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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애틱 Aug 07. 2021

어느 직장인의 터프한 아프리카 여행기 3

포토에세이 zoo is noT enOUGH #3


출근날 아침, 휴대전화로 맞춰 놓은 알람이 울렸다. 팔다리가 침대 매트리스에 묶여 있는 듯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 건 눈꺼풀이었다. 어젯밤 자정 무렵 퇴근했지만 그대로 잠들었다간 내가 없어질 것만 같았다. 나일 수 있는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억지로 본 예능 프로와 맥주 두 캔의 무게가 느껴졌다. 다시 하루가 시작됐다. 뜬 듯 만 듯한 눈으로 지하철을 탔다. 회사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눈꺼풀만큼이나 무거웠다. 회사로 들어가는 문은 뱀 아가리가 딱하고 벌린 지옥 문처럼 보였다. 오늘만큼은 똥자루 부서장의 심기가 좋아서 악을 쓰며 소리 지르는 일이 없길 바랐고 시차가 큰 독일로 연수를 간 나르시스 과장에게도 할 일이 생겨 세 시간 반 동안 모욕적인 추궁을 하거나 마이크로 매니징을 할 시간이 없길 바랐다. 행복한 날보다 불행한 날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퇴사 의사를 통보할 무렵에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내는 게 힘에 부치고 있었다. 풋내기 직장인이 가진 커리어에 대한 열정과 지켜야 할 생존권을 볼모로 잡아 위협하는 야비한 행동을 더는 견디기 싫었다. 먼저 입사한 걸 대단하게 여겨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듯 감정 쓰레기를 타인에게 배설하는 인간들 따위가 내 정신을 좀먹는 걸 가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어지는 주변의 걱정들, 조금만 더 참으면 나아질 거야. 관두더라도 뭘 할지 생각하고 관둬야 해. 사표 쓴 사람 보니까 직장 다시 구하기 어려워서 후회하는 사람 많더라. 어린 나이도 아닌데 어떡하려고 그래.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행복은 언제 오는 거지.


이로부터 더 훗날 일어난 일이지만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앓던 나르시스 과장의 끝은 이랬다. 똥자루 부서장이 권고사직을 당한 후로부터 수년 뒤, 특별한 업무 전문성이 없었던 이유로 사내에서 입지가 좁아졌고 결국은 쫓겨나듯 덜 좋은 회사로 이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직도 같은 회사를 다니는 막걸리 부장, 이제는 이사가 된 형님이 이럴 줄 알았다며 위로해주듯 귀띔해준 소식이었다.






낯선 질감의 이불과 베개가 몽롱하던 머리를 또렷하게 해주었다. 애써 외면하던 질문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이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지. 아무리 혈혈단신이라지만 줄어가는 퇴직금만큼 불안감은 커져갈 텐데. 역설적이긴 하지만 지금은 행복한 날들이 불행한 날보다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과 두고두고 기억할 즐거운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는 건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미래가 불안하지만 운명과 인연과 노력을 믿어보기로 하고 일단 세수부터 할까?


아침 일찍 케이프 포인트로 떠나는 패키지 차량이 픽업 오기로 해 서둘러 준비했다. 강력한 자외선 차단을 위해 SPF50 선크림을 얼굴 구석구석 발랐다. 뽀얀 피부를 위한 미용의 목적보다는 화상을 방지하기 위한 생존의 몸사위에 가까웠다. 아프리카의 기온은 우리나라 여름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습하지 않아 견디기 수월한 부분도 있었다. 나무로 드리워진 얼기설기한 그늘 밑에만 들어가도 시원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작렬하는 적도의 태양이 피부 속을 작살처럼 파고드는 거였는데 강렬한 햇볕 때문에 저녁이면 발갛게 익은 피부가 따끔거렸고 콧등과 귓등은 이미 살갗이 벗겨져 껍질이 앉아 있었다. 모자를 야무지게 눌러쓰고 게스트 하우스의 철문 밖 좁은 도로를 건널 때였다. 끼이이익!!


왼쪽에서 세차게 달려오던 차가 타이어 마찰음을 비명처럼 내지르며 휘청거렸다. 스키드 마크가 생기며 내는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귀싸대기를 후려 맞은 듯 귀가 얼얼했다. 코 앞에서 바람을 휘날리던 SUV는 경적을 울릴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뒷목이 서늘해졌다. 좌측통행 교통시스템에 무심코 오른쪽만 보고 길을 건넜는데 왼쪽에서 차가 오는 일방통행 도로였던 거였다. 객지에서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여보시오, 운전사 양반. 어떤 인연으로 닿을 운명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악연으로 만나느니 그냥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게 나은 것 같소.


앞으로의 모든 악연도 어떤 교차점 없이 그냥 그렇게 스쳐가길 바랐다.


요단강 건널뻔한 숙소 앞 도로. 왼쪽에서 차가 달려온다.


15인승 버스가 도착하는 게 보였다. 헬로우, 하이, 이미 버스에 타고 있는 관광객들과 인사를 나눴다. 팔다리가 분절될 뻔한 위기를 겪었기에 평범한 인사가 더 반가웠다. 여러 곳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벌써 열댓 명의 인원이 모였다. 그런데 의외의 장소에서 그간 놓쳤던 케이프타운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봤던 정갈한 케이프타운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숨겨진 속살을 본 느낌이랄까, 일터에서 정장에 정돈된 모습만 보던 사람을 일요일 아침 무릎이 튀어나온 츄리닝(운동복 아니고) 입은 부스스한 모습을 우연히 본 느낌이랄까.


알록달록한 페인트는 길에서 보는 정면에만 칠해져 있었다.
집들 사이에 있는 골목길
집들 사이에 있는 골목길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바다표범 섬 seal island로 가는 항구였다. 고급 보트들이 줄지어 있었고 관광상품을 파는 노점상들도 여러 군데 있었다. 아프리카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기념품들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기서 파는 기념품들은 남아공 지역특색이 있는 게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치 지리산 앞자락 기념품 가게에 근본 없이 걸려있는 태극선 부채 옆 돌하르방 또는 불국사 3층 석탑 열쇠고리인 셈이었다. 팔자 좋게 늘어진 강아지들도 보였다. 죽은 줄 알았는데 조금씩 움직이긴 했다.


저 멀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걸인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물개에게 고기 덩어리를 던져주고 있었는데 물개는 그 주변을 떠나지 않았고 뒤룩뒤룩 살이 쪄 있는 게 자의로 사육당하고 있는 듯했다. 나름 야생 물개는 신선한 모습이었기에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돈을 달라고 했다. 물개에게 고기를 사 줄 돈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내가 고기 사 먹을 형편도 안된다고 미안하다 했더니 사진 찍지 말고 꺼지라고 했다. 꺼지는 와중에도 사진을 좀 찍어 봤다. 매서운 손가락질이 카메라를 파고드는 듯 날카롭게 느껴진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이국적인 나라이기는 했지만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보며 꿈꿔오던 아프리카의 모습과는 괴리가 있었다.


항구에 서 있는 요트 및 어선들
항구에 서 있는 요트와 낚시를 떠나는 부러운 사람들
아프리카 기념품 판매점
개가 늘어져 있다.
묶인 게 부러운 듯 보이는 자유로운 개
물개에게 고기 덩어리를 던져주는 아저씨
뒤룩뒤룩 살이 오른 물개
고기를 살 돈을 주지 않은 게 못마땅한 아저씨





아프리카에는 펭귄이 있다, 없다는 질문으로 한 때 퀴즈 프로그램에서 설왕설래한 적이 있었다. 펭귄 서식지인 볼더스 비치가 패키지 여행의 다음 목적지라고 했다. 펭귄은 눈으로 덮인 남극에 사는 조류로만 알고 있었기에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펭귄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보다 더 실없게 들렸다. 반신반의하며 뙤약볕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가이드가 도로 배수관 안을 보라고 했다. 이게 웬걸, 펭귄 가족이 보금자리를 틀어놓고 있는게 아닌가. 충격적이도록 귀여운 아프리카 펭귄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부터 앙증맞은 펭귄들은 수풀 사이, 바위 사이, 배수관 사이, 해변이고 할 것 없이 발길 닿는 곳 어디에서든 다 보이는 것 같았다. 사람만 호들갑을 떨었지 펭귄은 사람에게 소와 닭의 관계와 다를 바 없이 무관심했다. 그만큼 잘 보호받고 있는 것 같았고 사람을 헤치지 않는 동물이라 판단했던 것 같다. 둥지 사이사이로 맘 편하게 낳아 놓은 알들이 보였다.


볼더스 비치로 가는 길


귀염둥이 펭귄의 여운을 안고 이번에는 케이프 포인트로 이동했다. 배가 고파왔다. 여행을 할 땐 참 빨리 허기가 찾아온다고 느껴질 무렵 패키지에 포함된 식사를 준비해 주고 있었다. 케이프 포인트 부근의 휴게소에서 버스를 운전해 주시는 분과 가이드가 직접 식탁을 차리고 있었다. 미리 준비한 과일, 빵, 감자, 햄, 소시지가 부페처럼 테이블에 놓였다. 잠시 쉬는 틈을 타 프랑스 아줌마와 독일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눠봤지만 이내 공통의 관심사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멋쩍게 멀어졌다.


처음부터 버스 뒤에는 수 십 대의 자전거를 실은 트레일러가 꼬리에 붙어 따라 왔는데 여기에서부터는 바이킹 코스가 시작되었다. 휴게소의 위치가 경사 위 쪽에 있어 자전거에 타고만 있어도 쉽게 내려가는 구간이었다. 오늘의 대미를 장식할 희망봉 cape of good hope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대서양의 바람을 맞는 길 위에서도 감동적인 풍경은 멈추질 않았다. 바닷가 바위에 걸터앉아 낚시를 즐기는 사람 앞으로 집채 만한 파도가 철썩 몰아쳤다.


프랑스 및 독일 아주머니와는 공통 관심사가 없다는 걸 알게 된 휴게소
자전거 타기 바이킹을 준비하는 패키지 일행


케이프 포인트의 희망봉은 15세기 때 포르투갈에서 인도로 가는 항로와 귀중한 향로 무역로를 열리게 했던 곶(cape)이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했다. 당시 툭 튀어나온 지형의 너머는 미지의 세계였기 때문에 도무지 갈 엄두를 낼 수 없었다고 했다. 따라서 이곳 너머의 항로를 포기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용기를 내 곶을 통과하여 항로를 개척한 후 세계 역사가 지금과 같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쯤에서 감상에 젖지 않으면 섭섭하지.


지금은 인생의 지도에서 희망봉인 지점을 지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너머로 뭐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두려움을 이겨낸다면 새로운 인생이 찬란하게 펼쳐지지 않을까. 뙤약볕 아래에서 감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살갗이 햇빛에 오그라 드는 느낌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여전히 이 시간을 붙잡기 위해 카메라로 여러 모습을 담고 있었다. 카메라 프레임 속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불쑥 들어와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의 사진 따윈 신경 쓰지 않는 용맹스러운 대륙의 포즈가 멋스럽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 포인트 등대
케이프 포인트 등대를 찍는데 불쑥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대륙의 용맹스러운 포즈가 멋스럽다.


일정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다급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일 년째 세계 일주를 하고 있는 20년지기 친구 부부가 나를 위해 남아공에 와주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수년간 회사를 다니며 세계여행의 꿈을 키웠고 지금은 꿈같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수년 전 어느 날, 인사동의 식당에서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내가 언젠가 꼭 아프리카에 갈 테니 우리 거기서 다시 만나자.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들이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아 발걸음이 빨라졌다. 계속.



* 갇힌 곳을 떠나고 싶은 자유로움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zoo is noT enOUGH (동물원으로는 부족해)의 대문자를 따와 '어느 직장인의 터프(tough)한 아프리카 여행기'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동경했고, 사진에 미쳤고, 아프리카를 꿈꿨던 그때로 돌아갑니다. 내용은 모두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꾸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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