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출산을 배우면 생기는 일
뱃속에 땡그리가 무럭무럭 크고 있으나 나는 임신중독증에 걸려 위험하던 그 시점..
지도 박사님의 강제 휴가가 시작되었다.
음... 지도 박사님은 배 부르고 중독증에 걸려 빵빵해진 내가 불편했을 테고...(제자를 잡겠다 싶었겠지...)
나는 나대로 지도 박사님한테 미안해서 꾸역꾸역 나오다가..
결국 한 달 먼저 집에서 쉬게 되었던 그 시절...
나는 심심함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휴가가 없기 전엔 음... 출산 전 휴가가 주어지면 쉬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한 일주일이 지나니 잠도 잘만큼 잤고, 뒹굴거리는 것도 다 해서 그런가
심심했다...
그 심심함을 풀기 위해 미드를 돌려보았다.
그림형제, 크리미널 마인드, 성범죄수사대, NCIS 등등 태교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
그렇지만 내가 매우 좋아하는 시리즈를 매일매일 돌려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덧붙여 임신, 태교, 출산에 관련된 서적도 정독하기 시작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필자는 이과...
모든 실전을 경험하기 전 이과에겐 선 이론은 필수!
이를 위해 적절한 서적을 먼저 탐색하여 읽기 시작했다.
한 달의 시간, 나는 책으로 일단 출산을 준비하는 엄마의 자세(?)와 아빠의 자세(?)를 공부해보기로 결정했다.
사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태교 겸 해서 토익을 준비해보겠다고 거창한 결심을 해보았으나,
임신 초기엔 졸려서 영어공부를 못했고 나중엔 배가 나와서 앉아있지를 못했다.
결론적으로 그 몸으로 공부는 좀 힘들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Anyway... 토익은 실패했고, 그래도 할 일은 필요하다 싶어 궁여지책으로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선택지가 없었음)
엄마의 자세, 아빠의 자세를 알아보기 위해 다양한 육아 서적을 찾아보고, 또 수많은 맘카페의 다양한 육아지식과 출산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아름다운 임신에 대한 육아서적의 내용을 5가지로 대충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태교/태담은 매우 중요함. 아이는 뱃속에서 모든 것을 주시하고 있다고 함.
2. 진통이 올 때 토할 수 있으므로 출산 직전 식사는 가볍게 할 것.
3. 초산은 아이가 빨리 나오지 않으므로 진통 간격 5분이 될 때까지 대기할 것
4.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를 비교할 때 자연분만이 산모의 몸이 회복하기에는 더 좋음.
5. 아이의 건강을 위해선 모유수유보다 중요한 것은 없음.
이렇게 요약한 내용을 신랑 (역시 이과)와 함께 discussion 하고,
위의 다섯 가지를 숙지하며, 우리는 출산 이론을 마스터했다고 생각하였으나,
이는 명백한 오판이었다.
태교 및 태담의 경우 제대로 수행해본 적이 없다.
책에서는 아이의 태교에는 외국어가 좋다는 소리도 있었다.
실제 맘카페를 서치 해보면 토익공부를 한다는 임산부들이 꽤 있었다.
아이의 태담이 중요하니까, 아예 외국어 학원을 다니며 아이에게 영어를 자주 들려준다는 그런 엄마들이 있었는데 나는 모성이 부족한 건지 나랑 취향이 맞지 않았다. (왜 굳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기존 포스팅에서 말한 대로 토익시험 보러 갔다가 숙면 취했다...... 따라서 토익공부는 패스....
뭐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나는 공부를 인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사는 대학원생이니 태교책까지 섭렵할 시간은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는 어차피 대학원생이라서 아침에 출근해서 매일 보는 게 영어로 적힌 논문을 보아야 하니 이걸로 퉁쳐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같이 있는 랩이라서 아는 영어를 다 동원해서 문법 무시하고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살고 있으니 이미 영어 듣기는 충분하다고 퉁 쳤다.
(사실 문장 3개가 오고 나면 그날 내 대화는 끝 ㅋㅋㅋㅋ)
매일매일 논문을 보고, 일주일에 한 번 랩미팅을 하고, 또 논문세미나도 해야 하고 뭐 그러는데 태교를 위해 굳이 집에 와서 책을 읽는다는 게 힘들었다. 그리고 태교책은 모두가 알다시피 대부분 동화들이다. 사실 그래서 또 보고 싶지 않았다. (동화책 싫어하는 1인...)
이러고 살다보니 임신하면 누구나 쓰게 된다는 태교일기 따위는 쓰지 못했다.
굳이 또, 변명을 하자면, 집에 와서 태교동화 읽을 힘도 없는데 일기 따윈......이라고 생각해주기 바란다.
태담의 경우 우리 신랑이 해줘야 하는데, 신랑 역시 임신기간 동안 야근 안 하고 빨리 퇴근하기 위해 실험을 몰아쳐서 하고 나를 데리러 오다 보니, 피곤해서 집에 오면 쓰러지기 바빴다. 그리고 태담을 하려면 심적 여유가 있어야 할 텐데 임신기간 계속 아팠던 내 덕에 우리 신랑은 늘 신경이 곤두서서 태담은 고려도 하지 않았다. (신랑은 사실 그 기간 동안 임신으로 인해 홀아비가 될까 봐 무서워서 아이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태교를 위해 좋은 것만 보아야 한다는 그 기준을 충족시키려면 내 사랑 미드와 작별을 고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다. (NCIS를 버릴 바엔 태교를 버리는 걸로... 쿨럭)
일반적인 태교와 태담은 그렇게 실패했다....
두 번째 이론과 실전의 괴리는 진통이었다. 책에서는 진통이 아프다고만 기록되어 있었고 그 아픔의 강도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진통이 오면 산모들 중에는 구토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굉장히 무미건조하게 적혀있었다. 그래서 고민을 했다. 나는 평소에도 체하는 게 잦은 사람이고 기침을 하다가도 토하는... 그런 빈약한 식도와 위장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진통이 와서 몸을 비틀다가 토할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가볍게 씹고 우아하게(?) 전복죽 두 그릇을 먹고 분만실로 갔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은 절대로 따라 하지 말길 바란다.... 분만실에 들어가면 아이를 낳을 때까진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나는 진통을 24시간 꼬박했고, 날짜로는 이틀 정도를 분만실에 머물렀다. 그런데 들어가기 전 먹은 것이 고작 죽.... 나는 극한의 배고픔과 싸우며 진통을 하느라 죽을 뻔....ㅠㅠ 책대로 했다가 된통 당해버렸다 ㅠㅠㅠ
3번 조항 역시 믿지 말자. 분명 책에서 말한 데로 분만 직전이라 하는 진통 간격 5분을 지켰으나 자궁 경부가 열리지 않아서 한참을 고생했다. 책에서는 5분 간격이면 자궁경부가 열려 출산 임박이라 했는데 임박은 무슨...ㅜㅜ
그리고 그 망할 자연분만.....ㅠㅜ
알게 모르게 나는 자연분만에 엄청나게 집착하고 있었다. 젊은 산모에게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엄청난 난산을 겪으며 우리 신랑은 내가 죽을까 무서워 의사 선생님께 울며불며 수술시켜 달라 했다고 했다. 어쩐지 그 정신없는 와중에 의사 선생님은 두 번 정도 나에게 수술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었다. 그런데 내가 미친 건지 나는 의사에게 자연분만이 불가능한 상황이지 물어보고, 의사가 가능하다 하자 그냥 자연분만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 진통 온 와중에 나도 참.... 가지가지...)
어쩌면 나는 자연분만에 대한 환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족들도 자연분만을 해야 한다고 그래야 아이가 건강하다고 계속 이야기를 했었다. 누구나 자연분만이 당연한 거고, 또 아이를 위해서 해야 한다고 하였기에 의문을 갖지 않고 당연히 자연분만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좀 더 솔직해지면 제왕절개가 전신마취 없이 그대로 절개해야 하는 수술이라 들었기에 무서워서 못했다....ㅠㅜ 그리고 제왕절개를 하면 회복기간이 오래 걸린다 들어서 더 도전할 수 없어 그렇게 자연분만에 집착했다.
자연분만만 집착한 것은 아니었다. 책에서 모유수유의 중요성도 엄청 강조하길래 모유수유도 집착했다. 조리원에서 한 일주일은 정말 열심히 두 시간에 한 번씩 수유를 했다. 아이를 안고 아이를 바라보며 수유를 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경이롭고 마음이 따뜻했던지 조리원에서 나오고 산후조리 기간 동안 정말 열심히 해봤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나는 소인가 엄마인가.....;;;;;;;
모유수유는 쉬운 일이 아니다. 모유는 내 호르몬으로 생성되는 것이기에 마음이 늘 평화로워야 한다 했다. 그리고 영양성분을 맞추기 위해서는 내가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했다. 매운 것은 안되고 건강식을 먹어야 하며 커피 불가, 맥주 불가.... ㅠㅜ
그리고 두 시간마다 아이에게 수유를 하려니 너무 졸리고 피곤하고 힘들었다ㅜㅜ 아이를 늘 안고 수유를 해야 하니 어깨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고.....
몸이 망가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결국 수유 시작 한 달도 되지 않아 빠르게 결심했다. 분유와 혼합하기로!
혼합을 결심하고 가족들을 설득한 핑계(?)는 다음과 같다.
- 나는 실험실 종사자이므로 유해물질을 취급하고 있음.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하기엔 내 직업적 환경이 염려스러움. 또 어린이집도 다녀야 함. 따라서 출산휴가기간에만 모유수유를 하고 서서히 분유로 변경하겠음.
사실 핑계는 아니다. 정말 저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임신 기간 동안 기형아 검사에 많이 집착했다. 내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이미 많은 chemical에 노출되어 있었고, 누적된 양은 무시할 수 없으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신랑과 나는 임신기간 할 수 있는 모든 기형아 검사를 했다. 검사의 목적은 우리가 각오를 하기 위해서였다.
혹시라도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더라도 이 아이를 받아들이겠다는 각오였다.
실험실 종사자들이 처한 환경은 과거와는 다르다. 실험실 안전교육 의식이 높아 다들 실험복, 고글, 마스크, 글러브가 기본으로 착용하고 있다. 흄후드도 늘 작동하고 있어서 호흡 독성 위험도 낮다. 그러나 모든 독성 정보는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성인 여성을 기준으로 하는 정보가 최근 많이 나오고 있으나 아직까지 대부분의 MSDS의 정보가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하는 만큼 나는 임신기간 동안 불안했다.
그리고 임산부에게 끼치는 독성정보가 거의 없다. 안전교육에 임신부 연구원에 대한 생식독성 이야기는 특별히 언급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 내가 두렵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검사를 했고 아이가 태어난 후 아이의 발달 과정을 세세히 살피려 노력했다. 그 덕분인지 아직 아이는 큰 문제없이 크고 있다. 부당경량아여서 일 년에 두 번 성장검사를 하고 있지만 에너지도 넘치고 입은 살아서 유치원 프로참견러로 쑥쑥 크고 있다.
내가 둘째를 좀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에는 아마 첫아이 때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각오를 했어야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아이를 갖는 게 좀 무섭다. 하지만 이런 일을 만나는 사람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어렵기에 누구든지 둘째를 운운하는 것이 참 불편하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경우 상대방의 사정은 모두 고려되지 않는다. 만약 상대방이 아이 갖기 어려운 사정인 경우 큰 실례를 범하는 것이 되고, 또 상대방이 딩크인 경우라면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전자인 경우건 후자인 경우건 모두 무례한 일이 된다. 나의 경우 임신으로 인해 감당해야 하는 심적 스트레스가 커서 피임을 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둘째는 당연히 낳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내 삶을 부정하는 무례가 된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각자의 사정이 있다.
지금 당신은 어떤 무례를 저지르고 있는가? 또는 어떤 무례를 저질렀다고 생각되는가?
그리고 어떠한 이유건 아이를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정말 이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