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_바르샤바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하니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혼자 여행하던 때만 생각하고 덜컥 예약했던 야간 버스는 생각보다 훨씬 불편하고 힘들었다. 아이는 그 좁은 좌석에서도 잘 자는 것 같았지만 나는 한숨도 못 자고 꼬박 밤을 새우고 말았다. 내게 기대어 자다가 가끔씩 뒤척이는 아이가 깰까 봐 자세도 바꾸지 못하고 삐딱하게 앉아온 탓에 더 피곤했다.
미리 호텔에 신청했던 얼리 체크인만 믿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안 된단다. 따질 힘도 없어 호텔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으니 몸이 꺼질 것 같았다.
그대로 잠들고 싶었지만 바르샤바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오늘과 내일이면 이 여행도 끝인 것이다.
그러니 얼리 체크인이고 뭐고 하나라도 더 보러 다니자.
호텔을 나와 우리가 향한 곳은 쇼팽 박물관.
마침 피아노를 열심히 배우는 아이에게 쇼팽을 알려주고 싶었다. 아직 쇼팽을 치려면 멀었지만 나중에 언젠가 쇼팽을 치게 될 때 우리가 갔던 그 바르샤바와 박물관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순전히 엄마의 마음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길을 걸은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다리가 아프다고 투덜댔다. 갑자기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너는 버스에서 잠이라도 잤지. 엄마는 한 숨도 못 잤단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거니?
겨우 이만큼 걷는 것도 힘들면 뭐 하러 엄마를 따라서 온 거야.
나도 너랑 다니는 거 아니면 쇼팽 박물관 같은 데는 갈 생각도 안 했을 거라고.
이렇게 쏘아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조금만 가면 되니까 다리가 아파도 참아, 하는 말로 달래는 둥 마는 둥 그냥 걸었다. 아이도 나의 냉랭한 말투에 눈치가 보였는지 잠자코 따라오는 것 같았다.
한 발짝 뒤 따라오던 아이를 돌아보니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가방을 뒤져 휴지를 찾았지만 매일 가지고 다니던 휴지는 보이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목에 둘렀던 스카프를 빼서 아이의 코를 막았다. 길거리 한복판에 서서 피를 흘리는 아이 잡고 있으니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스카프가 흠뻑 젖도록 피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겁이 덜컥 났다.
단순한 코피가 아닌 게 아닐까?
이대로 피가 멈추지 않으면 어떡하지?
응급차를 불러야 하나, 병원으로 가야 하나?
아, 여행 따위 왜 온 거야!
아이가 덜덜 떨리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피범벅이 된 스카프를 떼보니 코피가 멈춰 있었다. 안도의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섞여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모두가 내 탓인 것 같다.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잠깐 쉬어가면 될 것을. 뭐가 그리 급해서 너를 그렇게 닦달했던 걸까. 코피가 날 정도로 힘이 들었던 걸 엄마가 알지도 못하고 너보다 내가 더 힘들다고 하다니. 이렇게 이기적인 엄마가 어디 있을까.
언제 피를 철철 흘렸냐는 듯이 아이가 좋아한다. 어쩌면 아이가 원하는 것은 이렇게 사소한 것인데 나는 그걸 대부분 놓치고 있었다. 초코 맛 아이스크림, 조악하지만 귀여운 기념품, 맥도널드 해피밀 세트의 장난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안 돼만 외치는 엄마는 집에서의 엄마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여행이 끝나갈 때야 그걸 알게 된 것이다.
그래 이까짓 아이스크림 하나에 네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오늘은 두 개를 사줄게.
쇼팽 박물관은 뭐, 다음에 폴란드 한 번 더 오면 되지.
본글은 여행 매거진 TRAVIE 2017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