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면이 없는

3D의 D

by 이븐도





8시에는 나가야 한다.

그 때 해가 지는 게 예쁘기 때문이다.



오늘은 히포 씨가 없다. 사실 그녀의 본명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그 이름. 항상 같은 스타벅스에 간다. 스타벅스가 별 적립 정책을 바꾼 후, 어플에는 43개의 별이 쌓여 있다. 엄청나잖아? 뭐가 얼마나 쌓이든 매번 먹는 건 똑같다. 오늘은 사이렌 오더 안 하셨네용, 항상 같은 거 시키시잖아용. 하면서 마스크 위의 눈을 접어 웃었다. 명찰에 적힌 알파벳. 히포. 그 말을 듣고 일주일은 가지 못했다. 안 간 게 아니고 괜히 바쁘고 게을러 멍청히 앉아 있을 시간이 부족했다.


다시, 꽤나 오랜만에 여기로 향했을 때, 뭐 초코바라도 하나 사서 건네야 하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럴 이유가 없잖아? 그리고 카페 직원인데. 그런 게 널리고 널린 곳에서 일하는. 그렇다고 내 입에나 맛있을 프로틴바 같은 걸 주기도 좀.






황금빛 바람이 분다. 틀린 말이 아니야. 햇빛이 금색이고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35도? 저녁 여섯 시인데. 친구는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3D 잖아. 라고 했다. 지나치게 간만에 듣는 단어라 당황스러웠다.

그 말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을 살았다. 3D의 나머지 둘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Dirty, 한 가지는 확실했으므로. 그리고 오늘은 특히 더 그랬기 때문에. 아니다, 특히가 아닌가? 사실 늘 그랬는데. 그 말은 위로도 판단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꽤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동대문구의 모 병원에서 일했을 때 처음으로 죽은 환자가 있다. 열이 많이 났던 할머니였던 것 같다. 열이 났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혈액배양검사와 소변검사 처방이 났던 걸 보면. 메모를 펼쳐보며 간신히 검체 받을 준비를 했다. 난관은 따로 있었다. 단순도뇨를 해서 소변을 뽑아야 하는 것. 2021년이었다. 아무튼 더웠던 때였다. 내가 학교를 졸업한 지는 반 년이 채 안 됐을 때. 나는 모형이 아닌 사람에게 관을 꽂아 오줌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리고 지금도 하는 일은, 괜히 구멍의 위치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앞쪽부터, 질. 요도. 항문. 통상 세 개. 그러나 세 개가 아닐 때도 있었다. 두 번째임이 분명한데 아닌 적도 있었다. 명확히 넣었는데, 카테터 끝이 다른 구멍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일하다 보니 알게 된 것들. 정말 사람의 몸은 그 이목구비만큼이나 다양하게 생겼다는 것. 보이지 않는 곳이라 해도 예외는 크게 없다는 것.




더러워지면, 그러니까 요도 안쪽으로 밀어넣어야 하는 그 관에 장갑을 낀 채 든 소독기구가 아닌 것이 닿는다면 모든 부속물을 다 싸들고 나가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컨타됐다고 표현한다. 지저분해졌다고.

세트를 세 번쯤 새로 만들어 온 것 같았다. 나를 가르쳤던 프리셉터도, 다른 선임들도 너무너무 바빴다. 같이 봐 달라고 말할 사람이 없었다. 그 사람의 이름이었다. 홍숙자.


어찌어찌 도뇨에 성공했다. 갈색, 아주 짙은 갈색의 소변이 나왔다. 그 검체를 받아서 어딘가로 접수시켰겠지. 그 시커면 소변을 보기 위해 벌여놓은 것들을 정리하고 다시 병실로 들어가니 그녀는 나에게 진통제를 달라고 했다. 트리돌. 투명한 앰플에 초록색으로 명칭이 쓰인 약. 원통형 수액에 그걸 섞어 들고 갔다. 배운 대로, 지금은 몇 점 정도로 아프세요, 물었다. 들어간 후에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기록해야 하니까. 항상 하던 일이었다. 그건 쉽잖아.


그리고 그녀는 대답을 안 했다. 사방이 난리통인 그 병실과 그 병실의 바깥. 단어가 떠오르기도 전에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건 믿을 수 없다고. 나는 괜히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몇 점으로 아프세요, 물었다. 눈을 그대로 뜬, 그 소변을 보여준 몇 분 전보다 낯빛이 누래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죽은 거였다. 홍숙자님, 홍숙자님. 두 번정도 소리를 치다 아무나 와 주세요, 했다. 그리고 그렇게나 바빴던 와중에 사람들이 우다다 달려왔다.



기억하기로 그녀는 그 때 중환자실로 옮겨져서 잠시 숨이 붙어 있다가 이틀 후에 정말로 사망했다. 그러게, 지금 생각하니 내 앞에 있었을 때는 죽은 게 아니었는데.

병원에서는 심전도 리듬이 쭉 뻗은 것을 확인한 후 사망 선언을 거친 다음에야 그 몸을 영안실로 옮긴다. 아무튼 나는 그녀를 첫 죽음으로 기억한다.






애는 오늘은 경련을 안 했다. 하지만 접촉격리가 해제될 수 있는지를 봐야 했다. 감염관리실에서 연락이 왔고, 필요한 검사를 나가야 했다. 줄을 넣어 소변을 뽑아야 했다. 그건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이 친구는 멀쩡히 살아있는 어린이라서 온몸에 힘을 준다는 거였다. 멀쩡히는 아닌가? 어쨌든 힘이 셌다. 의식이 반쯤만 있어서 더.


기저귀를 내리고, 엄마가 허벅지를 누르고, 다른 간호사를 한 명 더 불러 벌려 놓은 무릎을 접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다. 오염이고 나발이고 팔과 어깨가 아팠다. 절벽을 붙든 사람처럼 사력을 짜내야 했다. 여기서 손을, 팔힘을 미끄러뜨리면, 애써 찾은 저 구멍을 소독한 게 허사가 되니까. 엄마에게는 휴대폰 라이트를 켜 달라고 했다. 십오 분을 그러고 있었나. 한 번 닦아 놓으면 살이 밀려나고, 또 밀려나고, 그쯤 되면 또 다리에 힘을 줘서 밀려나고. 영원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같이 들어간 간호사가 자세를 바꿔 볼까요, 차라리 이렇게는 안 되나, 했다. 옆으로 비스듬히 눕히는 것. 그러자 엄마는, 지난번에도 결국 이렇게 했어요, 했다.




옆으로 애를 눕혀 다시 또 벌린 손에, 팔에 힘을 줬다. 측면으로 이번에는 대변이 새어 나왔다. 이런 거구나. 다 알고 있었고, 다 똑같고, 앞으로도 똑같을 것. 왜 이런 걸 지저분하다 여기게 만들어진 걸까 생각했다. 그런 걸 느꼈을 때는 몇 년전에 분만실로 실습을 갔을 때가 마지막인 것 같았는데.


벌린 다리 아래에 시퍼런 포가 깔려 있었다. 그 포 위의 엉덩이, 가랑이. 그리고 시꺼먼 핏물들, 폭포처럼 삼각형으로 쏟아진 흔적을 남긴 핏자국, 그 사이로 나온 머리. 저게 정말 사람 머리일까 싶은 아기의 뻘겋게 둥근 머리통. 우르륵 나오던 태반. 나는 그걸 보고 그 자리에서 눈물을 참았다. 무서워서. 징그러워서. 그리고 그 징그러운 광경에서, 흔한 울음소리가 나왔다. 정말 그 때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의 울음소리.






넓은 어깨에 드러난 까만 문신. 까만 눈썹. 까만 눈. 써클렌즈를 낀 것처럼. 젊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누구신데요, 어디 계시는데요. 가서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더 찌를 데도 없는데 제대로 좀 해 달라구요, 어디 계시냐니까요.

나는 엄청나게 난처한 척을 했다. 불쌍한 척, 아주 미안한 척. 처치팀 선생님들이셔서요, 아. 그렇죠, 그렇죠. 애기가 어리죠, 많이. 제가 좀 더 잘 봐달라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잘 좀 해달라고 해 주세요. 몇 번째야, 진짜.


니가 어쩌시게요. 가서 찌르기라도 하게? 정말 뭐라도 좀 하시지, 그럼. 볼만한 구경거리라도 생겼을 텐데. 그 사람들 없었으면 당신 애 여기서 아무것도 못했어. 누군 니 자식 우는 게 듣기 좋아서 여러 번 했겠어? 싫으면 딴 데 가, 병원 많으니까. 나는 이제 그렇게 시커먼 눈을 가진 사람들이 싫다. 그 때의 젊은 엄마는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며 니새끼들이 뭔데, 어? 이딴 것도 못하는 데가 무슨 병원이야, 했다.


그러면 딴 데로 가시면 될 일이었다. 널리고 널린 게 병원인데? 지린내가 잔뜩 나는 애들 기저귀. 본인 눈에나 귀여울 애. 그 애 앞에서 그 모자란 인간들은 무례함을 감추지 않았다. 애가 아픈 게 특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본인이 처절한 사연을 지닌 자식의 주인인 것마냥.






병원은 정말 더러운 곳이었다. 사람들이 더러운 걸 뱉어내고 모으는 존재라서. 사실은 그냥 동물들이 그런 것처럼. 똑같았다. 어떤 화장을 어떻게 하고 뭘 입고 어떻게 생겨먹었든 그냥, 소변을 받고 대변검체를 제출하고 가래침을 뱉어야 했다. 그게 진짜 정보를 주는 거였기 때문에. 잘해줄 이유도 못해줄 이유도 없었다. 병실로 입원한 이상, 그 몸들은 다 똑같은 기전의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것들로 차 있으니까. 애라고 다를까? 뭐가 다른데.


똥과 오줌이 한 번에 나오는 걸 온 힘을 다해 지키고 있었다. 와중에 애가 경련하지 않을까 모니터도 한 번씩 봐 줘야 했다. 한 해 두 해도 아닌데 낯설었다. 화장실이 없는 곳이 있나. 없지. 아무리 고급인 곳이라도 화장실은 있잖아. 없는 곳이 없다구. 번화가의 예쁜 카페들, 술집, 식당. 말끔히 꾸민 후에 대화를 나누다 혼자 찾게 되는 화장실. 그게 어디의 어떤 곳이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다 뭐 하는 짓인가, 싶어서. 더럽고 냄새나는 곳의 거울 속 단장한 내가 좀 이질적이라서. 가끔은 그랬다.



애기 똥은 안 더러워요, 라고 어떤 선임이 그랬다. 누군가 그 말에 감동받아 칭찬카드를 남겼다. 그게 정말 안 더럽다기보다는, 그걸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직업정신을 칭찬한 거였겠지.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더러운 걸 더 많이 본 날일수록 달리기를 해야 했다. 요즘은 더 그렇다. 날이 덥기 때문이다. 땀이 좀처럼 날 일이 없는 내가 온 몸이 축축해진 채 횡단보도에 서 있어야 한다. 그게 좋았다. 땀이 많이 나는 게.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다 짜내고 털어내는 것 같은 그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엘리베이터 거울 속 내 얼굴은 뭔가 좀 잘못된 토마토 인간 같았다. 정말 좀 이상할 정도로 그렇게 생겼다. 누군가한테 맞은 것 같기도 하고, 잔뜩 뛰었는데 벌겋게 부은 것 같기도 한 몰골. 싫은데 좋았다. 더 나아질 게 없어서.



병원은 뒷면이 없는 곳이었다. 어떤 치장을 했든 모두 본질로 돌아가야 했다. 문제는 그게 혼자만의 사건들일 수 없는 점이라는 것. 잔인하기도 하고, 간단하기도 하고. 3D, 의 더티. 괜히 나온 단어가 아니었다. 애초에 여기가 그런 곳이니까. 그렇게 사람을 분석하고 진단내리는 곳이니까. 모든 인간들의 백스테이지나 다름없었다. 분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고,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을 내보이게 되고. 어쩌면 다시 멀쩡해져서 세상 속으로 복귀하고.


달릴 때의 나는 멀쩡과는 거리가 멀었다. 해가 질 무렵에도 30도에 육박하는 이 더위에서는 더더욱. 그러나 나는 그게 싫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게 가장 나와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땀으로 척척히 젖은 옷가지를 입고 서 있으면, 멀끔한 잠옷을 입고 시원한 방에서 여드름약이나 팩을 허옇게 얹은 내 모습이 덜 웃기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더러운 곳에서, 나와 똑같은 더러운 것을 가진 개체들을 잔뜩 보며 온 날. 괜히 충격받은 기분을 더 더럽게 땀을 내서 잊는 거지. 나도 똑같다고, 어차피 다르지 않다고. 나만? 아니. 이 길거리의 정말 모든 사람들이 다. 나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닌, 그냥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서. 내 직업이 3D로 명명되어 있는 게 차라리 안정감을 주는 것처럼.

정답이다. 정답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그 많은 것의 이면, 더러운 것들이 가득한 곳. 뒷면이 없어 편안한 진실. 달리기가 그렇고 가끔 병원이 그렇고, 인간인 내가 그렇다.


공존하는 거잖아. 8시의 멋진 하늘과, 저편 어딘가 병원 위의 지긋지긋한 하늘은 사실 같은 곳인 것처럼. 나를 기억해 괜히 설레게 만든 히포 씨가 일하는 이곳 스타벅스의 화장실에는 늘 비누가 비치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처럼.




3D. 나머지 두 단어는 나중에 찾아볼 것이다. 언젠가 그 두 표현도 내게 또다른 안정이 될 날이 오겠지. 안 왔으면 좋겠지만, 올 테니까. D. 더티. 정말로 더러운 것들. 이상하게 기분 나쁘지 않은 사실이다. 마음에 드는 저녁이다.

이 일이, 내가 하는 일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판정지어 버려서 그렇다. 어떤 여지도 없이. 뒤돌아볼 필요도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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