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만한 모음집
진짜 별거 아닌 것들.
-
살면서 나 혼자 꾸며낸 일이 멀끔히 돌아간 적이 없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지만 내 캐리어는 영원히 안 보였다. 세상 여행객들 3분의 1은 은색 가방을 쓰는 것 같았다. 인형이며 키링을 이백 개는 가지고 있는데 어째서 하나도 달아놓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근데? 안돼. 이런 험한 세상에 내놓기엔 너무 귀엽고 여리고 부드러우니까.
하여간 진짜 잘못되면 저기로 가서 그냥 다 취소하고 바로 한국으로 갈 계획도 세웠다. 그 길고 짧은 시간 동안 별의별 시나리오를 다 짰다. 기다림이란.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고 사방은 음식 천지였다. 냄새가 그랬다. 삼각김밥도 주먹밥도 도시락도 가짓수가 많았고 뭐가 항상 조리 중이었다. 공항인데. 식당이 아닌데.
아마 드럭스토어 같아 보이는 가게에는 의외로 일본 물건이 많았다. 어디든, 사람 얼굴을 뭐랄까 더 반질반질하고 광나게 보정한 광고가 많았다. 트와이스 투어 영상이 계속 나왔다. 감각이 죄다 강렬했다. 쨍하고 들큰하고 시끄럽고.
-
마트도 아닌 편의점에서 떡볶이떡을 단독으로 팔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흔해빠진 한 바디워시가 거의 두 배 가격으로 팔렸다. 먼 나라가 아니니 당연한 거긴 한데 마주치니 많이많이 반가웠다. 니가 왜 여기에?가 계속 나왔다.
중국에서 광고를 할 정도면 돈을 얼마나 벌까 궁금했다.
이 미친 양극화 자본주의 시대의 사방천지가 연예인이라고.
먹잘알인 사람과 오면 좋을 것 같았다. 대나무 죽 자만 알아봤다. 죽순인 것 같았다. 두리안 맛 감자칩이라니. 레이즈 감자칩이 메인스트림인지 종류가 엄청났다. 멀티팩으로 팔았다면 벌칙게임이라도 하게 샀을지도.
이래저래 신기한 게 많았다.
누가 옆에서 이건 이거고 이럴 때 쓰면 쩐대, 라고 말해줬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다. 이래서 사람은 아는 게 많아야 좋다. 세상을 보는 해상도가 높아지니까.
-
저 포장지에 든 건 다음엔 안 사 먹을 것 같다. 맛이야 어차피 거기서 거긴데?미안하지만 넌 편의점 출신이라구.
주먹밥들은 맛있었다. 저 뿔 모양 빵도 별 거 없는데 맛있었다. 맛알못이라 왜 맛있었는지는 설명 못 한다.
-
가게 분위기가 서촌북촌안국등등 같은 멀끔한 스타일이었는데 그 안의 손님들 옷차림도 비슷했다. 웨이팅해서 먹는 피자?음식보단 그 시간까지 좋은 거. 어디나 사람 사는 건 비슷하구나 싶었다. 저래 둘러앉아서는 뭔 얘길 할까 또 궁금했다. 꽃을 사가고 받을 사람들의 이야기도.
계속계속 챗지피티에게 사진을 보내고 싶었다. 궁금해서.
걔가 다 아는 건 아니다만 해석은 해 주잖아. 모르는 게 좋아서 왔지만 계속해서 찾고 싶었다.
-
왜 막상 카페에서는 쿠키나 케이크를 시키기 싫을까. 모르겠고 아무튼 젤라또를 시켰더니 친절하게 가져다 주고는 스트로베리 오케이? 하셨다. 갖다주고서 묻는 게 어딨어용 하고 물을 수도, 딱히 안 될 이유도 없어서 잠자코 먹었다. 원랜 차랑 딸기케이크가 주력인 곳.
그 독립서점도 좀 비슷했다. 한참을 얘기한 후 책을 세 권쯤 결제하고 나니 중국어를 혹시 아예 못 읽냐고 점원이 그랬다.
노오우, 아이 캔트 리드 애니띵 앳 알. 어떤 의미로 보나 나한테는 그림책이었다. 상형문자 책.
그런 분들 많다고 말하고 점원은 웃었다.
하하. 그런 것도 판매 스킬인가?
-
카페라는 후기만 대충 읽고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죄다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마셨다. 아사히 한 잔에 만 원?
이게 보통인가? 근데 열받는 건 프레첼도 한 쪼가리 안 주는 거. 니네 평점 좋은 가게 맞니.
직원들은 친절했다. 분위기? 글쎄, 이런 데를 고평가해주는 건 대만을 너무 얕보는 거지. 별점 2점 줬다. 속으로.
왜 장사가 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분위기를 잡기엔 어딘가 후져서. 일단 탁자 색이 에러, 여튼.
왜? 왜 되냐고?장사? 왜긴, 나 같은 호구가 팔아 주니까.
-
덕후가 많은 나라 같았다. 남녀노소 -진짜 남녀노소- 캐릭터 인형이 든 투명파우치를 심심찮게 달고 다녔다. 만화 주인공을 본뜬 그런 애들을 소중히 모신 듯한 거.
세상 세련된 느낌으로 꾸며놓은 곳이었는데 한쪽의 컨텐츠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여긴 이런 것도 메이저인가?굿즈가 전부 솔드아웃으로 떠 있었는데 애초 물량을 조금 뽑은 건지 진짜 다 팔린 건지 궁금해졌다.
아. 여기는 플레이브도 지하철역에 광고가 많았다.
-
서점은 어떤 형태든 편안하다. 다 모르는데 편하다. 한국에서는 내가 공허나 우울에 빠져 있을 새가 없다는 걸 느끼게 해 줬다. 여기서도 그럴 줄이야.
나의 무지가 끝을 모르게 넓고 깊었다. 당연하게도.
-
저녁 때면 저런 쓰레기차가 무지 큰 소리로 엘리제를 위하여를 틀며 도로와 골목을 누볐다. 쓰레기봉투를 각자 가지고 나와 그 시각에 맞춰서 제출하는 방식 같았다.
제출 맞다, 그 정도면. 하루 일과에 찐으로 쓰레기 버리기를 추가해야 하는 거잖아. 밖에 나갈 때 들고 나가는 곁다리가 아니고.
7-8시쯤? 외출복, 운동복, 잠옷 등등 온갖 차림의 사람들이 비척비척 줄을 서서 쓰레기를 냈다.
+
-
숙소. 첫날 외관을 직접 보고서는 좀 당황했다. 으레 그 처진 색의 낡은 건물이라. 근데 3일간 불편한 게 아예 없었다. 대만에는 녹물 나오는 데가 간간이 있대서 샤워필터도 가져가 끼웠지만 육안으로는 필터 색 변화도 없었다.
밥. 맛있었다. 둘째날에는 귀찮아서 안 먹었는데 셋째날 먹먹고는 아주아주 후회했다. 어제도 먹을걸, 하고. 밥 최고. 두 그릇 먹었다. 나만 먹었다. 다른 여행객들은 죽이나 과일이나 시리얼 조금.
똑같은 동북아시아가 아니구나 싶었던 게 보통의 밥숟가락이 없었다. 한 할아버지는 죽을 한 그릇 떠 놓고 반찬을 접시에 담아 젓가락으로 천천히 집어먹었다.
한국에서, 에어비앤비든 호텔이든 가보면 좀 킹받는 구석에서 쩨쩨한 포인트가 늘 한두 개쯤 있었는데 여기선 못 느꼈다. 청소도 매일 깨끗이 됐고 생수도 그냥 채워 주고 빠다코코낫만한 비스킷도 항상 채워져 있었다. 일단 내 경제력에서 가본 데가 거기서 거기긴 하지만.
> 시티즌 호텔
- 평일 3박 4일에 여행자 보험 옵션까지 해서 48만원쯤 줬다. 융캉제 부근 호텔들 후기는 대체로 다 괜찮은 것 같다.
++
오는 비행기에서 방송이 나왔다. 타이페이에서 은색 캐리어가 하나 분실됐으니 본인 게 아닌 걸 가지고 계신 승객은 어쩌고. 인천공항에서 짐을 찾을 때도 똑같은 방송이 나왔다.
뭐라도 매달고 다니던가 덕지덕지 붙여야 한다.
나는 운이 좋았던 거지. 무사귀환이 이렇게 쉽지 않다.
*
진짜 사람 사는 거 똑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