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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찜과 이지엔과 41

by 이븐도




나는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근황이라기보단.. 이걸 뭐라 해야 하나, 안부? 안부. 딱 하루 전까지 보던 사람. 입원한 며칠간 고혈당이었으면 고혈당이었지 저혈당이 온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제는 왔다. 58. 프로토콜대로 20DW를 주고 당직에게 노티해 수액 용량을 바꿨다. 그러고 퇴근했다.


택시에서 밤사이 혈당 수치를 봤다. 괜찮았다. 딱 그것만은 괜찮아져 있었다. 5시 20분 공항버스였고 비가 왔고 이틀간 7시간쯤 잔 것 같아서 머리가 아팠다. 거기다 나는 비행기를 아예 처음 탔다. 어릴 땐 엄마아빠가 다 해줬으니 그건 안 치는 게 맞았다. 터미널부터 항공사 티켓 확인부터 짐 보내는 것까지 브레이크가 안 걸린 게 없었으므로.






돌고 돌아 숙소에 도착했다. 별 일이 없었다면 여기 시각으로 한 시쯤 오고도 남았을 곳. 네 시였다. 짐을 대충 풀고 샤워도 한 번 하고서 병원 어플에 접속했으나 레이아웃만 뜨고 환자리스트나 병동 목록은 조회가 안 됐다. 접근하지 말라 이건가. 데이터 사용이며 통화와 문자 모두를 기존 유심 모드로 바꿔도 접속이 안 됐다. 그렇게, 입국하는 21일까지 나는 그의 근황을 알 수 없다.



승무원들은 항상 예쁘다. 예쁘고 멋지고 예쁘고 친절하고.. 등등. 모든 좋은 말로 다 수식할 수 있다. 아리따운 그들의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라는 말 이후부터는 어떤 말도 알아들을 수 없고 읽을 수도 없었다. 알 수 있는 건 서브웨이, 세븐일레븐, ATM. 그리고 사람들의 표정과 간장 비슷한 달착지근하고 기름진 공기. 뭔가가 항상 끓고 있거나 조리 중인 편의점. 그래서 어디나 떠 있는 듯한 갈비찜 비슷한 냄새. 신기했다. 내가 모르는 세계도 이렇게 모양만은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었다니. 점심 시간. 공항 유니폼이며 제복을 입은 공항 직원들이 세븐일레븐 김밥을 들고 중국어로 떠들며 지나갔다. 웬 개가 자꾸 짖나 했더니 진짜 마약탐지견이었다. 인천공항과 여기 공항 모두.


머리가 아프고 좀 몽롱했다. 향수 때문인지 못 자서인지 어제 저녁쯤 병동에서 마지막으로 과자 말고는 먹은 게 없어서인지. 냄새가 독하긴 했다. 돈 안 쓰려고 했는데, 나 진짜 사고 싶은 거 없었는데. 이걸 사느니 대만행 왕복 표를 끊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시향지에 남아있던 건 정말 잔향이었고 내 몸에 뿌리고 나니 머리뼈가 아렸다. 나는 여행을 이런 식으로 기대했던 건지도 모른다. 짙은 풀인지 꽃냄새인지 알 수 없는 것. 별로 안 좋아하지만 썩 싫지만도 않은 적당히 낯선 향. 국 지워지지 않을 독한 감각.





거리가 먼 곳이었다. 좌석이 좁았고 옆의 아줌마들은 끊임없이 남편과 교대근무와 여행에 대한 기대와 자식들 이야기를 했다. 고작 두 시간 비행이었고 잠도 안 왔다. 그 소리조차 시끄러워 이곳은 먼 곳이었다. 이십 년 전 미국 가는 대한항공에서는 기내 불이 켜졌다가 꺼졌다가 했었고 열다섯 시간은 잘만 갔다. 물론 그 땐 몸무게가 지금의 반쯤 됐고 나는 징징대지 않고 엄마아빠를 따라다니는 것말고는 할 일이 없었지.


지금의 나는 덩치가 배는 커졌고 독은 머리끝까지 차 있었다. 새벽의 택시기사에게는 화를 냈고 옆의 승객들에게는 그만 좀 얘기해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내 대답을 들었으니 전화를 끊은 거라고 했고 나는 왜 내가 대답을 안 했는데 전화를 끊으시냐고 따졌다. 상대는 운전자였다. 그러나 참기 싫었다. 개 같았다. 나라면 사과했을 말에 아저씨는 끝끝내 본인은 내 답을 들었으니 끊은 거라는 항변을 했다. 아주머니들은 조금 머쓱해하면서 수다를 멈췄다.

다 짜증났고 그런 스스로조차 지겨웠고 불편했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지겨웠다. 두통, 낫지를 않아서 계속 긁게 되는 손등과 손목 위쪽, 생리대 발진 같은 것까지.






보호자는 병동으로 전화를 걸어 투석도 넓은 의미의 연명치료로 보고 있다고 했다. 안 한다는 뜻이었다. 어제까지는 상당히 싸가지가 없었던 주치의에게 그걸 전달했다. 할 일이 많아질 줄 알았으나 아닌 게 됐다. 보호자는 아까 간호사 선생님께 부탁을 드리긴 했는데, 라고 운을 뗐다. 네네. 저기, 애가 고등학생인데 오전에는 학교에서 빼주질 않아서요, 저녁 때 할아버지 얼굴 좀 볼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요.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는 건 아는데 너무 어려우시면.. 어쩌고. 알겠다고 했다. 혹시 수선생이 스테이션에 있는지 살폈다. 있었으면 된다고 못 대답했겠지.



그는 처음에는 고개를 저었다. 오후에 손자가 보러 온대요, 할아버지. 그러니까 이거 하셔야 해요. 입가와 입 안은 피딱지 범벅이었다. 바셀린을 잔뜩 바르고 닦아낼 때도 인상을 찌푸렸고 석션을 하려 하면 고무 카테터를 이로 꽉 물고 놔주지 않았다. 흐릿하게 떴던 흰자를 올려 나를 째려보거나 피 찌꺼기가 까맣게 붙은 이로 에어웨이를 다 깨물었다. 그러시면 이 다 부러진다고 화도 냈다가 빌기도 했다가 다시 윽박지르기도 했다가 부탁도 했으나 노인네 고집은 보통이 아니었다. 고집이 아니고 통증이겠지만. 췌장암이잖아. 얼마나 아프겠어.


아프세요? 아까랑 다르게? 어디가 아프세요, 하는 말에 배 쪽으로 다 부은 손을 가져가길래 질문을 잘못했다는 걸 알았다. 교수님이 아프실 때 드리라고 진통제 처방 내셨어요, 지금 드릴까요. 안 참으셔도 돼요. 하는 말에는 눈을 질끈 감고 도리도리. 아프시다면서요, 하는 말에도 또 도리도리. 조무사와 함께 억지로 턱을 벌려 넣었던 카테터에서는 계속 까만색 가래가 나왔다.






여행 가서 뭐 할지나 좀 생각해야지 하고 출근했었는데, 한 번도 짬이 안 났다. 일요일 데이 원래 할 거 없는데. 느지막이 점심때 지나서야 입원 좀 받고 나면 널널한데. 그러나 수액을 바꾸고 또 수혈을 하고 또 수혈을 하고 이 보호자를 불렀다가 교수를 불렀다가 저 보호자를 찾으러 휴게실로 나갔다가 하다 보니 두 시가 지나 있었다. 아득했다. 이걸 내일 또 다 하면서 이브닝 환자들을 어떻게 보지, 하는 생각에.


하루이틀쯤 남으신 것 같지만 그 이삼일이라도 중환자실에서 항생제 치료를 하시는 게 낫다고 교수가 말했으나 보호자들은 완강했다. 환자를 괴롭히러 중환자실로 보낸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었고, 말이 항생제 추가지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게 너무 많으니 보내고 싶어했던 건데. 병동에서 하실 수 있는 치료로는 더 이상 호전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랬으니까.




중학생인가 싶은 애가 생활복에 후드집업을 입고 왔다. 며칠 전에도 생각했지만 과연 애들이 오기에 적당한 곳인가 싶다. 몰골이 말이 아니니까. 할아버지, 저 왔어요. 할아버지, 많이 힘들어요? 그리고 아마 그는 끄덕한 것 같고. 걔는 쪼르르 복도로 나가 엄마에게 엄마 할아버지 힘들대. 그리고 그의 엄마는 그래, 할아버지 힘들어. 그래서 너 보러 오라고 한 거야. 나는 커튼 바깥에서 모니터를 쳐다보며 소리를 들었다. 힘들지. 너네 할아버지 지금 애기들처럼 자꾸 달아놓은 거 다 떼고 인상 찌푸리고 그래. 힘들어서. 손 보여? 팅팅 부은 거?


목과 갈비뼈는 호흡 한 번에 푹푹 패이는 게 다 보일 정도로 말랐는데 양손이며 다리는 잔뜩 부푼 채 끝이 검붉거나 까맸다. 애는 얼마간 말이 없었다. 얼마나 삶을 멀쩡하고 멋지게 일궈냈든 말년은 원하지도 않는 간호사의 날 선 목소리를 듣고 정신만 말짱한 채 망가진 몸으로 5인실 구석에 누워 있는 거라는 사실. 보였을까?



숭실대 꼭 갈게요, 누구랑 안 싸울게요. 그 말을 두 번 했다. 아마 할아버지는 그 자리의 걔가 서울대 의대를 가든 대학 문턱도 안 밟은 채로 살든 그 애를 영영 보고 싶어할 것 같은데. 멀었다. 정말로 언제 죽어 버릴지 모르는 그와 숭실대라는 단어의 거리가. 한 번 중간에 나오길래 더 안 봐도 되겠어요? 했더니 애는 고개를 주억거리다 다시 들어갔다. 그러더니 안에서는 물티슈를 부시럭거리며 꺼내는 소리가 났다. 안 울기가 더 힘들지도. 흉하니까.






두 시쯤 컴퓨터 앞에 앉은 후 화장실에 다녀올까 말까 생각했다. 안 갔더니 열한 시에야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지난 주 내내 그랬다. 생리대며 팬티라이너가 다 쓸려서 집에 와서 씻을 때마다 아팠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또 생각했다. 여행 가서는 그 생각을 안 하기로 했다. 어떻게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짜증은 났다. 손등이 너무 가려워서.


명세서를 보는데 입사 일자가 22년 4월이었다. 조금 있으면 4년을 꽉 채우는 기간. 언제까지 이래야 될까 또 궁금했다. 일 시작 전, 지금 안 가면 갈 시간이 없을 것 같으니까 지금 가놓자는 생각. 정말 지긋지긋했다. 비행기 티켓을 예약해 놔서 이렇게 한계치까지 몰린 기분이 드는 건지 원래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또 지겨웠다. 그 슬픈 장면을 앞에 둔 채 8시까지도 내일자 오더 안 내면 주치의한테 찾아가야 하나 고민하는 게. 나는 내가 무른 사람인지 성질이 더럽기만 한 사람인지도 늘 아리송했다, 그래서.






공항에 내려서는 여기 살까, 생각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카드에서 현금을 빼는 것도 편의점에서 과자를 구경하다가 샌드위치를 사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좋았다. 애초에 아무것도 안 해도 돼서. 그냥 될 때까지 걷거나 찾거나 또 카드를 넣었다가 빼거나 헤매면 됐다.


내게 보이는 건 사람들의 표정과 진열된 물건들의 알록달록한 색깔과 바쁜 사람들과 가득한 음식들과 현란한 광고 속 세련되고 잘생긴 연예인들의 얼굴들뿐이었다. 거리에서는 향 또는 재 냄새와 또 들쩍한 간장 냄새가 났고 건물은 죄다 잿빛이었으며 지하철은 넓고 깨끗했다. 행인들은 정말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대화하며 지나갔다. 알 수 있는 건 워, 정도. 한국에서보다 쯔위 사진을 많이 봤고 박신혜와 이동욱과 제시카와 슈화 사진을 심심찮게 마주쳤다.


어디였는지 기억도 잘 안 나는 지하철역에서는 한참을 헤매다 빨간 노선을 탔다.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아닌 버블티 컵이나 밥이나 계란이나 도시락 같은 게 든 비닐봉지가 더 많았다. 낯선 곳이었다. 들리는 소리가 달랐고 보이는 게 달랐고 코로 들어오는 냄새가 달랐다.

이렇게도 시간이 갈 수 있구나 생각했다. 멀고 먼 곳에서, 아무것도 모르고도, 알 수 없는 채로도.




타오위엔. 동먼. 융캉제. 작은 우산과 보조배터리와 르라보 쇼핑백과 캐리어의 무게와 짧은 잠의 위력. 호텔 방의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와 창밖의 눅눅하고 낯선 것들 속에서 잠이 왔다. 이대로 살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또 하면서. 이걸 관두면 뭘 하고 살아야 하나 하는 똑같은 질문을 또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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