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

_나 바람 안 펴 이 십새X야

by 이븐도





"더 시킬까?"

"난 그만 먹어도 될 것 같은데."

"배고프다며."

"너 먹게?"

"현아."

"그럼 시키자."

"우리 이혼할까?"

"뭐?"

"알고 있었잖아."

그는 집게를 내려놨다. 나도 가위를 치웠다.

"..너 그거 아니야."

"뭐가?"

"왜 그래."

"뭘?"

"진짜 몰라서 물어?"

"넌 알아?"

"말이 왜 또, 그렇게 가."

"그래서 고기 더 먹을 거냐고."

"이혼할 거냐고 물었잖아."

"나왔으니까, 먹어야지."

"유진아."




나도 몰랐다. 그리고 안다. 모르고 또 알았다. 너무 많은 걸 모르고 살았다는 걸 알았고, 그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몇 달을 함께 병원에서 썩어 줘서? 못 볼 모습, 봐도 되는 모습, 잊어줬으면 하는 모습까지 다 봐서? 맞을지도 모르지. 근데 그게 이유가 되나? 그는 그냥 견딘 것이다. 나를 선택했기 때문에 본인의 삶에 따라온 부산물들을. 그게 사랑인가?


"너도 그게 여자니까 이렇게 나오는 거잖아."

"너, 결혼 전에도 그랬니?"

"모르지."

"..열받게 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내가 뭘."

"여자랑 자는 건 달라?"

"뭐? "

"다르냐고."

"아직 안 해봐서 모르겠다."

"저기.."

아.

"..죄송합니다. 저희 더 안 시켜도 될 것 같아요."

그의 말에 직원은 주문서를 내려놓고 떠났다. 아마 볼만한 구경거리였을 텐데.






"오늘 나가면, 그 사람 만나서 하는 건가?"

"..그러니까 그만하자고."

"뭘 그만해, 유진아. 니가 지금 나한테 이 따위로."

"그만. 그만하자니까?"

"뭘. 너 진짜 이혼하자고 하는 거야? 나한테?"

"응. 그만하자고. 니가 나 때문에 겪고 있는 것들 다. 니 인생에서 치워준다니까?"

"넌 지금 치운다는.. 말이 나와? 나한테 사과하면서 빌기부터 해도 모자라. 아냐?"

"빌까? 그게 바라는 거야? 사과받아야 되지. 너. 그럼 나한테 신경 끌래?"

"나 니 남편이야, 신경을.. 씨. 너 왜 이렇게 사람을 돌게 해."

"그러니까. 이혼해 줄 거냐고 물었잖아."

"야!"

"소리지르지마. 시끄러워."

"언제부터야. 너."

"뭐가? 어디부터 듣고.."

"유책은, 분할은. 이혼이 애들 장난이야? 정신차려. 이번엔 어디서 뭘 보고 또.."

"봐. 난 평생 너한테 그런 사람일 거거든. 방구석에서 뭐에 또 꽂혀서 정신나간 짓이나 골라서 하는 사람."

물잔. 애초에 핑계였을 물. 던질지도 몰랐다. 그걸 쥔 그의 손이 흔들렸다.


"그래서 지금. 니가, 여자랑, 그러고 다니는 게 내 잘못이라는 거야?"

"내 잘못이지. 미안.. "

"이게 미안한 사람 태도야? 야! 이유진!"

"결국은 아니니까. 그리고, 여자를 남자로 바꿔도 달라지는 건 없어. 현아. 모르겠어?"

그는 눈을 감았다. 아까부터였나. 사실?

"그냥, 그만하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응?"

"잘, 생각해 봐. 이혼."

"제발..! 그만하자고, 오늘은."

그는 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다시 튀어나왔다. 덩달아 흔들린 부엌의 등이 다시 움직임을 멈추기도 전에.

눈가에, 한밤중 등만 켜진 사위가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제 너랑 나 둘뿐이구나.






"견뎌, 니가. 견뎠어? 유진아. 내가 너한테 했던 게, 너라서 괜찮았던 게 얼만데. 나.."

"말 안 해도 알아. 고마워. 많이 고마워, 그러니까. 그만 하자고. 나 연애가 하고 싶어, 이제. "

입술을 깨물었다. 연애. 연애만?

"뭐? 이유진. 유진아. 응? 내가.. 뭘. "

".."

"대체 뭘 못했는데, 너한테. 말해봐."

"너 못해준 거 없."

"거기다. 연애? 나랑 한 건 뭐였는데? 너 어떻게.."

"그래서. 이혼하자는 거잖아. 나 니가 많이 고맙고, 사랑해. 그래서.. 진짜 그래서, 여기까지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나 너보다 내 인생이 더 좋아."

".. 너.. 뭐 요새, 뭐가 힘들어, 응? 들어줄게. 내가. 말해봐, 다. 어?"

웃기지. 나도 내가 웃겨. 너무 생쇼긴 하잖아. 하지만.

"힘든 거 없어. 정말 없어. 그냥, 너랑 남이 되고 싶어."

".. 그 여자 전에 또 누구 있었어? 아니면 갑자기."

"갑자기 아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거, 이렇게 서로 참으면서 살지 말자. 응?"

".."

"둘이 아니었으면 안 겪었어도 될 일이 너무 많잖아. 지금 이것도.."

울지 마. 나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제발.

"너 지금, 나 생각해서 그랬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코맹맹이 소리였다. 그가 진짜 울었다.



"현아, 생각해 봐. 내가 미쳤든 안 미쳤든, 그만하고 싶어. 이번처럼 여자가 아니라도 마찬가지야. 나는, 애초에, 결혼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사실 너도 느꼈잖아. 너 그래서 내가 좋았던 거 아냐? 아니라고 못 하잖아."

그는 듣고 있지 않았다. 선 채로 애처럼 우느라.

"그만,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진짜 그만 얘기하자.. 오늘은. 제발. 그만하자."

".. 잘 생각해봐. 알겠지? 나 너 사랑해."

그는 가서 안아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울분. 저건 울분이다. 울분에 가득찬 사람? 아니면, 허탈? 발개진 눈, 시선. 악문 입. 현은 지금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냥 헤어지면 끝날 일이야. 너도, 나도. 우리가, 우리라서 견디는 이 삶도.


바람? 이게 바람인가? 바람이지. 지선이가 남자였으면 현이는 이런 식으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밤중 아파트에서 소리를 박박 지르는 게 아니라, 그 날 거기서 주먹이 나갔을 거고 그 날로 나도 상대도 무사치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냥 그 차이였다. 그리고 나는 지선이, 지석 또는 지훈이었다고 한들 어떤 변수도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혼? 차라리 간단한 방법이었다. 그만하면 되잖아. 겨우 참고 견디는 삶. 그 때 선택했기 때문에 무효화시키면 되는 결정.






"유진아."

"조심해서 다녀. 늦었어."

"너 걔도 사랑하니?"

"술 마셨으면 들어가서 자."

".. 사랑하냐고."

"모르겠는데."

"나한테는 사랑한다며."

"응. 사랑해."

".. 나한테는 이혼이고, 그 새끼, 아니. 그 년한테는.."

"그러게. 모르겠다."

"여자, 맞지. 그 사람?"

"그런 것 같네."

"기다릴게."

".."

"기다려 줄게. 이혼은 다시 생각해 보자. 기다릴게, 내가."

"현아. 이건 걔가 여자인지 남자인지가.. "

"뭐? 야."

"중요한 게 아냐. 그리고 말 자꾸 끊."

"..씨발, 야. 중요해! 어? 남자 여자 결혼해서 부부로 사는데 니가 남자랑 그런다는 것도 아니고, 그게 왜! 도대체 왜! 이혼할 일이냐고! 어? 나 진짜 미쳐버리겠어. 왜 그러는 거야, 나한테. 제발 정신, 아니. 그냥, 원래 없던 일인 것처럼 살자. 응? 나도 너 사랑해. 제발.. 아니면, 너. 그 여자는 연막이고, 진짜 남자 있어?"

".."

"있어? 있냐고? 야!"

"미안해. 너도.. 제정신 아니구나. 나 좀 들어갈게."'

"어디 가. 얘기 마저 해. 응? 얘기하자며, 아깐."

나는 문을 닫았다. 들키지 말았어야 했던 건가? 그렇긴 해.




"문 열어, 문 열으라고!"

그는 미친 것처럼 방문을 두들겼다. 언제 부서질까. 나는 왜 이러는 걸까. 왜긴. 너무 늦게 알아서 그렇다. 전화를 걸었다.

"..언니? 무슨 소리야. 집이예요?"

"선아. 도망갈래?"

"어?"

"우리 둘 다 죽을지도 몰라."

"언니."

"정말이야."






내가 결혼에 바람까지? 부지런했네? 능력도 좋고 말이야.



글쓰기 좋은 질문 642 (큐리어스)라는 책에서 랜덤으로 뽑았습니다. 얼탱없고 재밌는 소스들이 많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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