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여행자

조지아_트빌리시

by 서작가

이번 여행에서 아이에게 나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간 여행에서 매일 쓰라고 했던 일기도, 여행지와 관련된 것을 가져가 굳이 읽으라고 했던 책도 다 면제시켜주었다. 대신 제 휴대폰을 가져가서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볼 수 있게 허락했고 자질구레한 것이라도 용돈 안에서 쇼핑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기로 했다. 여행을 떠나서 느낄 수 있는 자유를 아이도 느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엄마, 여기서 사진 찍어야 하지 않아?”

“이건 먹어봐야지.”

“이 숙소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마이너스야.”


아이에게는 자유를 주었는데 뜻밖에 잔소리 폭탄을 맞은 건 바로 나였다. 이제 제법 여행을 다녀 본 아이는 낯선 곳에 떨어졌는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이 많아졌다.


“잠깐만, 나 여기서 사진 좀 찍어 줘.”

“엄마 조금만 더 옆으로 가봐. 거기 서야 사진이 잘 나와.”

“우리 아까 갔던 성당 이름이 뭐라고 했지? 친구한테 사진 보내주려고.”


걷기만 하면 다리가 아프다고 하던 징징이
새로운 음식은 먹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던 고집불통
보이는 것마다 다 사달라고 졸라대던 막무가내 떼쟁이


몇 년간 함께 여행을 하면서 나는 늘 아이의 이런 모습에 힘이 들었다. 좋자고 떠나온 여행길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후회하고 자책하고 내 다시는 너랑 오나 봐라 다짐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나는 단단히 각오를 했었다. 웬만해서는 화내지 말자, 여유 있게 다니자, 아이가 원하는 여행이 되도록 노력하자 등등.

생각해보니 모두 아이가 여행 중 어떤 돌발 상황을 만들까 봐 미리 겁먹으며 한 다짐뿐들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엄마가 무색하게 어느덧 여행을 즐기는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조지아 사람들은 왜 이렇게 높은 데에 교회를 만들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거야!”

“신에게 더 가까이 가려고 그랬다잖아.”

“헐, 대박.”


여전히 투덜대고 헐, 대박을 번갈아 쓰며 엄마를 당황케 하는 대화를 이어갔지만 어쨌든 우리는 여행 중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며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혼자 갈 수 없어서 할 수없이 데리고 갔던 첫 여행부터 지금까지 순전히 나만 좋으려고 떠났던 여행이었다.
그런 나에게 아이는 빅 사이즈 트렁크보다 더 크고 힘든 짐 보따리라고만 생각되는 순간이 많았다.

그런데 몇 년간 나의 협박과 엄포가 난무하는 여행을 견디며 아이는 어느덧 제법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우리 다음엔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든 상관없는데 방학은 피해서 가자.”

“왜?”

“그래야 학교를 빠지고 가지!”


역시! 남들 안 갈 때 떠나는 게 진짜 여행이지. 안 가르쳐줘도 이런 걸 다 아는 걸 보니 너는 여행자가 다 되었구나. 이렇게 된 이상 앞으로도 우리는 여행을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애증의 시간을 거쳐 세상 잘 맞는 짝꿍이 되고 있는 아이와 나. 이런 날이 나에게도 올 줄은 몰랐다. 괜히 감격에 겨워 와인 잔을 채우니 아이의 잔소리가 날아든다.


“우리 내일 아침 일찍 나가야 하는 거 알지? 그만 마시는 게 어때?”


괜찮아. 네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나와 달리 아침잠이 없는 너는 알람보다 일찍 일어나 나를 깨울 텐데. 정말 우리 함께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런 의미에서 딱 한 잔만 더 하는 걸로!




본 글은 여행 매거진 트래비 2017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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