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다운 붙들기
예전에 빅뱅을 좋아했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그들이 책을 냈다. 세상에 너를 소리쳐. 학교나 동네 도서관에만 가면 그걸 찾았다. 거기서 태양이 그런다. 화가 날 땐 마음을 가라앉히려 한다고. 가만히 마음을 관찰하듯 내버려두면, 사과 주스처럼 불순물이 가라앉는다고. 아마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대필 작가가 쓴 거겠지만 어쨌든 그 말은 맞겠지. 다른 내용들은 딱히 기억이 안 나는데 그건 아직까지 떠오른다.
작년. 하이라이트 공연에 처음으로 간 날. 나는 멤버 개개인에 대한 첫인상 같은 걸 메모로 남겼다. 말이 콘서트 후기지 그냥 실물을 처음으로 본 충격 같은 거였다. 정확히 말하면 실물이라기보단, 그 실물을 체조경기장의 전광판으로 본 인상이었지만. 윤두준. 정말 매혹적으로 생겼다고 생각했다. 양요섭. 어떻게 저 작은 머리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나 감탄했다. 손동운. 연예인 헤메코를 다 걷어내면 제일 눈길이 갈 사람이라고 느꼈다. 이기광. 열심히 하는 사람이네, 라고 생각했다. 그게 끝이었다.
그는 최근 일본 팬컨텐츠에서 본인의 장점에 대해 '기복이 없다'고 꼽았다. 멋있었다. 나는 늘 그런 사람이고 싶었으니까. 그런 사람이고 싶다는 건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잖아. 그래서 그 때 생각이 났다. 일 년 반 전이나 지금이나 그는 내게 항상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게 어떻게 느껴졌던 건지 궁금했다. 나는 내가 정말 쥐어짜내도 붙일 말이 없어서 그를 보고 그렇게 느꼈다고 은연중에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루에 양치를 여섯 번은 하는 것 같다. 일하기 전, 끝나고 나서. 뭘 먹고 나서. 정말 또 먹고 나서. 집에 와서. 달리기를 하러 가기 전 등등. 냉장고에는 며칠간 먹을 걸 한 번에 넣어뒀다. 똑같은 유리 용기에 든 계란, 밥. 또는 토마토랑 파스타를 넣어둔 거. 병원에 가져갈 도시락은 가벼운 걸로.
향수를 뿌리고, 먹을 걸 싸 다니고, 정해진 걸 먹으려 하고, 빨래가 너무 쌓이기 전에 세탁기를 돌리고. 출근 전에는 설거지를 다 해 놓고. 그래도 일상은 흔들린다. 매번 그렇다. 지난 주 데이 내내 세 시간쯤 자고 출근하다가, 이브닝 전에 여섯 시간을 잤더니 모든 게 매끄러운 느낌이었다. 일정 시간 이상 자야 하는 거, 알지. 그런데 마음처럼 안 된다. 보통 데이 전 근무는 나이트니까.
수선생님은 내가 환자에게 걷어차인 걸 알고는 다른 팀을 보라고 해 주었다. 정말 감사한 처사였지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가장 큰 건, 이렇게 편의를 봐주는 걸 다른 이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하는 것. 인도적 차원의 배려였으나 그런 게 너무 생소해서 낯설었다. 거기다 사람이 아니잖아. 사람이었으면 나도 가만히 안 있었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응수할 수 있으면 사람인데 나는 그에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거기다, 나만 그렇게 일하는 게 아닌데. 사실 모두가 그렇게 일할 텐데 그런 대우 아닌 대우를 받은 기분이라 불안했다. 별개로 한 달 넘게 그를 보다 다른 병실을 담당하니 은근히 열이 받긴 했다. 마가 낀 것도 아니고 어째서 그 병실 사람들만 유독 그런가 싶어서.
나이트 때 차지가 나한테 그랬다. 슈터 내리냐고, 옥시코돈 받을 거냐고. 아니라고 답했다. 나는 그전날까지 그걸 먹었던 환자에게 줄 다른 약을 빨리 받으려 한 거였다. 옥시코돈은 마약성 진통제라 기송관 같은 걸로는 받을 수 없다. 그 때 생각했다. 날 얼마나 등신으로 봤으면 저딴 걸 물어볼까. 나를 맥이려 한 것 같진 않고, 정말 그걸 걱정한 모양이었다. 기분이 뭐 같았다.
광화문에서 신촌까지 달리기, 는 실패했다. 안국역에서 나와 충정로역까지는 잘 갔는데, 저 멀리 보이는 세브란스 검진센터를 연세대 부근으로 착각해 그 방향으로 뛰었더니 결국 또 서울역이었다. 이미 다 아는 구간. 내가 그렇지 뭐, 생각했는데 나쁘지는 않았다. 기분전환이 되긴 해서. 기분은 원래 그렇게 헤까닥 헤까닥 잘도 바뀌는 거다. 아주 즐겁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병원은 여전히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조무사들을 많이 본다. 한 달쯤 되니 개개인의 특성이 보인다. 열심히 안 하고도 아는 척만 하는 사람, 환자가 자길 다른 호칭으로 부르는 것에만 민감한 사람, 어떻게든 다음 턴으로 넘기려고 웃기만 하는 사람. 직종을 떠나 다 똑같구나 생각했다. 그런 게 뉴비인 내 눈에까지 보인다는 것도. 사람의 매력은 정말 제각각이라는 것도 느낀다. 어떻게 그리 알량하게 사람 속여대는 우스운 인간이 애아빠씩이나 되어 있는지도 신기해서. 이어, 본인의 일을 저렇게 대충 하려는 모습은 정말 모양이 빠진다는 사실도 추가.
열심히 한다는 건 그렇게 강점은 아니었다. 나한테는 그랬다. 타고난 게 없어 그렇게 해야만 뭐라도 된다는 거니까. 그래서 그 점은 미덕으로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항상성을 지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내보니 그렇다. 어떤 상황이 와도 그런 스탠스를 지킨다는 것. 그 자리에 있어서 지켜지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물살에도 안 밀려나가게 근력을 키우고 마음을 잡는 순간들. 그런 게 모여서 단단한 태도를 만드는 것 같았다.
기복이 없는 게 없다. 들쭉날쭉한 수면 시간도, 꼴에 예민한 성정도. 도시락을 그렇게 싸놓은 인간답지 않게 나는 일주일 내내 퇴근길에 과자를 몇 개씩 사서 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별로 안 먹고 싶은데 계속 먹었다. 왜 이러나 생각했다. 4년 전에 병원을 관두고 나는 내가 살이 찔 걸 걱정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때 인생에서 가장 적은 몸무게를 유지했다. 그 때 알았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구나. 내가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다른 게 안정되면 굳이 그러지 않는구나, 하고.
아마 평탄한 시기 같은 건 없을 것이다. 출퇴근 전후로 경제상식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있다. 개설한 적 없는 계좌인데 자꾸 보유중이라고 뜨길래 은행을 찾아갔더니, 알 수 없는 설명을 친절하게도 해 주셨다. 알아들은 건 22년 7월에 뭔가를 만들었는데 거기 딸려 있던 거라는 것뿐. 여하간 나는 문맹이었다. 하도 의식하고 지내서인지 오히려 나이가 더 헷갈린다. 스물여덟. 해가 바뀌면 스물아홉. 평생 전월세를 살거나 하우스푸어로 지내거나. 짜여진 루트. 그렇다고 덮어놓고 모른 척할 수도 없는 돈의 세계. 삶의 견적.
언제까지 이렇게 연예인을 좋아할지 모르지만, 내일 콘서트는 정말 하나도 기대가 되지 않는다. 시간이 아깝다. 하지만 이것도 가라앉을 마음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인생도, 노동도 웃기다. 역한 냄새와, 그걸 역하다고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자기혐오까지 참아 가며 번 돈을 생판 남에게 갖다바치기. 원래 이래서 세상 사람들은 우스워하는 건데. 그렇게 연예인 따라다니는 걸 말이야.
마음은, 언제 어떻게든 모양을 바꾸는 것이다. 예전의 많은 날들이 그랬고, 앞으로도 특별히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기분이 내 생활을 잡고 흔들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잘 안 되더라도, 뭐. 이렇게 방향은 잡아야지. 정말이다.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하루이틀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