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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작가 Apr 24. 2019

작가의 직업병

그게 무슨 의미냐고 물으신다면

오래 앉아 있어서 허리가 아픈 디스크

자판을 두드려서 손목 터널 증후군,  오십견

책이든, 뭐든 많이 보고 있으니 시력저하, 안구 건조증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현대인이라면 이런 병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테니 굳이 작가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닐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직업병은 따로 있다. 


의미부여 병


이름은 내가 지었지만 금세 무슨 뜻인지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면 당신도 글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문장을 썼다 지웠다 해본 경험이 있는 작가가 분명하다. 

SNS에 쓰는 글에서도 처음에 의도하지 않았던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사실 결론 따위 있을 리 없는 신변잡기를 서술하는 글인데도 다 쓰고 나면  어느새 그날의 반성과 내 인생의 특별한 어느 하루처럼 되고 만다. '오늘 먹은 음식과 친구'가 글로 쓰면 '좋은 친구와 먹은 맛있는 음식 때문에 행복'까지 한 날이 된다. 

그게 무슨 큰 차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발동되는 그런 사소한 '스킬'이 때때로 글을 쓰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후 아이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한 번도 제대로 된 답변을 해본 적이 없다. 별로 마땅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크게 달라진 것이 없거니와 생각보다 여행이 아이에게 미친 영향은 (아직까지는) 없는 게 사실인데 이걸 사실대로 말하면 질문한 상대를 크게 실망시킨다. 그래서 나름 답변을 정리해 본 적이 있다.


여행이 아이에게 당장의 변화를 주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와 함께 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무엇을 할 때 덜 머뭇거리고, 덜 겁내지 않을까 기대해 봐요. 이미 이 아이는 여행을 통해 많은 경험을 했으니까 머뭇거리고 겁내기보다 과감히 해도 된다는 자신감이 조금은 생기지 않을까요?


정말 그럴듯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 다시 물어보다면 꼭 외워서 이렇게 대답해야지 다짐하다가 문득 의구심이 든다. 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 


"여행이 뭘 어떻게 애를 바꿔놓겠어요. 아이는 그냥 학교 빠지고 놀러 간 게 신나는 것뿐인데요. 

여행이 별건 가요? 놀러 가는 건데 노는 건 애나 어른이나 좋잖아요. 그 이상이 뭐가 있겠어요!"


왜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 무슨 일에나, 어떤 글에나 그렇게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진짜 나의 고질병이 아닐 수 없다. 글이든 말이든 꼭 의미가 있어야 완성되는 것은 아닌데 어쩌다가(?) 나는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그러다 보니 쓰다가도 마무리를 하려면 하다 못해 '참 좋았다' 라도 써야 직성이 풀린다. 

이게 왜 작가에게 고쳐야 할 직업병인가 하면 언제나 '착한 글'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위 '나쁜 글'을 썼더라도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 글은 결국 '착한 글'이 되기 때문에 다양한 글을 쓰는 작가에겐 결국 비슷한 글을 쓰고 마는 딜레마가 된다. (여기서 착한 글과 나쁜 글에 대한 정의는 내용에 한해서만이다.)


아무 글이나 막 쓰고 싶다. 내용은 가득해도 의미는 없는 글을 쓰고 싶다. 의미는 내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던가. '참 좋았다'라는 구태의연한 의미 대신 '... 했는데 어쩔래?' 하는 의문을 던지는 글을 써보고 싶다. 이건 뭐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내가 의미부여라는 벽을 스스로 뚫어야  하는 것인가? (라며 또또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글을 쓸 때 마지막 문단을 일부러 비우는 연습을 해볼까 한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그래서 어쨌다는 거죠?'라고 묻는다면 그냥 그랬다구요!라고 말해볼 참이다.  그리고 이 글이 그런 글의 첫 번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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