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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필 Dec 12. 2021

하얀 벽

 나는 그저 날아가고 싶은 것 뿐이에요. 바람에 날개가 희미해지고 내 두 눈이 푸른 하늘에 녹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면 그것이 과연 나쁜 일일까요? 모두가 나를 잊을까요? 아니면 세상이 나와 함께 죽을까요?

 만약 이미 일어난 모든 일들이 그저 '기억', 한 장의 기억이라면, 그래서 나는 바로 어제 태어났더라면 무엇이 달랐을까요?

 나는 아주 길을 잃었어요. 어디도 갈 곳이 없죠.

 한 그루의 나무가 내 마음에 심어져 있는데 100년 동안 나는 그 나무에 대고 바람이 읊는 소리를 속삭였어요. 나무는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죠.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100년의 시간이 지났든 내가 어제 태어났든 그것이 어떤 차이를 만들까요?

 나는 점점 헷갈리기 시작해요. 모퉁이를 돌고 넓고 길게 뻗은 길을 뛰어가죠. 아무도 사실을 알지 못하는 길을 잃은 하늘 아래. 어쩌면 아주 시작부터 아무 길도 없었을 수도 있어요. 누워있는 풀이 대각선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것을 길이라고 헷갈렸을 수도 있죠.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요. 죽음도 삶도 미래도 과거도. 나는 하얀 벽을 바라볼 때면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죠.

 내 얼굴은 하얀 페인트로 칠해졌고 내 입술도 하얗게 덮여졌어요. 무엇이 나를 두렵게 할까요, 무엇이 나를 똑바로 보지 못하도록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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