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이 과학자에게 끼치는 영향
이미 앞의 글을 통해 예상하였겠지만,
필자의 직업은 연구를 업으로 삼고 사는 생업 과학자이다.
즉, 연구를 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회사원이다.
음... 과학자가 되어 나가는 진로에는 나같이 회사연구소에 근무하는 회사원이 될 수도 있다.
과학자는 꼭 반드시 교수님만 되지 않는다. 세상은 넓고 직업은 많으니깐~!
필자의 전공은 유기화학과 약학으로, 학위과정 동안 표적항암제 개발 연구를 진행하였다.
뭐 이건 다 필요 없고 그래 필자는 이과다.
배우자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뼛속까지 알알이 박힌 이과랄까....
내 신랑조차도 정신 나간 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마는
나의 이과 감성이란....
애정 하는 친구가 벽을 향해 돌진할 때,
F=ma라는 것을 잊었느냐며,
너의 몸에 붙은 가속으로 인해 이 벽이 입을 힘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그따위 개드립을 치는 감성이랄까...
그래 나는 그런 감성이 풍부한 이과인 여자 사람이다.
이런 이과인이 임신을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이과 특유의 논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자신의 배란기와 가임기를 철저하게 계산하여 임신 여부를 판단할 것 같은가?
전혀 아니다. 그냥 촉이 왔다.
이과 특유의 논리적인 모습을 상상했다면 미안하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
그날 아침, 평소 먹던 믹스커피가 구역질이 나서 임신인 것 같았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지만, 마치 실험을 setting 할 때 이 실험은 망했어라는 삘을 받는 것처럼
매일 실험을 하다 보면, 이미 준비단계에서 이 실험은 망했다 혹은 잘될 거 같다는 촉이 반짝반짝 응답하곤 한다. 이것은 실험에 찌든 대학원 생활 4년 차가 되면 받게 되는 신내림으로 그분이 오시면 실험이 되는 날이 있고, 그분이 안 오면 실험이 안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상하게 그냥 임신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인정할 순 없어 곧바로 임신 부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며...
나의 배란기는 정확하였고, 나는 그 배란기를 기똥차게 피했는데 어떻게 이런 똥볼이 걸릴 수 있냐며...
테스트기로 확인하기 전까지 머리를 쥐어뜯었다.
->임신 테스트기는 참고로 아침 소변으로 검사해야 한다. 고로 하루 동안 절망 모드...
아침이 되었다. 테스트기를 확인했다.
망했다. 임신이다......
화장실에서 나오며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졸업.... 포닥..... 멋진 해외생활.... 논문.... 안녕.......
아마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면, 미드에서 보는 것처럼 나는 임신을 유지할지 말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임신을 유지하게 되었을 때 내가 얻는 benefit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야 한국인, 어차피 임신을 유지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임신은 유지한다 치고..
그렇다면 임신을 통해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먼저, 임신을 함으로써 나는 나와 신랑이 불임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사실 우리는 둘 다 같은 직종에 근무하고 있어, 그렇게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무시무시한(?) chemical을 다루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휘발성 유기화합물들을 끼고 산다. 그걸로 지지고 볶고 해서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게 나와 신랑의 주 업무이다. 매년 건강검진과 특수검진을 통해 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다루는 물질이 딱히 좋은 것도 아니란 것도 알고 있다. 또한 유기용매에 노출이 많이 되는 직업 특성상 임신이 쉽지 않은 일이란 것을 안전교육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다음 임신에 대한 기약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즉, 나에겐 biological mother 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었다.
그다음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방송에서 떠드는 안정된 엄마 life? 아이가 주는 행복감? 안정된 가정?
과학자로서 내 인생에서 이건 중요한 건 아니라 딱히 와 닿지 않았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직업 과학인을 꿈꾸던 대학원생 나부랭이인 내가 임신으로 인해 포기하게 될 것들은 무엇일까?
당시의 임신을 축하받고 즐거워하는 일이 영 탐탁지 않았던 것은 이 임신으로 인해 내가 향후 포기하게 될 것들이 늘어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게 발생한 내 촉은 현실이 되어 내가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 나에게 실시간 어플처럼 알림 경로를 보내주었다. 자그마치 10달 동안!
이 자리를 빌려 신이 있다면, 그에게 임신기간 동안 내가 무엇을 포기한 것인지를 생생하게 알려준 점, 참으로 고맙다 못해 눈물이 다 날 지경이란 사실을 강조해주고 싶다.
내가 임신 중 포기하게 된 일들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참고로 출산 후에는 더 많아지게 되었다. (이것은 그냥 대환장 파티...)
먼저, delay 된 내 졸업이 있었다.
나는 이미 임신하던 시기가 박사 3년 차였다. 임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해 졸업 준비를 위하여 토익시험을 다시 봐야 했고, 14년 3월에는 졸업논문 심사를 위한 예비심사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15년 2월에 졸업이 목표였다.
목표를 수정했다. 임신을 했기 때문에 반년 정도는 모든 일정을 미뤄야 했다. 이렇게 사회진출 시기가 강제로 조절되었다. ㅠㅠ 참! 토익시험은 임신인 줄 모르고 이미 접수를 해둔 거라 돈이 아까워 보긴 했는데 임신 초기에 토익시험은 보지 않도록 하자. 임신 초기 아침잠이 많아진 상태에서 토익을 보러 갔다가 숙면 취하고 돌아왔다....(안녕 잘 가 내 돈....ㅠㅠ)
두 번째, 포닥은 어쩔....
원래 내가 세운 인생계획에 따르면 나는 27에 졸업을 하고 6개월 정도 이미 몸을 담고 있던 화학연구원에서 개기면서 포닥을 준비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포닥 1,2년 후 job을 구하여 화학연구원에 컴백하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임신으로 인해 졸업은 반 년 늦어졌고, 정말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내가 원하던 그! 연구소의 그! 포지션이 사라졌다. 사람이 안풀리면 뭘 해도 안풀리더라는 삶의 진리를 깨달았다.
참! 그 포지션을 마지막으로 그 연구소는 신약팀을
해체했다고 전해진다....(안될 놈은 안됨.)
물론 내가 apply 한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저 그 연구소 출신 박사님들이 알음알음 구해준 자리에 추천받아 지원서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생겼는데 그게 내가 임신 6개월 때였다. 하하하.......
그렇게 추천서를 받는 기회는 다른 이에게 돌아갔다. 냉정하게 말해 추천서를 받아 지원하는 것뿐이었다. 그래 그저 추천서를 받아 CV (이력서)를 내는 기회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 CV를 낸다고 하여 내가 그곳에 갈 수 있다는 보장이 있던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추천의 기회조차 나는 임신 중이라 말 한마디 붙여볼 수 없었다.
"되면 바로 와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는데.... OO 씨는 여기 지원이 좀 어렵겠지?"
나는 임신을 해서 애초에 추천할 사람 명단에서 빠졌을 테니까... 집에 와서 일주일을 멍 때리며 울었다. 뱃속에 있던 땡그리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임신부라는 이유로 지원서 낼 기회도 얻지 못한 내가 한심해서 그렇게 속이 상했다. 혹시 나 임신 중인데 기다려줄 수 있는지 물어라도 볼걸... 나 스스로가 위축되어 도전도 못하고 포기한 포닥의 상처는 의외로 오래갔다...ㅠㅠ
셋째, 날아간 학회 참석...
내가 적을 두고 있던 정부출연연구소에서는 해외학회 참석이 상당히 어렵다. 해외학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비용이 모두 나랏돈이다 보니, 돈 쓰는 일에 예민하다.... 그러다 보니 연구생이 해외학회에 참석하는 일이 여간 번잡한 것이 아니다. 하튼 그래서 학회를 한번 가려면 연초에 열리는 회의 때 건의를 해서 윗분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 팀 박사님들이 나를 그래도 ACS (미국화학회)는 한번 가봐야 한다고 추천을 해주신 적이 있었다. 하하하....그런데 임신 중..... 대게 임신 중이어도 장시간 비행기 탑승이 가능하다. 문제는 내가 임신하면서 아팠다 (나는 임신했을 때 아플 수 있는 모든 아픔을 겪은 1인... 이것은 뒤에). 그래서 이것도 기각........
그렇게 해외학회 나갈 기회를 발로 찼다. 참 해외 학회만 참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 해부터 나는 내가 박사 말년 차에 발표하려고 만든 내용으로 여러 개의 포스터를 발표했지만, 교신저자만 가져가고 발표자는 다른 후배들을 시켜서 발표해야 했다. 아파서 아무 데도 못 갔다. (참고로 내가 만든 포스터로 다른 사람이 상도 받는 기이한 일도 겪음)
마지막, 망가진 내 건강...
처음 임신을 했을 때, 나는 이론을 잘 알고 있는 이과인으로 임신에 대한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대학교 1학년 때 일반 생물학 시간에 생식에 대한 공부를 하였으므로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책을 펼쳐 공부를 했더란다.
책을 통해 임신 과정을 정독했고, 병원에서 받은 산모수첩을 통해 대략적인 주의사항 정도는 숙지를 했다.
분명 병원에서도 산모의 나이가 어리고 건강하므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건강상의 문제는 임신 초기부터 시작되었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임신의 시작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먼저 착상혈이란 게 있었다. 쉽게 말하면 임신 초기에 피가 비치는 일이 있었다. 놀라서 달려간 나에게 의사는 임신 초기엔 착상혈이 있을 수 있다고...
그러나 태아는 괜찮다고 했다............ 그럼 나는? 뭐지 이건.... 싶었지만 넘어갔다.
음.... 임신 초기 입덧이 심했다. 고기를 못 먹어서 임신 초기 체중이 불어나지 않았다.
임신 중에 살이 빠지는 기이한 경험을 한 것이다. (아마도 육류와 술을 멀리한 까닭이 아닐까...)
결국 빈혈 증세가 있어서 병원에 갔다. 의사는 또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산모들은 흔히 이렇게 빈혈이 온다고 했다. 그리고 이 정도 못 먹는 걸로는 링거 맞을 상황은 아니라 했다....... 아 이 정도로는 안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참 그리고 여전히 태아는 괜찮다고 했다.
................... 그럼 나는? 난 배고파 죽겠는데? 맨날 토해서 속이 쓰리고 목이 따가운데?????
어쩌겠는가. 원래 애를 가지면 그렇단다...(이걸 말이라고...)
임신 중기가 되었다. 온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에 울긋불긋 반점이 돋아났다. 기겁을 해서 병원에 갔다. 진단을 하더니 [임신성 소양증]이라고 했다. 임신을 해서 생기는 소양증인데 정확한 원인은 임신으로 인한 면역체계의 변화로 추정되며, 유일한 치료법은 출산을 하면 된다고 했다. 결론은 약한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면서 참으란다. 아 그리고 태아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했다.
임신 말기가 되었다. 살이 쪘다. 살이 붙으니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임산부 코골이 시작)
그리고 임신성 고혈압이 왔다. 온몸이 부었고, 혈압이 미친 듯이 치솟았다. 우리 신랑은 나 죽는다 난리 나고 나도 내가 죽을까 봐 무서웠다. 사람이 이렇게 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청난 경험이었다. 진심으로 이러다 애 낳다가 혈관이 터져서 죽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때는 매주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에게 징징거렸다.
음... 역시 의사 선생님은 쿨하게 이야기해주셨다.
임신성 고혈압은 당뇨보다 낫단다. 고혈압은 식이요법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그리고 임신성 고혈압 역시 출산을 하면 좋아진단다.... 그러나 정말 아이를 낳다가 혈관이 터질 수 있으니 예정일에 진통이 오지 않으면 제왕절개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애가 예정일에 나옴.... 결국 자연분만..ㅠㅠ).
참 여전히 뱃속에 땡그리는 무럭무럭 크고 있다고 했다.
음..... 분명히 내가 임신기간 동안 아팠을 때 병원에선 나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의 모든 증상들은 임신으로 인한 것들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임산부들은 모두 겪는 일이다.
내가 겪는 것이 절대로 유별난 것은 아니니 괜찮다.
아이를 낳으면 모두 괜찮아진다.....
참! 초산에 20대인 산모가 이런 일을 겪는 것은 드물다고 했다. 그런데 산모가 젊어서 괜찮다고도 했다...
대체 산모가 젊은 거랑 임신성 질환을 이겨내는 것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사망할 확률이 낮다는 건가.... 란 생각도 했다.
아무튼 출산을 했다. 모든 질환이 없어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나의 기대를 배신하고
소양증은 임신성이란 단어만 사라졌을 뿐 아직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리고 출산 후에도 혈압은 떨어지지 않았다. 살이 빠져도 혈압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아! 맞다. 그리고 살 쉽게 안 빠지던데 누가 애 낳으면 살이 빠진다 하던가.....
내가 살 빼겠다고 먹은 한약값만 100만 원은 될 거 같은데 살 별로 안 빠진다 ㅠㅠㅠㅠㅠㅠ
하튼! 중요한 건 살을 빼건 안 빼건 어차피 한번 높아진 혈압이 쉽게 내려가진 않더라는 것이다.
임신 전에는 정상혈압 범위에서 낮은 쪽에 속했다면 지금 출산 후에는 높은 쪽에 속하게 되었다.
역시 괜찮아지지 않았다.
졸업 미뤄진 게 뭐 어때서!
포닥 지원 못한 게 뭐 어때서!
학회 못 가는 게 뭐 어때서!
임신했을 때 아픈 게 뭐 어때서!
애만 건강하면 되지!
임신 중 있었던 일들이 너무나도 속상하고 억울해서 가족들에게 툴툴거리면 되려 아이만큼 소중한 게 없는데 그런 걸 왜 아쉬워하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아이만 건강하면 괜찮다고, 그리고 나는 젊으니 또 기회가 있을 거라고 위로받았다. 우리 신랑도 나에게 다음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니다. 다음 기회가 없다. 아이가 건강한 것으로는 괜찮지 않다.
내가 화가 나고 분해서 펄쩍펄쩍 뛴 것은 그 기회란 것이 다음은 없기 때문인데, 다들 그 사실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대게 박사급 연구자들이 취업을 할 때 꼭 보는 단서조항이 있다. 시간강사를 하건, 혹은 취업을 하건 반드시 필요한 이력 한 줄이 있는데, 최근 3년간 혹은 5년간의 연구실적이다.
나는 임신으로 인해 1년간의 연구실적이 미비해졌다.
아이를 키우면서 연구실적을 채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제 막 모유수유에서 벗어나 분유를 먹고 이유식을 먹는 아이를 집에 두고 학회에서 발표를 하는 일은 어려웠다.
결국 졸업 전 간신히 Oral presentation 한 번 한 것이 그 해의 처음이자 마지막 발표 실적이 돼버렸다.
임신과 출산으로 1년 반, 이후 아이를 키우면서 또 반년...
무정하게 흘러간 내 시간이 2년이고 나는 최근 3년간의 실적 중 2년을 날려먹고 빠짝 뽑아둔 1년의 실적으로 세상에 나와야 했다. 그런 빈약한 무기를 들고 나와야 했던 과학자로서의 내 삶이 과연 쉬웠겠는가?
그리고 같은 기간에 결혼한 남자 과학자였다면 이런 빈약한 무기가 생겼겠는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이런 현실인데 임신과 출산으로 시간을 보낸 내가 괜찮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나란 사람의 커리어 그리고 향후의 과학자로서의 내 미래...
또 나의 건강...
이러한 것들이 아이 하나가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것으로 모두 "퉁" 칠 수 있는 가치인가?
내가 포기한 것들이 저만큼인데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포기한 것이 별로 없어 보이는 신랑을 보며 약이 오르는 것은 내가 성격이 나쁘기 때문인 것일까?
임신기간 동안 나의 건강보다 태아의 상태가 우선시 되는 진료가 과연 정상적인 게 맞을까?
그리고 이게 억울하고 분하다 느끼는 것은 비단 나만일까?
이런 현실을 겪었기에 성공한 여성 과학인만 조명하는 세상이 떨떠름해 보인다.
지금보다 더 척박한 현실 속에서 임신, 출산 육아를 극복해야 했던 그들이 훌륭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삶이 치열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 우리의 선배들은 분명 치열하게 살아왔다.
다만, 그렇게 성공한 이들이 소수라는 것은 오히려 이런 것들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는 증거가 되고,
이는 결국 임신-출산-육아는 특정 성별이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증명하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 더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 그래야만 그들의 성공이 의미하는 바가 더 커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언젠가 이러한 것을 극복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냥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나 같은 엄마 과학자가 많아지는 세상을 꿈꾼다.
회사에서 출산휴가를 썼다는 이유로 근무일수가 모자라다며 승진에서 누락되지 않고,
임신해서 아플 때, 원래 임신하면 그런거라고 아이만 괜찮으면 된다고 말하는 세상이 아니길 바라며,
최근 연구실적을 적을 때 육아휴직을 했던 과학자임이 고려되는 세상을 꿈꾼다.
말도 안 되는 꿈이겠지만, 그게 당연해지는 세상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