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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필 Sep 11. 2021

아무 생각없이

그냥 하는 말이야. 그냥.

초승달은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파란 지구가 아주 빠르지도, 아주 느리지도 않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 마음은 비었다. 오늘도 한 무리의 생각들이 나를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에. 외로움이란 단어가 지겹다. 피곤이 눈앞에 한 겹의 베일을 씌웠다. 나는 활기찬 이성이 다시 나를 지배하기까지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낮은 웅얼거림, 속 언저리에 쌓여있는 정리되지 않은 낙엽들, 눈꺼풀을 잡아당기는 피로. 그것이 뭉게뭉게 퍼져나가 오늘의 토요일을 지었다. 문득 열려있는 하늘과 내 눈이 닿는 순간 내 미래에 어떤 거대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무거운 기대감이 들었다. 책임감과 함께 거대한 바다처럼 깊고 그윽하고 넓은 파랑이 내 마음에도 스며든 것 같다.

 방에 커튼을 살짝 걷고 밖을 바라보자 초승달이 고개를 들고 서 있다. 더 위를, 내가 보는 곳 보다 더 위의 어둠들을 바라보면서 감탄한다. 그 감탄하는 옆얼굴만이 내가 있는 곳으로 빛처럼 유성처럼 떨군다. 어둠에는 무엇이 있기에 그리 고요하고 두려울까.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을까. 말하지 않는 나무들에 대한 두려움은 이제 가시고 없다. 그것도 그렇게 씻겨내릴까.

 오늘 하루는 조용히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생각의 소용돌이를 고이 접어 자루에 묶어두었다. 언젠가는 그 자루를 찢고 나올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아니지만, 비록 지금은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오늘은 망각의 이불을 덮고 세상의 소음이라는 귀마개를 끼고 고이 잠을 청해야겠다.

 세상의 평화가 내 발끝에 닿아 어떤 물결을 내면의 까만 밤에 일으키는 날에는 가슴 가운데가 뻥 뚫리면서 그 속에서 뛰노는 작은 별들이 보일 것이다. 눈 속에 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라 순박하게 빛나는 샛별이 보일 것이다. 그 물결이 사랑으로부터 올지 운명으로부터 올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비밀스럽게 내 기대를 초승달에게 이야기해 본다. 입술로만 이야기하는 말들이지만 입술로만 이야기 하기에 공기를 가르고 그 어떤 말보다 빠르게 닿을 것이다.

 오늘 밤은 소란스럽다. 그 간질간질한 소음들이 좋다. 이 세계에 오직 나만 고립된 것이 아니라고 느껴져서. 나도 만져지는 세상에 속해진 것이 실감 나서.

 나는 고정된 내 눈동자의 화면이 미친 듯이 달리고 흔들렸으면 좋겠다. 생동감 넘치게. 아직 고요가 오기엔 너무 젊다. 너무 뜨겁다. 

 한없이 다채로운 색의 밤 속에서 몇 시간 동안 홀로 걷고 싶다. 외로움이 온몸에 돌겠지만 그렇더라도 말이다. 낯섦도 하나의 익숙함이 될 때는 그런 감정도 무뎌지지 않을까. 나는 단단한 아이스크림이다. 단단하지만 점점 녹아간다. 마음먹기가 가루처럼 부서지듯. 나는 1주일을 주기로 다시 사는 사람이다. 사람보단 피닉스를 닮았다.

 초승달아, 초승달아.

 빛이 떨군다.

 땅에 닿아 죽어간다.

 비명이 없이 눈으로만 슬퍼하는 작별을 마지막으로.


 오늘도 별 하나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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