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침침하던 별들이 얼굴을 총총 내밀었다.가뜩이나 좁은 밤하늘을 촘촘하게 메꿔나갔다.희미한 짐승 울음소리가 정적을 타고 흘렀다.
"어우, 깜짝아.."
새파란 눈빛을 쏘아대며 자칼 두어 마리가 주변을 어리댔다. 신경이 거슬려 음식이 든 배낭을 텐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작은 몸집이지만 야생 동물을 철창없이 마주한 건 처음이라 어우야 소리가 절로 흘러나온다. 야생으로 모험을 떠난 탐험가의 체면이 구겨졌다. 훗날 오금을 저리게 했던 그 사건을 미리 겪었더라면 실소를 머금을 일이지만.
텐트로 비쳐 든 햇살에 눈을 떴다. 질기다 못해 잘 접히지도 않는 든든한 군용 천막에서 웅크리고 잤던 게 제법 안락했던 모양이다. 피로가 개운하게 풀려있었다.
"이놈들! 썩 꺼지지 못해!? 어딜 자꾸 기웃거려!"
"야, 너 누구한테 말하는거냐?"
지난밤 어슬렁거리던 자칼이 진작 사라졌다는 것을 확신한 뒤 호기롭게 텐트 밖으로 뛰쳐나갔다. 밤새 어둠에 파묻혀 있었던 풍경이 훤하게 드러나 있었다. 사방이 시원하게 열린 모래벌판이다.
모래 언덕을 보며 일어난 감흥은 텐트에서부터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나미브 사막과 다음날 도착한 데드블레이에서도 멈출 줄 몰랐다.
모랫길은 타이어 자국들이 얽혀 있어 황톳빛 강물이 구불구불 흐르는 것 같았다. 사륜 구동 차를 타고 관광하는 호사를 누릴 수 없어, 듬직한 이족 보행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발걸음을 옮기려고 한쪽 발에 힘을 주면 금세 모래 속으로 푹푹 파고 들었다. 무게 중심을 옮기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사막은 탈바꿈하는 가면 놀이처럼 정신없이 풍경이 바꼈다. 단조로울 거로 생각했던 편견이 영락없이 깨지고 있었다. 손으로 모래를 쥐었다 폈더니 모래시계 안에서 곱게 떨어지는 입자처럼 훌훌 날아갔다. 언덕에는 바람이 다녀간 손길이 고스란히 새겨졌다. 잔잔한 호숫가에 산들바람으로 만들어지는 물결이 모래 위에 그대로 박제된 모습이었다.
모래 벌판 위로 우뚝 솟은 황갈색 모래 언덕
데드블레이(deadvlei, 죽은 습지)는 한 때는 비가 내리고 나무가 뿌리를 내릴 만큼 비옥했던 곳이라 했다. 압도할만큼 거대하고 웅장하다는 표현으로는 아쉬움이 있을 만큼 놀라웠다. 불에 타 버린 듯 비쩍 마른 고사목들이 여기저기 사위스럽게 서 있는 모습으로 한 때 습지였던 걸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사막 속의 숨겨진 오아시스를 보려면 모래 언덕을 타고 한참을 가야 했다.
사람과 비교해 고목과 데드블레이의 크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모래 언덕이 가둬놓은 열기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불에 탄 듯한 고목의 질감과 색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갔다. 태양을 가만히 마주하고 있으니 언덕 너머로 조금씩 모습을 감추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욕심이 일어나 조금 더 멀리 사막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그만둘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까딱했다가는 어둠 속에 길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영 돌아갈 수 없는 심연 속에 갇혀 버릴 수도 있으니까. 늘 처럼 아쉬움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지만, 지금까지 잘했고 이만하면 충분했다고 생각했다. 수고했다. 사막을 걷는 나를 위한 말인지 그동안을 견뎌온 직장인을 위한 말인지 모르겠다.
나미브 사막의 낮과 밤은 오늘도 어김없이 바뀌었다. 지칠 줄 모르고 달궈지던 모래 언덕들도 나지막이 깔리는 낮은 채도의 공기에 조금씩 몸을 숨기며 가쁜 호흡을 가다듬었다.
달빛이 전혀 사라지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 4시, 알람에 눈을 떴다. 졸음을 떨쳐내지 못해 멍하니 텐트 천장을 바라보며 궁극의 무념무상을 체험한다. 하지만 이내 몸을 일으켰다. 듄 dune 45이라고 이름 붙여진 모래언덕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해돋이는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장관이라고 했는데 눈으로 직접 바라보고 싶었다. 칼로 자른 듯 날이 서 있는 모래언덕을 둘러싼 광야에는 휑뎅그렁한 달이 떠 있었다.
칼로 자른 듯한 모래언덕이라고 해서 말인데, 오래전부터 사막을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늘 떠오르던 궁금증이 있었다. 위태롭기 짝이 없는 모래 능선을 걸어가는 사람은 발을 헛디디고 굴러떨어지면 어쩌려고 저렇게 능선을 따라 태연하게 걸어가는 걸까, 하는 것이었다. 능선 자락에 첫발을 내디딜 때 호기심이 단번에 해결됐다.
모래 알갱이가 너무 고와 발을 내딛는 순간 움푹 구덩이가 파여 걸음을 엉기게 했다. 힘을 실은 손으로 파묻힌 반대 다리를 밀면서 걸음을 옮기면 그나마 수월했다. 그러니 발이 미끄러져 구르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설령 넘어진들, 몸이 모래 속에 파묻혀 데굴데굴 구르기도 힘들 것 같았다.
빛의 시간에 따라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모래 위 바람을 따라 자리를 잡은 들풀
어느새 모래 능선 위로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석양이 내려앉은 사막은 낮과는 달리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칼로 자른 듯한 모래 능선을 가까이에서 보면 꼭 이런 모습이다.
광야 위에 떠 있는 달의 모습
350m에 달하는 모래 언덕과의 사투 끝에 정상에 다다랐다. 이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동녘 하늘의 푸른빛이 흩어지는 것 같더니 선홍빛으로 바뀌었다가 금세 붉은색으로 변해갔다. 붉은색은 이내 황금빛으로 바뀌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눈부신 빛줄기가 모래 언덕 사이로 쏟아져 나왔다. 일 초라도 그 모습을 놓칠까 실눈을 뜨고 쳐다봤다. 색깔을 구별하기 어려웠던 광야도 조금씩 짙은 연두색 빛깔을 찾아가고 모래 언덕도 밝고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늘 같은 곳에 있는 태양이지만 등졌기에 밤이 왔고, 돌아섰기에 아침이 왔을 뿐인데 지금까지 그걸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희망은 늘 한 곳에 있었지만, 눈을 가로막은 두려움 때문에 보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태양을 마주 보고 빛을 가득 안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뭉개진 자존심과 주저앉은 자존감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애써 외면했던 속마음을 보듬어 주었다. 숨겨놨던 구겨진 마음 한 자락에도 한줄기 태양 빛이 닿아 밝아 오르고 있었다.
나미브는 원주민 어로 아무것도 없는 토지라는 뜻이라고 했다. 말처럼 텅 빈 이곳에서 오롯하게 나를 마주할 수 있었고 생채기 난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었다. 사막의 태양은 내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아니 세상에 오기 전부터 한결같이 떠올랐고 저물었을 거다. 그리고 내가 잠시 스쳐 간 후에도 여전히 어두운 광야를 밝히고 모래를 달구겠지. 앞으로 주어진 시간은 사막의 모래알이 견뎌온 시간에 비할 바 없는 찰나겠지만, 나미브에서 얻은 깨달음과 감동을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아 삶의 가치와 의미를 지키기 위해 온 진심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계속.
<어느 직장인의 터프한 아프리카 여행기 1부 끝, 어느 퇴사자의 터프한 아프리카 여행기 2부로 이어서>
* 갇힌 곳을 떠나고 싶은 자유로움을 말하고 싶었습니다.zoo is noT enOUGH (동물원으로는 부족해)의 대문자를 따와 '어느 직장인의 터프(tough)한 아프리카 여행기'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동경했고, 사진에 미쳤고, 아프리카를 꿈꿨던 그때로 돌아갑니다. 내용은 모두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꾸몄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