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고 싶다

정수기 가라사대

by 이븐도





그러기를 1247일.



날이 선선해졌다. 생일보다 더 생일 같다. 일 년이 지났다.

사실은 아무 의미도 없는 날인데 그냥 날짜가 기억나는 날이다. 오아시스 영국 콘서트 티켓팅한 날.

정신차리니 9월이 되어 있던 날.






사실 안 선선하다. 이브닝 출근 때는 등줄기에 땀이 찬다. 미쳐버리겠다. 더워서. 대신 밤에 달리기는 할 수 있는데 지금은 못 한다. 아무튼 할 사정이 못 되고 나는 오늘 즐거워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그냥 자축하기로 했다. 어떻게? 술 한 잔. 진짜 한 잔. 그래서 생일 한다. 축하하면 생일이지, 뭐. 입사한지 천.. 며칠? 1247일.


데이 데이 이브 이브 4일 근무. 그래도 오늘 하루는 휴일이었으니 봐준다. 그러나 내일 하루 쉬고 월요일부터 이브이브이브나이트나이트. 그래서 오늘 나는 즐거워야 한다. 이브에서 나이트로 가는 거? 시간 텀이 좀 있지만 딱히 의미는 없다. 그런 텀은 짧다고.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어제는 9월 발령을 받은 신규 선생님이 인사를 왔다고 한다. 사원증과 근무화를 병원 로고가 쓰인 튼튼한 쇼핑백에 들고 와서 병동 매뉴얼을 받아 갔겠지. 이제 이 병동에는 '신규'라 불리는 인력이 1/3을 차지하게 되었다. 내가 오아시스 다큐멘터리를 보러 가느라 빠진 점심 회식에서는 내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로테이션. 부서 이동. 다음에는 내 차례라고. 그 말만 벌써 몇 달째인지. 근데 가긴 갈 것 같다. 언제 어디로일지 몰라서 그렇지.

근데 그러면 그냥 모르는 거 아니야? 마치 죽긴 죽어, 언제 어떻게일지 몰라서 그렇지. 랑 뭐가 달라. 하핫.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은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으로 변했다. 은은하게 강도가 옅어진 것이다. 젠틀하게. 하지만 색이 좀 다르다. 돈 좀 더 주는 데로 이직할까, 했다. 어디, 아산, 세브? 내가 들은 게 있는데. 못 가겠다. 그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할 것도 아니고.


오늘은, 아, 장기휴직 신청할걸 하는 생각을 했다. 특권층을 볼 때마다 배알이 심히 꼴렸는데 오늘도 그랬기 때문이다. 이 병원 어딘가의 수간호사 무슨 손주, 보호자가 둘 들어와 있는 그 병실. 그녀는 사원증을 찍지 않으면 들락거릴 수 없는 병동 복도 끝 뒷문으로 들어와 수액 줄을 건드려 놓고 보호자'들'에게 이것저것을 말하다 사라졌다. 계속 병동 인계장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기에 우리는 거기에 긴 말을 남길 수가 없었다. 선생님, 이게 무슨 뜻이예요? 하고 신규에게 설명을 요구했더니 그녀의 빽을 봐주던 선임이 귓속말로 이것저것을 이야기했다. 놀랍지도 않았고 그냥 지겨웠다.






신규 때, 3월 1일에 누군가 정형외과 수술을 하러 입원했다. 파업 때가 아니었다. 공휴일. 없어야 하는 레지던트들이 등장해 거의 이틀치에 걸친 수술전후 오더를 한번에 다 냈다. 응급수술은 응급해서만 응급 수술이 아니다. 지위와 직책으로 하나도 안 응급한 질환도 응급하게 만들 수 있었다. 1년 전 했던 생각이다. 오아시스 재결합 콘서트 티켓팅을 장렬히 실패해 갈 때 생각했던 거. 우린 덕이 아니고 돈이 부족했던 거라고. 돈이 덕인가? 했던 것 같은데, 맞다. 근데 그 돈으로도 백 프로 살 수는 없는 게 핏줄이잖아. 어떻게 안 응급해. 돈 위에 직위 학위 .. 위가 아닌가? 여튼 위에, 혈연인데.


레지던트들은 무진 짜증을 냈다. 뭔가 판독을 해야 수술 준비를 마칠 수가 있는데 검사실이 안 하니까. 월화수목금에 이어 토 오전까지만 받는 검체 결과를 노는 날에 띄울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뭐, 사실 이건 다 표면상의 이유고, 본인들도 그 콩알만한 애 하나 때문에 불려 나와서 일해야 하는게 심히 열이 받았겠지. 다 잣까고 수술대와 인력만 빌린 거나 다름없었다. 주치의 컨펌 후 안 보기로 함, 시행 상태여도 한다고 함 등등. 그런 차팅을 몇 개나 남겼는지.




일곱 살 남자애는 그 흔한 자가통증조절기도 안 달고 있다가 그 날에 바로 퇴원했다. 입원과 수술준비와 수술후 회복과 퇴원을 하루에? 안 될게 뭐 있어. 그 정도로 안 아프니까 가능했고 그 애니까 가능했다. 그 정도가 아닌데 이 정도의 대학병원에 입원해 수술? 하나하나 어처구니없지 않은 요소가 없어서 상당히 뭣 같았다. 그런데 나만 빡쳐 있었다. 다른 선임들은 그냥 일을 했다. 멍청하게 화만 난 나를 도와서, 어쩌면 대신해서. 나는 어렸고 멍청했기 때문에.






입사 2년이 지나기 전 이수해야 하는 교육을 나는 전부 몰아서 했다. 신규 때 하나도 안 했기 때문이다. 언제 때려치울지 모르는데 향후 승진? 알 바야? 당장 다음 주에 내가 여기서 자취를 감출지도 모르는데 그 귀찮은 걸 미리 해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기숙사에 살았던 것과 비슷했다. 언제 그만둘 줄 알고 자취를 해, 같은. 그리고 지금 이 집에 1년 반을 살고 있다. 별 변수가 없다면 내년에도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의 인프라가 마음에 드니까. 하지만 또 알 수 없지.


손자, 손녀, 아들, 딸 등등. 보호자가 한 명만 더 들어와 있어도 나는 다른 애의 엄마나 아빠가 컴플레인하지 않도록 절절매며 나가셔야 한다고 설명해야 했다. 룰 브레이커는 따로 있었다. 모 분과의 교수, 펠로우, 뭐 등등. 간혹 간호사 직원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싫었다. 애들 부모가 되면 개진상이든 뭣 같은 진상이든 류를 안 가렸다. 직업이고 나발이고 다 똑같았단 말이다. 사원증을 찍고 들어와 병실을 떠나지를 않았다. 좀 나가라고. 하지 말라는 건 좀 안 할 수 없는 건가? 솔직히 잘 모른다. 그게 이상한 정의감에 불타서였는지 내가 매번 짜치게 반복해야 하는 말들이 다 무효가 되는 순간이라 열이 받았던 건지.



아마 좁은 내 심보에는 후자였겠지. 그 때는 그랬다. 하나하나가 짜증이 났고 화가 나서 때려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멍청이. 그거 여기만 그런 거 아닌데. 병원이 그렇다면 다른 데는 더 심할 텐데. 뭐가? 꼴보기 싫은 걸 보면서 못 본 척 해야 하는 거. 그게 돈벌이야, 바보야.






스테이션으로 돌아오니 다 무슨 프라푸치노 같은 걸 하나씩 먹고 있었다. 너도 이거 먹어, 뭔데요? 누가 사 주셨어요? 응. 너네 팀 누구누구. 아, 안 먹어요. 진짜 안 먹어?


먹었다. 한 시간인가 지나서. 맛있더라. 그래도 용서하지 않았다. 용서? 뭐 잘못했나? 응. 맞지. 입이 두 개고 눈이 네 개였다. 거기다 더해서, 그간 나는 생후 14일짜리 애 엄마 앞에서도 보호자는 1인 상주가 원칙이라고 입이 닳도록 설명하고 돌아섰고, 애는 날개 어딘가를 다친 닭마냥 날뛰느라 부모는 사색이 된 그 현장에서도 역시 또 보호자는 1인 상주가 원칙이라고 말하고 떠났다고.

그런데 그들 앞에선? 보고도 못 본 척 해야 했다. 멋쩍게 웃는 게 몹시 꼴보기 싫었고 역겨웠다. 예의바르게 인사하는 것도 눈꼴이 시었다. 진상들 많을 직종의 부부. 당신들도 알 거 아니야? 그래서 조용히 있는 게 뻔했다. 딴에도 찔려서. 인사? 내가 뭘 말해도 안 믿는 그 눈빛이나 어떻게들 하시지.




하지만 나는 무슨 투사로 거기 있는 게 아니었고 일개 인력이었다. 그래서 그냥 지겨워야 했다. 이제는 화가 나지도 않았다. 이거 먹으면 다 없던 게 되나? 가서 잘 먹었다고 감사인사라도 해야 하나? 라고 고민하다 말았다. 알빠냐. 쌍으로 붙어 있는 거, 몰래 들어와 다 보고 가는 거 입막음해 주는 걸 누가 모르는데. 그래서 쌩깠다. 그냥 할 일 했다. 체온 재고 오더대로 아이오 끊고, 분명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과는 다르게 묶여 있는 수액줄을 다시 만지고. 묻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많이 컸다. 꽤나 뻔뻔해졌다, 충분히.






퇴근길에는 선임이 운전하는 차를 탔다. 함께 탄 다른 선임 하나는 이제 정말 다른 병동으로 떠난다. 오늘이 이곳에서의 마지막 근무였다. 나는 그녀에게 작은 향수를 선물했다. 내가 뿌렸던 것의 용량이 작은 버전. 가방에서 그 냄새가 났던 날 선임은 그걸 맡고 이거 완전 비누 향인데, 라고 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냥 풀 냄새였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렇게 잔향이 남은 것 같았다. 그게 좋다고 말한 건 아니었으나 어쨌든 언급한 거잖아? 고민하다가, 그 일이 생각나 향수를 선물했다. 상품권이나 주기에는 좀 아쉬워서.


그녀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성질을 내거나, 당황하거나, 허둥댈 때 상황을 조용히 정리해 주고 보호자를 물리쳐 줬다. 회로가 쓸데없이 복잡한 나와 달리 의외로 쉽게 일들을 풀었다. 그녀가 떠난다니 벌써 좀 허전했다. 사실은 그 선임을 좀 좋아했다는 걸 알았다.




늘 불안했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아파서 어떻게 시들고 죽어갈지 모르는 존재였다. 그 사실을 피해 뛰고 출근하고 공연장과 휴대폰 속 연예인을 쫓았다. 했다, 아니고 한다,지. 진행형이다. 모든 게 지금도 그렇다. 잘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그 사실은 잔고로 확인했다. 그 액수가 어때서가 아니고 그냥 그 달만큼 곱한 대로 모여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배에는 구멍이 뻥 뚫려 물이 샜다. 잔뜩. 가라앉지는 않았다.


하지만 증거가 사라져서 더 불안해졌다. 언제든 아플 수 있는 보통의 몸뚱이를 가진 거 말고 다른 걸 도둑맞을 순간까지 걱정하면서 살아야 한다니. 그렇다면 더 안간힘을 내서 살아야 했다. 노는 날에는 확실히 즐겁게, 비는 시간에는 다 잊고. 그런데 잘 안 됐다. 나는 내가 한심하게 산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한심하게, 또는 안 한심하게, 가 어떤 건지 묻는다면 정말로, 명확히 답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느낌은 그랬다. 나 뭐 했지. 뭐 하긴 일했지. 일해서 뭐했지. 그냥.. 일한 거지. 그러게.






하나 둘 셋 하면 다 잊는 거여야 했다. 기억해서 뭐 하게. 돈 받으면 끝인 거. 그런데 그 돈 받고 다 잊어야 하는 일들을 잔뜩 하고 있기엔 갑자기 인생이 너무 짧다는 생각도 했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체력이 부족한 나를 탓했고 자제력이 부족한 나를 탓했고 더 빠릿하지 못한 나를 탓했다. 내 인생은 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글쎄. 아닌 것 같던데.


전동, 익파, 세데이션, 도부타민, 앰부, CRE, 경관유동식, 재삽입, 이리터블. 등등. 너무 짙게 만난 단어들이었으나 나랑은 사실 아무 상관 없는, 내 것이 아니어야 하는 것들. 이걸 내 삶으로 가져오자니 찝찝했고 안 가져오자니 그럼 나는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뭐 하긴, 일했지. 일. 진짜 일. 일한 후 집으로 와서는 일한 것들을 잊기 위해 뭔가를 했다. 이러나 저러나 일 같기도 했다.




퇴근 때, 힘들었는지 안 힘들었는지를 가늠하는 지표가 있었다. 지표라기보다는 방증. 대학병원 간호사가 힘든 직업인가? 라고 고민하기 시작하면 그 날은 아마 꽤 힘든 날이었다. 안 힘든 날에는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 나의 개인사를 다 털면 당연히 그렇게 느껴지니까, 이 직업이 원래 그런 건가에 견주어 보는 거였다.


그 일곱 글자만 놓고 보면 뭐 그렇게 '아 꿀빠시네요' 하는 반응은 흔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동료들과 선임들이 다 바닥을 기는 것처럼 절망과 우울 속에서 헤엄치듯 사나 생각해 보면 절대 아니었다. 속사정은 뭐 알 수 없다 쳐도 그들은 그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식이라면 이 병원에 고용된 최소한 몇천 명의 간호사들이 다 칭찬받아 마땅해야 했다. 그런 게 어딨어. 그냥 일인데. 돈 받고 하는 일. 그래. 그럼 오늘 나는 뭐지. 왜 계속 했는데 계속 힘들지. 맨날 똑같은데 어떻게 맨날 못하고 힘들고 늦지, 라고 생각했다. 상반기는 특히 그랬다. 그 생각과 질문에 딱히 답은 없었다. 그냥 증거가 되었다. 오히려 역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날은 힘든 날이라는 역추적. 그런 날은 너무 많았다. 하나하나 꼽을 수 없이 많았다.






9월은 새 국면이다. 의사들이 돌아온다. 이메일로는 병원장의 어떤 말씀 같은 게 와 있었다. 그렇구나. 나 고마운 존재야? 이런 말 좀 안 써 놓으면 안 되나 생각했다. 덜 순화해서? 까고 있네, 생각했지. 아직 덜 컸다. 그런 것조차 스무스하게 넘겨야 하는데. 하지만 그래도 많이 컸다고. 표정 변화 없이 생각만 했으니 된 거다.


진짜 시간이 갔다. 야, 파업한대. 응? 뭐 .. 목요일쯤 돌아오겠지, 하던 게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지금까지와는 또 어떻게 뭐가 달라질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또 어떤 방식으로 집에 늦게 가고 지겹다고 생각하게 될까.




시간이 가서, 싫은 것과 무서운 것을 넘어 지겨워지는 게 늘었다. 다행인가? 병원에서는 만으로 3년을 채우면 한 달간의 휴직을 신청할 수 있게 해 준다. 뭣 같은 근무사정이기에 일 년 전에 신청을 해야 한다. 나는 작년에 올해의 휴직을 신청하지 않았고, 올해에는 내년의 휴직을 신청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래봐야 십 년 정도에 한 달이다.


6월인가 신청을 받을 때,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신청하지 않았다. 할 걸 그랬다고 생각한다. 이제 와서. 어딜 가서 뭘 하고 싶다가 아니고.. 그냥. 그냥? 응. 그냥. 그리고 그 생각이 닿은 이 시점에, 병원은 정말 엄청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아. 쓸만해진 인력이다, 이건가. 나를 내보내는 것보다, 한 달간 월급을 안 주더라도 탈주하지 않도록 잡아놓는 게 덜 마이너스다 이거잖아. 흠. 미친놈들, 대단한걸? 정말 대단해. 어떻게 알았지? 3년을 지나자 나는 퇴사하고 싶다, 보다는 지겨움을 느끼는 인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걸 다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한 달 놀다 오면 그런대로 괜찮아질 상태가 될 거라는 걸.






퇴근길에 역에 데려다준 선임은 내가 쌩신규일 때 운전면허 필기를 시작했다. 당시 출근하는 버스정류장에서 만나 억지로 이야기를 이어가며 그런 일화를 들었던 게 기억이 났다. 몇 시간 전의 나는 병원 앞 그 도로를 거침없이 내달리는 그녀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타부서로 발령이 난 선임을 엄청나게 부러워했다. 다들 병원 자체를 그만둘 생각은 없어 보였다.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이제 그럴 시기는 지났다. 때려치운다기보단 다른 선택을 준비해 떠날 사람들이라는 게 더 어울렸다. 어차피 병원, 임상에 있을 거라면 이곳은 나쁜 곳은 아니었다.


나도 스스로가 놀라웠다. 다른 직종도 아닌 똑같은 병동간호사인데 돈을 더 주는 데로 옮길까, 라는 생각을 했다니. 너 이거 계속 할래? 라는 질문에 예 아니오 어느 쪽으로도 확답하지 못했다. 예전이었다면 미쳤냐, 가 먼저 나왔을 텐데. 적응한 건가. 드디어? 사실 애저녁에 했나, 그런 건?






월화수 이브닝. 어떻게 바쁠지는 모르겠다.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바쁨의 종류는 뭐가 있을까. 기록의 좋은 점이다. 궁금하면 까보면 된다. 내가 써놓은 것들, 남겨놓은 것들, 잊으려 노력해서 진짜로 어느새 다 잊어버린 그런 것들. 찾아보면 된다. 그리고 그 나이트가 끝난 후 역시나 투 오프 다음 데이. 또 월요일 데이. 화요일 데이.


중환자실 전동을 백 프로 받을 것이다. 그리고 또 네 시가 훌쩍 넘어 집에 가겠지. 배고프고 짜증나고 울분 비슷한 게 가득한 상태로. 아마 아침 여섯 시 반 탈의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집에 가고 싶다, 고 생각할 것이다.




오프는 소중하다. 하루짜리는 더더욱.

4일. 원오프. 나는 자축하기로 했다. 그래서 한다. 오늘은 1247일째 되는 날이다. 자정이 지났으니 1248일째. 1248일 동안 출근한 것은 아니나 나는 그 시간을 뚫는 동안 한결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어제 여길 다녀간 그 신규처럼 그 알쏭달쏭한 마음을 품고 캐비닛 문을 열던 순간부터, 오늘 크록스를 밀어넣고 덜 마신 커피를 챙겨 그 선임의 쉐보레에 타기까지. 퇴사까지는 이제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집에 가고 싶다고.


그 병동, 탈의실. 냉장고가 바뀌고 수선생님이 바뀌고 간식들이 골백번 들락날락하고 내가 몇 번쯤 이런저런 이유로 울고 누군가를 뒷담화하고 웃고 집에 갈 택시를 거기서부터 호출하고 속으로 개쌍욕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을 생각. 집에 가고 싶다. 그리고 다음 주, 이번 달 내내도 할 생각. 집에 가고 싶다. 이건 숙명이다. 그만두지 못하는 내 숙명. 귀하지도, 쉽지도, 그렇다고 추앙받을 만큼 어려운 것도 아닌 이 노동을 하는 모두의 숙명. 이걸 1200번 넘게, 그 정수기 아래에 텀블러를 갖다놓고 멍하니 생각한 나를 축하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앞으로도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할 날 역시, 화이팅하자고. 잘?잘 못 살았어. 보면 몰라? 다 엉터리야. 그럼, 대충?그래. 대충 살았지. 개대충 살았어. 보다시피.

하지만 어때. 다 지나갔다. 그리고 지나갈 것이다. 매번 틀림없이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또 이렇게 집에 돌아온 것처럼. 똑같이 매일 한심하고 마음에 안 들고 미치게 하기 싫겠지만 결국 할 거니까.


그래서.

콩그레츄레이션.

순수노동일수만 친다면? 그래도 800번은 이곳에 짱짱히 출근한 내게 콩그레츄레이션.


아무튼 앞뒤없이, 확실히 콩그레츄레이션.








+


병동 탈의실 정수기가 보는 사람들은 늘 다 똑같은 생각 중일 것이다.






그간 읽어 주신 모든 분 감사합니다.

긴 여름 고생하셨습니다. 다가올 가을 화이팅하세요.

사랑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