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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작가 Aug 28. 2018

여행작가로 살아남는 법

내가 좋아서 하는 일

제목을 <여행작가로 살아남는 법>이라고 했지만 나도 그게 참 궁금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얼떨결에 러시아 관련 책을 2권이나 출간하고 '여행작가'라는 타이틀까지 붙었지만 도대체 살아남지 못하고 있다. 그냥 겨우겨우 연명하고 있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이름만 여행작가이다.

'작가'라는 이름이 주는 어떤 막연한 낭만적 느낌이 있는데 거기에 '여행'까지 붙어있으면 그 느낌은 한 백배쯤 더해진다. 여행을 다니며 떠오르는 대로 글을 쓰는 이 여행작가란 얼마나 멋진 환상이란 말인가. 나도 그거 뭔지 안다. 나도 그런 줄 알았으니까.



좋겠다! 여행도 가고, 돈도 벌고!

좋긴 좋은데 여행은 일이 되는 순간 여행이 아니고, 돈은... 벌지 못하고 있다. (아, 버는 여행작가도 많다. 심지어 많이 버는 여행작가도 있다... 고 한다.)

첫 책을 내고 초판 선인세로 200여만 원을 받았다. 말하자면 그게 여행을 다녀오고 몇 달을 책 쓰기에 몰두하며 쓴 거의 1년 치 임금이었다. 혹시나 초판이 잘 팔리고 2쇄를 찍게 되면 그때부터 팔리는 만큼 인세를 받게 된다.


계산을 해보았다.

1만 부가 팔리면 천만 원이고 10만 부면 1억!!

그러나 아직 초판도 다 팔리지 않았다.

2쇄는커녕 1쇄로 곧 절판될 것 같다.  


그럼 본격적으로 계산해보자.

그 책을 쓰기 위해 러시아를 몇 번 다녀온 비행기 값이... 그냥 계산하지 않기로 한다.

이미 마이너스다.


그래도 좋았다. 나의 글이 책으로 나온다는 것이. 매일 인터넷 서점 여기저기를 다니며 검색하고 혹시 리뷰라도 올라오지 않았는지, 판매 순위는 올라갔는지 확인했다.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도 책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매대에 없으면 찾아서 슬며시 올려놓기도 하고 괜히 내가 한 권 사들고 오기도 했다. 내 소중한 첫 책이었으니까. 돈 따위 신경 쓰는 건 작가가 할 일이 아닌 걸. 자식만큼 귀하고 어여쁜 이 책을 못 알아보는 건 눈이 어두운 독자 탓이지 내 탓이 아니잖아.라고 위안 삼았다.


책이 나오면 유명 작가들처럼 인터뷰도 하고 연재도 하고 초청 여행도 하고 그럴 줄 알았다. 책이 잘 팔리는 건 크게 기대 안 했지만 이런 부수적인 이득은 좀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도 없었다. 내 친구들, 가족, 지인들만 겨우 알아주는 여행작가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여행작가로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잘 팔리는 여행책을 내는 작가가 살아남는다.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에 대한 책을 내면 잘 팔릴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잘 가지 않아서 잘 안 팔렸다. 블루오션이 꼭 성공하는 게 아니었다. 유럽 여행 책이 그렇게 많아도 잘 팔리는 이유는 그만큼 많이 가기 때문이다. 애당초 러시아가 아니라 유럽이나 일본을 팠으면 기본은 했을지도 모르겠다.


유명한 사람이 쓰면 많이 팔린다.

이건 너무 당연하다. 나라도 같은 곳이면 유명한 사람이 쓴 책을 사서 보겠다. 그의 여행은 어떤지 궁금하니까.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SNS 스타라던지 뭐 등등 이름이 있어야 잘 팔린다. 나는? 아무도 모른다. 여전히 내 가족, 친구, 지인들 사이에서만 알려진 여행작가이다. 그들이 다 책을 샀다보장은 못하겠다.


글발, 사진발 그것도 아니면 외모 발

글이 좋으면 당연히 주목받는다. 여행책에 사진은 글만큼, 아니 글보다 더 중요하니 좋은 사진을 찍으면 눈이 간다. 그런데 요즘 이것만큼 중요한 게 있으니 바로 외모 발이다. 작가도 예쁘고 잘생기면 주목받고, 더불어 책이 잘 팔리기도 한다. 예쁘고 잘생긴 작가가 책을 냈다면 나도 관심이 간다. 부정하고 싶지만 어느 정도 현실이다. 게다가 요즘 젊은 작가들(이라고 쓰니 나는 늙은 작가인가?)은 글과 사진 감각이 내가 닿을 수 없는 지점에 있다. 이 부분은 그냥 포기하기로 한다. 눈물 좀 닦고.


이렇게 쓰고 보니 안 팔리는 작가인 것에 대한 지질한 변명 같지만 사실 나는 내가 안 팔리는 작가인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애당초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꾼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고자 했으면 책을 내겠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글 쓰는 사람으로서 내 이야기를 쓰고 내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출판사 미안해요.)

첫 책이 나왔을 때 주변에 책을 거의 선물하지 않았다. 내가 1년 가까이 쏟아부은 열정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사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제외한 가족에게도 주지 않았고 친구들에게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책을 받으신 분들은 선택받으신 겁니다!) 그만큼 아꼈고 소중했다.



홍보 따위 알지 못했던 나는,
그래서 아직 이름만 여행작가인 채로 살고 있나 보다.

안 팔리는 작가지만 나는 앞으로 영원히 여행을 그냥 즐기지 못하는 족쇄에 이미 걸렸다. 어디를 가든 쓸만한 게 없는지 해볼 만한 게 없는지 자꾸 콘텐츠를 생각하고, 언젠가 쓸모 있을 것 같아 당장은 의미 없는 사진도 찍어 둔다. 여행작가라는 허울 좋은 이름이 내게 준 직업병이다.

여행작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직업병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많이 안 팔려도 살아는 남아야 하니 콘텐츠는 늘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성공할 수 없다면 재밌게 해보자. 어차피 여행작가는 게 어쩌다 보니 성공하는 거지 성공하려고 선택하는 직업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좋아서 하다 보면 겨우겨우 일지라도 살아는 있게 된다. 나처럼.



두 번째 책이 2쇄를 찍은 지 3달이 지났다. 월드컵 특수를 기대했지만 전혀 효과는 없는 모양이다. ( 경규 아저씨는 왜 이번 월드컵에 러시아에 안 갔으며 꽃 할배들은 러시아에 안 간 걸까.) 2쇄  소식은 분명 흥분할만했지만 역시 여행작가로 성공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여행자들이여 제발 러시아로 여행 가라고! (내 책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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