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대학원생활에서 배운 교육이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한뒤, 가장 걱정했던 것은 역시 커뮤니티를 통해 알음알음 들어온, 다양한 아이의 숙제들이었다. 아이의 숙제라고 적고, 사실은 부모의 숙제라는 그것들 말이다. 그래서 많이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그 정도의 난이도 있는 숙제는 없어서 마음을 편히 갖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는 학교에서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있다. 숫자를 가르는 개념도 배우고 있고, 공부하기 싫어하던 한글도 의외로 학교에서 즐겁게 배우는 듯 했다. 모든 부모들이 그러하듯 사실 나도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에게 공부를 하게 하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매우 고민했었다.
영어공부를 위해 주변에서는 영어 유치원에 다닌다 하고, 학습지도 다들 기본이다 이야기하고 학습지보다는 학원에 시험을 보러 다닌다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그렇게 준비를 한다는데, 나는 이렇게 아이와 그냥 흘러가는대로 있는 것이 맞을까? 그런 의문이 좀 있었다.
사실 땡그리도 학습지를 하긴 했었다. 학습지를 체험해본 결과, 아이는 처음엔 흥미로워 했지만, 어느 순간 학습지에 흥미를 잃었다. 재미도 없고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아이는 "엄마 그만 하고 싶어. 그만하면 안돼?"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 말을 달고 산 것에는 아이의 성향이 영향을 미쳤다.
많은 아이들이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땡그리는 확실히 6살에 유춘기를 겪었던 것 같다. 이것은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들을 통해 알게된 정보였는데, 아이들은 6,7시에 중2병의 유치원 버전인 유춘기를 겪는 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아이들은 6,7세가 되면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면서 마치 중2병과 같은 자신감 만랩 허세를 뿌리며 다니는 시기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때 건강한 좌절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아이가 성장하면서 큰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아이는 그렇게 유춘기를 겪기 시작했었다. 자신감이 만랩을 찌르게 된 땡그리는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 자신이라 생각하였기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허세를 부렸다. 그 허세는 친구들 사이에서 증폭이 되었고, 증폭된 허세를 장착한 땡그리는 6살에 태권도를 시작하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 태권도가 장착이 되자 아이의 허세는 다시 증폭을 맞이했다. 같은 태권도에 흰띠를 한 친구들 중 몇명이 수학과 한글을 하기 시작하자, 땡그리는 질 수 없노라며 본인도 하겠다 선포를 했고, 그렇게 학습지가 시작되게 되었다.
허세가 얼마나 뿜뿜하던지, 학습지 테스트를 하러 간 땡그리는 자신은 영어도 할 줄 알고 (뭐???) 한자도 하 할 수 있다며 학습지 과목을 4개를 하자고 덤볐는데, 이를 뜯어말려 간신히 두과목 수학과 한글만 하기로 결정하고 돌아왔었다. 결과는 한달만에 모든 것을 그만둔다라는 징징거림으로 돌아왔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양육하며 약속을 한 것이 있었다. 공부는 내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딱히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지 말자라는 약속이었다. 대학원이란 경험을 통해 우리는 공부란 덕질에 가까운 행위이기 때문에, 목표가 분명하고 재미나 혹은 흥미가 없으면 자리에 앉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일단 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은 해야 한다 생각했고, 그것이 우리가 학습지를 해주게 된 계기였다. 시작은 아이가 했으니, 끝 역시 아이가 맺는 것이 맞는데, 우리는 아이가 한달만에 그만두겠단 이야기에 당장 결정을 하지 못하고 고민을 해야 했다.
우리가 무언가를 중도에 포기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대학원에서 둘다 공부를 오래 했다. 목표지향적인 대학원에서 얻은 가장 귀한 경험은 존버가 승리한다는 사실 하나였다. 연구란 오랜 시간과 끈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처음 시작이 미약하더라도 끝은 구색을 갖출 수 있는 것이 과학연구라는 경험치였다. (졸업시 논문의 내용은 학계에서 창대하지 못하다는것이 현실이다. ) 심지어 이런 환경 속에서 오래 지냈기에 우리에게 중도포기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실제 탈대학원을 한 학생들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곤 했다. 탈 과학이란 훌륭한 선택을 했다가 있으면 에이 아깝게 그냥 끝까지 하지 라는 평가??? 이런 다양한 이유로 중도포기에 대한 이미지는 사실 그렇게 좋지가 않았던 것이 아이의 결정을 쉽게 지지하지 못하는 우리의 경험치가 되었달까...
그러한 이유로 고민을 하다, 나는 땡그리에게 질문을 했다. 왜 하고 싶었는지와 그리고 왜 그만두고 싶었는지를 물었다. 아이의 대답은 간단했다. 하고 싶었던 이유는 친구들이 하기 때문이었고, 하기 싫은 이유는 막상 해보니 어려워서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치를 만들어주어야 겠다고 결심을 하고, 아이를 설득했다. 당시 아이는 허세병에 걸려 있어, 무엇이든 당장 시작하면 잘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똑똑하다고 영리하다고 칭찬해준 것은 아이의 허세를 극대화 시켰고, 이로 인해 자신감은 하늘을 치솟았는데, 막상 모든 일을 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포기를 선언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설득했다. 한달만에 누구나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계속 알려주었다. 그리고 한달은 너무 짧기 때문에, 최소한 1년은 해야 하는 것이고, 1년이 힘들다면 6개월은 해보도록 하자고 말이다. 6개월을 한 뒤에도 너무 재미가 없다면 그만두고, 그래도 해볼만 하다면 다시 6개월을 더 해서 1년을 해보자고 아이를 천천히 설득을 했다.
설사 그만두는 일이 있더라도 아이에게 [나는 이걸 잘 못해. 이건 너무 어려워. 난 잘 할 수 없어] 라는 경험치를 만들어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최소한 그만둘때 나는 아이가 [이렇게 하면 할 수 있는 일이야. 나는 조금이지만 이걸 할 수 있어] 라는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아이는 학습지를 1년을 했다. 물론 6개월만에 자신감 넘치던 두 과목은 한 과목으로 줄었지만, 아이는 나와의 약속을 지켜 1년을 학습지를 꾸준히 했다. 그리고 1년이 되자 엄마인 나는 아이와의 약속을 지켜 학습지를 그만두게 도왔다. 그리고 이제 아이는 무엇을 배우건 1년을 배워야 한다는 엄마와의 규칙을 잘 인지하고 이를 바탕에 두고 배우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가끔 우리 부부는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우리가 과연 공부를 길게 하지 않았더라면, 공부는 결국 덕질이라는 대학원에서의 깨달음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다른 이들처럼 우리가 중심이 되어 아이의 공부를 설계하고 이를 해야 한다고 아이에게 밀어붙였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다행히, 우리는 연구가 안될때 공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옥인지를 이미 경험한 바가 있고, 그래서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솔직히 아이가 우리가 의도한 경험치를 정말로 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점점 더 커야 그 경험치가 빛을 발하는 날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교육관은 이 사건 덕에 나름 다듬어지긴 했다.
들어오는 것은 쉬워도 나가는 것은 어렵다는 현실 말이다.
물론 덧붙여, 나는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노력하니 이만큼 할 수 있었어 라는 성취감을 느꼈으면 하는데, 뭐 이런 건 부모의 희망사항인것 같긴 하다.
대학원 시절 탈대학원 혹은 탈과학을 선언하고 싶던 순간이 종종 있었지만,
이를 잘 참고 극복(?)한 덕에 나는 연구의 시작과 끝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에, 이직이라는 큰 산도, 창업이라는 큰 물결도 닥치는대로 헤치며 나가는 것 같다.
내가 대학원을 통해 배운 교육이란, 결국 저런 거였지 않았을까?
시작은 쉬어도 마무리란 어렵고, 세상에 너만 똑똑하지 않고, 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만큼인데,
나름 너의 노력이 너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세상의 진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