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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작가 Sep 04. 2018

방송 글쓰기와 책 글 쓰기

내가 가진 것을 장점으로 만들기

방송작가로 거의 20년 차 되어 간다. 그간 쭉 이어서 일한 건 아니고 중간중간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하고 여행도 하고 책도 쓰면서 쉬기도 했지만 어쨌든 햇수로는 그만큼 되어 간다. 시작을  방송 글쓰기로 해서 내 글의 전반은 '방송 글' 스타일이 담겨 있다. 읽는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쓰고 있는 나로서는 때때로 이건 너무 방송 글 같은데, 좀 더 문어적인 문장으로 바꿔야겠다,라고 생각한다. 


방송 글과 책 글 무슨 차이일까?


방송 글의 특징 


'방송 글'은 영상과 함께 '듣는' 글이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눈으로 보는 '읽는' 글과는 확연히 다른 면들이 많다. 엄밀히 말하면 방송에서는 영상이 우선이고 소리는 그다음이다. 때문에 영상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뒷받침해주고 내용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 내레이션의 역할이다. 영상 이상의 것을 써야 할 때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상과의 조화이기 때문에 거기에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는 거의 배제된다. 느끼는 것은 시청자의 몫이지 작가가 그것까지 할 필요는 없다. (의도한 대로 느끼도록 몰고 갈 수는 있지만 그건 영상이 부실할 경우에 해당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쉬운 글이다. 말이 글보다는 쉬운 것처럼 방송 글도 소리로 전달되다 보니 어려워서는 안 된다. 게다가 방송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들이 보고 있으니 누가 들어도 알만한 수준의 글을 써야 한다. 방송가에서는 통상 12~15세 정도의 수준으로 제작해야 한다는 암묵적 룰이 있다. (요즘 12~15세라면 뭐 알만한 건 다 알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긴 하는데)  


이건 위 특징과 이어지는 내용이기도 한데 들리는 글의 특성상 어휘와 문장의 리듬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같은 뜻이라면 읽기 편한 단어나 귀에 잘 들리는 단어로 선택하고 앞에 쓴 단어는 되도록 반복해서 쓰지 않는다. 문장도 같은 종결어미로 끝내지 않으려고 신경 쓴다. 계속해서 ~다.로 끝나면 너무 딱딱하고 ~요.로 끝내면 가볍다. ~다, ~요, ~데, ~자, ~까 등등 이왕이면 다양한 종결어미를 써서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리듬감을 느끼게 쓴다. 



책 글과의 차이점


처음 책을 쓸 때 어려웠던 부분이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는 글만 써오다가 내 느낌, 감정을 확실하게(때로는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어색했다. 굉장히 사적인 감정을 글로 자세히 쓰는 것이 글에 특별함을 부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글의 흐름에만 집중해서 써서 내 얘긴데 마치 남의 이야기를 받아 쓴 것 같은 글을 쓰곤 했다. 

초창기 에세이 원고를 읽어본 편집자가 '속 말'을 글로 더 써 보라고 했을 때 금방 수긍이 가지 않았다. 

이 이상 뭘 더 쓰라는 말이냐.


묘사 또한 어려웠다. 글만 읽는 독자들을 위해 묘사는 글쓰기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나로서는 그것도 쉽지 않았다. 방송에서는 영상을 이미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을 굳이 말로 표현해줄 필요가 없다. 화면에 산이 나오는데 저 높은 산에 만년설이 있고, 무슨 색의 꽃이 피었고 등등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것을 '묘사'할 필요가 없다. 방송 글에서 묘사는 정말 쓸 말이 없어도 하면 안 되는 금기시되는 스킬이다. (만약 방송에서 영상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설명, 묘사하는 내레이션을 듣는다면 그 작가는 초짜이거나... 할많하않) 

그런데 그 금기시되는 스킬을 쓰라고 하니 잘 될 리가 없다. 묘사하는 글을 쓰다가도 불현듯 굳이 이런 것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 오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도 묘사는 쉽지 않다. 


너의 글은 잘 읽혀. 술술 잘 넘어가



첫 책이 나왔을 때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분명 칭찬으로 하는 말들이었지만 듣는 나로서는 부끄러운 마음이 한편에 있었다. 술술 잘 넘어간다는 말이 가볍다는 뜻인 것 같았고 방송 글에 익숙해진 글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어려운 글을 쓰고 싶다. 

한 문장을 쓰더라도 몇 번을 읽어보는 그런 무겁고 어려운 글을 쓰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다.


한동안 그 부분을 콤플렉스처럼 생각했지만 결국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쉽게 쓰기, 문장의 리듬감을 살려 쓰기는 내 글이 잘 읽히는 이유이다. 그리고 영상 구성을 하며 체득한 글의 흐름과 구성 능력은 내 글이 술술 잘 넘어가게 한다. 실제로 편집 과정에서 글의 편집이 거의 없었는데 흐름과 내용 구성 그리고 분량 맞추는 것까지 그동안 방송작가로 나도 모르게 체득한 스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쉽게 써라. 짧게 써라. 소리 내어 읽어 봐라.


글쓰기 조언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내용이다. 방송작가라면 이런 건 매번 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 나도 20년 동안 알게 모르게 훈련되었다. 괜한 콤플렉스를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가 가진 것들을 장점으로 만드는 건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려운 문장 쓰려고 노력하지 말고 쉽고 재미나게 술술 넘어가는 그런 글을 써야겠다. 묘사는 좀 더 연습하는 걸로 하고.


(결국 잘 써보겠다는 다짐으로 끝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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