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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애틱 Aug 10. 2021

버스타고 24시간?!

어느 직장인의 터프한 아프리카 여행기 #4


나는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다. 친해지려면 적응시간이 필요했고 시간이 흘러도 끝내 서름서름 가까워지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원래 그랬던 내가 사회생활 이후로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대신 경우에 따라 친밀감을 꾸밀 수 있을 만큼 사회의 물을 먹었고 곰상스럽게 비위는 맞출 정도로 위장술을 펼칠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남의 젖은 빤스를 입고 있는 것처럼 속부터 찝찝하고 불편했던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둘이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들은 적어도 10년은 묵힌 메주 같은 사람들이었다.


회사가 세상의 전부이던 때가 있었다. 회사 사람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고, 회사 사람의 미움을 받으면 온 세상의 미움을 받는 줄 알았다. 사회로 나오면 자연스레 큰 사람이 되리라 믿었는데 오히려 우물 안으로 뛰어든 개구리가 된 셈이었다. 회사에서 알게 된 사람 중에는 훗날 이직 시 레퍼런스 체크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아직도 친한 형님으로 지내는 사람도 있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세상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걱정을 끼쳤던 사람은 이제 생사여부 조차 알 수 없다는 였다. 그들과의 관계가 무너져도, 미움을 받아도 내 세상은 견고하다는 걸 알았더라면 내 메주들이 더 맛있는 햇살을 머금도록 신경을 많이 썼을 텐데.






소스라치게 놀랐다. 먼발치에서도 10 갑자 이상의 내공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그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비루한 수련 기간을 가진 나는 주화입마가 우려되어 흠칫 걸음을 멈췄다. 공기 입자를 밟듯 사뿐한 몸동작으로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고 있었다. 스치는 바람에 살랑이는 옷자락, 어깨너머로 나부끼는 머리카락, 묵은 살이 오래도록 쌓인 구릿빛 얼굴에서는 도인의 기개가 풍기고 있었다.


수년 전 인사동 골목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친구들이, 내가 언젠가 꼭 아프리카에 갈 테니 우리 거기서 만나자고 인사를 했던 그 최장 부부가, 호스텔의 문을 열었더니 그런 모습으로 나타났다.


밤새 친구들이 겪어온 세계일주 스토리와 내가 회사에서 살아온 이야기로 호스텔 구석구석을 낯선 음절의 코리안으로 가득 채워 넣었다. 앞으로 시작하는 나미비아로의 여행을 함께 해 주기 위해 수십 시간을 한달음에 와 준 소중한 메주들에게서 얻은 커다란 위로와 힘은 다음 날 터미널까지 가는데 다 써버릴 거라는 걸 이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스탠드를 꺼 놓은 방은 손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웠다. 하지만 가직하게 느껴지는 사람 느낌이 좋았다. 낯선 환경에서 속절없이 나타나는 쓸쓸함은 오롯이 정체를 드러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칠세라 살포시 내려 앉는 눈송이 같은 느낌이기 때문에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칠흑 밤바다에 가물거리는 등대 불빛처럼 밝혀주던 여러 얼굴들이 떠 올랐다.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소중한 얼굴들을 밤재우고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아침. 널브러진 빨래, 세면도구, 여행책자, 지갑, 삼각대, 카메라, 렌즈, 국제면허증, 여권, 어렵게 발급받은 나미비아 비자를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나미비아 대사관은 불친절하고 콧대 높기로 악명 높을 뿐 아니라 오전에만 잠시 운영하기 때문에 나미비아 비자를 발급받기 위한 역경의 시간들은 아프리카 여행가들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채워주는 오아시스의 몫을 충실히 했다. 나 역시 뼈에 음각으로 새겨 넣을 분노의 사건이 있었지만 고이 잊기로 한다.


뒤에는 65리터 13킬로짜리 배낭, 앞에는 4킬로 카메라 가방, 양손에는 늘어난 짐을 들고 버스 터미널로 걸어갔다. 여행자의 가난살이에 한 푼이라도 아끼고자 택시를 포기하기도 했지만 케이프타운을 마지막으로 갈무리하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어느새 익숙해진 케이프 타운의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투명한 쇼윈도로 비치는 모습에서 6.25 전쟁 당시 피난민의 참담함을 담은 흑백 사진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터미널까지 40분을 걸었다. 한 걸음씩 발을 내려놓을 때마다 무릎 연골이 주저앉았다 올라는 바운스가 느껴졌다. 발바닥은 이미 피의 흐름이 멈춰 쥐가 나고 있었다.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마친 건장한 대한민국 남자로서 말하건대 행군의 고통과 흡사했다고 묘사할 수 있겠다. 생소하게 생긴 버스 터미널이 나타났다. 아직까지도 케이프 타운에는 숨겨진 모습들이 많다는 걸 느꼈지만 한계치를 넘어간 팔이 부들부들 거리고 있어 카메라를 꺼내 들 힘은 없었다. 어디선가 들은 말이 생각났다.


'여행을 할 때 가방을 보면 욕심이나 미련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대. 마음이 가벼울수록 여행 가방도 가벼워진다는 거지'


이 무거운 짐 더미를  앞에 두고 할 객쩍은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서둘러 주워들은 말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버스의 적재 공간을 초과한 짐들은 뒤에 딸린 트레일러에 채워 넣었다.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 windhoek로 가는 2층 버스 탔다. 2층 좌석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위치한 화장실과 간이 세면대에서 스무 시간이 걸리는 거리의 무게가 느껴졌다.


2층 버스 뒤에 따라오는 트레일러에도 짐들이 가득 실려있다.
승객들은 긴 버스 여행을 각자 편안한 자세로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땀으로 축축해진 옷을 에어컨 바람에 말리기도 전에 버스는 도시를 벗어났다. 순식간에 하늘과 맞닿은 들판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모습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벅찬 감동을 조용히 전달했다.


『 억겁의 시간 동안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이 아름다움은 신에 대한 찬미가 아닐까..』


귓구멍을 틀어막고 괴로워하는 최 씨가 보였다. 애써 못 본 척하며 이어지는 풍경에 대한 찬미를 보냈다. 차창 밖에 넋을 빼앗겨 수 시간을 보냈지만 같은 듯 다르게 펼쳐지는 자연의 광활함은 놀라웠다. 해가 지고 있다. 대지 위에 내려앉는 석양이 산비탈 사이에 자리 잡은 열댓 가구 마을도 드리워지고 있었다. 뚝에는 저녁을 준비하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케이프타운을 벗어나면 하늘과 맞닿은 들판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저 길을 따라 가야 빈트후크가 나온다.
가는 길에 종종 보이는 게스트 하우스 및 주유소
버스는 달리고 있고 석양은 내려앉고 있다.
갑자기 나오는 마을들 위에도 땅거미가 내려 앉았다.


밤이 깊었다. 의자는 아쉬운 대로 뒤젖힐 수는 있어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승객이 많지 않은 덕분에 두 자리씩 넉넉히 차지할 수 있었지만 아까부터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세서 거슬렸다. 온몸이 땀범벅일 때나 좋았지 체온이 식은 후 반소매와 반바지로 드러난 맨살에 떨어지는 에어컨 바람은 곤욕이었다. 임시방편으로 손수건을 풀러 반바지 밑으로 드러난 맨다리를 덮고 양 팔은 반소매 안으로 웅크려 집어넣었다. 온몸으로 똬리를 틀고 났더니 조금 체온이 유지되는 것 같았다. 버스 안에서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잠결에 버스가 속도를 늦추는 게 느껴졌다. 휴게소로 보이지는 않았다. 갑자기 버스 문이 열리더니 웬 정복을 입은 경찰이 버스에 오르는 것이었다. 순간 긴장했지만 여권을 보여 달라는 걸로 봐서 나미비아 국경을 넘기 직전이었던 것 같다. 국경선은 걸어서 넘어야만 한다고 해서 천천히 허름한 입국소를 향해 걸어갔다. 갑자기 뛰어가면 무장 군인이 발포할 수도 있으니 뛰지 말라는 주의가 이어졌다. 절차를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라 졸린 눈을 비비며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얼굴 위로 내려앉는 따뜻한 기운에 눈을 떴다. 지평선 너머에서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미비아에서 맞는 첫 번째 아침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20시간을 더 달린 후 나미비아의 빈트후크에 도착했다. 계속.


버스는 여전히 도로를 달리고 태양은 지평선 위를 솟아오르고 있다.
버스에서 만난 어느 마을의 평온한 아침 풍경이다.
20시간을 더 달린 후에 도착한 나미비아 빈트후크, 버스 터미널 근처 모습이다.



* 갇힌 곳을 떠나고 싶은 자유로움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zoo is noT enOUGH (동물원으로는 부족해)의 대문자를 따와 '어느 직장인의 터프(tough)한 아프리카 여행기'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동경했고, 사진에 미쳤고, 아프리카를 꿈꿨던 그때로 돌아갑니다. 내용은 모두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꾸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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