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_씨엠립
명절이 그저 휴일이었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어쩌다 보니 연휴 앞뒤로 쉴 수 있는 날까지 며칠 붙어서 휴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냥 집에서 TV나 보며 쉴 새 없이 먹어대다가 부은 건지 살인지 모를 상태로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럴 때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 진리다.
혼자 갈 거예요.
미리 계획한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조건 자리가 있는 동남아 패키지여행을 골랐다. 목적지는 당시 한창 뜨고 있던 캄보디아와 태국을 묶은 여행이었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앙코르와트도 보는구나. 스스로 헛웃음이 날 정도로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그때는 목적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떠나는 것이 중요했을 뿐.
패키지여행의 특성상 여행 구성원들은 노부부부터 자녀 동반 가족, 또는 부부인지 불륜 인지 뭔가 수상한 커플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혼자 여행을 온 사람이 나를 포함해 5명이나 되었다는 점이다. 솔로에겐 이 긴 휴일이 어쩌면 견디기 어려운 현실이었을까. 일상과 맞닥뜨리지 않으려는 듯 여행을 떠나온 것이겠지. 가이드에 의하면 1년에 두 번 설과 추석 연휴 여행 패키지 구성원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들은 설렘보다 심드렁한 얼굴로 ‘홀로 섬’이 되어 패키지에 참석하는 것이다.
우리들(홀로 여행객들)은 버스에 실려 낯 모르는 사람들과 어색하게 눈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뒷자리를 차지한 채 이국의 풍경을 건성건성 보았다. 어쩌면 혼자 왔다는 동질감에 금방 친해질 것도 같았지만 우리는 외로워서 온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딱히 앙코르와트가 궁금했던 것도 아니고, 다만 시간이 있어서 떠나온 것뿐이니 맥주나 홀짝이며 이국을 느끼면 충분했다.
패키지여행이라는 빡센 일정을 감안 못했다는 것이 실수였다면 실수였지만 말이다.
패키지 설명서에 최근 지어진 럭셔리 호텔이라고 광고를 하더니 호텔은 아직 공사 중이었다. 물도 채워지지 않은 수영장 썬 베드에 누우니 목적지에 도착만 했는데 벌써 이틀이 지났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일은 정말로 그 앙코르와트도 볼 것이다. 그럼 여행의 목적까지 달성한 것인가.
그럼 이제 돌아가야 하는구나.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을 보니 다른 나라에 오긴 온 것 같고 이제 막 도착했는데 돌아갈 생각에 벌써 울화가 도지는 것 같은 복잡 미묘한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친절한 호텔 직원은 시키지도 않은 맥주를 선심 쓰듯 가져다주며 현지 물가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받았다.
그래도 사실 좋았다.
이 기분 때문에 두서없는 여행을 떠났던 건 아닐까. 엄마는 전을 부치며 그나마 도움이 되는 다 큰 딸년이 명절에 집을 나갔다고 투덜거리겠지만 내심 나를 기특하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집에 돌아가 사진이라도 주르륵 올리면 부럽다고 댓글을 다는 친구들 덕분에 잠시나마 어깨가 으쓱해질 것이다.
맥주를 홀짝이며 혼자 웃는데 건너편에 혼자 누운 그림자가 얼핏 보인다. 조명 상태도 좋지 않아 알아보긴 힘들었지만 누군지 알 것 같다.
당신도 나처럼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떠나온 ‘홀로 섬’이로군요.
해가 뜨기 전 앙코르와트를 보아야 한다기에 새벽에 일어나 드넓은 유적지를 보며 조금은 감탄을 했고 조금은 더워했으며 또 나머지는 아쉬워하며 시간을 보냈다. 패키지는 빡빡한 일정으로 우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막판 해가 지기 시작하자 프놈바켕에서는 꼭 일몰을 봐야 한다며 등산까지 시켰다. 어쨌든 네발로 기어올라 기진맥진하며 정상에 올라 일몰을 보는 것으로 여행 일정을 마쳤다. 볼 만하다는 건 다 본 셈이었으므로 패키지여행의 소임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이제 남은 것은 돌아가는 여행이었다.
일상은 이렇게 늘 지지부진했었나.
명절이 끝나자 놀았는데도 이상하게 피곤한 남자들이 소화도 덜 된 얼굴로 나타나고 업무의 연장선 같은, 그것도 밤샘과 야근을 계속하는 명절 업무를 마친 여자들이 차라리 홀가분하게 일상을 받아들인다.
떠나는 여행과 돌아오는 여행을 마친 나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슬쩍 내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들과 나는 조금 달라져 있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그 해의 명절은 일상의 연장이었지만 나에게는 추억이라는 구태의연한 이름의 기억이 남았기 때문이다.
호텔 수영장 썬 베드에 누워 맥주를 홀짝이며 이국의 하늘을 바라보던 나.
그때의 나는 조금 더 예뻤을 것이다.
그래 충분하다.
지금의 나는 업무의 연장선 같은 명절을 보내야 할지라도 '그땐 그랬지’의 기억으로 조금은 견딜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