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difficile

포 미

by 이븐도



몇 번의 죽고 싶다는 날들을 거쳐야 그 날이 올까.

사실 그 날이 뭔지, 내가 뭘 바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나는 애초에 크게 기대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서.


돈을 모아서 하고 싶은 게 있는 것도, 가고 싶은 곳이 가득한 것도 아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 정해 둔 매듭 같은 것이다. 이젠 더 버릴 게 없다. 뭘 더 버려야 하지 생각한다.


근무 중, 퇴근 후. 누구나 휴대폰을 박박 닦는다. 워치를 풀어 알콜솜이 지나간 자리에 방울이 지도록 흠뻑 문지른다. 시계와 워치 등을 다 풀어낸 팔을 팔꿈치까지 씻는다. 더러우니까. 모두 다 더러운 것과 싸우는구나 싶다.



서울 끝자락. 인서울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아니라고 하기엔 또 애매해 어중간한 학벌. 없는 능력치. 그럼 이 정도 월급에 복지는 감지덕지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모른다가 아니고 맞지. 그게 사실인걸. 나를 여기까지, 오늘도 출근에 이르게 한 건 그 사실 하나다.


그렇다고 아주 고마운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 그래. 슬슬 생각한다. 간호사, 간호직원, 간호원 등등. 그 비슷한 뭘로 불리기 시작한지 5년. 근래에 깊게 실감하는 건 이 직업은 절대 그 무엇에도 대체될 리가 없다는 것.

이렇게 지저분하고 소모적이고 성과 없는 일을 대체할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없어서 그렇다. 그러느니 그냥 지금처럼 사람을 굴리는 게 가성비가 나을 테니. 나는 이 면허를 가진 이상 굶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쪽에서는 의사가 잘못 낸 오더에 뛰어가 수액을 죄다 버린 후 약국에 연락하고, 저쪽에선 팔다리에 꽂힌 카테터를 조심히 들어 다시 고정하고, 또 어딘가에서는 환자의 헛소리와 보호자의 도돌이표 같은 말에 공감하고 이해해 주고 설명까지 도맡는 일을 누가 대체하는데. 키오스크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고객은 없다. 진짜 인간이 아니면 누가 그 감정 쓰레기통을 해 줘.


내가 이 일을 하기 싫은 모든 이유는, 내가 지금 혼자 조용히 내 공간을 지킬 수 있는 이유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이기도 하고. 그 누구도 안 하려고 하는 일이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라 내가 취직해 돈을 받는 거니까.



나는 앞으로도 수백 번은 그만두고 싶을 것이다.

그러지 않은 날이 없었으니 그럴 것이다. 아마도.

어째서, 왜, 로 시작하는 질문은 오늘은 하지 않기로 한다.


그래도 하나는 있었으면 좋겠다.

십오 분 참으면 마시멜로 하나를 더 준다는 뭐 그런 실험처럼. 하기 싫은 일을 이렇게 버틴 날들이 내 남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멀쩡할 날들에 어떤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길.

인생에서 배신하지 않는 건 그 무엇도 없을지 몰라도, 뭐든 견딘 날들이 그렇게 또 맷집이 되길.




우스운 일이다. 누가 등을 떠민 것도 하라고 종용한 것도 아닌 일. 전적으로, 아주 처음부터 내 생각이었고 선택인 이 일.

견딘다는 말로 귀결해 스스로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앞으로도 매일매일, 매 순간을 그만두고 싶을 나에게 준다.

화이팅. 그만두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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