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과 남대문 사이에 있는 회사를 다녔다. 30대 초반의 풋내기 어른일 때였다. 대학생에게는 취업문을 통과한 승자, 사회에서는 밥벌이를 시작한 경제 활동인, 회사에서는 아몰랑 어리바리 신입사원 부캐로 활동하던 시기였다. 본캐를 깨닫기 전이라 바닷속 파도에 이리저리 나부끼는 다시마 미역줄기처럼 모든 게 흔들리던 때이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9년 전으로 거슬러가야 한다. 지금 30대를 겪는 직장인들의 불타는 마음 위해, 미완성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은 나를 위해 소중하게 보관했던 상자 뚜껑을 이제 열어야겠다.
* 갇힌 곳을 떠나고 싶은 자유로움을 말하고 싶었습니다.zoo is noTenOUGH (동물원으로는 부족해)의 대문자를 따와 '어느 직장인의 터프(tough)한 아프리카 여행기'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동경했고, 사진에 미쳤고, 아프리카를 꿈꿨던 그때로 돌아갑니다. 내용은 모두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꾸몄습니다.
마우스를 쥐고 있던 손을 들어 침침한 두 눈을 비볐다. 엑셀의 선들이 잠깐 선명해 보이는 듯했지만 이내 두 줄로 겹쳐 보이고 말았다. 회사 동료들로 북적이던 사무실도 어두운 침묵 속에 잠겨있었다. 일주일 간 태국으로 떠났던 회사 인센티브 여행의 여독을 풀기 위해 모두가 일찍 퇴근했다. 그런데 나는 왜 혼자 남아있는 거지. 아, 사무실 확장 리모델링 일정을 맞추라고 난리였지. 자조 섞인 한숨이 지난 두 달 간의 시간과 함께 흘러갔다.
220여 명의 직원들이 떠나는 여행을 밤새 준비하느라 회사 엄마방에서 몰래 밤을 지새웠던 시간. 어느 날 다리에 힘이 풀려 세면대를 붙잡고 세수를 하던 아침. 준비한 프로그램이 궂은날을 맞은 상사의 이유 없는 화풀이 대상이 되던 날. 일주일 총 수면시간 10시간, 귀국 비행기 이륙 직후 서울에 착륙하는 놀라운 순간 이동 경험.
궁금해졌다. 바늘구멍을 뚫은 낙타는 사막의 실크로드를 따라 걷다 말라죽는 게 행복할까, 길은 없지만 오아시스를 찾아 자유롭게 떠나는 게 행복할까.
이제는 절을 떠나야겠다. 퇴사 계획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지. 무계획으로 사표를 던지고 꿈만 꾸던 나라, 아프리카로 떠난 평범한 직장인의 여행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맞먹는 회사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고 자존감 회복을 위한 치유의 시간이었다. 현실에 억눌린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잠깐이나도 쉴 수 있는 도피처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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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내 무지에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다. 보통은 아무 일 없었던 듯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무마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혼자 있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우가 있다. 무작정 퇴사 결정을 내린 후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할 때 일어난 일이었다. 내 동경의 대상에 대한 무지함이 이토록 심오할 줄은 몰랐다. 말하자면 아프리카, 난 이게 어떤 나라로 이루어진 곳인지 조차 몰랐던 것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아프리카가 하나의 나라인 줄 알았던 것이다. 너무 창피했다.
아프리카를 향하는 비행은 꽤 (직항 노선이 없을 때) 길었다. 하늘을 나는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힘들었던 사건들도 머릿속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를 갈리게 했던 악덕 이중인격 대머리 난쟁이 똥자루 상사, 해외 파견을 갔으나 시차 따윈 개나 줘 버리고 아무 때나 아바타 조종을 즐기던 가스 라이팅 직속 선임 등이 떠 올랐다. 도하를 경유해 도착한 곳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이었다.
아프리카에 도착하면 사자의 습격에 무방비 상태가 되지 않도록 경계를 철저히 하거나,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을 향해 물소 떼가 이동하는 장관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 손. 나는 두 손을 들고 진심으로 반성해야 하는 놈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길거리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길거리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길거리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워터프런트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워터프런트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워터프런트
위터프런트, 코카콜라 상자로 쌓은 거대한 시람 뒤에는 테이블 마운틴
케이프타운에서 묵은 게스트 하우스
케이프타운에서 묵은 게스트 하우스
케이프타운에서 묵은 게스트 하우스
케이프타운에서 묵은 게스트 하우스
인디애나 존스가 될 것만 같았던 아프리카 탐험의 꿈은 일단 케이프타운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