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의 배신

렛잇비?

by 이븐도




또는 퀘세라세라.






스타벅스에 플라스틱 빨대가 돌아왔다.

테이크아웃 한정으로. 매장에서는 종이 빨대 소진이 더 급한 건지 보이질 않던데. 그리고 나도 병동으로 돌아왔다. 나이트 오프를 끝내고.


또? A도 돌아왔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는데 알게 됐다. 바닥에 떨어진 플라스타를 줍다가 그 이름이 붙은 지퍼백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걸 봤기 때문이지. 뭐야, 다시 왔어요? 그러니까요. 오늘 왔어요. 아니. 오늘 수술하는 날 아니예요? 수술요? 아니, 연건 가서 한다고 날 받아놨는데. 몰라요. 어떻게 해요. 열이 저렇게 나는데.




B의 목 아래로 온몸을 뒤덮은 상처를 보면 메이플스토리 만화책이 생각났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게 몇 권이더라. 37권? 신판 하나 나오면 반 애들이 다 그 책 주인한테 달라붙어서 빌려 읽고 빌려 읽고 그랬던 것 같다. 그 만화에서나 나오는 색감을 닮은 상처들이었다.


그 만화책의 핑크색, 빨간색에다가.. 가장자리는 시커먼 색. 고기를 구울 때 뒤집어서 불판에 같이 올려 놓는 양송이 버섯. 그 까만 끄트머리. 상처들은 두 가지의 혼종이었다.

오후에, 드레싱 전담팀이 오면 한 시간은 붙들려 있어야 했다. 비명을 지르고 울고불고 난리치며 뻗대는 그 애를 엄마와 함께 붙든 채, 전담들이 그 날의 방법대로 기존 드레싱을 떼내면 사진을 찍어야 했다. 정말 말 그대로 목 밑의 온 피부가 그래서 가끔은 눈물에 일그러진 얼굴이 사진에 찍혔다. 첫날인가는 그 날카로운 울음에 나도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삼 일쯤 지나자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어머, 얘 이렇게 심했어? 나 몰랐어. 야, 꺼. 아, 징그러. 엄청 아프겠다. 그래서 그렇게 울었구나. 야.. 나같아도 울겠다. 어떻게 누워 있어? 드레싱할 때 말고는 괜찮아요. 괜찮은 거 맞아? 이게 병동에서 케어가 돼? PS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 어떡해. 기록을 켜 놓고 다른 팀 담당들이 한 번씩 두런거리면 그 때서야 나도 놀랐다. 그새 익숙해진 거지. 이거 엄청 나아진 거예요. 이게? 아, 그러네. 이게 지난 주야? 애들이라 회복이 빠른가봐. 야, 조심해야겠다. 얘. 니네 팀에 접촉격리 많지 않아? 옮겠어. 얘는 큰일 나겠는데.


큰일. 큰일이지. 근데 그런 것에 일일이 겁만 내고 있기에 병동은 늘 개판이었다. 입사한 이래로, 이렇게 바쁨의 진폭이 줄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냐. 항상 이랬나? 갈수록 고갈되는 기분 같은 게 들었다.

조금 일이 정리되려 하는 오후, 그 애의 비명소리를 배경으로 안돼, 움직이면 안 돼. 나 화낼 거야. 움직이면 다시 해야 돼. 어어, 움직이지 말랬는데, 라면서 팔이며 머리를 붙들고 있다 보면 스스로가 많이 싫어졌다. 싫은 건 싫은 거지. 그게 비록 내가 정당히 해야 할 일이지만. 걔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느라 밀리는 다른 일을 하느라 퇴근이 늦는 건 당연한 거고.




전과된 C와 그의 엄마가 와서 줄자로 간호사들 손목 치수를 쟀다. 며칠이 지나 그들은 병동으로 시도때도 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간호사들을 찾아다니면서 팔찌를 하나씩 내밀었다. 어머니가 직접 만드신 거예요? 너무 예뻐요. 아녜요. 비즈는 우리 C가 골랐어요. 정말? 이거 이니셜도 다 들어가 있어요. 어, 진짜네? 예뻐요. 이거 다 다른 거 쓰셨네. 이거 봐, 내꺼는 이 색으로 돼 있는데? 뭐야, 이 선생님 꺼가 더 예쁜데? 너 나랑 더 친하잖아. 고마워.

그리고 C는 히죽거리면서 웃었다. 원래 저렇게 웃는 애였는지 아프고 나서 저렇게 웃는건지 궁금해졌지만 질문할 수 없다. 그냥 팔찌에 쭉 감탄했다.


누구누구 선생님은 오늘도 안 오셨어요? 아, 그 쌤 내일 데이예요. 오전이나 점심때 오시면 될 것 같아요. 집에 언제 간대요? 조금 있으면 간대서, 빨리 드려야 돼요. 근데 C가 직접 주고 싶어 해서.. 야, 걔 잘못이네. 일해야지. 누가 4일씩 쉬어. 안 그래? 그치, C야? 아니예요. 누구누구쌤 좋은데, 그리고 또 히죽히죽.




D의 모든 치료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겨웠다. 진료과에서는 '유의미한 발열'이 아니면 워컵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호흡기 검체, 혈액배양검사, 소변검사 등등을 거쳐 항생제를 쓰는 그 일련의 과정을 시작하지 않겠다고.

그런데 그건 유의미한 열이 맞았다. 아빠는 요로감염도 아닐 건데 소변검사는 왜 하냐며 잔뜩 불만에 찬 목소리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협조가 도무지 안 됐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나도 지겨웠다. 주치의에게 전달했다. 왜 해야 하는건지 모르겠다고 하시는데 면담 가능하실까요.


D 아버님이 안 하신대요? 네. 열 나서 교수님이 처방 주신 거라고 했는데도 부정적이셔서요. 일단 홀드해주세요, 가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인계를 준 후 그다음날 다시 출근했더니, 정말 모든 것이 다 처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PICC 삽입, 반코, 페노바비탈, 아티반, 맥시핌. 아빠의 표정도 한참 푸닥거리하듯 약을 써대던 그 때와 똑같아졌다. 원래도 그렇긴 했지만 더 그랬다. 그렇게나 병실에 과자랑 간편식을 쌓아 두고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이유를 다시 알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내 병실의 환자가 아닌 A를 굳이 찾아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간병인도 비교도 할 수 없이 나은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상식적인 간병인. 애 밥 잘 챙겨 주고, 이 잘 닦고, 로션 발라 주고, 뭐가 이상하면 귀찮을 만큼 간호사를 찾는 간병인.


너 머리 또 깎았어? 잘생겨졌네. 투블럭으로 머리가 깎여 있었다. 그 며칠 새에 이발을 시켜 준 건가. 꽂고 갔던 비위관은 아예 없었다. 얼마만에 뺐을까. 그 시설에선 이 병원 욕 안 하려나. 근데 딱히 또 갈 데가 없잖아. 그냥 안 아픈 게 와따인데 말이야. A는 재입원 후 며칠을 산소도 안 꽂고 잔뜩 끓던 가래도 그제야 말끔히 없어져서 퇴원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 때 내 담당 병실에 있었을 때는 이런 모습으로 집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으니까. 달리 말하면, 그 때 상태가 그 정도로 안 좋았던 거겠지.




이래서 집에 간다고? 어떻게 가는데? 이걸 엄마가 어떻게 케어해. 말도 안 돼, 라고 우리끼리 인계했던 B는 출근했더니 정말 이름이 없어져 있었다. 정말로 퇴원한 거였다. 엄청나게 많은 드레싱 재료와 스프레이와 연고의 비용을 정산하고서 정말로 집에 간 것이다. 퇴원 직전 한 드레싱 사진을 봤더니, 입원 초기의 것과는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학교에 가는 등의 외부생활은 당연히 아직 불가능하지만 그만하길 대단한 일이었다.


대단? 대단하기는 한 거였지. 한 달 반을 매일 사람 네다섯이 붙어서 사지를 붙잡고 생리식염수 열 통씩을 넘게 부어 가며 상처를 닦고 말리고 또 닦고 말려 만들어낸 차도 아니던가. 물론 그 애도, 엄마도 애썼지만. 엄마가 더 대단했다. 애가 그렇게 우는데도 딱히 무너지지 않았다. 보통은 엄마까지 눈물 짜고 예민해져서 별 것도 아닌 것에 시비를 거는데. 그 속은 어떨지 알 수 없었으나, 치료가 후퇴하지 않고 나름 전진했던 건 정말 많은 게 맞아떨어져서였을 수도 있었다. 다시 안 오기만을 빌어야지. 다시는 그런 상처들이 생기지 않기를.




반 년쯤 전인가 C가 막 중환자실에서 전동을 왔다. 그는 또다른, 흔한 골칫덩이였다. 팔찌를 받으면서도 속으로는 얘가 누구더라, 했었는데. 기록을 뒤져 보니 내 이름도 있었다. 아, 그 때 걔구나. 장갑 억제대만으로는 도무지 통제가 안 되어 무슨 테니스장의 네트 같은 걸 침대에 감아 못 일어나게 해 놨었다. 몸에 있는 걸 다 뽑으려고 하는 건 당연하고, 자꾸 침상 위로 그 모든 수액줄과 기계를 단 채로 올라서려고 해서 꽤 오랜 기간 모두가 애를 썼다.


애를 썼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 지긋지긋했다. 소리지르는거? 울면서 욕하는 거? 깰까 봐 체온 재는 조차 다 가슴 졸이면서 했던 거? 통상 그렇게 입원 중인 애들이 하는 모든 것들을 다 했다. 흔했고 똑같이 지겨웠다.


그 엄마 앞에서 짜증을 참았던 게 기억이 났다. 소리지르며 날뛰려고 하는 애, 팔 하나라도 잘못 뺐다간 정말 위험할 수 있어서 할 수 있는 한 분노를 덜 섞고 애를 붙들려고 했다. 나는 그럴 때 부모들에게 짜증이 났고 화가 났다.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이니까. 어디라도 같이 붙잡아서 못 움직이도록 해야 하는데 하여간 모든 감정이 다 빠진 표정만 하고서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 그 보호자도 그랬다. 안됐다고 생각했다. 짜증났고, 가엾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저렇게 되어 버려서. 이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아들 상태를 저렇게나 못 받아들여서 정말 안됐다고 씹어뱉듯 생각했다.




이거 어머니가 애 재활에 도움된대서 한 거래. 정말요? 어머니가요? 그래. 이거 취미로 하시는 거 아니랬어. 애 활동하는 데 이게 좋을 거 아니야. 고르고, 끼우는 거. 그래서 간호사들 생각해 보면서 해보라고 애한테 시켜서 같이 하시는 거라는데? 나는 그 때 그 뚱한 표정의 그녀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더라. 불쌍하다고, 안됐다고 생각했지.


정확히 말하면 그건 그런 결론이라기보다는 멸시에 가까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 감정이니까. 짜증났고 화났고 꼴보기도 싫었다. 지겨웠다. 다른 애들처럼, 다시는 나아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리고 엄마는 자식을 그렇게 계속해서 손 놓고만 보는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금세 혼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런 걸 이렇게 태세전환하듯 쉽게 느껴도 되는 건가 생각하면서. 팔찌에는 정말 이니셜이 박힌 구슬이 있었다. J와 S. 나를 기억하든 아니든 어쨌든 그 엄마가 치수를 재 간 후 이름을 적어간 그 팔찌.




나이트 때는 D를 담당하지 않았다. 오프가 끝나 다시 병동으로 돌아가면, 온갖 약을 시작하고 떼고 시도때도 없이 그 병실에서 나와 오만 것을 요청하는 그 보호자를 또 봐야 한다. 퇴원은 다시 멀어졌고 모든 게 다시 시작됐으니까. 스크롤이 끝도 없이 내려가는 그 오더창을 보자 벌써 지겨워졌다.


그 병실의 냄새, 수염을 깎지 않은 아빠, 그 눈빛, 회진, 불신의 공기. 몇 달 째더라. 5월, 6월. 어쩌면 4월도 그랬나. 기억나는 모든 상반기에 그 병실과 그 보호자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픈 건 그들이고 피곤한 건 그 아버지인데, 떠올리는 내가 다 피로해졌다. 어쩌지. 레이스 다시 시작인데. 속단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뜻대로, 예상대로, 기승전결 확실한 구조를 가지고 흡족하게 흘러가는 서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걸 숱하게 봤는데도 나는 쓸데없이 지쳤다. 내가 왜 지치냐고. 내가 아파? 내가 걔 부모야? 그냥 똑바로 말해. 지겹다고. 왜 지겨울까. 그러게, 나는 왜 지겨울까.


내가 확대해석하는 것일지도. 그 보호자의 눈빛, 단어, 기류 뭐 그런 것의 속뜻이나 온도를 지레짐작하려 하는 내 탓일지도. 그러니까 지겨운 것이다. 안 해도 되는 일을 구태여 하고 있으니까. 될 일은 될 일이고 안 될 일은 안 되는 건데. 이 구역 안의 모든 일이 그렇잖아.




상반기가 다 끝났다. 제대로 흘러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인생은 제자리에서 도는 것만 같다. 웃긴 일이지. 그건 그냥 병동의 일들인데.


퇴사, 그 단어를 씹어 보다가 생각한다. 퇴사? 왜? 지겨워서? 뭐가? 그건 그냥 일이다. 거기서 끌어온 감정을 다른 데까지 씌우지 말자. 될 일은 될 거고, 안 될 일은 또 알아서 안 된다. 보호자도, 환자도, 병원 돌아가는 모양새도, 병세도. 다 그렇다고. 내 의지를 넣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안 그래?



또 어느샌가 반짝, 하고 해결되어 있거나 돌아와 있을지도 모르지. 너무 몇 년 만이라 아예 새로 등장한 것 같은 그 스벅 빨대처럼. 그게 내 뜻대로 되는 일이었어? 아니잖아. 그냥 그렇게 다시 돌아온 거잖아.른 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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