내가 그렇게 꼴보기 싫었겠지. 내 밑으로, 더 밑으로 들어온 신규들은 더 할 거고.
기분 나쁠 정도로 상처였다. 웃긴 표현이나마 가슴이 좀 아팠다. 내일, 혹시 그 날처럼 울면서 일하면 어떡하지 생각했다. 근데, 내가 뭐 중요한 일을 빼먹었나? 아니지, 그럼 된 거 아닌가. 하지만, 넌 일을 못 하잖아. 제때 퇴근을 못 한다고. 결과는 그래. 씨발. 이건 뭐, 대체 어떻게 안 그만두고 일했지?
죽었으면 좋겠다, 와 괴롭다, 가 교차하다가.. 신규의 엄청난 투약사고에서 비롯된 공지가 올라왔다.
항암제, 항생제. 컨펌. 투약사고에 둔한 수선생마저 아침에 팔짱을 끼고 그 선생님 정말 안 되겠네, 들어온 지 몇 달인데, 어? 혼 좀 내야겠어, 했다. 조용한 내 방. 과열된 그 소리와 사람들과 정말 쉬지 않고 돌아가는 그 환경과 다른 이곳. 잔소리로 끝난다면 차라리 백 번 천 번 다행일 일. 그새 머리가 식었는지 정신을 차렸다. 그래. 뭘 어떻게 째려보고 지랄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투약에러 안 쳤어. 그거면 된 거야.
상처? 어떤 눈빛? 띠껍겠지. 꼴보기 싫겠지. 하루이틀인가, 쟤들도 사람이잖아. 싫겠지. 존나게 싫겠지. 어차피 병원 바깥에서 마주치면 인사도 안 할 인간들, 하나마나한 말이나 억지로 나눌 사이. 이 게임이 아니면 볼 일 없었을 얼굴들.
왜 게임 말고 일을 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과 일을 하지만 그냥 그들도, 나도 게임의 롤이나 다름없었다. 서로 개지랄하고 욕을 하며 상처를 어쩌니 해도 결국, 일을 하기 위해 모인 존재들.
일을 해, 일. 전화받고 응대하고 확인하고 제때 내리고 제대로 주고. 그거 하려고 온 거야. 그러라고 출근한 거야.
그래서 뭐 그런 생각은 그만하기로 했다. 일을 잘 하는 나, 못 하는 나? 제때 못하는 퇴근? 그런가보지. 일을 해. 했으면 된 거야. 게임. 니들끼리 실컷 해라. 하든가, 말든가.
울지 말기로 했다. 울거면 그냥 슬픈 영화 보고 울어. 아니면 뭐, 무대 직캠 보고 감동받아서 울어. 이딴 일로 마음이 아프네 어쩌네 하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는 거였다.
죽었으면 좋겠다? 생각할 수 있지. 그건 게임 생각이야. 생각은 자유다. 일이나 제대로 하면 될 일이다. 실수와,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고.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