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금하면 글 써드립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넘쳐서 자판 위에 손만 얹으면 글이 주르륵 나오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쓰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 가득한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런 사람, 있긴 있을 거다.
일단 나는 아니다.
나를 쓰게 하는 원동력의 8할은 '입금'이다. 일단 돈을 받아야만(선불이든 후불이든) 글이 써진다. 직업상 처음부터 글에 대한 대가를 받으며(그 액수의 많고 적음과 정당함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썼기 때문일까, 입금이 보장되지 않는 글은 잘 써지지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블로그도 오래 하지 못했고, 페이스북이나 트윗 같은 SNS도 잘하지 못하고 있다. 돈이 되지 않는 글을 어떻게 각 잡고 쓰는지. 나는 도저히, 그게 잘 안 되는 것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작가가 되거나 페이스북에 올린 글들이 인기를 얻어 책을 낸다거나 하는 일은 이제 특별한 일도 아니지만 처음에 그런 케이스들을 보고 엄청난 반성을 했다.
돈 따위 신경 쓰지 말고 쓰고 싶은 글을 꾸준히 써야 누구라도 볼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작가랍시고 돈 안 주면 안 써!라는 말이나 하고 있다니. 그러다 영영 글 못쓰게 되면 어쩔래? 누가 너한테 돈을 주냐고!!
그래서 한동안 방치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돈 안 받고 쓰는 글 치고는 꽤 오랫동안 그래도 꾸준히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게 내 생각만큼 조회수나 구독자수가 늘지 않는 걸 보면 글의 퀄리티가 꽤 낮은 탓이 아닐까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글의 퀄리티가 낮은가를 따져보면 역시나 이건 입금이 보장되지 않는 글쓰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고 만다.
대게 글 노동에서 입금의 조건에는 다음이 수반된다.
1. 글의 주제의 명확성
2. 확실한 타깃 독자
3. 글의 목적성
그러니 당연히 글의 퀄리티는 그냥 쓰는 글보다 나을 수밖에 없고, 돈 받고 하는 일에 어찌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도 내 마음속 저 바닥 어딘가에 부유하는 글을 쓰고 싶은 작은 욕망을 들춰내어 몇 줄이라도 아무 거리낌 없이 써 보고자 노력하지만 이내 이걸 누가 읽어, 이런 글 쓰면 뭐해, 같은 자괴감이 그나마 조금 떠오르던 글짓기 욕망을 가라앉히고 있다.
아, 누가 입금을 보장해 준다면 어떤 글이라도 잘 쓸 자신 있는데!
라고 어림도 없는 변명을 하면서.