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려고 공부하진 않았습니다
결혼 초기였다. 명절이었던가 행사가 있던가 아무튼 정확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시댁의 많은 어른들을 만났던 날이 있었더란다. 그날 공부하는 며느리를 소개하며 박사과정 중이라 하니, 많은 어른들이 나에게 공통적으로 하던 이야기가 있었다.
"태어날 애는 머리가 좋겠네"
응??????
뭬야??????
라고 생각했지만 어른들께 그런 걸 티 내면 예의가 아니란 생각에 굉장히 어색한 웃음으로 넘어간 기억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그날 스쳐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으나, 출산 이후 아이를 키우며 6년째 나를 쫓아다니는 말이 되었다. 아니지, 정확히 내 아이를 쫓아다니는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아이는 말이 빨랐다. 말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산후조리를 하던 친정에는 아이 한 명에 그 아이에게 쉬지 않고 말을 거는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외삼촌, 이모 1, 이모 2가 있었다. 아침에 나가면서 안녕, 돌아오면서 안녕, 밥 먹을 때 안녕.... 한 사람당 3번만 말을 해도 총 6명의 사람들이 말을 걸었으니 아이는 하루에 18번의 인사를 받았었다. 아이는 반 강제로 말이 트였다고 보아도 무관할 것이다. 그 정도 상황이면 애가 말을 하기 싫어도 입이 트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콩 심은 데 콩이 난다고, 이과 부모를 둔 아이는 딱 봐도 이과다 싶을 때가 있다.
의도치 않게 엄마 아빠 실험하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이기에 당연히 실험 흉내를 놀이처럼 하곤 한다.
엄마와 아빠가 사용하는 전공 용어의 탓으로 아이 치고 묘한 단어를 많이 쓰기도 한다.
뭐 가령, 타당하지 않다라던지;;;;;;;
무슨무슨 계획이 없다던지...... 혹은 계획이 있냐고 묻는다던지.....
음....... 뭐하냐고 물어보면 실험 중이라고 대답하기도 하고........
이것은 그냥 아이의 가정환경의 특수성일 뿐, 아이와는 무관하다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런 문제의 연장선에 있는 내용으로 아이는 엄마 아빠의 전공서적을 좋아한다. 특히 생물학 전공서적을 사랑한다. 생물학 전공서적은 말이 생물학이지 일단 표지가 동물이다. 게다가 그 안에는 에미 에비가 매우 싫어하는 다양한 곤충 사진이 아주아주 디테일하게 나와있다. 동물과 곤충사진도 많다. 한글을 모르는 우리 땡그리에겐 그저 실사판 그림책일뿐이다;;; 이런 것을 좋아하는 것 역시, 그저 아이가 처한 가정환경의 특수성일 뿐, 아이가 과학에 관심 있다고 판단하기엔 문제가 있다. 엄마 아빠가 과학자라는 직업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 아이가 그쪽으로 노출이 많이 되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에미의 학력이 오픈될 때마다 묘한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요즘 그런 기대 때문에 진심으로 본인이 천재인 줄 알아 심히 피곤하다..)
"어유 엄마가 박사라 애가 똑똑하네!"
"애가 말이 빠른 게 엄마가 박사라 그렇구나~"
"애기 나중에 공부 잘하겠다~엄마가 박사님인데 얼마나 똑소리 나겠어~"
이렇게 아이가 잘하는 모든 것들은 아이의 성과로 칭찬을 받지 못하는 일도 발생하게 된다.
아이에게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저 공부....
아니 엄마가 박사한 거랑 애가 공부하는 거랑 대체 무슨 관계란 말인가!!!!!!
왜 사람들은 엄마의 머리와 아이의 머리를 세트로 놓고 생각하는 것일까?
내 머리랑 애 머리는 분명 별개로 존재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공부는 내가 했지 애가 했나?
이런 소리를 하면 하나같이 어른들이 웃으면서 말씀하신다.
다 뱃속에서 배웠단다.......
아니 쎄가 빠지게 공부한 건 나인데 애가 뭘 배웠다는 건지.....
내가 공부한 게 뇌에 쌓이지 그 뇌세포가 혈관 타고 움직여서 애 머리로 가나?
뭐야 이건!이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그랬다간 사달이 나므로 이런 말은 항상 입 안으로 삼키곤 한다....ㅠㅠ
사람들은 유난히 엄마의 머리를 닮은 아이에 집착한다. 아빠의 머리를 닮을 거라는 생각은 왜 안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빠 머리보단 유난히 엄마 머리에 집착하는 듯하다. 이 문제의 시작은 대체 어디부터일까?
필자는 시작이 여기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매우 오래전부터 시작된 과거의 오오오오오래된 성역할이 시작은 아니었을까....
돈을 버는 아버지, 집안을 보살피는 어머니, 그리고 집안을 보살핀다는 역할에는 아이의 케어와 교육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구조를 우리는 언론매체를 통해 간혹 접하기도 하지 않던가.
인사 청문회에서 늘 자녀 교육에 대해서는 와이프가 알아서 해서 잘 모르신다는 많은 분들.......
다 여기서 나온 역할 배분 탓에 정말 몰랐던 것이 아니었을까?
(필자 아버지를 생각해보면 정말 모를 수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켜켜이 쌓여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아이에 대한 모든 교육은 엄마에게 전담되었을 것이며, 이러한 일은 하다 하다 이젠 뱃속 태아의 교육열로 이어져 왔을 것이다.
아빠표라는 검색에서 대부분 놀이나, 먹는 것이 나오는 반면, 엄마표라는 검색어에서는 유난히 교육에 관련된 키워드가 함께 나온다. ㅎㅎㅎㅎㅎㅎㅎ
엄마의 머리가 좋아야 아이가 똑똑하다는 어르신들의 생각이 사회의 생각인 셈이다.
검색어만 쳐도 반영되는 게 이런데, 어떻게 사회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과거의 여성교육은 분명 집안을 이끌어갈 후대 자손을 가르치기 위함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성리학 사상이 기본 바탕이 된 조선시대에는 분명 그러했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소혜왕후 한 씨가 작성한 [내훈]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던가. 고구마 100개 한 번에 먹은 기분 말이다. 그런데 그건 조선이고, 지금은 대한민국이 아니던가. 시대가 변하고, 성별에 관계없이 의무교육의 대상이 되어 교육을 받아 유난히 고학력자가 많다는 대한민국이 아닌가? 그런데 왜 아이 교육은 '엄마'의 몫이 되는 것인가? 유전자 반반 내려보냈으면, 애 공부머리도 양쪽 반반으로 닮거나 혹은 랜덤으로 한쪽에 쏠리겠지. 왜 그게 엄마의 몫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되느냔 말이다.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싶다.
필자는 이런 시선이 매우 불편하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이 내 아이에게 쏟아지는 것도 불편하다.
아이는 나와는 별개의 존재다.
공부를 박 터지게 한 것은 나지 아이가 아니다.
공부를 한 지식은 호르몬을 타고 아이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지식은 혈관을 타고 탯줄로 아이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아이 개인의 역량이 유전자의 탓이 되는 것이 묘하게 죄책감을 야기시킨다.
아이에게 잘못된 꼬리표를 선물해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부모를 걸고넘어지는 칭찬은 사실 자녀들에게는 큰 벽이 될 수 있다.
잘난 부모를 두고 산다는 것은 꽤나 피곤한 일이다.
잘해도 그만, 못하면 최악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선은 부모에게도 또 아이에게도 썩 좋은 시선은 아니다.
아이와 부모는 세트메뉴가 아니기 때문이다.
별개의 존재이며, 별개의 인격체인데 이 둘이 영향을 받을 수는 있을지언정 같은 행보를 보일 수는 없다.
그런 일을 하고 싶다면 복제를 했어야지가 맞지 않겠는가?
또한 모두가 잊어버리는 제일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는 엄마나 혹은 아빠가 되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엄마나 혹은 아빠가 되기 위해 존재한 삶이 아니다.
엄마가... 혹은 아빠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사회의 시선은 그저 개인으로 살아온 우리의 삶을 자꾸만 옭아매는 느낌을 준다.
나는 똑똑한 아이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 공부를 한 것이 아니다.
엄마가 아빠가 과학자라 똑똑한 아이가 태어났나 봐요 라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무례한 이야기일 뿐이다.
(또한 아이의 머리에 대한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므로 동의할 수 없다)
우리가 과학자가 된 것은 후대에 유전자를 물려주기 위함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의 부모가 되겠다고 선택한 것은 우리 개인의 선택인 거지 우리의 역량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좀 그만 엮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