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Fiction and fact
인물, 사건, 배경. 세 요소 중 하나만이 잔뜩 부딪히며 파열하며 마모되는 것. 나는 내가 멋대로 만들어낸 장면들과 이야기들 머릿속에서 으그러뜨리며 끝내주는 달리기를 했다.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했다. 기온이 십 도는 내려가 있어 달리는 맛이 났다. 이게 여름의 달리기 아닐까. 벌게진 얼굴의 몰골로 횡단보도에 섰다가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달리기는 정말 극적이다. 드라마가 되는 시간이다. 그 많은 사람들 사이로 혼자 묵묵히 진행되는 멋진 장면들이다. 나를 지나쳤던 사람들의 삶이 제각각 그럴 것처럼.
제가 좀 예민해서요, 라고 아홉 시 전에 말했던 보호자는 아홉 시 반에는 내 시선을 피했고, 열 시에는 아예 병실 화장실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제와 오늘. 드레싱 다 벗겨졌어요. 찾아간 병실에는 중심정맥관을 고정하는 장치까지 달랑거리고 있었다. 그럴 것 같았어서 테가덤이며 클로르헥시딘을 챙겨서 들어갔다.
직접 하시게요?
네. 언제 오실지 모르겠어서요.
그거 엄청 소독 꼼꼼히 하시던데.
드레싱 키트를 열던 내게 한 말이었다. 늘 이런 식이라는 문장도 지겨워지는 순간. 나는 그 일회용 도구를 쳐다보던 눈을 들어 그를 째려보고 싶었다. 째려보는 건 귀여운 거지. 대체 저한테 하고 싶으신 말이 뭐냐고 묻고 싶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혈압 어디로 재셨어요. 왼팔이죠, 중심정맥관 있는데. 아까부터 이거 하고 있었는데. 원래 안 하는데. 아까 선생님은 다르게 말하시던데. 왜 건드려요. 아. 여기만 하신다면서요. 놀라서 경기 일으킨 거 아니예요? 그 때도. 선생님 오셨을 때요. 가능한 핸들링 안 하길 원함. 원하는 대로 최대한 맞춰 주자고 진료과에서도 확인함.
나는 그 방에서 늘, 내가 그렇게나 무능력한가 하는 생각을 마주하지 않으려 애썼다는 걸 알았다. 저도 알아요, 라는 말?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다리로 재셨을 수도 있으니까요, 가 내 항변이자 그 질문의 이유였다. 그런 말들이 괜히 마음에 고여 서러웠던 날 보호자는 그렇게 말했다. 예민하다고.
처치전담 선생님들 식사하러 가셔서 언제 오실지 몰라요. 덧붙여만 놓을게요.
..
여기 좀 잡아주세요.
그것까지 다 떼시게요?
냅두면 안될 것 같은데요. 여기 덧대려고 한 거예요. 잡아 주세요. 이쪽.
뗄 생각이 있었든 없었든 나는 그냥 하지 않기로 했다. 뭐든, 뭘? 뭘 지웠을까. 가지고 들어갔던 물품의 대부분을 쓰지 않고 거기 버리고 나왔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대로 처치팀을 기다리다가는 분명 스테이션에 나와서 언제쯤 해주시냐고 물어댈 사람이었다. 묻는 건 둘째치고 저 드러난 부분으로 감염이라도 되면? 그 새 또 경련하느라 한바탕 난리를 치르다가 그 덜렁거리는 게 다 빠져 버린다면?
나는 그 날 울 만큼 울었다. 그 앞에서도, 돌아서서도, 집에 와서도. 당신이 그렇게 찾는 처치전담 선생들, 나처럼 어딘가를 계속해서 뛰어다니고 누굴 닦달하지 않아도 되는 그들은 밥 먹으러 갔어, 아시겠어요? 알아듣길 바라지 않았다. 열받아서 일부러 말했다. 그럼 식당 갔다가 스무디 들고 올라올 그 사람들 기다리세요,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그건 싫잖아. 나도 싫었다. 또 어떤 일들이 나의 잘못이나 그 비슷한 걸로 해석될 여지조차 주는 거.
아빠 또 예민해졌으니 처치 등을 거부하면 하지 말라는 인계가 다시 넘어갔다. 교수님도 알고 있음, 이라고 덧붙어서. 하지 말라면 안 해야 하는 것. 하라는 대로 해 주는 것.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차도는 없는 병세. 이걸 병세라고 할 수 있나? 그냥 그런 상태. 의사들도 싫어했다. 애가 아니고 그 보호자들을. 엄마와 아빠를.
그러나 그들은 나와 내 동료들처럼 이십 분에 한 번씩 그들 얼굴을 보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모두가 이해했다. 이해하려 했다. 저렇게 된 지 얼마 안 됐잖아, 못 받아들이는 거지. 그게 이해였다. 이런 환경에서, 아픈 애들이 수두룩빽빽한 이곳에서 노동하는 우리 선에서의 이해.
나는 그 날 내가 그렇게 멍청한가 싶어 울었다. 그의 태도는 내게 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아내와 통화를 했다. 어, 어. 말은 옛날부터 했어. 하지 마세요, 아파요. 누구누구야, 이거 잠깐만 잡을게. 안 아파. 놀라지 마. 말은 해. 요새 힘들어해. 그렇지. 이거 벗겨져서 다시 하고 있어. 잘하고 있지. 그리고 휴대폰 저편의 여자 목소리. 잘하고 있네. 잘하고 있어. 우리 누구누구, 너무 잘하고 있어.
뭘 잘하고 있지. 그 애는 말한 적이 없었다. 경련을 일으키다가 혀를 물기도 하고 하루에 몇 번씩 초록색 변을 본 기저귀를 갈고 가래를 갈아 줘야 하는 애가 걔였다. 말. 무슨 말?
뭘 잘 해요, 이 친구가? 말을 한다구요? 지금도, 그 냄새와 얼굴이 떠오른다.
공연장. 픽션. 모르는 사람이 없을 그 노래. 정말 사골처럼 십몇 년을 나오는 그 노래. 나는 픽션을 사랑했다. 그냥 그 노래일 수도 있고, 정말 소설. 그 곡이 수록된 앨범. 픽션 앤 팩트. 팩트. 팩터? 요소. 팩트는 사실. 요소. 요소와 사실을 엮어 만드는 것. 픽션. 소설은 현실에 기반하는구나. 나는 어떤 걸 골라 이야기를 만들고 엮나. 원래 소설은 그런 거잖아. 소설? 그러면 내가 보는 현실도 소설 같은 거 아닌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고. 어차피 우리는 다 각자의 현실을 살고 있잖아. 저 보호자, 저 부부처럼.
내가 그 날 그 보호자 앞에서 울먹거린 건 어떤 서사와 전개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인물과 배경은 사라지고 사건만 남아 굴러가는 인생들. 그들에게는 멀쩡했을 때의 모습이 남아있을 큰딸. 이곳에서는, 좋게 말해 예민한 보호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냥 자식이 많이 아픈 안쓰러운 지인일 사람.
누군가 짐을 갖다줬는지 출입문에서 돌아오는 그 보호자의 표정이 낯설었다. 그 친구의 엄마는 당연히 아닐 그 또래의 다른 남자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가, 남에게 저런 인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니.
정맥주사팀 선생님이 나를 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몸이 떨린 건가. 선생님, 아까 그 표정.
네? 선생님 응급하셨던 건 아는데, 아까 정말. 저는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려요. 네?
모르지 않았다. 그 때의 내 표정이 아니고 그녀의 연차와 분노를 참는 착한 사람일 그 모습을. 성정이 다른 사람이었으면 수선생에게 가서 따지고도 남았을 분노. 마스크를 내리고 그녀는 내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리 급해도, 사람을 그렇게 쳐다보시면.
죄송합니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싱콥했다는데? 중앙모니터는 괜찮았다. 어디서? 어떻게? 화장실 가다가? 아니면 그대로? 분명히 그 침상에는 혈압도 산소포화도도 다 보이는 모니터가 있었다. 그냥 무작정 스테이션에 나와 있던 걸 끌고 뛰었다. 그 병실을 향해 달리는데 나에게 물은 거였다. 이거 이렇게 해야 해요? 담당이시죠? 선생님. 제가 지금 좀 급해서요. 나는 정말 그렇게 말했다. 급했다. 이걸 지금 저한테 왜 물어보시는데요. 둘 다 같은 유니폼 입고 있잖아요. 아시잖아요. 어떤 일들이 생길 수도 있는 건지. 그 말들을 모두 대신한 표정이었나.
그녀가 건 사원증의 사진, 미묘하게 다른 디자인. 그녀가 여기서 일했을 세월을 생각하면 내가 맞닥뜨렸던 일 같은 건 몇십 번은 겪었을 사람이었다.
지금 나한테 말 걸기만 해봐, 하는 표정이었어요. 알아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나는 정말 그 표정이었을 것이다. 부끄럽게도. 부끄러운 이유는, 그녀의 짬에 내가 얼마나 우습고 고깝고 어처구니 없었을지 짐작이 되어서.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응급상황 알죠. 그런 표정 안 해도 되잖아요.
인상을 찌푸렸던가? 그럴 여유는 없었다. 내 눈에서 그런 걸 읽었겠지. 모멸? 멸시? 뭐 여튼 멸 자가 들어가는 것들과 비슷한 것.
애는 괜찮았다. 침대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회진 다녀가셨는데 애가 어, 아파, 하면서 팍 누웠어요.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눈을 뜨지 않았다. 때려도 반응이 없었다. 손바닥을 꼬집어 비틀어도 똑같았다. 산소포화도도 심박수도 괜찮았다. 병실로 들어온 차지 선생이 펜라이트로 눈꺼풀을 뒤집어 비추고, 팔을 들어올렸다가 떨어뜨렸다. 눈동자의 반사. 팔이 떨어지는 모양새.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눈을 맞춘 후 눈썹을 살짝 들었다. 그런 거였군. 애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겉보기에는.
노티를 받은 전임의는 아, 걔 또 그러네. 했다. 반응 없다는 거죠? 꼬집어 봐요. 했어요. 디게 아팠을 텐데, 했더니 그녀는 한숨을 쉬다가 웃었다. 간지럽혀 봐요. 아픈 건 잘 참는 것 같으니까. 이어 신경과 교수와 전임의와 주치의인 인턴과 심장분과 교수와 펠로우가 다녀갔다.
그리고 주치의는 정신과로 협진을 냈다. 신경과 교수가, 애는 사실 이런저런 걸 달고 검사를 하고 있을 필요가 전혀 없는, 다 꾸며내는 상태나 다름없으니 정신과에 협진을 내라는 권유를 아주 교양있게 작성한 답을 넣었으니까.
정말로 간지럽히려 들어간 병실에서는, 그 띠꺼웠던 인턴 주치의와 엄마와 그 여자애가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인턴은 이후 메신저에 삼십 분이 넘게 들어오지 않았다. 알려할 거, 받아내야 할 게 있는데 없었다. 설마 아직까지 이야기하나? 했는데 다른 일이 더 급했다. 어차피 봤잖아. 괜찮은 애잖아. 다행이었다. 다행인가.
다행이었지. 내가 그 처치전담 선생에게 그런 쿠사리를 먹고 고개를 빳빳이 들지 못하도록 만든 일. 애가 정말로 응급했다면 나는 내 무례함을 속으로 항변하려 들었을까? 나는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나?
그런데 그런 게 아니었다. 정말 무서웠다. 어떻게 됐을까봐. 넘어지는 건 그냥 넘어지는 게 아니었고 아프다는 건 그냥 아프다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그건 내 사정이고. 나는 여기서 혼자만 일하는 게 아니었다. 인물, 사건, 배경. 여기서 만난 어떤 일들이 어떻게 나에게 흔적을 남겼는지, 내가 그걸 어떻게 재구성해 기억하고 있는지는 내 배경이니까.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그건 독립적인 사건이라고.
사는 게, 많은 사람들과 얕고 깊게 엮이는 게 그런 사건의 반복이었다. 맥락과 배경을 고려할 필요 없는 사건들의 충돌. 그러기 위해서 만들어진 규칙들. 나는 나 혼자만의 드라마에 빠져 있다가 선을 넘어 우스꽝스러운 인간이 된 거였다. 죄송한 만큼 똑같이 쪽팔렸다.
과연 어떤 드라마도, 소설도 써내지 않고 살 수 있는 걸까. 그 보호자가 간호사와 의사 모두에게는 그렇게 행동하면서 이제는 숨만 붙어 있는 딸에게는 기도를 속삭이고 안위를 보살피며 세심하게 구는 게 소설이 아닐 수가 있나.
여덟 시 반, 짙은 하늘이 물기 가득한 숨을 쉬었다. 벌게졌을 얼굴과 머리가 다 뜨거웠다. 뒷머리는 온통 축축했다. 나는 퇴근했는데, 그 이야기는 유니폼을 벗는 순간 끝나야 하는 건데. 이런 것들은 어떻게 해야 내게 끝일까.
소설. 소설이라. 읽고 싶은 사람에게만 이야기가 되는 그것. 점심때가 지나자 그 애의 정신과 협진 의뢰는 거의 복사용지 서너 장은 우습게 넘길 것 같은 글씨들로 채워졌다. 학교. 친구, 폭력. 할머니, 항암. 병원, 놀아달라는 말. 미안한 마음. 친구. 배구. 테니스. 학교. 교실. 따귀. 엄마. 기절. 그리고 그 모든 문장의 마지막. 누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준 게 처음이라 좋았어요. 누구, 그 의사?
삶에는, 현장에는 때로 너무 많은 것이 엉켜 있어 그 어느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그 글씨로 가득찬 의무기록을 대충 훑고 오더창을 켰다. 고개를 돌려 인턴을 찾았다. 내 말소리가 안 들리는 건지 그냥 못 들은 척 하고 싶은 건지 몇 번은 말을 씹은 그 사람. 이건 나한테나 서사였고 이유였다.
이걸 그 시간에 다 썼다고? 썼는지 녹음한 후에 AI를 돌린 건지 알 수 없는 그 분량. 왜 제 말 무시해요? 왜. 왜 못 본 척해.
그러니까 이건 내 소설이다. 말소리가 안 들렸을 가능성이 컸고, 그냥 이 쪽을 보다가 다른 곳을 본 것일 수도 있고. 내가 그 환자 담당이니까. 무시당하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아리송함. 짜증과 울분이 오더 알림과 모니터 소리와 전화벨과 수술을 다녀온 애가 우는 소리 사이에 부딪혔다. 점심 대신 그걸 문 채 꾹꾹 씹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보호자 앞에서는 말을 바꾸고, 그 말에 내가, 선생님도 그럼 그 보호자 앞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안 되죠, 하자. 사람 좋은 척하는 그 웃음을 지으며 했던 말. 아, 이해를 완전히 잘못 하고 계시네. 이해? 아. 거기서. 그 병실, 보호자, 나. 환자. 그 주치의. 사실상 셋밖에 없던 구성에서 내가 못 알아먹을 말 같을 게 있었나?
그런 그가 환아에게는 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사려 깊게 들어주어서 고마운 사람이었다. 정말로 그랬을 것이다. 정말로, 삼십 분을 넘게 붙어앉아 그걸 다 듣고 기록해 줬잖아. 결국은 뭐든 다 꾸며내는 중이니 니네 과에서 해결해라, 나 다름없는 협진 의뢰였지만.
골라낸 사건들, 쓰러진 척, 숨 못 쉬는 척. 기계와 수치가 드러내는 것으로는 연극적인 행위를 지속하는 웃기지도 않는 청소년이었던 여자애. 어디서나 외면당했던 이야기가, 그 의사 앞에서는 한 인간의 맥락이 되었고 이해의 수단이 되었다. 흔한 사춘기 NP가 아닌, 그냥 그런 일을 겪은 보통의 특별한 사람으로. 그 기록의 마지막 서술이 그렇게 말했다. 이해받았다고. 이해하고, 들어줘서 고맙다고.
드라마에서, 소설에서나, 노래 가사에서만 있어야 우습지 않은 것들이 있다. 회한, 눈물, 우정, 눈빛, 사랑, 온기. 또 뭐가 있지. 사실상 정서와 감정의 대부분. 그리고 사람은, 모든 사람은 각기의 배경을 진 채 그 맥락에서 재구성된 사건을 품고 살아간다. 잔뜩 부대껴 대부분 외면당하면서.
그러다 때때로 빛을 받으면, 아마 그래서 사랑에 빠지고 연민을 느끼고 누군가에게 신뢰 또는 애정 같은 마음을 주게 되나 봐. 드라마는 한껏 묻혀 있다가 이따금씩 연장되며 이어진다. 사건의 집합이었던 괴이하고 흔해빠진 존재들은 그렇게 각자의 배경을 공유하며 비로소 세상 속 인간이 된다.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그 친구의 부모와, 자꾸만 쓰러진다는 그 환아와 그 자리의 보호자와 인턴에게서 본 것처럼. 어디서도 조명받지 못한 파편화된 일화들이 그 의무기록을 통해 다시 사람들에게 향한 것처럼. 내가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다행히도, 불행히도. 같잖지만, 안 같잖은 그 수많은 드라마 속 인물들의 것처럼.
그래서 달리기가 좋다. 나는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 모든 인과관계와 개연성과 이면과 클리셰와 그 비틀림까지도. 잔뜩 울면서 슬픈 드라마를 놓지 못하는 애청자들처럼.
멀끔한 차림새의 사람들 사이에서 한껏 우스워지는 시간. 나에게는 그 무엇 하나 사실이 아닌 것이 없는 활동. 땀, 통증, 지나치는 풍경. 계절의 냄새. 간혹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것들, 매일이 다른 하늘의 색, 습기를 입어 다른 깊이의 조도. 사람들. 사원증을 뺀 후 옷을 갈아입고, 병원과 먼 이곳의 어두운 물가를 돌고 돌면서도 끝나지 않는 그 이야기. 이야기를 만들어낸 나, 그 안의 나.
그러니까 이건 사실 나만의 안 외로운 드라마였다. 어떤 시청자도 필요하지 않고 그만큼 처량하지도, 애처롭지도 않은 유일한 것. 울고 웃어도 화면을 끄고 채널을 돌리면 모두 자취를 감추는 직조된 허구. 그 사건들의 편집본 사이를 지나치고 또 지나치는 거. 달리고, 걷고, 기어야 할 것처럼 숨쉬고, 또 달리고. 지쳐서 호흡을 몰아쉬고.
그리고 나는 이걸 꽤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감당할 수밖에.
마치 그 끊기지 않는 인생들을 그리 관망하고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