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_트빌리시
이번 여행에서 아이에게 나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간 여행에서 매일 쓰라고 했던 일기도, 여행지와 관련된 것을 가져가 굳이 읽으라고 했던 책도 다 면제시켜주었다. 대신 제 휴대폰을 가져가서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볼 수 있게 허락했고 자질구레한 것이라도 용돈 안에서 쇼핑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기로 했다. 여행을 떠나서 느낄 수 있는 자유를 아이도 느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자유를 주었는데 뜻밖에 잔소리 폭탄을 맞은 건 바로 나였다. 이제 제법 여행을 다녀 본 아이는 낯선 곳에 떨어졌는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이 많아졌다.
걷기만 하면 다리가 아프다고 하던 징징이
새로운 음식은 먹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던 고집불통
보이는 것마다 다 사달라고 졸라대던 막무가내 떼쟁이
몇 년간 함께 여행을 하면서 나는 늘 아이의 이런 모습에 힘이 들었다. 좋자고 떠나온 여행길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후회하고 자책하고 내 다시는 너랑 오나 봐라 다짐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나는 단단히 각오를 했었다. 웬만해서는 화내지 말자, 여유 있게 다니자, 아이가 원하는 여행이 되도록 노력하자 등등.
생각해보니 모두 아이가 여행 중 어떤 돌발 상황을 만들까 봐 미리 겁먹으며 한 다짐뿐들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엄마가 무색하게 어느덧 여행을 즐기는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여전히 투덜대고 헐, 대박을 번갈아 쓰며 엄마를 당황케 하는 대화를 이어갔지만 어쨌든 우리는 여행 중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며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혼자 갈 수 없어서 할 수없이 데리고 갔던 첫 여행부터 지금까지 순전히 나만 좋으려고 떠났던 여행이었다.
그런 나에게 아이는 빅 사이즈 트렁크보다 더 크고 힘든 짐 보따리라고만 생각되는 순간이 많았다.
그런데 몇 년간 나의 협박과 엄포가 난무하는 여행을 견디며 아이는 어느덧 제법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역시! 남들 안 갈 때 떠나는 게 진짜 여행이지. 안 가르쳐줘도 이런 걸 다 아는 걸 보니 너는 여행자가 다 되었구나. 이렇게 된 이상 앞으로도 우리는 여행을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애증의 시간을 거쳐 세상 잘 맞는 짝꿍이 되고 있는 아이와 나. 이런 날이 나에게도 올 줄은 몰랐다. 괜히 감격에 겨워 와인 잔을 채우니 아이의 잔소리가 날아든다.
괜찮아. 네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나와 달리 아침잠이 없는 너는 알람보다 일찍 일어나 나를 깨울 텐데. 정말 우리 함께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런 의미에서 딱 한 잔만 더 하는 걸로!
본 글은 여행 매거진 트래비 2017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