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빵이 답인가?
하지만 땅바닥은 추버.
검이불루 화이불치. 여기 철학이라고 한다. 사실 철학이라고는 안 써 있고 이 찻집의 생각이라고 쓰여 있다.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 어렵네, 쉽지 않은 것이다. 하나만 제대로 하기도 늘 어려웠을 세상살이. 한 번에 네 개나 해야 한다니. 사실 여섯 개인가?
검소, 누추, 않고, 화려, 사치, 않은. 하여튼 좋은 말이다. 원래 지향점으로는 저런 걸 잡는 거지.
마지막으로 대추를 먹은 게 언제인지 모른다. 한때 엄마는 대추차에 꽂혀서 내내 대왕주전자에 대추차를 끓였다. 그 냄새가 집에서 나는 게 싫었다. 거북스러운 건 아닌데 그렇다고 편한 것도 아니라서. 대추 쌍화차를 시켰다. 여기서는 한약 냄새가 난다. 한의원 냄새. 몇 년 전에 퇴근하다가 웃긴 교통사고를 당해서 몇 달 한의원을 좀 다녔다. 한약 냄새가 났고 따뜻했고 편곡된 재즈를 틀어놨다. 지금 이곳과의 공통점들.
나는 회피형이고 게으른 엉망진창의 완벽주의자다. 내가 그렇게 스스로를 정의한 게 아니라 살아온 흔적이 말해 줬다. 레슨 중에 음이나 박자를 틀리면 뒷부분은 다 엉터리로 쳤다. 선생님이 빨리치지마, 빨리치지마, 박자 딱딱, 사분의 삼 박자! 하면 쪼끄만 주제에 성질은 더러워서 아랑곳않고 빨리 쳤다. 진짜 답이 없었네? 어릴 때부터.
회피형인 거? 애착유형 테스트 하니까 그렇게 나오던데. 어쩔 수 없다. 꼭 그런 검사가 아니라 그냥 사는 양상도 그런 것 같아서. 게으름? 굳이 일화나 증거를 안 끄집어내도 충분하다. 난 늘 그랬다. 세 가지가 함께 가능한가? 쌉가능. 그래서 이렇게 엉망이잖아. 편집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하핫.
로테이션이 반갑지만은 않다. 다시 신규처럼 살아야 한다는 거라서. 퇴근하면 맨날 뭘 정리하고 복기하고의 연속이었다. 모르니까. 그런 식으로 네다섯 달을 살았던 것 같다. 할 걸 안 하고 있어서 찝찝하고 두려울 때의 기분이 있다. 그조차도 회피하고 싶은데 사실 스스로를 속이는 게 쉬울 리가.
나이트 끝나고 퇴근할 때 두텁게 뽑아놓은 그 병동 매뉴얼을 일부러 안 들고 왔다. 어차피 안 볼 것 같아서.. 라기보단 사실 그걸 가져오면 읽어보기라도 해야 하니까. 싫어, 싫은데? 일주일간 나는 탱자탱자 놀 거란 말이야.
짧은 여행도 본가 방문도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날이 많이 추워져서 이제는 위에 다른 걸 하나 입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뛰었다. 사실은 내내 또 회피하면서. 가서 적응 못하면 어떡하지? 당연히 못 하겠지. 거긴 처음인데. 개바쁜데 잘 몰라서 얼타다가 에러치고 사고 내면 어떡하지? 몰라. 그렇게 안 되게 해야지. 근데 그게 되냐고. 다른 생각을 하려고 했는데 아마 안 된 것 같다. 그러다 생각이 죄다 멈춘 건, 한창 달려야 할 구간을 가로막은 알림판 때문에.
공사? 아니, 진짜 하는 거였어? 심지어 내년 6월까지. 아. 내년 6월에 내가 어디서 뭘 하고 있을 줄 알고. 야, 니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우리 일 년간 질리도록 봤잖아. 많이 친해졌던 거 아니야?
역시 뭔가의 소중함을 깨닫는 데는 부재만한 것이 없다. 간사하게도. 일단 나는 그래. 그 구간이 나한테 소아청소년과만큼이나 익숙하고 사실 이젠 많이 쉽고 꽤 가까웠던 곳이라는 걸 알았다. 맨날 반대 방향으로 빨리 지나쳤던 구간을 되짚어 뛰는데 좀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다. 과장이 아니고 진짜로. 여기가 이렇게 되면 난 이제 어디서 정신적 안정을 찾아? 기분 좋은 밤엔 어디로 가? 개떡같은 새벽에는 어디로 가고? 딴 곳은 안 가봐서 모른단 말이야. 이 어둡고 춥고 커다란 데서 어딜 또 가냐고. 나 이제 11월부터 다시 굉장히 불안정해질 거란 말이야. 응? 진짜 어디로 가냐고, 그럼.
짜증났던 건 아니고 막막했다. 그래서 편의점에서 과자를 샀다. 과자들. 해가 다 지고도 남은 시간, 대충 났던 땀이 다 식는 와중에 쫄병스낵과 자갈치와 옥수수빵을 먹으려니 손이 시렸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근데 진짜 그만큼 막막했어, 난. 뛰면 십 분도 안 걸릴 거리를 그것들을 씹으며 어기적어기적 이경실과 조혜련의 유튜브 한 편을 다 들으면서 걸었다. 삼십 분이나 걸렸단 뜻이다. 맛있긴 했다.
공원으로 왔다. 사실 맨날 오던 곳. 내가 헨젤과 그레텔처럼 그 방향으로 다시 향할 수 있는 코스가 있나 찾으려다 어둠이 무서워 포기한 똑같은 곳. 어제와 그제와 지난 주와 작년의 이곳. 대신 운동복이 아닌 청바지를 입고 유통기한이 일주일 지난 샐러드와 포도와 돗자리를 넣은 가방을 메고서. 김밥이랑 유부초밥? 그렇게나 과자를 왕창 먹고서 그런 걸 또 사고 싶진 않았다.
가을날 평일 세 시에 이런 신도시 호수공원에 캠핑의자를 놓고 수다를 떨려면 얼마나 부자여야 하는 걸까 생각했다. 저만치 옆에는 아무튼 학생인 애들이 배달음식을 시켜 놓고 왁자지껄 놀고 있었다. 빠지면 섭한 강아지들도 있었다.
일 년 반 전 이사를 오자마자 주문한 물건 중 하나. 8인용 돗자리. 돗자리란 건 언제나 좀 좁기 마련이잖아. 낑겨 앉을 거면 그냥 길에서 나눠 주면 광고지나 깔면 될 일이다. 커야 했다. 그래서 일부러 큰 걸 샀다. 그리고 딱 한 번 썼다. 두 번인가? 기억나는 건 한 번이니 그게 그거.
다행히 샐러드의 계란과 고기 등등에서 이상한 맛은 안 났다. 무릎을 안은 채 앉아서 내가 늘 내려가던 방향으로 올라가며 뛰는 사람들과 개들과 누워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나도 이제 저렇게 뛰어야 했다. 도시락과 돗자리가 있으니까 소풍이긴 하지. 하지만 주 목적이 따로 있었다. 새로운 러닝 코스 찾기. 겸사겸사였다.
루틴은 루틴이라서 좋은 거였지만 깨질 수밖에 없을 때도 있었다. 아니지, 사실 항상 그런 걸지도 몰랐다. 항상성 유지가 쉬워? 어려워. 세상 모든 게 다 변한다고. 종종 시켜 먹었던 포케집은 9월에 영업을 종료했고 자주 가던 스타벅스는 이 동네에 없는 것도 아닌 올리브영이 되었으며 나는 어쨌든 다시 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다. 질서는 깨지라고 있는 건가? 근데 난 그게 싫은 사람이란 말이야. 게으르기 때문이지. 적응하는 건 이제까지 안 하던 일을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해야 한다는 건데? 그래서 여행도 달갑지는 않았다. 다 새로운 곳? 좋지. 근데 거기서도 제정신을 차리고 먹을 걸 찾고 경로를 검색해 제대로 도착해야 했다. 난 쉬러 간 건데.
아무튼 공원은 평화로웠다. 맨날 뛰기만 했던 이 거대한 곳에 이렇게 누워 있다니. 경사가 있어서 오히려 눕기에 나쁘지 않았다. 누워서도 하늘과 잔디와 사람들이 잘 보였다. 나한테 소풍은 봉지로 된 과자를 챙겨오는 것까지가 완성이었는데 차라리 잘된 것 같았다. 그 바삭거리는 소리와 자극적인 맛이 깨기에는 아까운 평화여서.
금요일. 딱히 핫한 곳도 아닌 여기.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보다 잔디와 호수 풍경과 늦은 오후 햇빛과 파란 하늘이 더 넓고 컸다. 이어폰을 빼도 시끄럽지 않았다. 오랜만이구나. 알람소리도 지하철 소리도 없는 공기. 나는 집에서도 귀마개를 낄 때가 있었다. 내가 피하려 했던 건 사실 소리가 아니라 지겨운 생활의 리듬 같은 거였나. 조금만 때를 놓치면 일이 다 밀리는 집안일이며 출근시간 같은 거.
가방을 베고 옆으로 누워서 소화기내과 참고서를 봤다. 날이 어두워 안 되겠으니 내일 낮에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루트를 탐색하러 나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린 어젯밤 결제한 것. 다 아는 내용이었다. 원래 그렇지. 보면 다 아는데 말하라면 못 하는 것. 그러니까 사실은 모르는 것들. 학교에서 배운 거고 소아과에서도 지나쳤고 사실 이전 병원에서도 스치듯 공부했던 것. 하지만 이제는 새 병동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뭐 하나라도 잘못하면 '저 선생님 4년차인데 그것도 모르던데? 이거를 어쩌고저쩌고.. 헐? 진짜' 하는 소리를 건너서 듣게 될 것. 회피와 불안을 깨는 법? 실행뿐이지. 몸빵.
태블릿 페이지를 훌훌 넘기다가 하늘에 뜬 우스꽝스럽게 생긴 구름들을 쳐다보고 휴대폰으로 카톡이나 좀 보다가 또 차양 위로 지나가는 개미인지 날벌레를 보다가 또 대충 읽기를 반복했다. 역시 땅바닥이라 어쩔 수 없이 축축한 흙바닥 사이로 올라오는 냉기를 낭만이 이겨버리지 못한 때까지.
게으름과 완벽주의 두 가지가 합해지면 삶이 뻑뻑하게 굴러간다. 실행은 느린데 기대치는 높아 어쩌면 영원히 불행하기만 한 불쌍한 일상을 살 수도 있는 거라서. 거기 회피 한 스푼 추가? 총체적 난국이지. 하고 싶은데 하기 싫고 그러는 스스로를 외면하고 싶고 또 그런 자신을 모른척하고 싶고의 연속이니까. 와우. 근데 내가 그렇다.
정해 놓은 것에는 미련할 만큼 집착했는데 그게 깨지면 세상이 망한 것처럼 울적해했다. 그러다 잔뜩 과자나 먹고 그런 거지. 많이 나아진 거지만, 이것도. 달리기를 하면서. 아니, 그러니까 그 달리기. 내가 늘 회귀할 곳이었던 정화 시스템. 뛰지 못하는 게 아닌데 그 코스를 반 년을 훌쩍 넘어 못 돈다니 많이 슬펐고 좀 무서웠다.
근데 어떡해, 앞으로는 이제 다시 그 알 수 없어 좀 슬프고 많이 무서울 일의 반복인데. 나는 어딜 가나 같은 곳을 갔다. 스타벅스가 없으면 할리스, 그마저도 안 되면 울며 겨자먹기로 투썸. 아무튼 어디 있든 간에 비슷한 공간인 프랜차이즈들. 친구와의 약속이 아니면 밖에서 식사는 웬만하면 안 했다. 새로운 리스크나 다름없었으니까.
거기가 얼마나 인테리어며 분위기가 감각적인 곳이든 나는 그 새로운 자극들이 무서웠다. 하여간 낯설다고 느끼는 강도가 강했다. 일 년 넘게, 지나가면서 늘 궁금했던 여길 이제야 온 것처럼. 한방차를 파는 건지 아니면 그런 컨셉의 아메리카노 같은 걸 파는 건지 아리송해 보인 카페.
차에서는 엄마가 어릴 때 주던 녹용 맛이 난다. 어제 그러고 돌아다녔더니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아팠다. 정말 약인가봐. 차가 아니라. 새로운 곳을 가고 안 해본 짓을 하는 것. 내일이 기대되는 것. 루틴이 깨지는 걸 두려워하긴커녕 그게 좋은 것이든 불쾌한 것이든 새로운 장면과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특성.
난 아니었다. 그런데 정말 많은 게 변해서. 많은 게 아닌가? 나한테는 그 정도 변화도 크다. 매번 비슷한 디자인의 색만 다른 옷가지며 신발을 바꿔 가며 신고, 안전한 공간 안에서의 자극만을 찾아 여행보다는 공연을 찾고, 정해진 경로 안에서의 변화만을 반기니까.
모든 변화를 좋게만은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 삼십 년 가까이를 그렇게 안 살았는걸. 근데 연습은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안간힘을 써도 안 되는 게 있잖아. 아니, 보수한다고 8개월이나 한다는 공사를 내가 무슨 수로 막아. 사실 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도 좀 두려웠다. 두려웠다는 게 구라 같다면, 심장이 좀 천히 뛰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안 와본 데라서.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까아- 하는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너무 안 경직된, 그래도 살면서 좀 변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에. 뭔가에서 좀 탈피해 보고자 시작한 달리기까지도 언젠가는 무너질 루틴이 되었다는 게 웃기다. 그래서 오늘은 정반대로 달린다. 사실 그 방향에서도 내려오는 사람들이 꽤 있었으나 궁금해만 하고 늘 뛰던 대로만 뛰었다. 한 번도 안 가본 공원 뒤쪽으로 가야 한다.
가봐야 알지. 그리고 안 가면 어쩔 건데. 그만둘 수는 없잖아. 부딪히기. 사실은 그냥 팔자 좋게 잔디밭에 늘어져 있다가 카페에 온 게 다인 하루지만.. 그게 내 지향점이다.
아냐. 이런 걸 단언하지 마.
다 바뀌는 거야. 단정 좀 그만 해.
그래요. 그래서 그냥 오늘 하루가 그랬다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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